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49화 (249/351)

# 249

24화

‘스승님…….’

마현은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진을 떠올린 마현은 가부좌를 틀고 일어났다. 현재 나무 꼭대기에 서 있었기에 큰절을 올릴 수 없어 허리를 깊게 숙이는 걸로 구배지례의 예를 대신했다.

* * *

마현이 다시 케이슨 용병대의 군막이 있는 진영으로 돌아온 것은 대략 3시간이 지나서였다. 이미 아침식사 시간이 지난 까닭에 많은 용병들이 분주하게, 혹은 여유롭게 군막 사이를 지나다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마현의 몸은 하늘을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했다. 내상이 아직까지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아 창백함이 조금 남아 있지만, 홍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더욱이 꽉 막히고 꼬였던 기혈이 뚫린 후라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군막으로 걸어가는 힘찬 발걸음에서 더는 병자의 느낌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검 한 자루부터 구해야겠군. 후에 시간이 되면 섭선 하나도 만들어야겠어. 이왕이면 어둠처럼 검은 흑선으로 말이야.’

허진의 실질적인 독문무공은 천수마라검이었지만 그의 상징은 섭선인 까닭이었다.

그렇게 케이슨 용병대의 군막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우르르 모여 있는 용병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현은 맞은편에 서 있던 야솝과 눈이 마주쳤다.

“어? 대장님. 카칸이 왔는데요.”

야솝의 말에 용병대원이 고개를 돌려 일제히 마현을 바라보았다.

“너 이 새끼!”

마현을 본 제이든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달려왔다. 그리고는 마현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마현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며 오른손을 들어 뻗어오는 제이든의 오른팔을 뱀처럼 휘감았다. 그런 후 섬전처럼 빠르게 제이든의 손목을 잡은 후 밑으로 잡아당기며 발로 그의 발목을 후려쳤다.

“어?”

그러자 제이든의 몸은 흡사 바람개비처럼 그 자리에서 팽그르 돌아 땅바닥을 등으로 찧었다.

쿵!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크윽!”

상당한 충격이 있었던지 제이든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지만 그것도 잠시, 아래로 내려다보는 마현의 무표정한 얼굴을 노려보고선 재빨리 몸을 굴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

그리고는 서슴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제, 제이든!”

제이든이 검까지 뽑자 밀러가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케이슨이 조용히 손을 들어 저지했다.

“죽여 버리겠어!”

제이든은 살기를 풀풀 풍기며 마현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노련한 B급 용병답게 그의 몸은 날렵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병들 사이에서의 수준이었고, 하르센 대륙 수준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중원 무림의 검은 이보다 더 무섭고 빨랐다.

그런 마현에게 있어 제이든의 검은 어린아이의 장난이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쐐애애액!

날카롭게 가슴을 쓸어오는 제이든의 검을 보며 마현은 왼쪽으로 반걸음 내딛으며 몸을 살짝 기울였다.

사삭!

제이든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마현의 옆을 훑고 내려갔다. 마현이 운 좋게 피했다고 생각한 제이든은 재빨리 검을 당겨 허리를 베려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마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컥!”

동시에 옆구리에서 화끈거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얼마나 충격이 강했던지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몸은 의지를 벗어나 아래로 허물어졌다.

“큭!”

무릎이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가슴에서 다시 한 번 강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하늘과 그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마현이었다.

마현은 바닥에 쓰러진 제이든의 가슴을 왼발로 지그시 밟았다. 그리고 그 사이 제이든의 검을 빼앗아 목에 겨눴다.

“카, 카칸!”

밀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든이라고 했던가?”

그 고통 속에서도 제이든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런 제이든을 보며 마현은 피식 웃으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아래로 내리꽂았다.

‘죽는 건가? 이렇게?’

제이든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쿵!

이어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시 한 번 더 내게 검을 겨누면 그땐 넌 죽어.”

마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지 않은 것이다.

제이든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에 땅 속에 깊이 박혀 검신을 부르르 떨어대고 있는 자신의 검이 보였다.

이 모든 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케이슨.”

그 모습에 자브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케이슨을 불렀다. 하지만 케이슨은 그녀의 부름에 대답하지 못했다. 케이슨의 눈도 놀라움에 살짝 커져 있었다.

“후와, 정말 D급 용병 맞아? 대장도 저렇게까지는 못하잖아.”

그레오 역시 입을 쩍 벌렸다.

“밀러 님, 무슨 일입니까?”

카칸은 밀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

하지만 밀러는 눈만 끔뻑이며 마현을 쳐다볼 뿐이었다.

“밀러 님?”

“아! 미, 미안하네.”

마현이 재차 그를 부르자 밀러는 정신을 차리며 사과했다.

“용병길드에서 자네 용병패가 나왔는데…….”

밀러는 말꼬리를 흐리며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 용병대에서 가장 연장자라고는 하지만 대장은 케이슨인 까닭이었다.

“용병패가 나왔습니까?”

