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61화 (261/351)

# 261

10화

식탁이 치워졌다. 기분 좋은 포만감도 흐려지며 나른함이 찾아올 때쯤이었다.

마현이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케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일어나.”

“에이, 대장.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인데 조금만 더 누워 있으면 안 될까요?”

그레오가 일어나기 싫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그레오!”

케이슨이 나직했지만 딱딱한 어투로 그레오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에 그레오가 찔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잘 되었군. 이 시각 이후부터 우리 케이슨 용병대는 용병대가 아닌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되었다. 내부적으론 어떤 호칭이든 상관없지만 오늘부터 대외적인 호칭은 바꾸기로 했다. 용병기사단인 만큼 나는 단장이 될 것이며, 카칸은 부단장, 그리고 너희들은 대원이 아닌 단원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케이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알아들은 모양이군. 그럼, 5분 내로 무장하고 군막 앞 임시 연무장으로 집결한다.”

“그럼 나는 뭐하면 되는가?”

밀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카칸이 단원들 검술을 봐주기로 한 것이니까 밀러 님은 알아서 수련을 하시든 아니면 쉬시든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런가? 다들 수련하는데 혼자 쉬기는 그렇고 오랜만에 명상이나 해야겠군.”

밀러의 말에 케이슨은 고개를 돌려 자리에서 막 일어서는 한스를 불렀다.

“한스야, 너는 그동안 편히 쉬고 있거라.”

“하지만…….”

“너는 ‘하지만’이라는 단어밖에 모르는 것 같구나.”

케이슨은 약간 붉어진 한스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는 귀족이 아니란다.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하는 게 편해서 그런 것뿐이니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정 마음이 편치 않으면 후에 몸을 씻을 물 정도나 준비해 주면 고맙겠구나.”

“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 기쁜 모양인지 한스는 활짝 웃었다.

“녀석.”

케이슨은 한스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는 박수를 짝짝 쳤다.

“다들 서두르지 않고 뭐하나?”

케이슨은 단원들을 재촉하며 자신도 애병인 바스타드소드를 들고 군막을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새로 배정 받은 군막과 용병연대장의 호위기사단 군막 중앙에 위치한 임시 연무장이었다.

바닥에 깔린 옅은 색과 짙은 색의 흙이 뒤섞인 것을 보아 임시 연무장을 손을 봐 넓힌 모양이었다.

“이 정도 크기면 서로 불편하지는 않겠군.”

“그렇군요.”

마현의 대답을 들으며 케이슨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부탁하네.”

“……?”

마현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케이슨은 연무장에 도열해 있는 단원들 사이로 걸어가 섰다.

“대, 대장. 아니 단장.”

당황한 것은 마현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단원들도 자신들 틈에 들어오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케이슨을 불렀다.

“다들 조용!”

케이슨은 단원들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 시간만큼은 카칸이 대장이다. 나도 함께 구를 것이니 꾀부릴 생각은 하지 말도록. 특히, 제이든! 알아들었지?”

케이슨은 홀로 삐딱하게 서 있는 제이든을 지목하며 나직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쳇!”

케이슨이 그렇게 나오자 제이든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불만 어린 목소리를 고스란히 내놓았다.

마현은 그런 케이슨을 보며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소수지만 한 무리를 이끄는 이가 저렇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케이슨,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이였다.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케이슨을 본 마현은 일렬로 서 있는 단원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마현은 이들에게 특별히 뭔가를 가르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가르칠 역량도 되지 않을뿐더러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누구보다 마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무림의 것.

그것은 이 세계에 풀어놓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지식이다. 동시에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기적인 발상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것만으로도 족하다 여겼다.

“일단 한 명씩 돌아가며 대련을 하겠습니다.”

그저 실전 형식으로 부족한 부분만 채워줄 것이다.

“그럼 나부터 하지.”

역시나 케이슨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걸어 나와 마현 앞에 섰다.

“잘 부탁하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케이슨은 바스타드소드를 빼들었다.

마현도 그에 맞춰 롱소드를 빼들었다.

잠시의 눈빛이 오간 후 케이슨이 마현을 향해 몸을 날리며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다.

후우웅!

묵직한 파공음이 바스타드소드에 의해 만들어졌다.

마현은 가볍게 옆으로 반보 내딛으며 롱소드를 바스타드소드에 부딪혀봤다.

캉!

역시나 케이슨의 바스타드소드는 무거웠다.

굳이 무림처럼 검결의 종류를 따지자면 중검에 가까운 그런 검을 구사했다.

중검의 특성상 케이슨의 검로는 하나하나가 간결하고 직선적이었다. 하지만 검이 상당히 무거웠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검로를 알면서도 버거워할 그런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케이슨은 중검을 쓰면서도 몸놀림은 날렵했고, 검 하나하나가 매서웠다.

