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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50화 (250/351)

# 250

25화

“자네는 알고 있었네.”

“무얼 말입니까?”

“왜 우리 용병대인가?”

심각한 밀러의 물음에 마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누구고 무슨 의도로 우리 용병대에 들어온 것인가? 아니 기억을 잃기는 한 겐가?”

“궁금하신 게 많아 보이는군요.”

“솔직히 그렇네.”

“또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아침에는 너무 기쁜 나머지 아무 생각도 못했지만 나에게 가르쳐준 플라이 마법 공식이며, 조금 전 보여준 무위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네.”

“흠…….”

“왜 자네를 구했는지 후회가 크게 드네.”

“그래서 플라이 마법을 얻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말끝을 흐리는 밀러에게서 시선을 뗀 마현은 뒷짐을 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이름은 카칸, 본명 맞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건 아니지만 잃은 거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리고 왜 케이슨 용병대냐고 물으셨습니까?”

마현의 질문에 밀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죽기 일보직전에 밀러 님 덕분에 살아났지요. 그건 현재 제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마현은 고개를 내려 다시 밀러를 쳐다보았다.

“비빌 언덕?”

밀러의 반문에 마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할 동료를 구한다면 굳이 그 방법이 아니였어도 되지 않은가? 마음만 진실하다면 케이슨 대장이 흔쾌히 용병대에 넣어주었을 것일세.”

마현은 웃음기를 얼굴에서 지웠다.

“저는 동료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 밀러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풍겨지는 위압감은 쉽사리 범접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위에서,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위엄, 바로 그것이었다.

밀러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우, 우리 용병대를 흡수할 생각인가?”

밀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그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마현의 몸에서 풍겨지던 위압감이 한순간 사라졌다. 위엄이란 것은 어찌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마현은 그 위엄조차 마음대로 뿜어내고 거둘 줄 아는 이였다.

밀러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리는 것은 당연지사.

“밀러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자, 자네의 지, 진정한 정체가 뭔가?”

밀러는 목소리를 쥐어짜내듯 물었다.

“제 사람이 되면 알려드리죠.”

“왜 이런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는 겐가? 내가 이 모든 사실을 용병대에 알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겐가?”

“어쩐지 밀러 님은 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밀러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지자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마현을 쳐다보았다.

“안 가십니까?”

“가, 가야지.”

밀러는 침중한 얼굴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용병 진영에서 조금 떨어져 후방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조금 이질적인 천막들이 쳐져 있는 곳이 나타났다. 바로 용병들을 따라 전장까지 온 상인들의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 * *

“정말 이걸로 되겠는가?”

진심으로 걱정이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3시간 만이다.

군영 후방에 위치한 상점가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침묵이 드디어 깨졌다. 그들은 그동안 줄곧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밀러는 마현이 입고 있는 옷과 허리에 찬 허름한 롱소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현의 옷차림은 조금 특이했다.

특히 항상 싸움터를 끼고 사는 용병들이 입는 옷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이 입는 옷을 약간 수선해서 입은 것이니 아예 낯선 것도 아니었다.

마현의 체격보다 한두 치수 정도 큰, 헐렁한 상의와 하의.

거기에 반해 두꺼운 가죽으로 헐렁이는 소매를 단단히 감쌌으며, 펄럭이는 바짓단을 마치 각반처럼 가죽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 두터운 허리띠를 둘렀다.

그게 끝이었다.

용병들이 흔히 입는 약식 갑옷이나, 이런 전장에서 필수로 입어야하는 경갑옷도 입지 않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무기라고는 그의 허리에 달린 롱소드 한 자루가 다였다. 용병들 중에는 방패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중병기를 들고 다니는 이들에 한해서지 이처럼 달랑 롱소드 한 자루만 들고 전장에 참여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밀러의 시선을 느낀 마현은 고개를 살짝 내려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최대한 무복의 형식에 맞춰 옷을 입었다.

근 5년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마현은 무복에 길들여진 모양이다. 이곳 용병들이나 기사들이 입는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이 상당히 불편했던 것이다.

거기에 무기점에서 산 가장 싼 롱소드 한 자루가 다였다.

무림에서 가장 익숙한, 그리고 마현이 허진에게 천수마라검을 전수받을 때 손에 쥐었던 장검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롱소드였다.

물론 마현은 어떤 롱소드가 있어도 문제없을 정도로 무로 일가를 이루지는 못했다. 무공을 배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림인을 상대하고 마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차선책 정도였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현재 마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어느 것도 아닌 명검이었다. 특히나 강력한 내공을 이겨내고 효율적으로 뿜어낼 수 있는 그런 명검.

하지만 그런 명검이 이런 곳에서 팔 리도 없거니와 판다 해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마현은 일단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싼 롱소드를 산 것이다. 어차피 앞으로 써야 할 검은 전장에서 구하면 될 테니까.

어찌되었든 마현으로선 현재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 놓았지만, 밀러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걱정을 해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마현의 목소리에 밀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네, 모르겠어.”