마현은 왜 제이든이 자신에게 화를 내며 달려들었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모른 척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굳은 얼굴을 한 케이슨이 손에 들고 있던 철로 만들어진 용병패를 마현에게 내밀었다. 마현은 그 용병패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케이슨이 꽉 움켜잡고 있었기에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D급 용병이오?”

“갓 용병이 되었으니 D급인 게 당연한 거 아니오?”

“그 실력이면 굳이 적국으로 넘어와 용병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렇소? 그런데 기억이 없으니 그 물음에 대답을 못해 유감이오.”

마현은 케이슨이 잡고 있던 용병패를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케이슨 용병대?”

마현은 용병패 뒷면에 적혀 있는 소속을 들으라는 듯 읽었다.

“그래서 저자가 나에게 달려든 것이오?”

마현은 고개를 돌려 야솝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고 있는 제이든을 잠시 쳐다보며 물었다.

“몰랐소?”

“몰랐소.”

“일단 이럴 것이 아니라 다들 좀 앉읍시다.”

밀러는 케이슨과 마현을 모닥불 자리로 데려가 앉히며 다른 이들에게도 앉으라고 눈치를 줬다.

마현은 다들 자리에 앉자 먼저 입을 열었다.

“원하면 용병대에서 나가겠소.”

“끄응.”

마현의 말에 케이슨은 앓는 소리를 머금었다.

“당신은 우리 용병대에서 탈퇴할 수 없어요.”

자브라가 마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평소라면 가능하겠지만 여기는 전장이에요. 중한 사안이 아니라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임의로 용병대를 옮길 수 없어요. 모르셨나요?”

“몰랐소.”

마현은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모른다고 하면 다야?”

제이든이 발끈했다.

하지만 마현에게 당한 기억이 선명했던지 더 이상 발끈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마현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밀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케이슨이 나서서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상황이 변할 수 없다는 걸 밀러는 알고 있었다.

“다들 의미 없는 감정 소모는 하지 말도록 하세나.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밀러는 그렇게 말하며 다들 다독거렸다.

“그렇군요.”

케이슨도 밀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서로 득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자네도 그게 좋지 않은가?”

밀러는 용병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마지막으로 마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밀러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머리를 드는 마현을 보더니 한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밀러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보았다.

웃고 있는 마현의 웃음을.

마현은 분명 알고 있었다.

케이슨 용병대에 자신이 들어올 것임을, 그리고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까지……. 그런 밀러의 기억 속에 마현이 한 번만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짝짝.

케이슨이 박수를 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가 케이슨을 쳐다보았지만 밀러는 마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배신감?

아니다.

겨우 이름만 아는데 배신당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밀러는 속으로 한숨을 삼켜야 했다.

“밀러 님?”

“미, 미안하네.”

밀러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케이슨을 쳐다보았다.

“모두 알다시피 엎질러진 물이다. 좋든 싫든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함께해야 한다.”

그리 말하며 케이슨은 마현을 쳐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당장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소.”

“이해합니다.”

마현은 편안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일종의 수습 기간으로 생각해주기 바라오.”

“일종의 수습 기간이라…….”

마현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참으로 균형이 잡힌 생각이었다.

“기한은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소규모 용병대라도 위계질서는 필요하니, 말은 놓겠네.”

마현은 그런 케이슨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취했다.

“흥!”

제이든은 그런 마현의 인사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제이든, 너무 그러지 말자고. 어차피 강한 이가 동료로 합류하면 살 확률도 커지잖아.”

그레오가 제이든의 어깨를 우왁스럽게 끌어안고는 장난스럽게 막 흔들었다.

“아이 씨, 이거 안 놔!”

제이든이 신경질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그레오는 그런 그를 양팔로 부둥켜안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마지못해 대답한 것이 역력했지만 어찌되었든 제이든의 대답을 들은 그레오는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마현에게 큼지막한 손을 들어올렸다.

“앞으로 잘 부탁하오.”

“휴우, 어쩔 수 없네요. 잘 부탁해요, 카칸.”

그레오의 인사에 자브라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야솝. 나이도 비슷한 거 같으니까 서로 말 놓고 지내…….”

야솝은 말을 하다 말고 냉기가 풀풀 풍기는 마현의 시선에 황급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말을 돌려버렸다.

“……면 안 되겠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찌되었든 용병대에 들어왔으니 해줄 건 해줘야겠지. 자브라.”

케이슨은 자브라를 불렀다.

“카칸과 함께 무구 상점에 가서 무장 좀 시켜.”

“케이슨 대장.”

그때 밀러가 끼어들었다.

“미안하네만 내가 가면 안 되겠나?”

“밀러 님이요?”

케이슨은 밀러와 마현을 잠시 번갈아보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하세요.”

케이슨의 허락이 떨어지자 밀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세나.”

“카칸.”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현을 케이슨이 불러 세웠다.

“다녀온 후 나를 좀 볼 수 있겠나?”

“그리하지요. 다녀오겠습니다.”

마현은 밀러를 따라 진영 후방으로 향했다.

용병들의 진지를 벗어나자 밀러가 조용히 마현을 불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음세.”

밀러는 자신을 쳐다보는 마현의 눈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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