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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69화 (269/351)

# 269

18화

어떤 결과가 나와도 하야스 가문과는 상관없다!

하야스 후작의 이 말 한 마디에 나집의 입술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고, 그 감정은 마르틴을 거쳐 헤세에게로 이어졌다.

“한눈을 팔 정도로 자신감이 대단하군.”

헤세는 깊은 고민에 빠져 결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작을 향해 코웃음을 치며 투핸드소드를 휘둘렀다.

“헙!”

아이작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헤세의 검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서걱.

아이작의 가슴에 붉은 혈선이 그어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상처가 깊지 않다는 것.

“훗. 하야스 가문의 울타리를 벗어난 너는 아무것도 아니지.”

헤세는 그 일격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는지 나지막하게 아이작을 비아냥거렸다.

그 비웃음에 아이작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저 덜렁덜렁하고 사람 좋아 보이던 그간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냉기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돌변한 것이다.

달라진 아이작의 모습에 헤세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아이작의 경지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 초입. 자신은 최상급을 바라보는 완숙한 경지의 상급.

‘결코 내가 질 리 없다.’

헤세는 검자루를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클로드 공작가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자가 바로 자신이다. 아이작이 태어나기 전부터 검을 잡은 그였다.

헤세가 마음을 냉정하게 가라앉히고 있을 때 아이작이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투핸드소드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투핸드소드는 날카로웠다.

하지만 날카롭기는 헤세의 투핸드소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깡! 카가가강!

순식간에 십여 차례 둘의 투핸드소드가 어지럽게 부딪혔다.

그리도 다시 둘은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서로를 향한 탐색전이 끝났음을 보여 주는 듯 시퍼런 눈빛이 오갔다.

후우웅!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둘의 투핸드소드에서 시퍼런 마나가 피어올랐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싸움이었다.

“하압!”

먼저 움직인 것은 헤세였다.

공기를 갈가리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순식간에 아이작을 덮쳤다.

쾅!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이 두 투핸드소드 사이에서 터졌다.

동시에 둘의 움직임은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어지간한 이들은 눈으로 둘의 모습을 좇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쾅, 쾅, 콰광!

마나와 마나의 충돌로 인해 임시 연무장의 고른 땅이 파여지고 그로 인해 자욱한 먼지가 용오름처럼 곳곳에서 솟구쳤다.

“큭!”

흐릿한 잔영으로 가득 찬 임시 연무장에서 미약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적지 않은 핏방울이 허공에 뿌려졌다.

“흠!”

그 핏방울이 튀는 것과 동시에 하야스 후작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공간을 두고 떨어진 헤세와 아이작의 모습은 천지차이였다.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 헤세와 달리 아이작의 가슴에는 피로 물든 또 다른 검상이 길게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이작의 본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었다.

그런 그가 헤세에게 이처럼 밀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 아이작의 검은 그답지 않게 무뎠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망설임에 있었다.

하야스 가문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검과 그걸 깨트리라는 마현의 말이 이 싸움으로 인해 더욱 크게 충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골똘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군.’

『소드 마스터가 되기 싫은 모양이지? 분명 내가 만들어 준다고 그랬을 텐데.』

마현의 전음에 아이작이 투핸드소드를 내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마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마현이 지금 무얼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 못 믿겠으면 하야스 가문의 검술이나 제대로 펼치던가. 어차피 선택은 너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하야스 가문의 검술을 지켜내도 언젠가는! 너도 소드 마스터에 오를 수는 있을 거다. 다만 그 시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마현의 전음에 아이작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애꿎은 땅을 발로 거칠게 찼다.

“젠장!”

아이작이 마현을 무섭게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러면서 잠시 하야스 후작을 힐긋 쳐다본 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투핸드소드를 들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약속 꼭 지켜.”

마현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아이작은 다시 헤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서 망설이던 눈빛이 사라졌다.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헤세는 결투 중에 자신을 외면한 것이 수치라고 여겼는지 진득한 살기까지 내뿜으며 아이작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를 상대하는 아이작의 검에서도 더 이상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작의 검이 미묘하게 하야스 가문의 검술의 투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껍질을 깨는 것인가?’

마현이 무리하게 아이작을 몰아세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아이작에게 하야스 가문의 검술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직하고 패도적인 하야스 가문의 검술은 자유분방한 아이작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위험이 다분히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런 것처럼, 검술과 기질 또한 상생과 상극이 분명 존재한다. 하야스 가문의 검술은 아이작에게 상극인 셈이었다. 그런 기질상의 문제가 아이작의 검술을 3년 동안이나 제자리에 묶어둔 것이다.

더욱이 하야스 가문의 검술은 이미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사실 그것이 더 큰 문제였다.

“무, 무슨 짓인가?”

하야스 후작의 얼굴은 그 사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이작을 제게 맡기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만 저…….”

하야스 후작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마현은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중에 보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현은 희미하지만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듯하니 조금 도와줄까?’

