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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70화 (270/351)

# 270

19화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조심히 야전침상에 눕혀.”

“말 안 해도 압니다.”

그레오가 아이작을 받아들고 군막 안으로 막 들어갈 때 하야스 후작이 다가와 다급히 물었다.

“아이작의 몸은 어떤가?”

그도 아들이 몹시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했지만 걱정으로 가득 찬 눈빛만큼은 그도 감추지 못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포션이나 한 병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런가?”

마현의 말을 듣고 하야스 후작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아이작의 검은 더 많이 달라질 겁니다. 어쩌면 하야스 가 검술의 뼈대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흠!”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하야스 후작의 얼굴이 꽤나 굳어졌다.

“본가 검술로는 소드 마스터를 바라보기가 힘들 정도인가?”

어차피 아이작을 통해 마현이 가문의 검술을 어느 정도 보았을 거라고 하야스 후작은 판단했다.

“하야스 가문의 검술은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만 아이작에게 어울리지 않을 뿐입니다. 대부분 몸에 맞지 않은 검술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서 있는 벽을 더 두껍고 높게 만듭니다.”

“하아.”

하야스 후작은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자네에게 맡겼으니 알아서 하게. 그리고 아이작을 잘 부탁하네.”

하야스 후작은 마현에게 허리를 숙였다.

마현이 무얼 이야기하는지, 왜 하야스 가문의 진짜 천재인 아이작이 그토록 벽을 넘지 못하고 힘들어 했는지 그제야 이해한 듯했다. 또한 아이작의 고행의 길에는 자신보다 마현의 도움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저와 함께라면 말입니다.”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는 것 역시 기사에게는 죽음이지. 어차피 한 번 죽었던 아이일세.”

이로써 하야스 후작은 아이작에 관한 것을 모두 마현에게 맡긴 것이다.

“크헉!”

그러는 사이 짧은 신음이 임시 연무장에서 터져 나왔다.

* * *

표정이 잔뜩 굳어 있는 케이슨의 몸은 자잘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비록 케이슨이 요 며칠 마현의 지도로 인해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서 탈피하며 최상급을 넘보고 있더라고, 마르틴은 완숙한 경지에 오른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였다. 그러니 두 사람이 확연히 실력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입언저리를 비릿하게 틀어 올리며 마르틴은 웃었다. 열기로 가득 찼던 임시 연무장 주위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은 것으로 보아 마르틴은 의도적으로 케이슨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압!”

케이슨은 꽉 닫힌 입술 사이로 기합을 터트리며 다시 마르틴에게로 몸을 날렸다.

낮게 깔린 케이슨의 신형은 전과 달리 매섭게 마르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광마보와 마혼검이 혼합된 한 수였다.

그 생각지도 못한 날카로운 한 수에 마르틴의 안색이 굳어졌다. 한순간 마르틴의 품으로 파고들어간 케이슨은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표홀하게 바스타드소드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어림없다!”

마르틴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소리쳤다.

하지만 케이슨은 허공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강하게 바스타드소드를 내리그었다.

쐐애애액!

일격필살이라고 명해도 부족함이 없는 일격이었다.

카가강!

마르틴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무거운 힘에 허리가 뒤로 꺾일 정도로 휘청거렸다. 그런 만큼 케이슨의 검을 온전히 막지 못하고 상의 아랫부분 한 자락이 길게 베어졌다.

‘먹힌다!’

마현이 수정해준 자신의 검술.

체계적인 수련을 해온 기사의 검술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케이슨은 확연히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케이슨의 눈에는 전에 없던 자신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이 몸에게! 죽여 버리겠다!”

분노한 마르틴의 외침에는 살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살의는 손에 쥔 투핸드소드로 이어졌다.

후우웅!

거친 듯하지만 잘 정제된 마나가 투핸드소드에서 뿜어져 나왔다.

“죽엇!”

마르틴은 그대로 케이슨에게로 달려들었다.

쾅, 쾅, 콰아앙!

케이슨 역시 다급히 검에 마나를 담았지만 이미 선수를 빼앗긴 터라 마르틴의 검을 막기에 바빴다. 그렇게 방어에 치중하느라 손발이 어지러워질 찰나였다.

『검이 아니라 상대의 손을 보는 겁니다.』

마현의 목소리다.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였지만 케이슨은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입장이 아니었다.

‘검이 아니라 손!’

케이슨은 마현의 조언대로 마르틴의 투핸드소드가 아닌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각!

익숙지 않아 한두 차례 더 검상을 입었지만 시간이 흘러 조금씩 익숙해지자 어지럽던 손과 바스타드소드에 안정감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수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마르틴은 여전히 선공의 유리함을 놓치지 않고 노련하게 케이슨을 압박해 들어갔다.

『상대의 움직임은 발이 아닌 눈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발이 아니라 눈!’

케이슨은 마르틴의 눈에 집중했다.

역시 마현이 알려준 대로 마르틴의 눈동자는 그가 움직일 방향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케이슨은 서서히 마르틴의 선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히익!”

자신에게 비해 한참이나 뒤진다고 여기던 비천한 용병이 아니던가. 그런데 서서히 자신의 공격을 차단하며 반격까지 해오자 마르틴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붉게 타올랐다.

