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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83화 (283/351)

# 283

7화

흑도가 아이작을 향해 천천히 입을 뗐다.

“기억해. 넌 나한테 찍혔어!”

“훗!”

그런 흑도의 말에 아이작은 짧은 웃음을 토해냈다.

흑도는 억세게 말고삐를 당겨 뒤로 빠져 흑사신과 마현이 있는 곳으로 물러났다.

“천하의 이 흑도가…… 저런 애송이에게 모욕을 당할 줄이야.”

흑도는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조만간 한 번 써먹긴 써먹어야 할 텐데. 쩝!”

흑도는 바짓가랑이 사이를 쳐다보며 조금 전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는 그만의 진정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에 마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갔을 때였다. 문득 마현이 인상을 굳히며 말고삐를 당겨 풍을 멈춰 세웠다. 그로 인해 흑사신과 케이슨 용병기사단도 함께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제법 떨어진 곳에서 짙은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싱그러운 풀향 속에 미미하지만 혈향도 섞여 있었다.

‘산적?’

이런 산길에서 피 냄새가 나는 이유는 극히 적었다.

마현은 산적들을 떠올렸지만 전장이 바로 코앞인 곳에서 산적들이 있을 리는 없었다.

“무슨 일인가?”

케이슨이 그런 마현에게로 다가왔다.

“피 냄새가 나는군요.”

“피 냄새?”

케이슨도 미간을 좁히며 마현이 내다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없기를 바랐건만…….”

케이슨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

“아마도 산적을 가장한 용병들일 걸세.”

“용병?”

“지금 이 시점, 누구보다 주머니가 두둑할 때지. 또한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케이슨의 두서없는 설명이었지만 마현은 무슨 뜻인지 금세 이해했다.

아마도 질이 나쁜 용병대가 산적으로 가장하고 아군이었던 용병들을 상대로 산적질을 하는 모양이었다.

마현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위험하겠지만……. 아니 상당히 귀찮겠지만 도와주면 안 되겠나?”

케이슨은 마현과 그 옆에 있는 철용을 보며 말을 돌렸다. 마현과 철용이라면 어지간한 위험은 위험도 아닌 까닭이었다.

“저야 무슨 힘이 있습니까? 단장이 하라면 해야죠.”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현은 고개를 돌려 철용을 쳐다보았다.

“흑사신을 보호하며 천천히 따라오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아이작을 제외하고 너희들은 여기 이분들과 보조를 맞춰 따라와.”

“그러지요.”

케이슨도 마현에 맞춰 명을 내렸다.

그렇게 마현과 케이슨, 아이작은 말을 몰아 살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서둘러 말을 몰았다. 그러기를 얼마 후 울창한 숲속에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챙!

마현은 풍의 등에서 내려섰다.

그에 따라 케이슨과 아이작도 말에서 내려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섰다. 병장기 소리가 커지면서 피 냄새가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해졌다.

“크크크! 역시 이 맛에 전쟁에 참여한다니까.”

피 묻은 가죽 주머니를 쥐며 간악한 웃음을 터트리는 한 사내의 등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케이슨의 말처럼 그들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발아래에는 처참하게 죽은 용병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케이슨이 분노에 찬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했지만 마현이 그의 팔을 잡아 진정시켰다.

『상황 파악이 되면 그때 들어가도 늦지 않습니다.』

마현의 매직마우스에 케이슨은 겨우 숨소리를 죽이며 다시 몸을 웅크렸다.

“대장, 이놈들 제법 짭짤한데.”

한 용병이 키득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거 내가 뭐라고 했어? 요놈들 주머니 두둑하다고 그랬지?”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건데 전장에서 얼굴을 익혔던 용병대를 덮친 모양이었다.

“어이, 왜 그렇게 시간을 끌어? 빨리 끝내.”

마현 근처에서 피 묻은 가죽 주머니를 품에 넣는 용병대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다 끝냈어. 여기 벙어리 두 놈만 죽이면 돼.”

“거 전장에서 죽다 살아남은 그 어리버리들?”

“크크크. 그래도 돈 주머니는 두둑할 거야.”

마현은 복면을 쓴 자의 등을 지나 시선을 옮겼다.

스무 명 남짓한 용병들 사이에 두 명의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둘은 용모가 특이했는데, 한 사내는 하르센 대륙에서도 흔하지 않은 흑발이었고, 다른 한 사내는 대머리였다.

‘벙어리라. 훗!’

마현은 그 둘을 보자 굳어졌던 표정이 풀리며 피식 웃었다.

그러는 사이 케이슨이 마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어서 나가서 그나마 살아남은 둘이라도 살리자는 뜻을 표정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꽤나 분노한 얼굴이었다.

* * *

“대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대머리 사내는 민머리를 손가락으로 박박 긁으며 히죽 웃었다. 대머리 사내는 바로 흑풍대주 왕귀진이었고, 다른 흑발의 사내는 흑풍대원 검세옥이었다.

