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80화 (280/351)

# 280

4화

결국 참다못한 베르장이 미겔을 꾸짖었지만 이미 미겔은 그가 자식처럼 여기던 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겔은 패거리를 이끌고 베르장을 찾아가 협박하고 폭언까지 일삼은 것이다.

그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겼지만, 미운 자식도 자식이라고 베르장은 심성이 악랄하게 변한 미겔을 차마 제 손으로 베지 못하고 은거를 선택했다.

그러자 미겔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따르는 패거리를 이끌고 용병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는 더욱 규모를 확장시켜 나갔다.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고, 이권이 있는 곳이라면 서슴없이 뛰어들었기에 검은여우 용병대의 악명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결국 케이슨과 자브라, 밀러 역시 베르장과 같이 용병 일에서 손을 떼고 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세 사람은 미겔을 여전히 가족이라고 여겼기에 검은여우 용병대에서 탈퇴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로써 그나마 미겔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일에 제동을 걸던 이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뜻을 가로막는 이들도 없자 미겔은 더욱더 악랄하게 변해갔다.

그의 집요함과 추진력에 검은여우 용병대는 더욱 큰 악명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대륙 오대 용병대에 비견될 만큼 규모를 키워나갔다.

그렇지만 검은여우 용병대는 대륙 오대 용병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그들과 온전히 어깨를 견줄 정도까지는 성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달콤한 돈과 권력을 맛본 미겔은 초조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검은여우 용병대가 대륙 오대 용병대를 밟고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검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탐욕에 젖은 눈으로 베르장을 찾아가 몰락 귀족가의 검술을 이제는 내놓으라고 윽박을 지르기까지 했다.

물론 베르장은 단호히 거부했고, 며칠 후 미겔은 수하들을 이끌고 베르장을 암습해 죽이고 말았다. 죽은 베르장의 품에서 몰락 귀족가의 상승검술서를 피 묻은 손으로 들어 올릴 때 미겔은 광소를 터트렸다.

그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케이슨과 자브라, 그리고 밀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서둘러 미겔을 찾아갔지만 이미 그들이 알던 미겔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과거 고락을 함께 나누던 미겔은 사라지고 없었고, 오히려 몰락 귀족가의 상승검술은 자신의 것이라며 서슴없이 검을 뽑아드는 탐욕과 광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어릴 적부터 함께한 추억과 정이 남아 있어서일까. 미겔은 그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숨의 위협을 느낀 그들은 쫓겨나다시피 검은여우 용병대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케이슨 용병대였다.

벌써 십 년 전의 일이었다.

“휴우.”

케이슨의 말이 모두 끝나자 누군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현과 철용의 얼굴도 무겁기는 가라앉았다.

케이슨도 마현 못지않게 굴곡지고 아픈 삶을 살아온 것이다.

“젠장,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제이든이 신경질적으로 시랠을 병째 들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마음이 여린 그레오와 야솝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런대로 들을 만하지?”

케이슨은 슬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는데……, 단장이 그 답을 주었군요.”

마현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일단 대륙 최고의 용병대가 되는 것부터 하죠. 더불어 검은여우 용병대에 화끈한 복수도 곁들여서.”

* * *

밤이 깊어 술자리가 끝나자 마현 곁으로 케이슨이 다가왔다.

독한 술을 빈속에 연거푸 털어 넣어서인지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궁금한 게 하나 있네.”

“……?”

“만약 우리가 거부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케이슨은 마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술로 인해 그의 몸은 조금 흐트러졌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궁금하십니까?”

케이슨은 마현의 눈동자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휴우. 그냥 넘어갈 것 그랬군.”

“그러지 않기를 빌었을 뿐입니다. 나에게는 내 모든 것을 털어놓았기에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 늙은이들은 무서운 자들입니다.”

“흠!”

케이슨은 복잡한 심경을 한숨에 담았다.

“제 사람은 그 누구도 죽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먼저 죽어야한다면 그건 아마도 바로 저일 것입니다.”

자신을 직시하는 마현의 눈동자에 케이슨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자네답군.”

그 말을 끝으로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네와 나는 가족이 될 수 없는 사람이군.”

“굳이 가족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는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친구 사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라……, 그것도 좋군.”

케이슨은 마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현이 그 손을 움켜잡았다.

“고맙네.”

“고마울 것 없습니다. 제가 그 복수를 대신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가족이 아니라 친구이니.”

마현은 케이슨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판을 깔아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진심으로 응원할 뿐이죠.”

“그래서 더욱 고맙다는 소리일세.”

케이슨의 얼굴에서 넉넉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 말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받는 것보다 줘야 할 것이 더 클 테니 말입니다.

“친구 사이에 크고 작은 것이 그 무슨 대수인가?”

케이슨의 손아귀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둘은 마주보며 한동안 웃었다.

* * *

포크너 후작의 호언장담대로 전쟁은 끝났다.

