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78화 (278/351)

# 278

2화

마현은 고개를 돌려 제이든을 쳐다보았다.

“그 이름은 어릴 적 고아로 버려진 제가 여섯 백마법사에게 거둬질 때 받은 이름이며, 죽을 때까지 그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이든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은 예외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밀러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 그러니까 자네가 20여 년 전에 여섯 마탑주에게 죽은 대흑마법사 카칸이라는 소, 소리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마현을 말.

“그렇습니다, 밀러 님.”

우당탕탕탕!

“미친 새끼!”

제이든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로 인해 야전침상이 제이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단장, 밀러 님. 이건 완전히 미친 소리입니다. 20여 년 전에 죽은 카칸이라니요. 제아무리 소드마스터고,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법을 펼쳤다고는 하나…….”

“7서클일세.”

밀러가 제이든의 말을 잘랐다.

“……?”

“전장에서 카칸이 보여준 마법은 7서클의 마법이었네.”

기가 질린 것인지, 아니면 기에 눌린 것인지 제이든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세상에나.”

자브라였다.

“그렇지만 솔직히 믿기 어렵네요.”

자브라는 속내를 드러내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혹시 카칸의 후손이신가요?”

“그 편이 더 납득이 가긴 하는군.”

아이작도 자브라의 말을 거들었다.

확실히 그 말이 더 타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대흑마법사 카칸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소리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믿든 안 믿든 본인이 카칸이오.”

마현은 자브라의 눈을 직시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내뱉었다.

“하지만……, 하아.”

자브라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믿기 어렵다는 것은 아오. 하지만 나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소.”

“주군의 말씀은 사실이오.”

철용이었다.

“나를 거둬줬을 때부터 주군은 마법사였소. 흑마법사.”

너무나도 진지한 철용의 목소리에 군막 안에는 적막감이 찾아왔다.

“……흑마법사.”

밀러가 중얼거렸다.

홀로 중얼거린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워낙 군막 안이 조용했기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밀러는 문득 자신의 가슴 왼쪽, 심장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믿네. 아니 믿을 수밖에 없군.”

다른 이는 몰라도 밀러는 안다.

마현이 가진 마나에 어둠의 기운이 있음을 그는 분명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전장에서 보았지 않은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7서클의 흑마법을 말이다.

“좋아, 부단장이 마법사라고 칩시다. 그럼 그 검술은 뭡니까?”

아이작이었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법사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살기 위해 검을 들었을 뿐이다.”

마현은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나는 너와 살아온 세월이 다르다. 살아온 삶도 다르다. 너의 한정된 시야로 나를 판단하지 마라. 나는 흑마법사로 더욱 완벽해지고 싶었기에 단지 검을 들었을 뿐이다.”

“부단장이 마법사였다니…….”

아이작에게 마현의 정체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마법사라는 사실만 중요했다.

“왠지 비참해지는군.”

“아이작.”

마현은 자조 어린 목소리로 아이작을 불렀다.

“나를 뛰어넘으면 되지 않나? 마법사인 나도 이룬 경지다. 오로지 검의 길을 걷는 네가 나를 못 뛰어넘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카칸.”

케이슨이 마현을 불렀다.

“믿기 어렵지만, 믿어보려 노력하지.”

일단 마현의 말을 믿어야 다음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케이슨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가? 여전히 복수를 꿈꾸는 것인가?”

케이슨의 목소리는 무겁고 진중했다.

“당연히 복수는 할 겁니다. 하지만 복수가 끝은 아닙니다.”

“복수가 끝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군.”

케이슨은 정말로 안도하는 눈빛을 띠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 땅에 흑탑을 세우는 것입니다. 흑마탑과 흑검탑.”

“……?”

“단지 어둠의 신들의 권능을 받았다 하여 핍박받는 흑마법사들의 안식처를 만들 것입니다. 또 더불어 순수하게 힘을 동경하고 갈구하는 검사들의 휴식처까지. 이 땅에 장차 그런 곳을 만들 생각입니다.”

“……!”

“……!”

군막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마현의 말에 뭐라 반응하는 이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말이기도 했지만, 그 꿈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왕국을 만드는 일보다 더 힘든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그 길을 단원들과 함께 가고 싶을 뿐입니다.”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말은 진실이며…….”

마현은 단원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직시하며 잠시 끊었던 말을 이었다.

“선택은 여러분 개개인에게 맡기겠습니다.”

마현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후 철용과 함께 군막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숲 가장자리로 걸어가 한 나무를 등받이 삼아 자리에 앉았다.

마현의 능력이라면 안에서 지금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들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들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었다.

“주군, 초조해 보이십니다.”

곁에서 호법을 서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철용이 안색이 약간 굳어 있는 마현을 보며 말했다.

“그래 보이나?”

“그렇습니다.”

“초조하다. 아주 많이.”

철용은 마현의 눈빛에서 과거 자신들이 3류 인생을 살고 있을 때 단호한 어조로 열변을 토하던 때의 그 눈빛을 떠올렸다.

