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34화 (234/351)

# 234

9화

파이어 버스트가 폭발하자 청명진인과 걸왕이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를 맞춰 마현의 손에서 수십 개의 빛 무리가 만들어져 어둠을 가르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플래쉬 익스플로우젼(Flash explosion)!”

퍼벙, 퍼버버버벙!

빛 무리는 엄청난 섬광을 토해내며 일제히 폭발했다. 마치 태양 수십 개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처럼 한순간 무당파 내원은 낮보다 더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크악!”

“으악, 내 눈! 내 눈!”

갑작스럽게 일어난 엄청난 빛의 폭발에 내원으로 잠입하던 진유림 검사들은 하나같이 손으로 눈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그때 마현은 품에서 스무 장 가량의 종이 다발을 꺼내 들고는 한꺼번에 찢었다.

그건 라이트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었다.

스크롤이 찢어지자 이십여 개의 빛 무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내원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로 인해 무당파 내원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무당파 제자들은 암습한 자들을 제압하라!”

청명진인이 검을 뽑아들며 소리치자, 내원과 외원 곳곳에 은신하고 있던 무당파 제자들 중 태극제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진유림 검사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 태극제자들은 한점의 망설임 없이 진유림 검사들을 베었다.

“으아악!”

내원이 순식간에 비명과 피로 얼룩지기 시작하자 청명진인은 마현의 어깨를 한 번 짚은 뒤 전각 지붕에서 뛰어냈다.

“후우, 후우…….”

거친 숨결을 토해내는 마현의 곁으로 걸왕이 다가왔다.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도 전장이지만 지친 마현이 숨을 돌릴 수 있도록 호법을 서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플래쉬 익스플로우젼 마법, 즉 섬광탄 마법이 비교적 저서클 마법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발로 사용할 때의 말이다. 마현은 짧은 시간 동안 백여 발이 조금 못 미치는 수십 발의 섬광탄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제아무리 7서클의 마현이라고 해도 상당히 무리가 따랐다.

“호법 서주랴?”

걸왕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마현은 숨을 고르며 내력을 일주천시켜 일단 서클 단전을 어루만졌다. 그로 인해 마현의 숨은 다시 평온했고, 지쳤던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무당파 제자들이 일방적으로 진유림 검사들을 몰아붙이는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무당파 제자들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반 각의 시간 동안 제법 많은 진유림 검사들을 제압했지만, 무당파를 공격한 진유림 검사들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전세를 장악할 만큼 그다지 큰 충격을 주지는 못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안정을 찾은 진유림 검사들은 그런 압도적인 수를 이용해 단숨에 싸움의 반전을 꾀했다.

그렇게 되자 무당파 제자 한 명에 진유림 검사들이 평균 네다섯 명, 심지어는 열 명 정도가 달라붙었다.

전세는 순식간에 혼전으로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원 담장을 넘지 못한 진유림 검사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였다.

서걱!

청명진인은 달려드는 진유림 검사 한 명을 양단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적 열세로 인해 무당파 제자들이 급격히 몰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하나둘씩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치는 것은 무당파 제자들이었다. 결국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무당파는 역사상 최악의 치욕을 맛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청명진인의 눈에서 독기가 어렸다.

그리고는 더욱 난폭하게 진유림 검사들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러자 청명진인의 단정한 청록색 도복도 점차 붉게 변해갔다. 그뿐만 아니라 속발(束髮; 상투머리)을 고정시키는 푸른 옥비녀는 보이지도 않았고, 머리카락은 봉두난발이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베어야 무당파 제자가 산다.’

청명진인은 그만큼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전각에서 모습을 숨긴 채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전장으로 뛰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아직까지 이 무리를 이끄는 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분명 황사가 직접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제자나 주요 인물이 올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율기냐? 아니면 금대치냐?’

사실 마현은 속으로 율기를 찍고 있었다. 왜냐하면 금대치가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그의 얼굴은 너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간간히 ‘마교 만세, 마교 천하!’를 외치며 죽어나가는 적들을 보며 마현은 그런 심증을 더욱 굳혀갔다.

그렇기에 마현도 모습을 숨겼고, 이미 무당파 인근에 도착해있는 흑풍대에게도 아무런 명을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입니까?”

마현의 목소리는 답답했다.

그만큼 걸왕의 표정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그때 초조하게 무당파 외부를 지켜보던 걸왕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역팔자로 휘어졌다. 분명 화가 난 것이 틀림없지만 입술은 웃고 있었다.

걸왕의 눈 끝, 무당파 외벽 쪽에서 개방 제자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겠구나!”

마현을 잠시 쳐다보던 걸왕이 전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개방도 있다!”

걸왕은 목소리에 진기를 담아 소리치며 내원 전장으로 훌쩍 뛰어 내려갔다.

“와아아아아!”

걸왕의 창룡음을 들은 것인지 개방도들 역시 함성을 질렀다.

무당파 제자들은 내원을 중심으로 뭉쳐있고, 그런 그들을 포위하듯 진유림의 검사들은 공격하고 있었다. 그처럼 조금은 단조롭게 공방을 치르던 전장이 개방도의 등장으로 어지럽게 변했다.

천여 명에 이르는 개방도의 등장으로 잠시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전장의 승기는 진유림 쪽으로 쏠려 있었다. 그만큼 진유림 검사들 개개인의 무위도 높았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수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군.”