‘분명 홀로 익힌 검술은 아니야. 그런데 아쉽군.’

생각보다 기반이 탄탄한 검술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 기반 위에 세워진 검술은 생각보다 허술한 면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마 제대로 된 기초 검술 위에 실전을 거치며 무작위로 검술을 변형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때문일까, 보이지 않아야 할 허점까지 간간히 노출되는 경우가 제법 많았던 것이다.

‘이래서 명문을 따지는 것인가?’

마현은 오늘 아침 검을 맞댄 하야스 후작의 검과 비교하며 케이슨을 유심히 살폈다.

하야스 후작은 검의 명가답게 그의 검은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또한 단순하지만 거기에 어울리는 보법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가문 자체적으로 갈고 닦고 보완을 거친 산물이었으리라.

케이슨의 검에서는 오랜 연륜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역시나 안 되는군.”

그때 케이슨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마음까지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뒤로 물러났지만 케이슨의 눈빛은 더욱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시 가겠네.”

케이슨의 몸에서 마나가 풀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형화된 마나가 검으로 스며들었고, 그의 바스타드소드에 푸르른 마나가 솟아났다.

아지랑이처럼 풀풀 흩날리는 마나.

투박하다 못해 거칠고, 혹평을 하자면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파밧!

하지만 마나로 인해 케이슨의 몸은 전보다 더 날렵해졌다.

쿠후우웅!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음도 더 무거워졌다.

마현도 롱소드에 하르센 대륙에서는 마나 소드라고 불리는 검기를 검에 담았다. 하지만 마현의 검기는 푸른빛이 아닌 묵빛이었다.

쾅!

쇳소리가 아닌 폭음이 두 검 사이에서 터졌다.

‘생각보다 심각하군.’

케이슨의 검기를 받아본 후의 느낌이었다.

마나의 낭비가 너무 심했다.

더욱이 마나, 즉 기에 대한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단 한 수 부딪힘으로 인해 상당한 양의 마나가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검기가 검강으로 가는 중간단계라고는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경지였다. 그렇기에 정형화시키고 엄격하게 기의 수발을 곁들여야 한다.

하지만 케이슨만 그러는지 아니면 하르센 대륙의 소드 익스퍼트들이 다 그러는지 모르지만 현재 케이슨은 그저 마나를 바스타드소드를 통해 뿜어내는 정도였던 것이다.

“헉헉헉.”

역시나 케이슨은 몇 수 나누자 곧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었기에 마현은 뒤로 물러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후우. 역시 소드 마스터는 다르구먼.”

케이슨은 바스타드소드를 착검하며 얼굴에 주르르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았다.

“다음은…….”

마현은 케이슨 옆에 서 있던 제이든에게로 향했다.

“제이든.”

“저번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이든은 상당히 긴장한 얼굴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그때였다.

웬 사내가 단원들의 가장 끄트머리, 즉 야솝 옆에 슬그머니 서는 것이었다. 그 사내는 바로 하야스 후작의 차남인 아이작이었다.

“누구……세요?”

당연히 야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자연스레 단원들의 시선이 아이작에게로 쏠렸다.

“에…….”

아이작이 뺨을 손가락을 긁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요?”

케이슨이 아이작 앞으로 걸어갔다.

“에…….”

아이작은 다시 한 번 말끝을 흐리다가 무작정 케이슨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저를 용병기사단에 넣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당연히 케이슨의 눈동자가 커졌고, 더불어 다른 이들의 눈동자도 커졌다.

“지금 뭐하는 수작이야?”

성격이 급한 제이든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아이작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하, 하하하. 역시나 ……말이 안 되는 거겠죠?”

아이작은 어색한 웃음을 남발하며 케이슨의 손을 놓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만 들어 케이슨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떴다.

아이작은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깐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케이슨도 이 황당한 제안에 달리 어떤 대답을 미처 내놓지 못했다.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휴우.”

아이작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 못 들어가면 저 아버지 손에 죽습니다. 그러니…….”

아이작은 케이슨의 바짓가랑이를 와락 잡아당기며 매달렸다.

“그러니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못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장, 미친놈 상대하지 말고 쫓아 보내십시오.”

제이든이 성큼성큼 다가가 아이작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았다.

그러자 아이작의 능글맞던 표정이 찰나지만 싸늘하게 바뀌며 그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리고 제이든의 신형이 허공에서 바람개비처럼 돌았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미약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컥!”

어느새 아이작이 바닥에 쓰러진 제이든의 팔을 비틀고 서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괴짜라는 단어를 써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작은 고통에 눈살을 잔뜩 찌푸리는 제이든을 향해 싱긋 웃음을 날리며 그의 손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케이슨을 보며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때였다.

쐐애애액!

한 줄기 검광이 아이작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허억!”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 아이작은 뒤로 물러나며 재빨리 바스타드소드를 빼들어 날아오는 롱소드를 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