“더 이상 피 냄새도 맡기 귀찮다. 세옥아,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흑풍대주에게 그런 말씀이 별로 안 어울리는 거 아십니까?”

흑풍대원은 킥킥거리며 싸구려 철제 롱소드를 뽑았다.

“너 지금 항명하는 거냐?”

“항명이라니요? 설마요.”

“그런 거 같은데?”

왕귀진도 농을 농으로 되받아치며 근처 나무로 다가가 등을 기대고 서며 팔짱을 꼈다.

“이놈들,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엉?”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언어에 용병 하나가 당황한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새끼들, 벙어리가 아니었어. 대장! 대장!”

“벙어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빨리 처리해. 다른 놈들이 피 냄새를 맡고 오기 전에.”

복면을 쓴 용병대장은 다른 시신을 뒤지며 소리쳤다.

“좋은 말로 할 때 좋게 끝내자.”

한 용병이 껄렁거리며 들고 있는 날카로운 롱소드를 휘적휘적 저었다.

“빨리 끝내라는 말 못 들었어?”

“크크크, 알아…….”

동료의 채근에 대답하던 용병은 대답도 마치지 못한 채 별안간 몸을 굳혔다. 그런 그의 머리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붉은 선이 어느새 그려져 있었다.

“뭐, 뭐야?”

그 붉은 선에 당황한 동료가 머뭇머뭇 다가갔다. 그리고 동료가 그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이었다.

푸학!

용병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와 동료의 몸을 붉게 적셔 버렸다.

“히익!”

너무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신 동료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새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바로 검세옥이었다.

“너, 너…….”

피를 뒤집어쓴 용병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검세옥을 가리켰지만 어느새 검세옥의 신형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목에서 따끔한 통증을 느꼈고, 그것은 용병이 이승에서의 느끼는 마지막 통증이기도 했다.

툭!

피를 뒤집어쓴 용병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돼 바닥에 툭 떨어졌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의 동료가 죽게 되자 한 용병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서걱!

하지만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신형도 양단되며 썩은 고목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이 새끼들이 죽을라고. 빨리 끝내지 못해? 앙?”

근처의 시신을 모두 뒤진 용병대장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

하지만 들려와야 할 대답은 없었다.

“이 새끼들이!”

용병대장은 눈에 불을 켜고 몸을 돌렸다. 단숨에 뛰어가 수하들에게 매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의 어깨가 바르르 떨리고 이어 몸통이 떨리고, 팔과 다리로 경련이 이어졌다.

타닥 타다다닥!

그리고 선명하게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공포로 인해 입안에 고이는 침을 마실 여력도 없었던지, 벌어진 그의 입가로 묽은 침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부스럭.

자신의 뒤에서 잎사귀가 밟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 용병대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빨리 몸을 틀었다.

“누, 누구냐?”

숲을 헤치고 나선 이는 아이작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마현과 케이슨이 걸어 나왔다.

그들을 보자 용병대장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있는 힘껏 목소리를 짜내 부르짖었다.

“다, 당신들은…….”

그의 목소리에 시선을 한 번이라도 줄 법도 하건만 아이작과 케이슨의 요동치는 눈동자는 숲 안 공터, 그 중앙에 서 있는 흑발의 사내 검세옥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용병대장은 그들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시선을 준 마현에게로 허겁지겁 달려가 무릎을 꿇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용병대장은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다짜고짜 마현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제야 패악한 용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이작과 케이슨은 여전히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동정조차 아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작은 시체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숲의 공터 중앙에 서 있는 검세옥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며 묻기까지 했다.

“그대는 누구요?”

아이작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강한 충격으로 각인된 사내의 무위가 지금도 생생한 까닭이었다.

“살려주…….”

아이작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사정을 해대는 용병대장에게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내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던 마현이 그런 패악한 용병대장의 가슴을 발로 쳐내 쓰러뜨렸다.

“윈드 커터!”

마현의 소맷자락에서 투명한 바람 한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바람이 용병대장의 목을 훑고 지나가자 그의 목이 몸통에서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벅 저벅!

바닥에 깔린 나뭇잎이 부스러지며 만들어내는 발자국 소리에 아이작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흑발의 사내와 민머리 사내가 굳은 얼굴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들의 모습에 아이작은 긴장하며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이들과 한패가…….”

아이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이 아이작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들을 따라 아이작의 시선도 돌아갔다.

마현 앞에 멈춰선 그들은 피가 흥건하게 고인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주, 주군!”

아이작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하지만 그 뜻은 알고 있었다.

‘마이 로드?’

철용을 통해 두어 번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렇다면?’

아이작의 눈이 한껏 커졌다.

마현은 자신을 따라 하르센 대륙으로 넘어온 수하들을 찾는다고 했다. 그들은 하르센 대륙의 공용어가 아닌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고 했다.

결론은 그 둘이 마현의 수하라는 소리다.

‘설마 수하들이 전부 다 소드마스터는 아니겠지?’

아이작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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