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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82화 (282/351)

# 282

6화

마현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포크너 후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내 미소를 지우더니 다른 지휘관들의 논공행상에 관한 상훈들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이슨 용병기사단일세.”

포크너 후작의 목소리에 지휘관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일었다. 자신들이야 왕국의 귀족들이니 당연히 논공행상이 주어졌지만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엄연한 외인이오, 고용된 용병이었던 까닭이었다.

“국왕전하께서 친히 카이샨 메일의 양도증서를 내리시기로 했네. 아울러 케이슨 용병기사단에게 별도로 100골드가 하사되었으며……, 케이슨 단장과 카칸 부단장에게는 명예백작 작위가, 그리고 단원들에게는 명예남작 작위가 내려질 것일세. 물론 명예직인 만큼 단승 작위이네.”

케이슨의 눈동자가 커졌고, 마현도 살짝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눈초리가 얇아졌다.

무슨 의도로, 그리고 왜 자신들에게 단승 명예귀족 작위가 내려졌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하야스 후작과 포크너 후작의 강력한 주청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비록 소수의 용병기사단이지만 그 안에 소드마스터가 둘이나 있다. 거기에 곧 소드마스터에 오를 수 있는 아이작과, 그에 필적하는 케이슨까지 있지 않은가.

어느 왕국을 뒤져도 이만한 전력을 보유한 기사단은 없었다.

그렇기에 훗날 혹시라도 몬테팔코 왕국의 적이 되는 상황을 애초에 차단하고자 했고, 두 후작의 그 같은 설득은 아마도 먹혀들었을 것이다.

이 지리한 전쟁의 막을 내린 가장 큰 변수가 바로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둔한 자라고 해도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훗날 자신들의 적국에 고용되어 자신들을 향해 검을 내민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익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활약이 나집의 전공으로 이어졌다.

그럼으로 해서 나집의 용병술은 한껏 포장되어 널리 알려질 것이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은 몬테팔코 왕국의 제일 가문인 클로드 공작 역시 기꺼운 마음에 협력했을 것이다.

‘흠!’

마현의 눈가에 주름이 절로 잡혔다.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몬테팔코 왕국을 향해 검을 들 수 없게 된다.

마현에게 있어서, 그리고 케이슨과 단원들에게 있어서 정식귀족 자리도 아니고, 명예귀족 자리는 솔직히 없어도 그만, 있으면 살짝 불편한 것들이었다.

어차피 소드마스터는 어느 왕국에 가든 백작 작위로 인정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 거기에 앞으로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활약을 생각하면 단원들의 신분도 그만큼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훗날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짐이 되는 자리인 것이다.

마현과 케이슨의 눈빛이 마주쳤다.

케이슨도 어렵지 않게 그 미묘한 상황을 파악한 눈빛이었다.

“미천한 용병들에게 어찌…….”

그때 나집이 불쾌한 얼굴로 불만을 토로했다.

순간 포크너 후작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목소리에 케이슨의 눈빛이 반짝였다.

케이슨의 눈빛을 이해한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단장님, 나집 백작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용병들에게 귀족 자리는 너무 과합니다.”

케이슨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집을 바라보는 포크너 후작의 눈두덩에 경련이 파르르 일었다.

‘차려진 상을 엎는 것도 유분수가 있지. 저렇게 똥오줌도 못 가리는 형편없는 놈일 줄이야.’

아둔해도 이렇게 아둔할 수가 없었다.

설령 케이슨 용병기사단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해 눈이 흐려졌다고 해도 이 정도의 상황쯤은 파악할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나집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부딪히지 않게 따로 자리를 마련할 것을…….’

뒤늦게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다른 지휘관들도 포크너 후작의 생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나집의 신분이 있어 내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다들 얼굴을 하나같이 찌푸렸던 것이다.

나집이 그런 분위기를 못 느낄 위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분위기는 기가 막히게도 잘 알아차리는 자였다.

당연히 나집의 얼굴도 불만에 차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몸보다 하찮은 용병에게……, 빠드득!’

하지만 나집은 꾹꾹 참았다.

‘내 네놈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두겠다.’

그렇게 분기를 참는 나집과 달리 포크너 후작은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그리 야박하게 거절하면 내가 국왕전하를 어떻게 보겠나. 그러니 전승 파티가 달포 후에 있을 예정이니 그때까지 생각해 볼 시간을 주겠네. 아무쪼록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네.”

“전승 파티라고 하셨습니까?”

“이런, 미처 내가 거기까지 이야기를 안 했군. 국왕전하께서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전승 파티에 친히 초대를 하셨다네. 설마 그것까지 단박에 거절하지는 않겠지?”

하야스 후작의 입김이 제대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카칸.”

케이슨이 귓속말로 마현을 불렀다.

“역시나 거절하는 것이 좋겠지요?”

마현의 속삭임에 케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현도 케이슨과 같은 생각이었다. 마현 역시 더 이상의 관계는 무익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마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다시 거절했다.

“휴우.”

그마저도 거절당하자 하야스 후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그래야겠는가?”

“어차피 저희는 타인입니다. 우리의 인연은 아이작 정도면 족하리라 여깁니다.”

마현의 목소리와 표정이 너무나도 확고해 포크너 후작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 * *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긴 끝난 모양이군.”

제이든은 짐을 꾸려 군마에 실으며 시원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휴우.”