‘슬슬 끝을 볼 때가 되었군.’

케이슨과 마르틴의 결투를 지켜보던 마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현의 입술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케이슨의 움직임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승리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수세에 몰렸었던 케이슨이 어느 순간부터 판세를 뒤집고 있었다.

쾅 쾅 쾅!

마나의 폭음과 함께 마르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윽, 커억!”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과 상급의 차이는 마현이 보기에 그다지 크지 않다.

하르센 대륙에서 큰 차이를 두는 이유는 바로 마나 운용의 시간차 때문이었다. 비등한 검술이 서로 부딪히면 승패를 가르기 위한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그럴 경우 마나의 운용시간이 길어지면 바로 승리로 직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뒤집는 검술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케이슨의 검술이 마르틴의 검술을 뛰어넘지는 못하지만 마현이 개입하면서부터 허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수세에 몰리자 마르틴의 손발이 점점 흐트러지고 있었고 허점의 크기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 틈을 케이슨은 놓치지 않았다.

쑤아아앙!

케이슨의 바스타드소드가 마르틴의 투핸드소드를 눌렀다. 그리고는 마현이 알려준 적수공권 중 슬격 투로를 이용해 마르틴의 다리를 낮게 쓸었다.

퍽!

케이슨의 다리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전, 그러니까 마나 센타에 집중된 마나를 이용해 더욱 강한 힘으로 마르틴의 복숭아뼈를 후려친 것이다.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강력한 일격에 마르틴은 바닥에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컥!”

흉한 몰골로 바닥에 쓰러진 마르틴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케이슨의 바스타드소드가 어느새 목젖 바로 앞에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승패가 갈리자 케이슨은 바스타드소드를 거두며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았던 것처럼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케이슨은 바닥에 누워 있는 마르틴을 향해 목례를 취한 후 몸을 돌렸다.

“와아아아!”

“케이슨 용병기사단, 만세!”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 번 엄청난 함성이 용병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착검을 하고 마현과 하야스 후작이 있는 군막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케이슨의 얼굴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이! 이! 감히! 감히!”

마르틴의 거친 숨결이 케이슨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비천한 용병 주제에! 죽엇!”

“헙!”

“으허억!”

마르틴의 절규로 가득 찬 노성과 함께 임시 연무장 주위에 몰려와 있던 용병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케이슨은 등 뒤로 날아와 꽂힌 살기를 느끼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괜히 높은 게 아니었다.

케이슨의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악에 받친 마르틴의 투핸드소드가 어느새 목전까지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흐릿한 그림자가 케이슨의 눈앞에 나타났다.

‘카, 카칸…….’

이미 한 번 보았던 등이다.

그 등을 다시금 본 것이다.

마현의 롱소드에서 검은빛이 일렁이는 오러가 피어났다. 그 오러는 검은 반월을 허공에 그렸다.

서걱!

폭음도 없었다.

다만 쇠가 잘리는 파음만이 검은 반월 안에서 울렸을 뿐이었다.

펑!

“으악!”

이어 마현의 강한 발길질에 마르틴이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용서는 이번 한 번뿐이다.”

마현의 차가운 음성은 낮았지만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집과 그의 호위기사단의 기사들에게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압도적인 무위를 드러낸 마현.

이번에는 아무도 함성을 내지르지 못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마저 단 일 검에 무너트린 마현의 무위을 대하자 임시 연무장 주위는 오히려 적막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로부터 한참 동안, 누구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 *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마현은 케이슨과 함께 군막을 떠났다. 그들이 향한 곳은 8군단 사령부였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케이슨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다.

“최상급 포션이 좋긴 좋더군.”

하야스 후작은 결투가 끝나자마자 휘하 기사를 시켜 두 병의 최상급 포션을 보내왔다. 한 병은 케이슨이, 다른 한 병은 아이작에게 사용했다.

더불어 마현은 아이작에게 최상급 포션을 먹인 직후 추궁과혈로 다친 혈맥을 치료해 주었다. 마현이 상당한 내력을 사용한 덕분에 아이작은 내일이면 최상의 몸 상태로 출전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둘은 포크너 후작의 개인 군막 바로 옆에 세워진 8군단 사령부에 도착했다.

군막 안에서 들려오던 작은 웅성거림은 케이슨과 마현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았기 때문일까? 케이슨과 마현의 발소리가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발자국 소리가 군막 안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늦었다.”

포크너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둘을 타박했다.

“불상사가 있어 일을 처리하느라고 조금 늦었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마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실 포크너 후작 역시 그 불상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니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알음알음 소문으로 전해들은 터라 더 이상 그것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앉아라.”

포크너 후작이 가리킨 곳에는 비어 있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다들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겠지?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단장인 케이슨과 부단장인 카칸이다.”

포크너 후작의 소개에 지휘관들은 살짝 목을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에 케이슨과 마현 역시 살짝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모들이 두 사람을 대하는 느낌은 호의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차마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 나집과 그의 기사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 얄미운 자들의 콧대를 제대로 뭉개놓았으니 그들 역시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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