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22화
“케이슨 용병기사단이다!”
용병 중 한 명이 질주하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보자 병기를 하늘로 번쩍 들며 소리쳤다.
“우와아아!”
패색이 짙던 용병연대에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병들은 마치 물결처럼 함성을 질러댔다.
그들의 등장으로 꺼져가던 기세가 다시 끓어오른 것이다.
챙!
마현은 자연스레 길을 터주는 용병들 사이로 말을 몰며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적국 병사들을 가차 없이 베며 라케르크 기사단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밀러 님! 근사한 인사 한 방 부탁드립니다.”
멀리 있던 라케르크 기사단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현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밀러에게 소리쳤다.
“파이어 버스트!”
밀러는 파이어 볼의 개량형인 파이어 버스트를 시전했다. 전에는 조밀하지 못한 서클로 인해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현의 도움으로 인해 모든 4서클의 마법을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서클을 갖게 된 덕분이었다.
쿠아아앙!
공기마저 태워 버리는 불덩이는 선두에서 날뛰는 라케르크 백작에게로 날아갔다.
“하압!”
밀러의 파이어 버스트를 느낀 라케르크 백작은 순식간에 바스타드소드에 오러를 담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이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콰광, 콰아앙!
오러에 의해 강제로 반으로 잘려진 파이어 버스트는 라케르크 백작을 비켜 옆으로 날아가며 허공에서 폭발했다.
“크헉!”
“크악!”
그로 인해 라케르크 백작을 뒤에서 보좌하던 두 기사가 반으로 갈라진 파이어 버스트의 불덩이에 휩싸여 그대로 낙마하고 말았다.
“이, 이놈!”
라케르크 백작은 분노에 찬 일갈을 지르며 파이어 버스트를 날린 밀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밀러 앞에는 마현이 있었다.
“훗!”
마현은 롱소드에 오러를 담아 라케르크 백작을 섬광처럼 찔러갔다.
“헙!”
라케르크 백작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재빨리 몸을 비틀고는 마현의 롱소드를 쳐올렸다.
쾅!
두 인마가 교차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둘은 마주서 있었다.
“네놈이었군, 용병 소드 마스터.”
라케르크 백작은 마현을 향해 흥미로운 눈빛을 띠었다.
“라케르크 백작?”
“그렇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사이 라케르크 제1기사단이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완전히 에워쌌다.
그러자 라케르크 백작이 바스타드소드를 들어올려 그들을 뒤로 물렸다.
“흥미롭군, 용병 소드 마스터라. 정말 용병이 맞는가?”
“말이 많군.”
마현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대의 검을 제대로 보고 싶군. 본 백작의 일기토에 응해주겠는가?”
마현으로서는 그의 제안이 오히려 반가웠다.
모든 정신을 그에게만 쏟을 수 있는 동시에 그만 죽이면 몬테팔코 왕국과의 계약을 온전히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받아들인다.”
마현의 대답이 흘러나오자 케이슨 용병기사단 역시 뒤로 물러나 공간을 만들었다.
적당한 공간이 나오자 마현과 라케르크 백작은 서로를 노려보며 천천히 원을 그렸다.
“흐압!”
선수는 라케르크 백작이 시작했다.
단숨에 말을 몰아 마현을 덮친 것이다.
후우웅!
사전 탐색도 없었다.
처음부터 바스타드소드에 오러를 담아 마현을 베고 들어온 것이다.
마현은 말고삐를 당겨 군마를 옆으로 빼면서 차분히 라케르크 백작의 바스타드소드를 막아나갔다.
쾅 쾅 쾅 쾅!
오러와 오러가 부딪히며 귀가 먹먹한 폭음이 터졌다.
‘이대로는 불리하다.’
마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라케르크 백작은 군마를 마치 자신의 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며 마현을 몰아쳤지만 마현은 그와 같은 움직임을 행할 수 없었다.
검 자체도 익숙지 않은데 말을 탄 상태로 온전한 검을 펼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말을 버린다!’
마현은 군마의 고삐를 당겨 뒤로 크게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디로 도망을 가느냐!”
라케르크 백작은 단숨에 마현에게로 달라붙었다.
동시에 마현의 마력이 땅으로 스며들었다.
“디그!”
그러자 라케르크 백작의 군마가 앞발을 내딛는 땅이 아래로 움푹 꺼졌다.
푸히이잉―
한순간 중심을 잃은 군마의 몸체는 앞으로 쏠렸지만 라케르크 백작은 무지막지한 힘으로 고삐를 당겨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미세한 틈이 만들어지자 마현은 곧바로 라케르크 백작을 향해 롱소드를 찔렀다.
하지만 그것은 허초였다.
말 위에서 눕다시피 하며 피하는 라케르크 백작을 무시한 채 마현은 곧장 군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푸학!
군마의 목이 잘리며 피가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목이 없는 군마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지자 라케르크 백작은 바닥에 몸을 굴렸다. 마현은 그 순간 말안장을 발로 차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라케르크 백작의 머리를 롱소드로 내리그었다.
쾅!
라케르크 백작은 어렵사리 마현의 롱소드를 막아냈지만 그 충격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라케르크 백작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뒤로 2미터가량 미끄러졌다.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라케르크 백작의 투구에 가려진 눈에서 시퍼런 살광이 뻗어 나왔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차갑게 한 마디 던진 라케르크 백작은 살기를 감추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박차며 몸을 띄웠다. 하지만 그보다 마현의 마법이 먼저였다.
“그리스!”
바닥을 미끄럽게 만드는 아주 기초적인 마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초적인 저서클의 마법이라도 적절한 시기에 사용하면 무서운 법.