동시에 케이슨도 수많은 용병대장들 틈에서 벗어나며 시원하다는 듯 숨을 터트렸다. 전장에서 마지막 짐을 꾸리는 오늘 아침부터 널리 알려진 용병대부터,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용병대에 이르기까지 족히 수십은 될 법한 용병대장들이 계속 찾아와 케이슨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던 것이다.

케이슨은 평소의 그답게 그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일일이 화답을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그렇게 짐을 모두 꾸렸을 때 몬테팔코 왕국 8전선 임시용병길드의 용병길드장이 마현을 찾아왔다.

“일은 어떻게 되었소?”

“보내주신 문서는 정보길드와의 협조를 통해 대륙의 용병길드 지부와 정보길드 지부로 뿌려졌습니다. 지금쯤 몬테팔코 왕국 전역에는 퍼졌을 것이고,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전 대륙으로 퍼질 것입니다.”

“내가 명심하라는…….”

“물론, 주신 문서 그대로 복사되어 대륙 전역에 퍼질 것입니다.”

용병길드장은 마현이 무얼 말하려는지 눈치 빠르게 간파하고는 흡족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머지 잔금은 차후에 마련되면 그때 주겠소.”

“S급 용병이신데 그 정도 편의는 당연한 겁니다. 아! 그리고 여기.”

용병길드장은 품에서 미스릴로 된 용병패를 꺼내들어 마현에게 건넸다.

“미스릴이 워낙 귀한 것이라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용병패는 두 개였다.

하나는 마현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철용의 것이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미스릴을 넉넉히 구해놓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마현은 용병패를 품에 넣으며 말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참, 그런데 몬테팔코 왕국 수도로 가신다구요?”

“휴식 겸 몬테팔코 왕국의 미하일 준남작이 의뢰한 것을 해결할 생각이오.”

“잘 되었군요. 제가 다시 복귀하는 곳이 몬테팔코 왕국 수도의 용병길드입니다. 거기에 부길드장으로 있으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그 용병길드장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살짝 비볐다.

“그리하겠소. 어차피 생판 모르는 이보다 안면이 있는 이가 더 편하니.”

“혹시나 해서 말씀을 드리는 건데, 제 이름은 알랜입니다.”

“기억해두리다.”

“그럼 수도에서 뵐 수 있길 빌겠습니다.”

용병길드장, 이제는 몬테팔코 왕국 수도의 용병길드 부길드장인 알랜은 허리를 숙이고는 다시 서둘러 돌아갔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하던가?”

케이슨은 알랜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단장.”

“감사는 무슨. 식구……, 아니 친구보다 더 중한 것은 없다네.”

케이슨은 무슨 대수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마현이 알랜을 통해 넣은 의뢰는, 흑풍대를 소집하는 명령서를 한문으로 작성하여 대륙 전역으로 퍼트리는 일이었다. 또한 그 문서를 보고 흑풍대원이 용병길드를 찾아오면 무사히 자신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는 일까지 겸하고 있었다.

말이 쉬워 대륙 전역으로 퍼트리는 거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며, 적은 돈이 드는 일이겠는가?

그렇기에 상훈으로 내려온 100골드 중 절반을 뚝 떼어 선금으로 내놓고 의뢰를 넣은 것이었다.

“어서 빨리 자네의 수하들을 찾았으면 좋겠군.”

“강한 이들이니 무사히 찾아올 것입니다.”

투각 투각 투각.

그때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행장을 꾸린 흑사신이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사이 한 차례 인사가 오갔기에 케이슨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런 케이슨의 인사에 흑권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모두 준비가 끝났나?”

케이슨은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벌써 준비 끝난 지 오래입니다, 단장.”

그레오가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출발할까?”

케이슨의 목소리에 마현은 풍에 올라탔다.

* * *

고개만 넘으면 전장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길은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시원한 숲의 청량한 공기가 몸에 짙게 밴 혈향을 씻어주는 듯했다.

급할 것이 없기에 케이슨 용병기사단과 흑사신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천천히 말을 몰았다.

“중원의 산야와는 색다른 정취를 주는군요, 주군.”

흑권은 주위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취한 듯 나직한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런 풍경은 사실 흑권을 비롯해 흑사신의 기억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주인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직 덜 맞은 모양이지?”

그때 자브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즈넉한 정취를 깨트렸다. 그사이 흑도가 말을 빨리 몰아 자브라 옆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 보였다.

“레이디, 그때 그 상황은 명백한 오해요.”

“오해?”

자브라의 눈이 매섭게 찢어졌다.

“이런, 이런!”

그런 자브라의 행동에 아이작이 말을 몰아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름다운 레이디, 고운 피부에 주름이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스마일.”

“어머!”

자브라가 짐짓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 손가락으로 눈가를 비비며 눈웃음을 쳤다.

“호호호.”

아이작은 그런 자브라의 웃음을 받아주며 흑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언제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냐는 듯 날카롭게 흑도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 추잡하게 아름다운 자브라 레이디에게 접근한다면 더 이상 용서하지 않겠소.”

흑도는 그런 아이작의 목소리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너 뭐야?”

흑도는 황당하다는 듯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말귀를 좀처럼 알아듣는 위인이 아닌 모양이오?”

아이작은 검자루에 손을 얹으며 은은한 기운을 흑도에게 발산했다.

현재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흑도로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윗니로 꽉 깨물었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나중에 보자는 사람치고 그다지 무서운 사람을 본 기억이 없소. 안 그렇습니까, 아름다운 자브라 레이디?”

“호호호. 맞아요.”

다정한 둘의 모습에 흑도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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