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86화 (286/351)

# 286

10화

“눈에 자꾸 밟혀서 그렇다네.”

“……?”

“식사나 제대로 하고 있을지…….”

밀러의 중얼거림을 들은 마현은 머릿속에 한 아이를 떠올렸다. 바로 전장에서 고작 한 달 정도 종자로 데리고 있던 한스였다.

그러고 보니 밀러가 한스를 참으로 귀여워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신과 단원들이야 훈련이다 뭐다 해서 정신없이 지냈지만 밀러는 출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한스와 함께 있었다.

‘그런가?’

밀러가 일찍 결혼했다면 지금 나이에 그만한 손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보다 대성한 아들 하나쯤은 있을 나이였다.

‘거기에 제자도 없군.’

밀러의 나이쯤이면 제자 한 명쯤 있는 것도 보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한스라…….’

마현이 언뜻 지나치며 들은 기억에 의하면 한스는 포크너 후작가의 하인과 하녀의 아들이었다. 그나마 그 부모도 전쟁이 터지기 얼마 전에 죽었다고 들었다.

고아이지만 부모가 포크너 후작가의 하인 신분이었기에 한스 역시 포크너 후작의 개인 재산인 셈이다.

‘한스라…….’

그만하면 심성도 나쁘지 않고 꽤나 총명한 아이였다.

“한스 정도면 제자로 두어도 괜찮을 듯싶어 보입니다.”

마현의 말에 밀러는 고개를 번쩍 치켜 들어올렸다.

“그렇지?”

밀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런데 마나에 대한 친화력은 있습니까?”

마현의 질문에 밀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솔직히 잘 모르겠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안 알아봤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밀러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하긴 전장에서 그런 것을 알아볼 시간적 여유도 없었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없어도 굳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일단 데려오죠.”

“하지만…….”

“정 친화력이 없다면 그때는 손자로 받아들이고 검사로 키우면 되겠지요.”

마현의 말에 밀러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군.”

밀러는 무릎을 탁 쳤다.

“문제는 한스가 포크너 후작가의 하인이라는 건데, 뭐 그건 제가 어떻게 해보죠. 아니면 돈을 주고 노비문서를 사도 되고요.”

“그래 주겠는가?”

밀러는 마현의 손을 덥석 쥐었다.

결국 마현은 힐링포션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밀러의 방을 나와야 했다. 힐링포션에 대해 논의를 하고자 했으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해봐야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온통 한스 생각 뿐인데 제대로 된 논의가 될 리가 없었다.

결국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마현은 두꺼운 철궤에 가득 담겨있는 최상급 힐링포션을 쳐다보았다.

최상급 힐링포션.

중원의 영단으로 따지면 근 이십 년의 내력을 가질 수 있는 소림사의 소환단이나, 흑풍대가 복용했던 마심단과 비견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마나를 담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는 비단 마나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힐링포션의 주재료인 트롤의 독성까지도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트롤의 독성과 마나가 절묘하게 만나 치유력을 발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트롤의 독성으로 인해 장기 복용하게 되면 중독되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독성이 문제야.’

마현이나 흑사신, 흑풍대에게는 사실 이 독성이 문제될 것이 없다. 마나를 흡수한 뒤 몸에 남은 독성은 체내에서 태워버리거나 밖으로 뽑아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고급의 상승 내공심법이 필요하다.

문제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단원들에게 그런 상승 내공심법이 없고, 또 그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을 생각이라는 점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군.’

고민이 좀 더 필요한 부분이었다.

마현은 최상급 힐링포션에 보존 마법을 펼친 후 철궤를 침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 * *

“제가 직접 찾아봬도 되는데…….”

전장에서 8전선 임시 용병길드장이였던 알랜은 몬테팔코 왕국 수도에 위치한 용병길드 지부의 부길드장실에 들어서는 마현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이 있어 겸사겸사 나온 것이니 개의치 마시오.”

마현은 부길드장실 한편에 놓여 있는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알랜은 곧 향이 좋은 차를 내왔다.

“그 전에 용병길드장께서 한 번 뵙고 싶어 하시는데…….”

알랜이 마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눈빛은 말과 조금 달랐다.

“낯을 가리는 편이니 사양하겠소. 그러는 편이 그대에게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소만.”

마현의 말에 알랜은 뜨끔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런 감정을 슬그머니 감췄다. 마현은 어느 조직이든 그 생리를 잘 안다. 자신과 같은 대어를 독점하면 그에 따른 보상도 만만치 않을 터.

마현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렇게 해준다면 알랜 역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도에서는 최대한 신경을 써줄 것이다. 자신에게 오는 이득도 있지만 자신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굳이 단어를 찾자면 독점일 것이다.

“전에 찾는다는 분들 말입니다.”

“찾은 이가 있소?”

“현재 7명 정도가 파악되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생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랐다.

“일단 4명은 몬테팔코 왕국 측 전선이나 그 주변이었고, 나머지 3명 역시 브루넬로 왕국 전선 주변에서 연락이 닿았다고 합니다.”

“언제쯤 도착하오?”

“몬테팔코 왕국 측은 이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브루넬로 왕국 쪽에서 몬테팔코 왕국으로 넘어오는 국경이 아직까지 껄끄러운 상태라 열흘 이상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랜의 설명을 들은 마현은 염려했던 것처럼 차원이동 마법진의 여파가 대륙 전역으로 퍼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정신을 차린 곳을 중심으로 다들 비교적 가까운 곳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더욱이 왕귀진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차원이동 마법진으로 가장 마지막으로 뛰어들었고, 앞서 달려간 이는 9명이라고 했다.

