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64화 (264/351)

# 264

13화

“자브라, 몸이 고단해도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현은 군막 중앙으로 가며 누워 있는 단원들을 모두 침상에 앉혔다.

“아이작.”

마현은 가장 구석에 놓인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작을 불렀다.

“왜?”

“너도 앉아라.”

“싫어.”

아이작은 언제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는가 싶을 정도로 아이가 심술 난 것처럼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몸을 반대로 뉘였다.

“배우기 싫으면 말고. 참고로 지금 배울 것은 검술보다 더 중요한 거다.”

인간의 몸이 용수철처럼 되어 있으면 저렇게 될까 싶을 정도로 아이작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야전침상에 앉았다.

“호호호.”

그것을 보고 자브라가 싱긋 웃음을 터트렸다.

“아름다운 레이디. 그대의 웃음을 보니 내 마음도 다 밝아지는구려.”

아이작은 느끼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한지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된 몸짓으로 한쪽 무릎을 살짝 꺾으며 오른손을 심장 위에 올렸다.

“다들 조용!”

소란스러워질 조짐이 보이자 케이슨이 미리 차단해 버렸다.

“나는 나가 있을까?”

밀러가 조심스럽게 마현에게 물었다.

“조용히 있으면 상관없습니다.”

마현은 밀러에게 대답하며 케이슨 앞에 섰다.

“죄송하지만 오른손을 잠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케이슨은 이번에도 군말 없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마현은 그런 케이슨의 완맥을 잡았다.

“조금 뜨끔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항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현은 부드럽게 케이슨의 완맥을 통해 자신의 마나를 밀어 넣었다. 설마 마나가 몸에 들어올 줄 몰랐던 케이슨이 일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마현은 마나, 즉 내력을 이용해 케이슨의 내부를 살폈다.

생각보다 케이슨이 몸에 담고 있는 마나의 양은 정순하고 많았다. 아마 하르센 대륙이 무림보다 마나가 깨끗하고 풍부했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잠시 후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슨에게서 손을 뗐다.

예상대로 케이슨의 몸에 많은 양의 마나가 담겨 있었지만 무림인의 단전처럼 일정한 장소에 뚜렷하게 모여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뜻밖의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혈도가 막혀 있었지만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기맥과 다리 아래로 내려오는 기맥의 몇몇 혈도들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뚫려 있다는 것이다.

“흠…….”

마현은 아이작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오른손 좀 줘봐.”

마현은 아이작의 완맥을 잡으며 케이슨과 같은 주의를 준 후 마력을 그의 몸에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역시 케이슨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 역시 조용히 마현에게 몸을 맡겼다.

‘역시.’

아이작의 몸은 케이슨보다 더 많은 혈도가 뚫려 있었다. 아마도 정형화된 검술을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 수련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현은 조용히 손을 놓았다.

아이작은 왼손으로 오른손 완맥 부근을 주물럭거렸다.

‘다른 이의 몸에 마나를 넣는다.’

아이작은 느꼈다.

마현이 그의 마나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살폈다는 것을.

낯설고 신비한 능력이었다.

아이작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마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마현은 그런 시선을 알면서도 무시한 채 다른 단원들의 몸을 살폈다. 소드 유저이기 때문일까? 뚫린 혈도는 없지만 몇몇 혈도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밀러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새로운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확답을 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케이슨이 단원들을 대신해 물었다.

“그 누구에게도 지금의 수련법을 알려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흠…….”

케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단원들을 살폈다.

“그 누구에게도?”

제이든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물었다.

“자식이나 제자 정도는 괜찮다.”

“나는?”

아이작이었다.

“음……, 하야스 가문까지는 허락하지.”

그 정도면 아무도 이견이 없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확답을 받은 마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알려드릴 건 일종의 명상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현은 신발을 벗고 야전침상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를 따라서 이렇게 앉으십시오.”

가부좌라는 것이 보기처럼 쉬운 자세가 아니었다.

당연히 마현이 침상을 오가며 강제로 가부좌를 틀어 앉혔다.

“크으.”

“으윽!”

다들 다리가 찢어지고 뽑히는 듯한 고통에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지금은 불편하겠지만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겁니다.”

강제로 가부좌를 틀게 만든 후 마현은 목소리에 내력을 살짝 담았다. 고통으로 흐트러진 그들에게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눈을 감으십시오.”

마현은 천천히 말을 했다.

“검을 휘두르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명상으로 마나를 느끼십시오. 눈을 감고 자신을 잊고 주변을 살피면 공기 속에 흐르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마나입니다.”

마현의 말이 흘러나올수록 밀러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이미 마나를 몸으로 느꼈으니 공기 속에 흐르는 마나를 느끼기는 쉬울 겁니다. 그 마나를 코로 길게 들이마십시오. 폐부로 스며든 마나를 몸에 담긴 마나와 함께 배꼽 아래 부분으로 밀어내립니다. 그리고 공기만 천천히, 더 천천히 입으로 내쉽니다.”

눈을 감은 아이작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모르긴 몰라도 눈꺼풀에 감겨 있는 눈동자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충격은 검술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지금 마현이 얘기하는 건 극비리로 전수되어 온 하야스 가문의 비전과도 비슷했다.

