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38화 (238/351)

# 238

13화

“시간이 다급하여 황망하게 알현하게 된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안 그래도 적적하던 차, 잘 되었다. 짐이랑 술 한 잔 나누자구나.”

황제는 자신이 마시던 술잔에 술을 채워 마현에게 내밀었다.

“그렇다면 한 잔만 받겠나이다.”

마현은 차마 거부할 수 없어 그 잔을 받아 비우고 공손하게 황제에게 술잔을 넘겼다.

“그대가 아무 이유 없이 짐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터.”

마현은 황제와 자신의 주위에 음파차단 마법을 펼친 후 입을 뗐다.

“폐하, 이번에 낙향한 금의군 중 오천여 명이 어제 무당파를 야습했었사옵니다.”

“모두 죽었느냐?”

“모두 생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이다.”

“나머지 오천여 명은 황사가 데리고 있겠구나.”

“현재 제갈세가 휘하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황사 하나로 이 나라가 망조의 길로 들어서려는 것인가?”

“송구하옵나이다!”

마현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대가 송구할 것이 뭐가 있다고…….”

“생포한 이들을 국법으로 다스리기 위해 당장 수도로 압송하고 싶으나, 아직 황사의 눈이 천하에 미치고 있어 잠시 유보해두었나이다.”

“황사의 무서움은 짐의 위에 있구나.”

황제는 탄식했다.

“당장 황사를 불러들여…….”

“폐하, 현재 황사는 대림학당에 머물고 있지 않사옵니다.”

“무, 무어라?”

노기로 인해 황제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 대림학당에는 황사가 있사오나, 그자는 황사가 아니옵니다.”

“허허허, 여전히 황사는 짐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음이야. 짐이 죽어 어찌 선왕들을 볼지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구나.”

황제는 시름 어린 목소리로 개탄했다.

“하여 더 이상 피해가 커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을까 하옵나이다. 다행히 황사의 은신처를 확보해 놓았나이다.”

“알았노라, 내 당장 금군을 이용해…….”

“폐하,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나이다.”

“……?”

“훗날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순리대로 무림에서 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기옵나이다.”

“결국 짐이 할 일은 없다는 소리더냐?”

황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무능함에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아니합니다. 일을 끝내는 것은 무림이오나 마무리는 폐하께서 하셔야 하옵니다. 그 일이 더 길고 어려운 행보가 될 것이옵나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짐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 보구나?”

“황사가 기거하는 곳이 중경이옵니다.”

“중경? 그곳에는…….”

“폐하께서도 아시는 바대로 무림맹 역시 중경에 있사옵고, 또한 오천여 명의 낙향한 금의군 병사들도 중경에 있사옵니다. 하여 이틀 후,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옵니다.”

“흠……, 큰 싸움이 일어나겠구나.”

“그렇기에 폐하께서 무고한 백성의 피해를 막아주십사 하고 이렇게 찾아뵌 것이옵니다.”

“짐이 아무리 무능하다고 해도 애꿎은 백성들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지. 그대가 머뭇거림 없이 말을 꺼낸 바로는 그 대책도 강구했을 터, 기탄없이 말해보라.”

“군사훈련을 이용하면 무고한 피해는 줄일 수 있을 거라 사료되옵나이다.”

“군사훈련이라…….”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틀이면 시간이 촉박하다.”

“삼 일, 그 이상은 무리옵나이다.”

“삼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 볼 수는 있겠군. 알았노라, 그 일은 짐이 어떻게 해서든 성사시키겠노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밖에 내관 있느냐?”

황제는 당장 큰 소리로 밖에 대기하고 있는 내관을 불렀다.

“그럼 신은 물러나겠나이다.”

마현은 음파차단 마법을 해제한 후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마교의 중심, 마주전.

쿵!

대전을 통하는 큰 문이 활짝 열렸다.

“소교주 듭시오!”

그 소리에 허진이 앉아 있는 태사의를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서 앉아 있던 마교의 수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현은 흑풍대주 왕귀진과 함께 그들이 만든 길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태사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녀왔습니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마현은 허리를 깊게 숙였고, 왕귀진은 오체투지로 허진을 알현했다.

“수고했구나. 힘든 상황에서 큰일을 해냈구나, 수고했느니라.”

“교인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교주님.”

마현은 묵묵히 허리를 다시 한 번 더 숙였고, 왕귀진은 더욱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소교주님. 수고하셨소, 흑풍대주.”

허진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는 군사 공효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마현은 왕귀진의 오른쪽 옆구리에 들린 목함을 받아들려다가 대장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남만야수궁과 북해빙궁의 두 궁주가 서 있음을 깨달았다.

“두 분도 여기 계셨군요.”

“덕분에 좋은 소식을 들었네.”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이 빈객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걸세.”

야율초재와 설관악이 옅은 웃음기를 머금었다.

