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10화
펑! 콰광!
뒤늦게 진유림 검사들이 장력으로 땅을 내려치는 꼴이 되었다.
그 모습에 율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터졌다.
그런 율기의 눈에 마현의 입술 한 끝이 말려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 차가운 미소에 율기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사, 산개하라! 어서!”
율기는 버럭 소리쳤다.
명령은 빨랐지만 그에 응하는 진유림 검사들의 반응은 빠르지 못했다.
“으헉!”
그들이 밟고 서 있던 땅에서 검은 연기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해괴한 현상에 진유림 검사들은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건 공포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 검은 연기 속에서 강시들의 손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와 진유림 검사들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으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그르륵!
―끄륵, 끄르르!
괴이한 음성이 흘러나오며 땅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진유림 검사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하지만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검은 그림자들은 맨손으로 검을 잡더니 두 동강내며 자신들을 공격한 진유림 검사들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가, 강시들이…… 으아아아악!”
“크헉! 어, 어떻게? 부, 분명 회액의 향이…….”
진유림 검사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물든 눈동자를 하고서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산개하라! 산개하라!”
율기는 목이 쉬어라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그제야 진유림 검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을 가로막고 선 것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온몸을 검은색으로 도배한 해골들이었다.
자신들이 가져온 강시들보다 더 기괴하고 흉물스러운 다크 스켈레톤들의 모습에 진유림 검사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들은 무림인들이 아니라 평생 전장과 군부에서 몸을 담아온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통재불능이었다. 무림인이라면 어느 정도 침착하게 안정을 찾으며 강시들을 상대했겠지만 진유림 검사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꼬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꺄아아아아!
―캬캬캬캬캬!
흩어지려던 진유림 검사들을 에워싼 다크 스켈레톤들이 특유의 귀성을 터트렸다. 그런 귀성은 단숨에 무당파 내 전장을 뒤덮었다.
“헉!”
“헙!”
그러자 여기저기서 기겁성이 터져 나왔다.
그처럼 놀란 음성은 무당파 도인이나 개방도, 그리고 율기를 따라온 진유림 검사들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왔다.
어두컴컴한 밤.
기이한 불덩이가 내뿜는 빛.
그 아래 드러난 검은 해골들.
무당파 제자들이나 개방도는 사전에 듣고 숙지했음에도 기겁성을 터트릴 정도인데 그것을 모르는 진유림 검사들은 오죽하겠는가?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그곳이 전장이라는 것도 잊고 검을 멈출 정도였다. 그만큼 다크 스켈레톤들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갈!”
그때 걸왕의 창룡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전각마저 뒤흔들며 먼지를 토해내게 만들 정도로 전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개방도와 무당파 제자들은 다시 검을 들었다.
그들은 다시 처절한 피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흑사신, 가능하면 죽이지 말고 제압하라!』
거의 불가능한 명이었지만 흑사신들은 마현의 명을 일단 받아들였다.
마현은 신형을 날려 무당파 제자와 개방도, 그리고 4천 5백의 진유림 검사들이 뒤엉켜 있는 전장으로 향했다. 처절하고 치열한 전장의 흙바닥은 이미 피로 물든 지 오래였다. 또한 무당파 내원과 외원을 구분하는 담벼락도 대부분 허물어져 있었다.
그만큼 주검들도 많았다.
『제자들을 모두 물려주십시오!』
“무당파 제자들은 방진을 짜라!”
“개방도는 원진으로 적들을 에워싸라!”
마현의 매직마우스에 청명진인과 걸왕은 발 빠르게 명을 내렸다. 그러자 무당파 제자들은 재빨리 내원 무당파 장문인실 앞으로 모여 방진을 짰고, 개방도들은 내원 밖으로 물러나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벽과 전각들을 이용해 진유림 검사들을 에워쌌다.
『암사령, 진유림 검사들의 주검을 거두라!』
이번에는 땅에서 푸른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 연기를 본 진유림 검사들은 현재 다크 스켈레톤에게 둘러싸여 자신들이 가져온 강시들에게 공격당한 동료들처럼 될까 싶어 다들 검을 바닥으로 내렸다. 또다시 귀물들이 땅 속에서 올라올까 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스르륵!
주위에 널려 있던, 분명히 죽은 동료들의 주검이 푸른 연기를 흡수하며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렸다. 하지만 진유림 검사들은 오로지 땅에만 집중하고 있는 터라 그런 현상을 보지 못했다.
턱!
땅바닥을 주시하던 진유림 검사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진유림 검사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발목을 잡은 곳으로 검을 내리꽂았다.
푹!
검을 꽂은 후 상대를 찾으니 목이 반쯤 잘려나가 절명한 동료의 주검이 아닌가.
“젠장!”
진유림 검사는 검을 뽑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우연히 주검의 손에 다리가 휘감긴 것이라 생각했다. 진유림 검사는 찜찜한 마음을 애써 털어내려는 듯 다리를 흔들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동료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주검의 손은 쉽게 발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욕을 애써 삼키며 다시 한 번 다리를 털었다.
그때였다.
번쩍!
목이 반쯤 잘린 동료의 눈이 부릅떠진 것이다.
“흐억!”
목이 반쯤 잘려서 목이 돌아가지 않았던지 주검은 눈동자만 돌려 진유림 검사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분명 죽었는데!’
진유림 검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주검의 입이 벌어졌다.
―키키키키키!