물론 많은 것이 다르다.

하야스 가문은 이런 요상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의자에 반듯하게 앉거나 아니면 편하게 눕거나 한다. 그런 편안한 자체로 마나를 느끼고 몸에 쌓는 명상을 한다.

물론 자세는 달랐지만, 본질적으로는 일맥상통한 수련을 지금 마현이 용병들에게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명상은……, 본가의 비전보다 더 뛰어난 것이 분명해.’

정확한 건 아이작도 솔직히 모른다.

그리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왜 코로 들이마셔야 하는지, 또 몸 전체가 아닌 배꼽 아래에 그 마나를 집중시켜야 하는지. 하지만 직감적으로 하야스 가문의 명상보다 한층 더 발전된 명상일 거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정확한 것을 알 수 없으니 아이작은 일단 이 명상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작은 마현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며 명상에 빠져들었다.

마현이 지금 가르친 것은 일종의 토납법이었다.

무림에서는 단전을 만들기 전에 먼저 몸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행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단전의 개념까지 이해시키기는 했지만, 단지 호흡법만으로만 본다면 토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변변한 내공심법도 없는 이곳에서 이만한 마나를 몸에 쌓아온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꾸준히 수련한다면 지금의 토납법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가 될 것이다.

몇 가지 소소한 것들을 더 가르치겠지만 토납법 이외에는 더 이상 무림의 것을 풀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마현은 가부좌로 인해 고통스러운 신음이 잦아들고 다들 숨소리가 편안해지자 조용히 군막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카칸.”

“쉿!”

밀러가 부르자, 마현이 서둘러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밀러도 명상에서 고요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현을 따라 조용히 군막을 빠져나왔다.

“미안하지만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네.”

“그 요상한 자세. 그거 기사들만의 수련 자세인가? 그리고 명상하는데 굳이 그렇게 숨을 마시고 내쉬어야 하는가? 그리고 배꼽이라니? 왜 배꼽에 마나를 모으는 것인가?”

밀러는 마현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많은 질문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밀러 님. 그렇게 한꺼번에 물으시면 대답하기가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제야 밀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일단 천천히 하죠. 한스야.”

마현은 더러워진 수건을 빨아서 돌아오는 한스를 불렀다.

“여기 군막 안으로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누군가가 찾아오면 나에게 안내하고.”

“알겠습니다.”

마현은 단원들이 방해받지 않게 조치하고는 밀러와 함께 군막 옆에 놓인 탁자로 향했다.

“일단 확답부터 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알겠네. 이 나이에 자식 얻을 일은 없으니 제자에게만 가르치겠네.”

이미 군막 안에서 들었던 것이라 밀러는 흔쾌히 대답했다.

“무엇부터 물었었죠?”

“그 요상한 자세 말일세.”

“아! 가부좌?”

“그 자세를 가부좌라고 하는 겐가?”

“굳이 기사에게만 필요한 자세는 아닙니다. 마법사들도 저 자세를 취하면 좀 더 예민하게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미 다른 명상을 하는 나도 해당되는가?”

“그 전에 하나 물어보죠. 기사의 마나와 마법사의 마나,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그건 자네도 마법사였으니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밀러는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투로 반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물음에 밀러는 뾰족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부분은 이미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기에 그냥 그렇게 맹신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검사를 보게. 만약 기사의 마나와 마법사의 마나가 같다면 왜 마검사들이 어중간하게 성취를 이루겠나?”

한참을 생각한 끝에 밀러가 근거를 제시한 것은 고작 마검사의 한계였다.

“그 이유는 육신에 담는 마나와 심장에 담는 마나의 충돌 때문이라는 건 자네도 알지 않은가? ……아닌 겐가?”

밀러는 대답하다가 담담하게 웃고만 있는 마현의 표정을 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습니다.”

밀러의 관점, 그리고 현 마검사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논리가 정답이다. 물론 마현 자신처럼 새로운 체계를 잡는다면 어긋나는 논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현은 밀러에게 그런 것까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마법과 검을 동시에 이룬다.

그것은 적어도 하르센 대륙에서는, 아니 무림에서도 상당히 위험한 논리였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검사의 마나나 마법사의 마나나 그 시작은 똑같이 대자연 품에 담긴 마나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 명상법을 누가 쓰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밀러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것이 자네가 이처럼 젊은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를 수 있는 비결인 셈이군. 허어, 마법사의 전유물을 검사의 길에 담다니. 대단하이, 정말 대단해. 허어!”

밀러는 그제야 왜 마현이 젊은 나이에 이처럼 고강한 강자가 되었는지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경탄하는 감탄사를 연신 터트렸다.

“그나저나 왜 명상에 호흡을 조절하는 겐가?”

“보통 검사들은 검을 휘두르며 마나를 받아들입니다. 마법사들은 명상을 통해 마나를 받아들입니다. 그 통로는 피부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마나는 공기 속에 녹아 있습니다. 과연 피부로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겠습니까? 아니면 호흡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빠르겠습니까?”

밀러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제가 배꼽 아래를 지칭한 것은 그들이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몸을 움직이는데 가장 중심이 바로 배꼽 아래 부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호흡을 통해 심장으로…….”

밀러는 중얼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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