지금이 딱 그때였다.
강하게 발을 내딛던 라케르크 백작의 발은 땅을 온전히 디디지 못하고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그로 인해 신형이 완전히 무너지자 마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라케르크 백작의 품으로 뛰어든 마현은 오러가 담긴 롱소드를 번개처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서걱!
은빛의 라케르크 백작의 갑옷은 오러를 이기지 못하고 잘렸고, 그 틈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크윽!”
순식간에 라케르크 백작은 몸을 틀었고, 그 덕분에 검상은 깊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서 튀어나온 핏물을 가르며 라케르크 백작은 마현의 목을 향해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다.
괜히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다.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와중에도 마현을 향해 바스타드소드를 휘두른 것이었다. 마현은 몸을 젖히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라케르크 백작은 몸을 한 바퀴 구르며 신형을 세웠다.
“크으!”
투구 사이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로드!”
단장이 상처를 입자 라케르크 제1기사단원들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곧 그가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저지했다.
“운이 좋군.”
군마가 움푹 파인 구덩이에 발을 내딛은 것도, 자신의 발이 미끄러진 것도, 라케르크는 모두 마현의 운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운도 이제는 끝이다!”
“과연 그럴까?”
투구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라케르크 백작의 뺨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히죽거리던 마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라케르크 백작 바로 앞이었다.
후우웅!
섬뜩한 파음이 라케르크 백작의 몸을 갈랐다.
“흥!”
라케르크 백작은 코웃음을 치며 옆으로 몸을 비틀며 마현의 목을 향해 바스타드소드를 찔러 들어왔다. 마현은 라케르크 백작의 바스타드소드를 옆으로 흘리며 어깨로 그의 몸을 강타했다.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라케르크 백작의 몸이 뒤로 밀렸다.
“홀드!”
하지만 이내 균형을 잡으며 바스타드소드를 들어 올리는 라케르크 백작의 몸에 홀드 마법을 뿌렸다.
홀드 마법으로 인해 바스타드소드에 담긴 오러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불꽃처럼 흐트러졌다. 투구 사이로 라케르크 백작이 놀라 눈을 부릅뜬 것이 똑똑히 보였다.
마현은 그런 라케르크 백작의 목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로드!”
“마이 로드!”
라케르크 제1기사단 사이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끝이……!’
라케르크 백작의 목이 날아가기 바로 직전 은빛 그림자가 마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 역시 오러를 뿜어내며 마현의 롱소드를 막아섰다.
쾅!
‘이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드 마스터?’
마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두 명의 라케르크 기사단의 단원들이 라케르크 백작을 부축했다.
“일기토라 하지 않았나?”
마현의 물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사는 묵묵히 롱소드를 들어 마현을 견제했다.
“말이 없는 건가? 아니면 안 하는가?”
마현은 라케르크 백작과 자신 사이로 뛰어든 기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쾅 쾅 쾅 쾅!
순식간에 몇 합의 검이 오갔다.
일 검, 일 검이 부딪힐 때마다 마현의 눈은 서서히 커졌다.
급기야 마현은 먼저 뒤로 물러나며 싸늘하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
대답은 없었다.
마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눈에 익은 검술.
그건 마교의 마공이었다.
다시 마현의 입이 벌어졌다.
“누구냐?”
곧이어 마현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하르센 대륙의 공용어가 아닌 중원어였다.
그 소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사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파르르 떨렸다.
“주, 주군?”
목소리도 떨렸다.
“너, 너는?”
“주군이십니까?”
“철용이더냐? 어찌 네가?”
“주군을 구하려 몸을 날렸습니다만 그 뒤로는 기억이 없습니다. 눈을 뜨니 이곳이었습니다.”
마현은 대략 어떻게 철용이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한 얘기는 뒤로 미루지, 철용.”
“예, 주군.”
“저자를 죽여라!”
마현은 힘겹게 뒤로 물러나는 라케르크 백작을 보며 명을 내렸다.
“명!”
철용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라케르크 백작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기사 둘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찰튼!”
기사가 철용을 향해 소리쳤다.
“미안하오.”
그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 철용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두 기사는 읽었다.
또한 자신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적국 기사와 나누는 것도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 억양으로 유추해 보건데 상당히 격앙된 음색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두 기사만이 아니라 그것은 라케르크 제1기사단의 기사들 모두가 동시에 느낀 위기감이었다.
“막아라! 찰튼을 막아라!”
라케르크 제1기사단 부단장이 급히 명을 내렸다.
하지만 철용의 롱소드가 그보다 빨랐다.
쐐애애액!
묵빛 오러가 검은 반월 형상의 검광을 그려냈다. 그리고 철용이 만들어낸 검은 반월은 두 기사의 가슴에 새겨졌다.
푸학!
은빛 갑옷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붉은 피가 튀었다.
“으아악!”
“크아악!”
두 기사의 몸은 한순간 허물어졌다.
“어, 어찌 네가? 네가 내게 이럴 수…….”
라케르크 백작은 입술을 깨물며 철용을 향해 분노를 표출시켰다.
“이 빚은 죽어 저 세상에 가서 갚겠소. 미안하오.”
철용은 롱소드를 들어올렸다.
“막아라, 저자를 막아라! 어서! 로드를 구해내라!”
라케르크 제1기사단 부단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어 그의 명에 따라 라케르크 제1기사단의 기사들이 철용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철용의 롱소드가 그들보다 더 빨랐다.
서걱!
일 검에 라케르크 백작의 머리가 잘렸다.
라케르크 백작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고, 그의 몸은 썩은 고목나무처럼 땅바닥으로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