밀러는 마법사다.

마법사지만 오랜 시간 용병으로 살아온 이였다. 그렇기에 언제나 판단은 빨랐다. 그리고 그 판단이 잘못되었어도 한 번 결정한 건 그대로 시행하는 이였다.

그런 밀러였으니 마현에 대해 이미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런데 밀러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

지독하게 음습한 자, 그러면서도 왠지 따뜻함과 진심이 느껴지는 자, 거기에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위엄까지.

이런 느낌은 밀러로선 평생 처음이었다.

* * *

마현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대지 끝에는 긴 띠를 이루고 있는 병사들이 지평선 끝까지 가득 채우고 서 있었다.

느껴진다.

적을 향한 살기.

울렁거리는 긴장감.

끓어오르는 투기.

눅눅한 전장의 열기.

“흐읍!”

마현은 눈을 감으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숨결에 가득 담겼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돌아왔다.

전장으로…….

피가 끊었다.

펄펄 끓어오르는 피가 느껴진다.

“후우.”

폐부에서 한 바퀴 돈 뜨거운 숨은 더욱 뜨겁게 데워져 코와 입을 통해 흘러나갔다.

마현은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번쩍!

강렬한 안광이 마현의 눈동자에서 한순간 폭사되었다가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마현의 그런 눈빛을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단 한 명은 예외였다.

밀러는 그 눈빛을 보았다.

‘도대체…….’

밀러는 마현의 힘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본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제와 어제, 마현은 검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에 숨어서 연습을 하지도 않았다. 이틀 동안 한 번도 자신의 눈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으니까.

마현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군막 안 그의 야전침상에서 요상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게 다였다. 심지어는 모두가 자는 시간에도 그렇게 있었다.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꼭 자신과 같은 마법사들이 하는 명상의 일종으로 보였다.

그러니 마현의 온전한 힘을 엿보지 못한 것은 자명한 일.

밀러는 자연스레 마현이 제이든을 눈 깜짝할 사이에 찍어 누르던 장면을 떠올렸다.

‘단지 그 정도가 그의 모든 힘은 아닐 게야.’

밀러는 마현의 몸에서 풍겨진 자연스런 기도를 떠올렸다. 단숨에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고, 식은땀으로 등을 축축하게 만들 정도의 그 무서운 위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밀러 님.”

케이슨이 주위의 공기가 바뀌었음을 주지시켰다.

밀러는 마현을 힐끔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마현의 얼굴에서 창백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상이 온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정도다.

물론 무공이 그렇다는 거지 마법을 당장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서클이 아직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완벽히 다스려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카칸.”

마현은 케이슨의 목소리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

케이슨은 담담한 마현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마현은 케이슨의 말에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살짝 지었을 뿐이다.

“그나저나 정말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마현은 케이슨과의 독대에서 앞으로의 전쟁이 개시되면 홀로 움직일 것이라 이야기했다. 마현이 이들을 살폈을 때 개개인의 실력도 월등했지만 차륜 형식의 집단전은 이미 거의 완벽했다.

거기에 마현 자신이 끼어들면 오히려 손발이 어지러워져 큰 약점을 들어낼 것이 분명했다.

한편 케이슨은 무리를 해서라도 마현을 용병대의 전력에 포함시킬 생각이었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이제 마현은 자신이 지켜야 할 부하 용병인 까닭이었다.

그런데 마현이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접게 만든 것이 밀러다. 밀러는 단지 마현을 경계하는 마음에서 조언한 것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케이슨은 평소처럼 그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장에 참가하니 후회가 생겼다.

이처럼 집단끼리 맞붙는 전장에서 홀로 움직인다는 건, 거의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가능하면 떨어지지 말게.”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

지금으로서는 그 말만이 최선이었다.

마현은 잠시 케이슨 용병대원들을 훑어보았다.

마치 화살 형상처럼 케이슨이 가장 선두에 섰고, 그의 양 옆으로 제이든과 그레오가 서 있었다. 그리고 케이슨의 뒤로 자브라와 밀러, 그리고 요셉이 일자로 서 있었다.

딱히 차륜진이나 합격진이 없는 하르센 대륙에서도 특이하게 이들은 저마다의 특성을 살려 하나의 합진 형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마현이 보기에도 딱 이상적인 합진 형세였다.

가장 실력이 좋은 케이슨이 선두에 서고 측면은 제이든과 그레오가 맡으며, 요셉이 후미를 맡는다. 거기에 자브라가 밀러를 이중으로 경호하는 형식이었다.

‘아마도 오랜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그만큼 능력들도 있다는 뜻이겠고.’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둥둥둥둥둥―

대지를 뒤흔들며 심장을 거세게 뛰게 하는 북소리가 울렸다.

뿌우웅―

고동나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

귀가 먹먹할 정도로 함성이 터져 나오며 용병들 앞에 서 있던 농노병들이 있으나마나한 창을 들고 먼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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