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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47화 (247/351)

# 247

22화

‘이십 년이 흐른 건가? 여섯 늙은이들은 마탑을 세운 모양이고……. 결국 나를 시작으로 무자비한 탄압을 한 모양이군.’

마현은 끓어오르는 살심을 속으로 꾹꾹 눌렀다.

“백마법사요?”

“백마법사라…….”

마현의 질문에 밀러는 회한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굳이 말하자면 회색마법사라고 하면 되겠군.”

“……?”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세.”

그렇게 다시 어색한 분위기로 돌아섰을 때 케이슨의 명에 의해 용병길드로 갔던 제이든이 돌아왔다.

“카칸이란 이름이 있던가?”

케이슨의 말에 제이든이 묘하게 얼굴 한쪽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한 장의 종이를 케이슨에게로 넘겼다.

그 종이를 읽은 케이슨의 표정도 제이든이 지었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변했다.

“이거 참.”

“내 이름이 없소?”

마현의 물음에 케이슨은 그저 입맛만 다셨다.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말에 마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네를 데려온 날 전멸한 피숀 용병대가 있었다는군.”

“처음 듣는 용병대인데요?”

야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병대 내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다른 용병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훤히 알고 있었던 그였지만 피숀 용병대는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삼류 양아치들이 모여 만든 용병대다. 대장은 물론 길드원들까지 죄다 C급 아니면 D급.”

더 이상 말하면 입이 아프다는 듯 케이슨이 설명을 짧게 했다.

“그럼 못 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야솝은 케이슨의 설명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숀 용병대 중 K, K라는 자가 있다더군.”

케이슨은 고개를 들어 카칸을 쳐다보았다.

“카칸……, K, K.”

그레오가 말했다.

“처음 듣소. 그 이름.”

마현은 케이슨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어설프게 그 이름이 자신의 것이라 하지 않았다. 차라리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나머지는 저들이 끼워 맞출 것이다. 그들 스스로 끼워 맞춘다면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납득하기 때문이었다.

“끄응.”

케이슨은 앓는 소리를 내며 뺨을 긁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구요.”

자브라가 나섰다.

“카칸이란 이름, 사실 쓰기 좀 그렇지 않나요?”

조금 전 들은 이야기도 있었기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K, K로 줄이지 않았을까요?”

자브라는 고개를 돌려 마현을 쳐다보았다.

“왠지 수긍은 가지만……, 한편으로 억측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오.”

마현의 말에 자브라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자브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케이슨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리고 다른 이들이 케이슨을 쳐다봤지만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 피숀 용병대 소속 K, K가 있다고 그러던데……, 누구요?”

그때 풍채 좋은 이가 케이슨 용병대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마현에게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선에 마현은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 사람이 왜 이리 귀찮은 상황을 만드시오?”

“누구요?”

“보면 모르오? 몬테팔코 왕국 제8전선 임시길드 소속 행정관이오.”

그는 상당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 살아있으면 살아있다고 연락을 줘야 할 거 아니요? 이미 상부에 전사했다고 보고했단 말이오, 아시겠소? 당신 하나 때문에……. 에휴, 말을 말아야지.”

그가 왜 이처럼 퉁명스럽게 대하는지 마현은 그의 말을 통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브루넬로 왕국 출신, 이름은 K, K. 전 피숀 용병대 소속. 등급은 D급. 맞소?”

“그…….”

“전쟁에 계속 참가할 거요? 하긴 브루넬로 왕국 출신이니 농노 출신이겠군. 그렇다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여해야 안정된 용병의 지위를 몬테팔코 왕국에서 보장해줄 거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마현을 K, K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마현 뒤에 서 있는 케이슨 용병대원들을 쭉 훑어보다가 케이슨을 주시했다.

어느 정도 안면은 있었던지 가벼운 목례를 건넨 후 마현을 다시 쳐다보았다.

“하긴 피숀 용병대보다야 케이슨 용병대가 훨씬 낫지.”

그렇게 말하고는 들고 온 서류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케이슨 용병대, 자 여기에 서명하시오.”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며 사람 혼을 쏙 빼놓더니 마현 앞으로 냅다 서류를 내밀었다.

그가 내민 서류를 대충 살펴보니 생존을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케이슨 용병대로 편입이 주된 내용이었다.

‘케이슨 용병대라…….’

마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던가? 편한 사이는 되지 않겠지만 잠시나마 비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어느 정도 이들의 내력을 살핀 바 상당한 실력자들로 구성된 용병대라는 점이 한편으론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이름은 K, K에서 카칸으로 고치고 싶소만.”

“하긴,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이름이니 다시 쓰고 싶지 않겠지. 카칸이라고 했소?”

마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리해드리리다.”

“고맙소.”

