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33화 (233/351)

# 233

8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금군도독부 도독실(都督室)에서 조자경의 격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앞에 앉아 있는 남진무사 윤심배는 조자경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물음에 대답해야 할 북진무사 송채모는 오늘 아침 사직서를 재출한 뒤 낙향한 뒤였다.

조자경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빠드득 갈았다.

거진 삼분지 일이었다.

그 수가 무려 일만이었다.

황실 최고의 군사들이 삼 일 동안 스스로 관직을 벗어던지고 낙향한 것이다.

결코 우연일 리 없다.

특히 영관급 장수들의 절반 가까이가 낙향한 것이 문제였다. 전력의 급감은 둘째 치고 자칫했다가는 지휘의 혼란까지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임시적으로 순번 횟수를 늘려 임시변통하고 있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도독. 특히 대영반과 그 휘하 네 영반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후우. 일단 어떻게든 한 달 정도만 버텨보게.”

“그리해 보겠습니다.”

“윤 남진무사. 당장 각 도독부 도독들과 병부 장 좌시랑…….”

“전군도독부와 동군도독부, 그리고 장 좌시랑은 황사 쪽 사람들입니다.”

“끄응!”

조자경은 윤심배의 말에 앓는 소리를 삼켜야 했다.

“병부 쪽에 황사 사람이 아닌 이가 누구지?”

“병부상서 이용 대인이 가장 확실할 것 같습니다.”

“이용 병부상서 말인가?”

조자경은 모래라도 한 움큼 입에 문 듯 눈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병부상서와 조자경은 상당히 껄끄러운 사이였다. 그렇기에 병부의 좌시랑을 떠올린 것인데,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나야 할 것 같아 조자경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지. 전군과 동군을 제외한 삼군 도독들과 병부상서에게 기별을 넣게. 내 한 번 보자고.”

“그리하겠습니다.”

조자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행차하실 생각이신지…….”

“동창 지하 금옥으로 갈 생각이네.”

“동창 지하 금옥이라면……, 조범 대영반을?”

“황사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그 말에 윤심배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인도 함께 가겠습니다.”

각군 도독부와 병부상서에게 기별을 넣는 것이 당장 시급한 일이 아니었기에 조자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동행을 허락했다.

둘은 금군도독부를 나서 동창으로 향했다.

금군도독부와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하지만 한 번도 가깝다고 여기지 않던 동창으로 조자경은 윤심배와 함께 들어섰다.

경쟁보다는 서로를 견제하는 곳이였기에 조자경과 윤심배는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동창 내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하 금옥으로 향했다.

“어쩐 일이신가요?”

지하 금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동창도독 박인태 환관이 먼저 와있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들이 들어선 것을 보고받고 이곳으로 온 모양이었다.

“죄인 조범을 보러 왔소이다.”

“그렇다면 저를 먼저 찾아오시지 않구요.”

박인태가 살짝 웃으며 말했지만 분명 그건 경고였다.

“커흠, 후에 기별을 넣으려 했소이다.”

비록 박인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자경은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며 유들유들한 얼굴로 사과했다.

“듣자하니 금군도독부가 조금 어렵다지요? 정 뭐하면 이 박인태가 한 손 거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조자경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박인태를 쳐다보았다.

“그렇게까지 어려울 정도는 아니외다.”

조자경의 주먹은 꽉 말려 있었고, 그의 손은 소매 속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먼저 들어갈 것이오? 아니면 본인 먼저 들어가오리까?”

“이런! 결례를 저질렀군요.”

박인태는 과장되게 놀란 척하더니 쑥스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수염이 없는 턱을 긁었다. 그리고는 실눈으로 눈웃음을 치며 금옥 입구를 고개로 가리켰다.

“크흠!”

조자경은 그런 박인태의 표정과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거북한 헛기침으로 불쾌함을 드러내곤 박인태를 따라 금옥 안으로 들어갔다.

빛 한 점 없는 통로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통로를 따라 길게 드리워진 벽면에 드문드문 꽂혀 있는 횃불뿐이었다.

그 횃불에 의지해 통로를 걷는 조자경의 미간에 오만 가지 인상이 만들어졌다.

코끝을 콕콕 찌르는 퀴퀴한 냄새가 가뜩이나 불편한 심사를 자꾸 건드렸기 때문이다. 누가 역겨운 환관이 아니랄까봐 종종걸음을 내딛고 있는 박인태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확실히 도창도독인 박인태와 함께 들어와서인지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전에 통로 곳곳에 설치된 철창문이 알아서 척척 열렸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의 발걸음도 거대한 철문 앞에서는 멈춰야 했다.

“아무리 수장인 저라도 이곳에서 만큼은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박인태는 고개를 돌려 환관 특유의 가는 웃음을 보인 후 철문을 몇 번 두들겼다. 그러자 철문 중앙에 자그만 구멍이 열렸다.

박인태는 품에서 동창도독을 상징하는 옥패를 그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얼굴 높이 부분에 또 하나의 구멍이 열렸다. 그 구멍 안에서 사람의 눈동자가 박인태와 그 뒤에 서 있는 조자경과 윤심배를 살폈다.

철컹!

그런 후에야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공기가 통로 쪽으로 밀려나왔다.

“큭!”