즉, 10명의 흑풍대가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현재 7명을 찾았다는 알랜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르센 대륙으로 넘어온 흑풍대원 전원을 찾았다는 뜻이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모두 무사히 자신을 찾아오고 있지 않은가.

마현은 흑풍대원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륙 전체로 문서가 퍼졌습니다. 그러니 나머지 분들도 조만간 연락이 닿을 겁니다.”

“아니오, 의뢰를 종료하겠소. 모두 찾은 것 같으니.”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그럼 의뢰는 마무리 짓겠습니다.”

알랜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환한 웃음을 드러내며 기뻐했다.

“하지만 나머지 미수금은 당장 지급하긴 어려우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오.”

“그래서 말입니다.”

문득 알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의뢰가 마침 들어왔습니다.”

“의뢰?”

“선금 100골드에, 성공보수로 400골드를 지급하겠다는 아주 큰 의뢰입니다.”

알랜이 눈웃음을 치며 의뢰비를 알려주었다.

마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500골드면 자그만 영지의 반 년 치 예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미납금을 채울 수 있으니 결코 손해는 아닙니다.”

알랜의 말이 맞았다.

“의뢰 내용은?”

“영지전입니다. 영지전에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고용하고자 합니다.”

“영지전이라…….”

마현이 예상한 바와 맞았다.

더욱이 이만한 의뢰비라면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영지전이리라. 어차피 지면 모든 것을 잃으니 이 정도 배팅을 해서라도 소드마스터를 영입하고 싶어 할 터.

나쁘지 않은 의뢰다.

“시기와 위치는 어찌되오?”

마현의 물음에 알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공식적으로 미하일 준남작에게 고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의뢰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 예상한 알랜으로선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현이 호기심을 드러냈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영지전은 5일 후 발발될 예정이며, 장소는 여기서 이틀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작과 남작의 싸움인지라 영지전의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을 겁니다.”

알랜의 설명을 들으며 마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뢰를 넣은 곳은 어디요?”

“남작 쪽입니다.”

“남직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의외군.”

마현의 말에 알랜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남작이 무슨 배짱으로 이 일을 벌였겠습니까? 다 자작이 남작의 영지를 먹자고 일을 벌인 것이지요.”

알랜의 쓴웃음 속에 왜 조소가 담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국운을 걸었던 오랜 전쟁이 고작 보름 전에 끝났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런 영지전이 발발했다는 건 전쟁 중에 이런 일을 꾸몄다는 뜻이다.

과거 마현도 지배계층이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설령 그랬다 해도 귀족이라는 작자들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군.”

“……?”

“상황이 상황인 만큼 중재가 들어갔을 법도 한데…….”

“파벌 때문입니다.”

“그걸 미처 생각을 못했군.”

“이 일을 벌인 새뮤얼 자작은 옥타비오 공작을 지지하는 귀족파이고, 그의 계략에 말린 베케트 남작은 하야스 후작과 포크너 후작을 지지하는 국왕파입니다.”

“클로드 공작은?”

문득 그의 입장이 궁금해졌다.

“글쎄요, 뚜렷한 색은 없습니다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편의상 중도파로 분류합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하야스 후작이나 포크너 후작이 꽤나 골치 아파하겠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랜은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마현의 의견을 물었다.

“일단 현재 미하일 준남작에게 고용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터이고……. 케이슨 용병기사단 전체는 힘드오. 따라서 나와 찰튼, 이 둘만 갔으면 하오.”

마현의 목소리에 살짝 긴장하던 알랜은 마지막 말에 얼굴을 활짝 폈다.

“소드마스터 두 분의 고용이 필수적인 사안이라, 두 분만이라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의뢰비가 깎여야 정상이겠지만 제가 어떻게든 손을 써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군. 베케트 남작이 의뢰를 했다면 분명 새뮤얼 자작 쪽에서도 의뢰를 했어야 하지 않소?”

“사실 그게……, 그 쪽에서도 의뢰가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미하일 준남작과 이미 계약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어떻게 베케트 남작의 의뢰를 받아들였소?”

“거절을 했었습니다만…… 비록 고용이 되어 있지만 분명 시간이 날 것이라며 워낙 간곡하게 의뢰를 넣어서 이렇게 한 번 말씀을 드려본 것입니다. 저야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하야스 후작님과 포크너 후작님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알랜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웃음은 꼭 상인의 웃음처럼 보였다.

“그렇군.”

어찌된 상황인지 언뜻 이해가 되었다.

하야스 후작을 찾았을 때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현은 그 웃음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알랜 부길드장.”

“하실 말씀이라도…….”

“미스릴 용병패는 넉넉히 구해놓았소?”

“충고에 따라 아주 넉넉하게 5개 정도 구해놓았습니다. 덕분에 위에서 잔소리 좀 들었습니다.”

스스로도 과하다고 느낀 것인지 알랜은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5개라……, 미리 조언을 덧붙이자면 4개 더 구해놓으시오.”

“예?”

마현은 놀란 표정을 짓는 알랜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부길드장실을 나섰다.

알랜은 마현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수가 믿어지지 않았고, 농담으로 치자니 마현이 자신에게 어쭙잖은 농담을 건넬 위인이 아닌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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