전장이지만 전혀 칼부림이 없는 곳에 율기는 서 있었다. 그 이유는 오백여 명의 검사들이 그를 철통같이 에워싸며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달려드는 적도 없었던 것이다.

“준비하오리까?”

마치 보좌관처럼 율기 옆자리를 떠나지 않던 천호장 출신 사내가 물었다.

“때가 무르익었으니 터트려야겠지요.”

“이미 준비는 끝마쳐놓았습니다.”

“모두들 회액(回液)은 몸에 발라놓았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혹시나 피가 묻어 냄새가 지워질까 싶어 회액으로 목욕까지 시켜놓았습니다.”

회액은 몇 가지 기름과 약초를 이용해 만든 무향의 기름이었고, 동시에 강시들을 제조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재료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게는 그저 무향의 기름일 뿐이지만 강시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을 제조할 때 회액을 이용했기에 사람들이 그 기름을 몸에 바르면 강시들은 본능적으로 아군이라고 여기고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미리 회액을 바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율기가 데려온 진유림의 검사들 중에는 강시를 부리는 이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가져온 오백 구의 강시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강시들이었다. 그런데도 율기가 강시를 부리는 강시술사를 한 명도 데려오지 않은 이유는 이곳에서 강시들을 모두 소모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강시술사가 없는 강시들.

그것은 무자비한 맹수를 풀어놓는 것이나 매한가지일 터.

지독한 공포를 심어준 뒤 저들은 다시 주검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공포에 대한 위기감과 원한은 고스란히 마교에게로 향하게 될 것이다.

“강시들을 깨우세요!”

율기의 명은 작지만 넓게 퍼졌다.

강시를 등에 메고 있던 검사들이 광목으로 칭칭 동여맨 강시들을 땅에 풀었다.

아직은 잠들어 있는 묵혈강시들.

어지간한 중소문파는 너끈히 멸문시키고도 남을 위력을 가진 귀물들이었다.

이제 그런 귀물을 깨울 것이다.

율기는 품에서 작은 종을 꺼내들었다.

‘시작하리라, 온전히 천하를 황제 폐하에게 바치는 그 전초…….’

율기는 종을 치려다가 몸이 굳어졌다.

그런 그의 눈 끝에는 마현이 서 있었다.

* * *

“이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마현은 줄곧 전장 밖에서 적의 수장을 찾았었다. 그런데 전장 한구석에 율기가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그를 보호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커다란 짐짝을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투시 마법으로 살펴보니 강시였다.

흑풍대를 투입하고 흑사신과 암사령들을 소환하면 아슬아슬하지만 전장의 기세는 균형을 잡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율기에게는 불쌍한 말이지만 저들은 수고스럽게도 아군을 데려온 것이었다.

마현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전각 지붕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몸을 숨기고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마현은 율기를 내려다보며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오늘은 반드시 네놈의 목을 칠 것이다! 하여 황사를 끌어낼 것이다!’

마현은 송겸을 떠올리며 살의를 일으켰다.

『흑풍대는 교전을 준비하라.』

『명!』

왕귀진의 복명 소리를 들으며 마현은 율기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시선을 느낀 것일까. 마침 율기도 고개를 들어올렸다.

허공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마현은 차갑게 웃었다.

율기가 들고 있는 작은 종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긴 해도 그것은 분명 강시를 깨우는 도구일 것이 분명했다. 이상한 것이 있다면 그들을 조종하는 강시술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현은 그 점에 그리 크게 신경을 쏟지 않았다.

어차피 흑사신들의 수중에 떨어질 테니까.

“어, 어떻게 네놈이 여기에!”

율기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마현은 시퍼런 웃음을 보이며 율기가 들고 있던 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눈빛에 율기는 흠칫하며 종을 뒤로 감췄다. 율기의 눈빛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런 율기의 관자놀이로 굵은 땀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율기는 마현의 손에 마교를 삼키려던 계책이 무너진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근 이십여 년 동안 공들어 만든 강시를 하루아침에 빼앗겼던 그 기억을…….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오늘로서 강시를 폐기처분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교와 일전을 치르게 될 때 강시는 든든한 아군이 아닌 적이 될 테니까.

그렇기에 오늘의 일전을 대비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었다.

그런 율기가 가장 먼저 대비한 것이 바로 마현이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분명 마현은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북경을 나서는 모든 성문과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길목에 감시자들을 심어놓았다. 제아무리 천하제일고수라도 수천의 눈을 피해 북경을 빠져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패착이다! 위험했어도 북경에 머물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봤어야 하는데…….’

혹시나 마현이 경각심을 가질까봐 북경 안까지 감시자들을 심어 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책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빨리 강시들을 부숴라! 어서! 어서 부수란 말이다!”

율기는 고래고래 악을 쓰듯 다급히 명을 내렸다.

그를 보호하며 강시들을 운반한 진유림 검사들은 율기의 목소리에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강시를 부숴라! 명이다, 명이란 말이다! 어서 부숴!”

율기는 먼저 자신의 근처에 있던 강시 한 구의 목을 향해 장력을 내뿜었다.

콰직!

강력한 일장에 강시의 목이 꺾였다.

그제야 진유림 검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이 내려놓은 강시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들보다 마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흑사신!』

『크크크크크!』

흑도를 비롯한 흑사신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푹 푹 푹 푹!

오백여 구의 강시들이 마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땅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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