“자자, 이럴 것이 아니라……. 너도 자리하거라.”

대전회의가 거의 끝이 난 참이었다.

하지만 마현이 도착했으니 대전회의는 이제 다시 시작이 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말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일단 허진이 마현을 자리에 앉히려 했다.

“대주.”

마현은 왕귀진의 손에서 목함을 받아들었다.

“그것이 무어냐?”

마현은 조용히 목함을 열었다.

싸한 비린내가 풍겼다.

“본교의 배신자이자 세작인 율기의 수급입니다, 스승님.”

마현은 목함 안에서 율기의 수급을 꺼내 대전 정중앙에 내려놓았다.

대전 안은 순식간에 적막감이 흘렀다.

“아울러 황사의 세 번째 제자입니다.”

마현은 허진을 올려다보았다.

허진은 마현이 할 말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마현은 몸을 돌려 대전에 모인 마교 수뇌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섭도록 무림을 혼란에 빠트린 이 계략은 대략 백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소.”

그 말에 대전에 모인 수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현은 율기에게서 얻은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풀어냈다.

“어찌 이토록 무림을 기만할 수 있는가!”

대장로 가릉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분노를 터트렸다.

“하여.”

마현은 몸을 돌려 허진을 올려다보았다.

“감히 소교주의 입장에서 교주님께 청을 올리겠습니다.”

마현은 호칭을 스승이 아닌 교주로 칭하며 허진 앞에 부복했다.

“본교의 더할 나위 없는 천세를 위해, 더욱 나아가 우리의 피와 땀과 혼이 담긴 이 땅, 무림을 위해……. 소신이 검을 뽑게 허락해 주십시오.”

마현의 낮지만 결코 작지 않은 목소리에 허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교의 교인들은 들으라!”

허진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마교는 언제나 피와 힘으로 대화하는 곳이다! 출정식을 준비하라!”

“명!”

“명!”

수뇌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짧지만 우렁찬 목소리로 복명했다.

“본 북해빙궁에서도 한 힘 돕겠소이다!”

“남만야수궁은 죽는 날까지 적과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소이다.”

설관악과 야율초재도 한 걸음 나서며 이 전쟁에 한 힘을 보탰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적막감이 흐르던 대전 안은 격한 기세가 끓어오르며 함성으로 가득 찼다.

* * *

징― 징― 징―!

묘시에 들어서며 새벽닭이 아침을 막 깨울 때쯤, 중경 거리 곳곳에서 징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래?”

사람들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관들이 저렇게 징을 치고 다닐 때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이유를 알아야 혹시나 모를 불이익을 조금이라도 피해갈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귀를 활짝 열었다.

“금일 진시 말(9시), 황제 폐하의 황명으로 중경에서 군사훈련이 있을 예정이니 다들 오늘 하루는 집에서 꼼짝 말고 나오지 마시오!”

“히익!”

사람들은 그 소리에 기겁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이들이야 어찌어찌 버틴다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황명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특히 이런 불만은 근근이 하루 벌어 먹고 살아가는 빈민촌에서 더했다.

황명이라 넙죽 엎드려도 모자랄 판에 이리 나선 이유는 그만큼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어렵다는 뜻.

“어허! 황명이라고 하지 않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같은 이들은 그냥 나가 죽으라는 소리처럼 들려서 그런 것 아니오?”

“넉넉하지는 않지만 내일 아침 구휼미가 풀린다고 하니 그냥 썩 들어가시오!”

“저, 정말이오?”

“이 작전 참가를 황제 폐하께서 직접 행하시는 거니 딴 말은 없을 것이외다! 그러니…….”

백성들의 반응이 많이 누그러들자, 군관은 이내 목소리를 낮게 깔며 엄포를 늘어놓았다.

“황제 폐하께서 친히 행하시는 훈련이니 목숨 줄 아까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하루 밖에 나오지들 마시오!”

“우리야 먹고 살게만 해준다면야 그깟 하루가 문제겠소?”

“혹여나 이 자리에 못들은 이들이 있다면 다들 꼭 알려주시오. 다시 말하지만 진시 말이오! 진시 말!”

군관들은 다시 한 번 엄포를 놓은 다음 이웃 마을로 이동했다.

이러한 사소한 시비는 어디 빈민촌뿐이겠는가?

돈 줄이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중경 관청으로 뛰어갔지만 돌아온 것은 매서운 엄포였다.

특히 황제가 직접 중경으로 온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무림맹에도 알려졌다.

“군사훈련이라니요?”

제갈묘는 자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본관도 너무 황망한 일인지라…….”

중경부 최고 관리인 지부 백이량도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백이량도 어제 저녁 이 사실을 파발을 통해 들은 터라 더 설명하고 싶어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백이량이 직접 찾아와 이런 정보까지 제갈묘에게 알려줄 의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제갈묘와 무림맹은 왕과 왕부가 아닌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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