마현은 모른 척 서류에 서명을 했다. 사실 케이슨 용병대 중 그 누구도 그때까지 마현이 무슨 서류에 서명을 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마현은 자신이 배정받은 야전침상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내상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흠…….’

내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족히 한 달 정도는 내상요법에 전념해야 완쾌가 될 정도였다. 단약이나 영약이 있으면 훨씬 빠르겠지만 하르센 대륙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나마 마현이 눈을 뜬 오늘을 포함해 삼 일 동안 잠시 휴전한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 뜻하지 않은 삼 일 동안의 휴전은 아마도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밀러의 말에 따르면 한창 접전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전장 한구석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고, 그 폭발로 인해 그 일대에 있던 수천의 병사와 용병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마현은 폭발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라고 했다. 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폭발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양국은 잠시 휴전에 들어갔다고 했다.

비록 삼 일을 벌었지만, 그 정도 시간으로 내상을 치유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더욱이 이미 하루가 지났고 다시 해가 뜨고 있으니 이틀 후에는 마현도 전장에 참여를 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전장에 나갔다가 혹여나 잠시 임시방편으로 악화를 막아둔 내상이 도진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용병 주제에 중상을 핑계로 전장에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론은 힐링 포션인데…….’

문제는 그의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마현은 밀러를 떠올렸다. 마법사이니 반드시 포션 한 병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에 빠져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놈 같군.’

일단 운기를 통해 급한 불을 끄고 눈을 뜬 마현의 입가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눈을 뜨니 예상대로 아침이었다.

군막 입구로 여명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군막 안도 제법 밝아져 있었다. 마현은 고개를 돌려 밀러의 침상을 쳐다보았다.

‘흠…….’

밀러는 자리에 없었다.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군막 밖으로 나갔다. 어제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진 터라 아침 공기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마현은 고개를 돌려 밀러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군막 옆 모닥불 자리에 밀러가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책을 보는 것으로 보아 마법서인 듯했다.

마현은 기척을 감추고 조용히 그의 뒤로 다가가 섰다.

가만히 그가 보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니 짐작대로 플라이 마법을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찜찜했는데 잘 되었군.’

“험험!”

마현은 슬쩍 웃음기를 머금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자 밀러는 화들짝 놀라며 책을 탁 덮었다.

“괜히 실례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현은 밀러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 아닐세. 안 그래도 그만 보려고 했었다네.”

벌겋게 충혈된 눈을 보니 아마도 밤을 지새운 모양이었다.

“성격상 이래저래 돌려 말하지 못합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힐링 포션을 하나 얻고 싶습니다.”

그 말에 밀러의 입이 쩍 벌어졌다.

힐링 포션이 어디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재료만 있다고 뚝딱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또한 어지간한 이들은 평생 가도 한 번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못 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커, 컥!”

밀러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레가 들린 모양이었다.

“이거 너무 황당한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보통 때라면 역정을 내며 매몰차게 일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해놓고 당당하게 쳐다보는 마현을 보자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힐링 포션이 어떤 건지는 아나?”

“압니다.”

“그렇다면 가격도 알겠군.”

“기억이 불완전해 정확한 시세는 알지 못하나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더욱 할 말이 없군.”

밀러는 황당해하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 다짜고짜 얻으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줄 것이 있는 듯하니 거래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거래?”

너무 황당해하던 밀러의 표정이 순간 살짝 바뀌었다.

“나이를 먹어 주책이 생겼나? 호기심이 동하는군.”

밀러는 ‘이거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일어서야 했지만 밀러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사람을 구한 것 자체도 모를 일이었다. 전장에서 제아무리 아군이라지만 안면 하나 없는 그를 구해온 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밀러는 도저히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호기심도 어제 그가 D급 용병임을 알았을 때 맥이 풀리며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말해보게.”

“플라이 마법.”

마현의 짧은 말에 밀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동시에 상당히 불쾌감이 담긴 눈동자로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을 하며 마현을 노려보다가 밀러는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났다.

“포션 하나에 플라이 마법이라면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의 등 뒤로 들려오는 마현의 목소리에 밀러의 몸이 딱 멈췄다. 솔직히 근 십여 년 이상 진저리가 날 만큼 답보상태인 게 그로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지푸라기로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잡으려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까? 밀러는 몸을 돌려 다시 앉았다.

“하아.”

마현을 다시 바라본 밀러는 회한이 담긴 헛바람을 내뱉었다.

“우습군, 우스워.”

밀러는 자조 섞인 웃음을 연신 내뱉었다.

그때 마현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나뭇가지를 가지고 바닥에 잔뜩 그려놓은 낙서를 무심결에 보았다. 순간 밀러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낙서처럼 막 휘갈긴 듯한 글씨는 바로 플라이 마법의 수식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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