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12화
“단장만의 검술이 있겠죠? 한 번 펼쳐보세요.”
“거, 검술 말인가?”
케이슨은 다시 대련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남들에게 보여 줄 정도로 대단하지 않네.”
케이슨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니까 보여 달라는 겁니다.”
마현은 혹시나 싶은 의구심이 떠올랐다.
명문가라면 나름대로 투로를 정립해 가문의 검술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용병들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림에서야 낭인들도 저마다 나름대로 검법을 정리해서 익히지만 검보다는 마법이 발전한 하르센 대륙에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흉내 내서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많이 어설프게 보일 걸세.”
케이슨은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마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병이라는 한계를 딛고 케이슨이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이유가 다 있었다. 그만큼 피와 땀으로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인 것이다.
“흉내든 아니든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 남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자네가 그리 말해 주니 내가 잘못된 길을 걸은 건 아닌 모양이군.”
케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현 앞에서 기수식을 잡았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은 후 자신이 만든 검술을 펼쳤다.
케이슨이 마현과의 대련에서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 그의 검은 상당히 무거웠다.
‘흠…….’
그리고 상당히 변칙적인 부분도 많았다.
약 10분에 걸쳐 검술을 펼친 케이슨은 상당히 긴장된 얼굴로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죠.”
마현은 케이슨이 약 10분 동안에 걸쳐 펼친 검술을 조금 더 천천히 다시 펼치게 했다.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케이슨은 묵묵히 마현의 말대로 천천히 다시 검술을 펼쳤다.
후우웅!
케이슨의 바스타드소드가 무겁게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옆으로 일 보 내딛을 때였다.
착!
마현이 검집째 롱소드를 들어 케이슨의 몸을 멈추게 했다.
“여기서 이 걸음은 너무 답답합니다. 비록 검은 무겁지만 몸은 호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무거운 검이 살 수 있습니다.”
마현은 롱소드를 뻗어 케이슨의 내딛은 발을 좀 더 넓혀주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더 낮추게 했다.
케이슨은 군말 없이 마현이 시키는 대로 자세들을 하나 둘씩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드러운 동작으로 앞을 베어가던 케이슨의 바스타드소드와 신형이 툭 끊기더니 어색하게 공중으로 몸을 띄워 아래를 베어 내려갔다.
“방금 이어지는 동작은 부드럽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 억지로 가져다 붙인 것 같습니다만?”
“사실 그렇네.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네.”
케이슨의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표정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마현이 시키는 대로 검술을 고쳐나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검술이 다듬어지며 좀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을 반짝이며 마현을 쳐다본 것이다.
“흠…….”
마현은 잠시 코끝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미약한 침음성을 흘렸다. 그 연결식에 어울릴만한 투로를 찾느라 잠시 고민에 빠진 것이다.
마현은 무림에서도 흑마법사로 살았기에 단번에 어울리는 검식을 바로 찾지 못한 것이다. 마현은 마혼검과 광마보의 투로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 부분을 추가하면 좋겠군요.”
마현은 마혼검과 광마보에서 하나씩 식을 뽑았다. 그리고는 케이슨이 펼친 마지막 부분부터 새로 추가된 식을 시전해 보였다. 마현은 케이슨이 한 것처럼 앞으로 장중하게 롱소드를 베어갔다.
그 순간 케이슨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지금 마현이 펼친 한 수를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이 찢어져라 힘을 준 것이다.
앞을 크게 벤 마현은 가볍고 짧게 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위로 흘렸다. 그것은 케이슨이 줄곧 추구해오던 중검이 아닌 쾌검이었다. 그렇게 롱소드를 쳐올리는 동시에 마현의 신형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쐐애애액!
그리고 허공에서 마현은 무겁게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순간 케이슨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허술한 검술이 그 한 수로 인해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찬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설명을 곁들이죠.”
“아, 알겠네.”
케이슨은 마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가볍게 걸음을 내딛으며 역시나 가볍지만 빠르게 상대방을 베며 몸을 날립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위로 베어 올리는 수는 반드시 상대방을 베고자 함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는 동시에 다음 수를 더욱 완벽하게 펼치기 위한 준비동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마현은 가볍게 몸을 날린 후 무겁게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지금 이 수에 무거움을 더 담으면 이것만으로도 일격필살의 한 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검을 무겁게 한다고 해서 움직임까지 무겁게 간다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때로는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여야만 상대방에게는 무거움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두어 번 시범을 보인 마현이 뒤로 물러났다.
“그럼 한 번 해보십시오.”
케이슨은 잡고 있던 바스타드소드를 더욱 억세게 말아 쥐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마현이 보여준 검식에 따라 다시 검술을 펼쳤다.
진중하게 앞을 벤 후 가벼운 놀림으로 검을 휘두르며 허공으로 몸을 날린 케이슨은 무겁게 아래로 검을 내리그었다.
마현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허공으로 몸을 날릴 때에는 발걸음을 더 좁게 하고, 휘두르는 바스타드소드 역시 힘을 더 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에서는 힘을 뺀 만큼 더 강하게 내리꽂아야 합니다.”
“알겠네.”