아이작의 검에는 망설임이 사라졌지만 전보다 실력은 줄어들었다. 이제껏 익숙하게 익혀왔던 하야스 가문의 검술을 완전히 버린다고 쳐도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검로가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저 아이작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검로를 찾아 투핸드소드를 휘두를 뿐이었다.

그 때문에 비록 실력이 떨어졌지만 그의 움직임만은 그의 기질처럼 더없이 경쾌하게 변했다.

『좌로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며 검을 사선으로 베어.』

망설임이 사라진 아이작은 마현의 전음에 따라 걸음을 내딛으며 힘차게 검을 베어 올렸다.

그 날카로운 공세에 헤세는 다급히 허리를 젖히며 아이작의 검을 피했다.

『최대한 가볍게, 하지만 빠르게 검을 내려.』

쐐애애액!

“큭!”

어느새 머리 위를 갈라오는 아이작의 투핸드소드에 헤세는 서둘러 자신의 투핸드소드를 들어 머리를 막았다. 그러면서 두 다리와 허리에 힘을 줘 강력한 일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쾅!

예상했던 강력한 폭음은 없었다.

그저 가벼운 소리만이 울렸을 뿐이다.

‘가, 가볍다?’

하야스 가문의 검은 일검, 일검이 필살이다. 그리고 일검, 일검에 온 힘을 쏟는다.

그런데 아이작의 검은 가벼웠다.

『발로 놈의 가슴을 밀어. 너와의 거리를 만들어.』

온 힘을 쏟지 않았기에 아이작은 마현의 말처럼 손쉽게 발을 들어 헤세의 가슴을 걷어찰 수 있었다.

퍽!

결코 가볍지 않은 타음이 헤세의 가슴에서 터졌다.

“컥!”

그로 인해 헤세는 2미터가량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아이작은 그런 헤세를 따라 달려들었다.

『마나 센터에 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려. 그리고 폭발시키듯 검에 밀어 넣어!』

“하아압!”

아이작은 마현의 뜻대로 단전에 집중된 마나를 의식적으로 팔을 통해 투핸드소드로 밀어 넣었다.

쐐애애― 쿠오오오오!

아이작의 검에서 일렁이던 마나의 색이 짙어졌다.

아지랑이처럼 보이던 푸르른 마나가 짙은 바다색처럼 색과 형체가 보다 명확해졌다.

콰당!

그 순간 하야스 후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로 인해 그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오, 오러?’

하야스 후작의 눈동자가 열기로 가득 차며 파르르 떨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콰그극, 서걱!

다급히 헤세가 검을 들어 아이작의 검을 막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헤세의 투핸드소드에 담긴 마나가 아이작의 오러에 갈가리 찢겨진 후 투핸드소드의 검날마저 잘라 버린 것이다.

마나와 검, 모두를 부숴 버린 오러가 담긴 아이작의 이글거리는 검날이 눈앞에 떨어지자 헤세는 죽음을 각오하고 두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와아아아아!”

“케이슨 용병기사단 만세, 만세!”

이렇게 죽는 것인가? 헤세가 참담한 심정으로 마지막을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우렁찬 함성이 임시 연무장 주위에서 터져 나왔다.

“새로운 소드 마스터다!”

“소드 마스터 용병이다!”

그 사이 임시 연무장 주위에는 빼곡할 정도로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정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그저 소문으로만 용병들로 구성된 기사단이 창단됐다는 소리를 얼핏 듣긴 했다. 그것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우와아아아!”

아이작은 요동치는 눈동자로 부르르 떨리는 투핸드소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마침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함성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썩은 고목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무리했군.’

아이작은 마나의 고갈로 인해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무리한 마나의 운용으로 어쩌면 혈맥이 살짝 뒤틀리고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마현은 흡족한 미소를 진하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로 넘어가는 아이작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막 뒤로 넘어가는 아이작의 등 뒤였다.

“부, 부단장.”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은 모양인지, 아이작은 마현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보건데 당장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마나가 고갈된 모양이었다.

“축하한다. 마주선 벽에 손을 내민 것을.”

“착각이 아니었군.”

아이작은 희열이 묻어 있는 뜨거운 미소를 지으며 정신을 잃었다.

“이 뒤는 내가 맞지.”

케이슨이었다.

용병이지만 그도 검을 든 순수한 검사였다. 그렇기에 한순간 벽을 뛰어넘은 아이작의 모습에 꽤나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케이슨은 상당히 흥분한 듯 숨결이 거칠었다.

마현은 아이작을 품에 안아 들며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단장.”

“……?”

“숨결이 고르지 못합니다. 머리는 뜨겁게, 하지만 심장은 차갑게.”

마현의 가벼운 충고에 케이슨은 비록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자신의 실책을 자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마현을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마르틴! 경이 나서라.”

“예, 마이 로드.”

격분에 찬 나집의 목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마르틴의 투핸드소드가 순식간에 뽑혔다.

챙!

이어 케이슨의 바스타드소드도 뽑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마현은 아이작을 데리고 군막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받겠습니다.”

그레오였다.

3일 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간 용병기사단 내에서 어중간한 입장이었던 마현의 위치가 확고하게 부단장 자리에 안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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