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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53화 (253/351)

# 253

2화

일종의 음공으로 브루넬로 왕국 기사단의 발을 묶은 마현은 롱소드를 그들을 향해 내밀었다. 그리고는 모든 마력을 롱소드에 밀어 넣었다.

쩌저적!

그러자 롱소드의 검면에 잘잘한 금이 만들어졌다.

콰과광!

그리고 롱소드의 검날이 폭발했다.

수십, 수백의 파편으로 부서진 롱소드의 검날은 암기가 되어 브루넬로 왕국 기사단을 덮쳤다.

푹 푹 푹 푹 푹!

마나를 가득 담은 롱소드의 파편은 기사와 말을 가릴 것 없이 모조리 꿰뚫고 지나갔다.

“으아아악!”

“크아악!”

족히 삼사십 기는 되어 보이는 브루넬로 왕국 기사들이 피를 뿌리며 말과 뒤엉켜 쓰러졌다. 마현의 단 한 수에 브루넬로 왕국 기사단 중앙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브루넬로 왕국 기사단 놈들을 죽여라! 차지!”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

동시에 몬테팔코 왕국 기사단이 마현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일시에 전열이 무너진 브루넬로 왕국 기사단을 덮쳤다.

마현은 그 모습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뒤돌아섰다.

케이슨 용병대의 대원들은 먼지가 입에 들어가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마현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고개를 조금 더 위로 올렸다.

푸르르르!

한 마리 군마가 거친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햇살이 미끄러질 듯 은빛 광채로 화려하게 빛나는 갑옷을 입고 서 있는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투구의 붉은 수실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그는 바로 기사단장이었다.

마현은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기사단장도 마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짧은 시선이 오갔다.

그 후 기사단장은 전장을 잠시 살피는가 싶더니 다시 마현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촤르륵!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투구가 사라졌다.

분명 벗은 것도 아닌데 마치 갑옷에 흡수되듯이 사라진 것이다.

‘마법무구?’

호기심이 일 법도 했지만 마현은 그런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바로 자신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기사단장의 시선 때문이었다.

투구가 사라지자 관록이 묻어나는 주름에 매서운 눈빛을 가진 오십 대의 장년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대는 누군가?”

나직하면서도 굵은 그의 목소리에 마현은 피식 웃음을 토해내며 검자루밖에 남지 않은 롱소드를 바닥에 버렸다.

“카칸.”

장년의 기사단장은 마현의 몸을 슬쩍 훑은 뒤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머리를 다시 은빛 철이 에워싸며 투구를 만들어냈다.

그 기사단장은 검을 뽑으며 말고삐를 당겼다.

푸히이이잉!

그리고는 몬테팔코 왕국 기사단과 브루넬로 왕국 기사단이 엉켜있는 전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갔다.

* * *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마현의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로써 그들이 있는 카스텔로 연방국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입성하게 되겠군.’

애초의 계획이 틀어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급히 변경한 것이 하나의 기회가 되어 찾아온 것이다.

그때 주위가 조금 소란스러워지며 마현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조용히 눈을 떴다.

밀러도 그 소란을 들은 것인지 마현과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군막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가 케이슨 용병대의 군막이 맞나?”

갑옷을 입은 기사 둘이 용병대 군막 안으로 들어오며 얼굴을 대놓고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기사님.”

그들이 들어서자 군막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야솝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카칸이 누구지?”

그 질문에 군막 안에 있던 용병들의 시선이 마현에게로 모아졌다.

“그대가 카칸인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마현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마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사 바로 앞에 섰다.

“뭐, 뭐냐?”

기사는 당황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뭐?”

마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차가웠다.

“그대가 카칸이 맞나 물었……다.”

마현은 미간을 좁히며 한 걸음 다시 다가섰다.

“뭐?”

“그, 그대가 카칸이 맞, 맞나 물었소.”

기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더듬었다.

“뭐?”

그의 말투가 바뀐 것처럼 마현의 기세도 바뀌었다. 마현의 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기사의 몸을 에워싼 것이다.

“그, 그대가 카칸이 맞나 무, 물었소이다.”

마현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과 동시에 기세에 살기가 담겼다. 그 살기에 기사의 턱이 가늘게 떨렸다.

“카, 카칸 님이십니까?”

기사는 목을 옥죄어오는 살기에 진처리를 치며 겨우 목소리를 내뱉었다.

마현은 천천히 손을 뻗어 기사의 뒷목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기사의 자존심이라 이건가? 하지만 자존심은 너의 알량한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다.”

“아, 알겠습……, 명심하겠습니다.”

섬뜩한 마현의 눈동자를 직시한 기사는 금세 말을 바꿨다.

“커헉!”

마현이 기세를 거둬들이자 기사가 급히 숨을 터트렸다. 마현은 그런 기사에게서 시선을 돌려 군막 입구에 서 있던 다른 기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기사는 급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무슨 일이지?”