케이슨은 마현의 지적대로 다시 검을 펼쳤다.
마치 한 마리 호랑이가 무겁게 다가가 표홀하게 상대방을 향해 덮치는 것과 동시에 매섭게 앞발로 먹이를 갈가리 찢어 버리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었다.
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마현과 케이슨을 쳐다보던 아이작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이 수를 보자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쩍 벌어졌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용병이 자신만의 검술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물론 그 호기심도 마현이 있었기에 일어난 것이다.
케이슨의 검술은 거칠었다.
나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었고, 과다하게 변칙적인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조잡한 부분도 있었고, 허점도 꽤나 많았다.
나름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검술도 아니었다.
용병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검술이겠지만 자신과 같은 명문 기사 가문의 검술과 부딪힌다면 열에 아홉은 깨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마현이 그 검술을 이리저리 손을 보기 시작하자 허술함이 사라졌다. 조잡하다고 느껴지던 부분이 오히려 날카롭게 변한 것이다. 변칙 역시 사각을 이용하는 실전적 검로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저 검 위치와 내딛는 걸음의 보폭에만 변화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몇 수의 연결식만 덧붙인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어느 순간 거칠고 조잡하던 케이슨의 검술은 어지간한 기사 가문의 비전 검술과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검술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야스 가문의 검술에 비하면 격이 살짝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작은 큰 바위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자신이라면 평범한 저 검술을 저렇게 뛰어난 검술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고개가 저어졌다.
그렇다면 아버지인 하야스 후작은?
아마 저런 능력이 있었다면 지금의 하야스 후작가의 검술은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아이작은 왜 아버지 하야스 후작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정체되어 있는 자신의 경지와 가문의 검술을 마현을 통한다면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내다본 모양이었다. 또한 더불어 마현과의 친분을 통해 왕국의 발전도 꾀하면서 말이다.
그사이 마현은 야솝의 검술을 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슨을 비롯한 단원들은 한층 업그레이드가 된 검술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지도가 끝난 야솝이 한껏 들뜬 목소리를 크게 내며 허리를 숙였다.
‘이제 내 차례인가?’
아이작은 손으로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은 차분했지만 그의 심장을 쿵쿵 뛰었다.
긴장한 것이다.
“됐어. 나올 필요 없다.”
마현의 목소리에 아이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지?”
아이작은 저마다 검을 펼치고 있는 단원들을 쳐다본 후 마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봐주지 않아도 하야스 가문의 검은 뛰어나다.”
“하지만…….”
아이작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른 경우였다면 마현의 말은 분명 칭찬이다. 하지만 현재 그 말이 칭찬일 리는 없다.
“원한다면 봐줄 수는 있지만……, 하야스 가문의 검술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내가 어설프게 개입하면 그 완성도가 오히려 무너질지도 모른다. 내게 하야스 가문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나?”
아이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지만 마현은 이미 대답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실전을 거치며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마현은 솔직히 말해 주었다.
지금 단원들의 검술을 이만큼 끌어올려준 것이 마현의 한계였다. 그 이유는 검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지 않은 탓이다. 물론 공을 들이고, 그만큼 시간을 들이면 더 훌륭한 상승 검술을 만들 수도 있다.
아니 만든다기보다 알고 있는 것을 분해해 적당히 조립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할 생각은 없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다.
현재 마현이 끌어올려준 검술만으로도 하야스 가문의 검술과 비교해서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 그 말은 대륙의 어느 검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뜻과 상통한다. 거기에 마나의 이해만 높여줄 생각이다. 부족한 부분은 그걸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되면 충분히 대륙에서도 이름을 날릴 검술이 될 것이 분명했다.
마현의 솔직한 말에도 굳어진 아이작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마현의 말이 이해가 되지만 왠지 분한 감정이 지워지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자신이 이방인이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살짝 들었다.
짝짝짝.
아이작이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마현이 박수를 쳐 주위를 환기시켰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다들 군막으로 모이시오.”
그 소리에 한스가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임시 연무장 안으로 뒤뚱뒤뚱 들어왔다.
“엿차!”
그 모습에 그레오가 다가가 커다란 양동이를 받아들었다.
“다들 땀 닦으세요.”
한스는 깨끗한 수건을 물에 흠뻑 적셔 단원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고맙다.”
“헤헤.”
한스는 칭찬을 듣자 혀를 삐쭉 내밀었다.
“시원하다!”
다들 차가운 물을 적신 수건으로 몸에 덕지덕지 붙은 먼지와 땀을 닦으며 군막 안으로 모였다.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한 탓인지 생각보다 지친 모습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군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대부분 야전침상에 몸을 뉘였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다. 일어나.”
마현은 군막 입구에서 침상에 몸을 누인 제이든의 발을 살짝 치며 말했다.
“근데 왜 반말이야?”
제이든은 그 말에 몸을 일으키면서도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벌써 잊은 모양인데, 나는 부단장이다. 그리고 너보다 세다. 답변이 되었겠지?”
제이든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전처럼 대들거나 구시렁거리지는 않았다. 조금 전 그의 검술을 매끄럽게 다듬어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