귀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진유림 검사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이내 턱이 떨리며 이빨들이 마구 부딪혔다.
진유림 검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주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를 끌어안고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어느새 질퍽해진 피부와 그로 인해 느껴지는 악취…….
그렇게 몸부림치던 진유림 검사는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주검의 쩍 벌어진 입을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고통.
“으아아아악!”
진유림 검사는 목이 찢어져라 비명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잠시 후 진유림 검사의 몸이 축 처졌다.
죽은 것이다.
그렇게 죽은 진유림 검사가 얼마 후 다시 눈을 떴다.
―키키키키키!
그리고 귀성을 터트리며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다른 동료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광경은 치를 떨게 할 만큼 끔찍했다.
외부에서 지켜보던 개방도도, 안에서 방진을 구성한 채 바라보는 무당파 제자들도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고 오한이 들 정도이니, 직접 당하는 진유림 검사들은 오죽하겠는가?
그 주검들은 더욱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등을 맡겼던 동료가 아니던가? 몇몇은 차마 동료에게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모두들 정신 차리지 못할까? 귀물이다! 앞에 있는 것들은 동료가 아니라 그저 귀물일 따름이다!”
몇몇 천호장 출신의 수뇌들이 전장을 누비며 호통을 치고, 심지어는 본보기로 몇 사람의 목을 치기도 했다. 군율이 엄한 군부 출신이라서 그럴까. 진유림 검사들은 어느새 독기를 내비치며 서서히 전열을 갖춰나갔다.
제아무리 죽지 않는 구울들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제 형상을 가지고 있을 때의 말이다. 사방으로 날아드는 칼날에 몸이 걸레처럼 찢어지고 조각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겨우 몇 백의 주검으로 구울을 만들어 근 사천이나 되는 적을 상대하게 하니 그런 것이다. 그나마 구울의 몸에서 풍겨나는 시독으로 인해 어렵게 균형을 유지시켜 나갈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힘겨워 보였다.
가능하면 이들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압도적인 힘으로 굴복시켜야 하는데, 적들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평수 맞추기에도 버거웠다.
물론 개방도와 무당파 제자들을 다시 합류시키면 이 균형을 깨트릴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그들의 피를 보기는 싫었다.
고민하던 마현의 눈빛이 무섭도록 차가워졌다.
『이미 죽은 무당과 개방의 제자들도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죄가 된다면 후에 달게 받겠습니다!』
거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마현은 청명진인과 걸왕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암사령에게 명을 내렸다.
『그대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이곳에 있는 주검이란 주검은 모조리 깨우라! 최대한 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적들의 의지를 꺾으라!』
『명!』
『명!』
쿠웅!
진유림 검사들이 모여 있는 무당파 내원, 전장에서 흡사 귀신의 인광과도 같은 녹색 빛을 머금은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시커먼 몸에 녹색 불을 뒤집어쓴 암사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귀성을 흘리며 무당파와 개방의 주검들도 모조리 깨웠다.
마현 역시 모든 망자들을 깨워 사방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망자들에게 유형의 목소리를 줬다.
―으흐흐흐흐!
―이히히히히!
말 그대로 귀곡성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던 무당파의 정기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무덤가나 폐가에서나 느껴질 법한 음침한 기운들이 채워나갔다.
그렇게 무당파 내는 절로 오한이 느껴질 정도로 음산해졌다.
마현은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 망자들의 귀곡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렇게 되자 망자들의 울음은 생자의 혼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귀곡성은 다크 스켈레톤과 좀비, 그리고 구울에게 더욱 강한 힘으로 작용하자 전장의 분위기는 마현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물론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망자들의 귀곡성은 무당파 제자들과 개방도들까지 적잖게 흔들어놓았다.
무당파 제자들은 저마다 항마력이 담긴 도교 경전을 읊으며 귀곡성에 대항했고, 개방도는 더욱 거리를 두고 물러나 내력으로 심신을 보호했다.
마현은 한 폭의 아수라 지옥도를 만든 후 율기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흑사신 넷이 율기를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유림 검사들의 의지가 꺾이고 있었다.
이제 율기만 죽으며 이 싸움은 끝난다.
이들은 무림인이 아닌 군부 출신인 만큼 수장의 죽음은 곧 패배로 받아들이는 자들이었다.
『흑창, 흑검. 후미에 공간을 만들어라!』
마현의 명에 율기의 등 뒤에 있던 흑창과 흑검이 살짝 공간을 만들었다. 마현은 그곳으로 블링크를 이용해 순간이동했다.
율기의 바로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현은 그의 뒷목을 향해 섬전과도 같이 일수를 내뻗었다. 허진의 독문마공으로 잘 알려진 마라독혈수공의 한 수였다.
흑사 한 마리가 먹이를 재빨리 낚아채는 것처럼, 마현의 오른손이 괴이한 궤적을 만들며 율기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크어억!”
오로지 흑사신과의 싸움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던 율기는 그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현은 그런 율기의 등을 왼손으로 후려쳤다.
콰직!
“으아아악!”
마현은 단숨에 율기의 척추를 부숴 버렸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율기의 목을 그대로 꺾었다.
“컥!”
그 단발마를 끝으로 율기의 몸은 아래로 축 처졌다.
절명한 것이다.
마현은 율기의 시신을 번쩍 들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너희들의 적장이 죽었다!”
샤우트 마법이 깃든 함성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