“그들을 아끼시는군요.”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들이 주군의 뜻에 반하셔도…….”

철용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흐렸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슴이 아프겠지만 반하면 죽일 것이다.”

마현은 살기 어린 눈빛을 띠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괴로운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마현이 자리를 뜨자 군막 안은 적막감이 무겁게 흘렀다.

마현이 눈앞에서 사라져서인지 제이든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지금 무슨 생각들을 하는 겁니까? 저 미친 새끼 말에 무슨 고민을 할 게 있다고!”

그런 제이든의 고함에 아이작이 그를 나직하게 불렀다.

“이봐 제이든.”

“왜?”

“다른 건 몰라도 그가 가진 힘만은 진짜다.”

아이작의 심각한 말에 제이든의 뺨이 씰룩거렸다.

뭔가 그것을 반박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아이작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상상조차 못할 소드마스터의 경지. 거기에 밀러의 말에 따르면 7서클의 대단위 마법까지 보여주지 않았던가.

정말 미친놈이었다.

“좋아. 아이작, 네 말대로 카칸의 힘은 진짜라고 쳐. 그래도 저 황당무계한 꿈, 될 거라고 믿는 거야?”

“어이가 없군.”

아이작은 제이든의 말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당연히 제이든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한 가지 충고를 할까, 제이든?”

아이작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제이든은 빤히 쳐다보았다.

“적어도 그와 함께한다면 너는 반드시 소드마스터가 될 것이고, 그리고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겠지. 그래서 너의 누이를…….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겠군. 네가 카칸의 사람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너의 누이를 살릴 방도를 찾아주지 않을까?”

아이작의 말에 제이든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제이든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제엔자앙!”

제이든은 목청껏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왕 말을 한 김에 제 의사를 밝히겠습니다. 저는 카칸과 함께할 것입니다. 어차피 나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을 주었기에 그 시간 동안 그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케이슨이 물었다.

“이미 달콤한 맛을 봤거든요. 저는 그 맛을 내가 원할 때 맛보고 싶을 뿐입니다.”

아이작은 고민을 털어버린 듯 비교적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야전침상에 팔을 베고 누워 버렸다.

“달콤한 맛이라…….”

케이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맛을 봤다.

케이슨은 고개를 들어 단원들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달콤한 맛을 느꼈으리라.

“……나는.”

밀러가 힘겹게 입을 뗐다.

“카칸과 함께하겠네.”

아무도 몰랐지만 여기서 달콤한 맛을 가장 먼저, 가장 자극적으로 맛본 이는 다름 아닌 밀러였다.

케이슨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솔직히 밀러의 말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네요.”

자브라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가족이죠?”

자브라는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가족은 찢어지지 않아요. 다 같이 함께할 뿐이죠. 그러니…….”

자브라는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우리의 가장인 케이슨 단장이 선택해요.”

케이슨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단원들의 얼굴을 살피던 케이슨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들었다.

“나는 한 번도 큰일을 나 홀로 결정한 바가 없다. 여느 때처럼 다수결로 결정하지.”

케이슨은 신중하게 말했지만 단원들은 맥이 빠진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만큼은 케이슨이 결정할 것이라 다들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언제나처럼 그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탈퇴는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가족이고, 가족은 평생 운명을 함께한다.”

“역시 단장답습니다, 하하하!”

그레오가 밝은 목소리로 웃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레오처럼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케이슨다운 결정인 까닭이다.

“일단 아이작과 밀러 님은 찬성이니 찬성에 두 표, 자브라 그대는?”

일단 케이슨이 자브라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다.

“저는 찬성.”

자브라의 찬성 역시 의외였다.

“이유는 케이슨이 재수 없는 미겔의 코를 한 번 뭉개는 걸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브라.”

“차, 찬……. 니미, 그래 나도 찬성이라고!”

제이든은 단원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자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잉?”

그의 찬성에 그레오의 입에서 미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내 누이를 고치고 싶을 뿐이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제이든은 그레오가 싱긋 웃어 보이자, 민망한 듯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남은 것은 케이슨과 그레오, 그리고 야솝.

하지만 이미 결정이 난 셈이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서인지 케이슨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왕 이렇게 결정 난 거, 무모하지만 큰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더불어 복수도 하고, 누이의 병도 고치고.”

자브라가 추임새를 넣었다.

“카칸에게 갔다 와야겠군.”

케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요, 단장.”

제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주군.”

철용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는 마현을 조용히 불렀다.

그 목소리에 마현은 눈을 떴다.

마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꽤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흠.”

그런 마음을 대변하듯 침음성을 흘리며 마현은 케이슨과 제이든의 발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할 말이 있다.”

제이든이 케이슨의 걸음을 성큼 추월하며 마현 앞에 섰다.

“뭐지?”

“조건이 있다.”

제이든은 본격적인 말을 하기 전 잠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