하인히르 후작의 죽음으로 인해 브루넬로 왕국 측은 큰 충격에 빠진 듯 그 흔한 도발행위도 없었다. 그리고 몬테팔코 왕국 측에서도 더는 도발하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양국은 지금쯤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군영은 전선에 어울리지 않게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군영을 돌아다니는 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되살아났다.

왕국 측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고, 용병들은 승전으로 인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처럼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어젯밤 이야기가 된 바대로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우선 목표는 케이슨의 화끈한 복수와 함께 검은여우 용병대의 타도였다.

“일단 한 1~2년 정도 수련을 해야겠지요. 솔직히 검은여우 용병대를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마현이 직접적으로 아픈 곳을 찌르자 모두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야 분위기에 취해 검은여우 용병대의 타도를 외쳤지만 그것이 막상 현실이 되자 조금 암담한 것도 사실이었다.

검은여우 용병대는 현재 대륙 최강의 용병대였다.

용병대장 미겔은 소드마스터였고, 그 아래 소드익스퍼트급 용병들의 수만도 백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그 외에도 용병대의 일반 대원들의 수만 해도 자그마치 3천 명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히 정예군대라고 해도 될 만큼 이미 거대한 집단인 것이다.

어지간한 왕국의 귀족들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이기에 미겔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왕국에서는 그를 후작과 동급으로 예우해 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단 목표는 케이슨 단장과 아이작을 온전한 소드마스터에 올리는 동시에 자브라와 제이든, 그레오, 야솝은 소드익서퍼트 최상급 정도입니다. 그리고 밀러 님은 적어도 5서클, 좀 무리한다면 6서클 정도로 끌어올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담담한 마현의 목소리에 단원들은 그저 눈만 끔뻑거렸다.

‘과연 가능할까?’라는 미심쩍은 생각과 요 며칠 마현과의 수련을 통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마구 뒤섞여 반신반의한 까닭이었다.

“……그게 1~2년 사이에 가능한가?”

케이슨도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한계는 미리 단정하지 마십시오. 한계를 마음속에 정하는 순간 한계라는 것이 만들어지니까.”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갈 때였다.

“……저기.”

한스가 다가와 조용히 마현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밖에 어느 분이 카칸 님을 찾아오셨는데요.”

“나를?”

마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지?”

“귀족 분 같아 보였어요.”

“그래?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마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를 만나기 위해 군막을 나섰다.

군막 앞에는 이십 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금발의 귀족이 서 있었다. 그 뒤로 사십 초반으로 보이는 기사 한 명과 사병으로 보이는 두 명의 병사가 서 있었다.

“나를 찾아왔다고 하셨소?”

마현은 귀족으로 보이는 사내 앞으로 다가갔다.

“히잉!”

그는 묘한 울음을 토해내며 눈에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는 마현을 덥석 끌어안았다.

“맞구나, 맞아!”

마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 귀족 사내를 품에서 밀쳐냈다.

“무슨 짓이오.”

마현이 낮게 꾸짖자 그 귀족 사내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나야, 나! 주인, 나라고. 흑도.”

그 귀족 사내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정체를 알렸다.

“흐, 흑도?”

마현의 반문에 흑도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떻게? 소멸된 것이 아니었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흑도는 다시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이번에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보여? 응? 보이냐고?”

“……?”

마현은 흑도의 뜬금없는 행동에 표정을 묘하게 찡그렸다.

“모르겠어?”

흑도는 갑자기 허리춤을 풀어 헤치더니 바지를 밑으로 확 내렸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남성의 상징이 달려 있었다.

“주인, 드디어 나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우어어어어!”

흑도는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꺄아악!”

그때 뒤늦게 마현을 따라 군막을 나섰던 단원들 중에 자브라가 덜렁거리는 흑도의 거대한 남성을 보더니 손으로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오, 이쁜 레이디!”

흑도는 바지를 내린 것도 잊은 듯 자브라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나름 우아한 자세를 취했다.

“레이디, 오늘밤 저와 함…….”

“이런 미친!”

뒤따라 나온 아이작이 낯을 구기며 흑도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컥!”

흑도는 힘없이 배를 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자브라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두 눈초리를 치켜세웠다. 자브라도 용병계에서는 나름 꽤나 이름이 알려진 용병이었다. 그렇기에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흑도의 몸을 여느 장정의 발길질 못지않게 잘근잘근 힘껏 밟았다.

“주, 주인. 크헉! 사, 살려줘!”

“시끄러, 이 미친 새끼야!”

마현은 고개를 돌려 자브라의 발에 짓밟히는 흑도의 모습을 외면했다.

‘흑도가 맞긴 맞군.’

마현은 흑도의 비명을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푸히이잉!

마현이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검은색 윤기가 흐르는 흑마가 다가와 마현의 몸에 머리를 마구 비벼댔다.

‘……!’

마현은 직감적으로 ‘풍’을 떠올렸다.

가능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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