“왕국 중앙사령부 부사령관이신 하야스 후작 각하께서 카칸 님을 뵙고자 합니다.”

“하야스 후작이라…….”

마현은 전장에서 투구를 벗던 장년의 기사단장을 떠올렸다. 알고 보니 그는 일개 기사단장이 아니라 중앙사령부의 부사령관인 모양이었다.

“높으신 분이 찾는데 가봐야겠지.”

마현은 고개를 돌려 군막 안에 있는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다 같이 가시죠.”

케이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현은 고개를 돌려 눈을 한껏 치켜뜬 밀러를 보며 미소를 살짝 지어 보였다.

* * *

철컹 철컹 철컹.

기사들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거운 쇳소리가 들렸다. 그들 뒤를 따라가는 케이슨과 밀러의 마음은 그 쇳소리보다 더 무거웠다.

밀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케이슨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나 생각했던 것처럼 케이슨의 얼굴도 상당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앞에 기사들이 동행하고 있어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군막을 나서기 전 케이슨이 마현에게 다녀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말이 떠올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마음이 이처럼 무거운데 케이슨은 오죽하겠는가?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마현을 쳐다보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기사들을 따라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밀러는 마현의 진정한 정체를 케이슨에게 먼저 밝히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다. 뒤늦게 후회를 해봐야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마현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아내고, 케이슨과도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밀러는 마현의 곁으로 다가섰다.

“……저기, 카칸…….”

막상 마현 옆에 서자 밀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해 보이십니다.”

마현이 정곡을 찔러오자 밀러는 어색한 웃음을 절로 내비쳤다.

“그냥 전처럼 편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피해 갈 일도 아니고 피해 가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밀러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편히 하겠네.”

마현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밀러는 좀 더 차분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도대체 이러는 꿍꿍이가 뭔가?”

마음을 다잡은 탓인지 밀러의 목소리는 많이 침착해져 있었다. 하지만 불편함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 질문에 마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마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묵묵히 걷고 있는 케이슨을 잠시 쳐다보았다.

마현은 오늘 오후에 있었던 전장을 떠올렸다.

용병은 용병이다.

그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그런데 케이슨과 그를 따르는 대원들은 다른 선택, 곧 동료의 생명을 우선시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더 강한 용병대이다.

비록 겉으로 보이는 건 어쩔지 몰라도, 적어도 마현이 보기에 이들은 한 마디로 멋진 사람들이었다.

“글쎄요……, 가능하면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졌다고나 할까요?”

“자, 자네……. 그렇다면 설마?”

밀러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마현은 그런 밀러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밀러 님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제 바람일 뿐입니다. 인연이 안 된다면 아쉽지만 그만인 거 아니겠습니까?”

밀러의 머리는 갑자기 두통이 찾아온 듯 아파졌다. 실제로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복잡한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고 느끼는 것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 이십 대의 청년.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밀러에게 있어, 지금으로선 그 어떤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이가 바로 마현이었다.

지금 모습을 보면 한없이 부드럽고 정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가슴도 넓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전장에서 보여준 행동들은 이기적이고, 차갑고, 거기다가 음침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자네가 원하는 게 뭔지 물어봐도 되겠나?”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아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만…….”

마현은 고개를 돌려 케이슨을 슬쩍 쳐다보았다.

“일단은 용병왕이 떠오르는군요.”

“요, 용병왕?”

밀러의 머릿속은 하얗게 물들었다.

“제 사람이 된다면…….”

그렇기에 마현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정규병들의 군막을 지났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자 그 크기부터 차이가 나는 화려한 군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들은 마현과 그 일행을 그중 가장 화려한 군막으로 안내했다.

“이곳입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자 군막을 지키고 서 있던 기사 하나가 공손한 어투로 말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휘장을 살짝 열어 주었다.

“감사하오.”

마현의 반존대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는 절도 있게 목례를 취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데리러 온 기사와 군막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기사들의 갑옷이 살짝 달랐다. 특히나 군막 앞에 서 있는 기사의 경우 오른쪽 가슴에 양각되어 있는 한 마리 백마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때의 기사단인 모양이군.’

마현은 기사의 절도 있는 모습에 그리 짐작하며 몸을 틀었다.

“들어가시지요, 대장. 밀러 님.”

묵묵히 뒤따라왔던 케이슨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케이슨은 마현을 꽤나 오랫동안 직시했다.

“이건 아니네. 혼자 들어가게.”

케이슨이 오는 동안 처음으로 입을 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군막으로 가 있겠네. 오면 나랑 이야기를 좀 하세.”

그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렇게 멀어지는 케이슨과 마현을 번갈아보던 밀러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후에 보세.”

밀러도 뚜벅뚜벅 앞서 걸어가고 있는 케이슨을 서둘러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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