조자경이 헛구역질을 참아야 할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질퍽한 물냄새와 더불어 살이 썩어가는 냄새가 문 너머로 흘러나온 것이다.

박인태도 그 냄새가 역겨웠는지 풍성한 소매로 코를 막으며 조자경과 윤심배를 쳐다보았다.

들어가자는 몸짓이었다.

조자경과 윤심배도 소매로 코를 막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벽면과 천장에 물기가 질펀했고,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진 감옥 안은 물에 잠겨 있었다.

말로만 듣던 동창 감옥 중 가장 지독하다고 알려진 수옥이었다.

조자경은 박인태를 따라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철장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 조범이 투옥되어 있었다.

“흐음.”

조자경은 저도 모르게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수옥에 갇힌 조범은 완전히 폐인이 되어 있었다.

건장하던 풍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빼빼마른 이가 쇠사슬에 포박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서 살점들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조범은 가부좌를 튼 상태로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눈을 떴다.

눈빛만은 살아 번뜩이고 있었다.

그런 조범과 눈이 마주치자 조자경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오랜 연륜을 지닌 조자경이었다. 비록 조범이 섬뜩한 눈빛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야 했다.

“조범, 황사가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조자경의 차가운 질문에 조범은 그저 빙그레 웃음을 띠었다.

“도독께서 이 죄인을 찾아온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급하긴 급하셨던 모양입니다.”

“목이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조자경은 대노했다.

하지만 그런 협박이 조범에게는 안 통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오히려 편안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 비록 지금은 죄인이 되어 이 수옥에서 죽을 것이나…….”

“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조범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조자경은 당황하여 철장을 양손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어서 철장을 열어라, 어서!”

박인태도 소리를 질러 수옥을 담당하는 동창 위사를 불렀다.

“훗날 역사는 나를 이렇게 써줄 것이다. 만년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명 제국의 기반을 다진 충신이었다고.”

낮게 깔렸던 조범의 목소리가 커지자 갈라지고 쉰 바람이 섞였지만 그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

철컹 철컹.

조범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명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조범은 그 자리에서 경건하게 네 번 절을 올렸다.

그 사이 위사가 허겁지겁 수옥 열쇠를 들고 뛰어왔다.

“어서 문을 열어라! 어서!”

박인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조범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는 쇠창살로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쾅!

결국 조범은 스스로 머리를 으깨며 절명했다.

풍덩!

무릎 아래까지 물이 찬 수옥 바닥에 조범의 주검은 쓰러졌다.

“히익!”

조자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렇게 참혹한 방식으로 자진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황한 것은 박인태도 매한가지였다.

철컹!

그리고 수옥 철장이 열렸다.

위사와 박인태, 그리고 조자경이 재빠르게 뛰어 들어가 조범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이미 본 바대로 그의 몸에서 온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쾅!

조자경은 주먹으로 조범의 피가 묻은 쇠창살을 후려쳤다.

“황사, 도대체 네놈이 원하는 것이 무어라 말이냐?”

분노를 참지 못하는 조자경의 입술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 * *

어두운 밤, 간간히 빛이 새어나오는 무당파를 조용히 지켜보던 율기가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

푸드득.

한 마리 전서응이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율기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율기는 전서응이 가져다 준 전서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그런 그의 얼굴은 곧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뺨 위로 한 줄기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자그만 전서 위에 뚝뚝 떨어졌다.

그로 인해 전서 위에 적힌 글자들이 눈물과 함께 번졌다.

“무, 무슨 일입니까? 율 선생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군도독 소속이었던 금의군 천호장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 사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대, 대영반께서요?”

천호장은 너무 놀라 그만 크게 소리쳤다.

“어, 어찌…….”

천호장은 슬픈 얼굴을 하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율기는 전서를 삼매진화로 태우며 비감이 가득한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송겸의 성정과 충정을 미뤄 짐작하건데 절대로 동창 금옥을 습격해 조범을 빼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율기는 알고 있었다. 아니 스승인 송겸도 조범이 스스로 자진할 것이라 이미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두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남들이 탓할지는 몰라도 그들에게는 사제 간의 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조 사제는 나라와 황제 폐하를 위해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자결했다고 합니다.”

“크윽!”

천호장의 울분을 삼키며 내뱉는 신음에 율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죽어서도 사제가 원한 것을 이루겠습니다. 오늘밤 무당파를 이 땅에서 지우세요!”

“명!”

율기 옆에 서 있던 천호장이 눈물을 닦으며 힘 있게 복명했다. 그리고 좀 전보다 더욱 짙은 살기를 품은 오천 명이, 과거 금의군 소속이었지만 이제는 진유림의 검사들이 된 이들이 눈을 번뜩이며 무당파 담장을 넘었다.

* * *

띠딩―!

맑은 종소리가 고요한 장문인실 안에서 울려 퍼졌다.

청명진인과 학성, 그리고 걸왕의 시선이 마현에게로 쏠렸다. 마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학성이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청명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자신의 애검을 집어 들었다.

마현과 걸왕, 그리고 청명진인이 함께 장문인실을 빠져나와 전각 지붕으로 올라섰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당파 내원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왔다.

띠딩―!

그때 다시 한 번 종소리가 들렸고, 흐릿하지만 내원 담장을 넘는 그림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현은 청명진인과 걸왕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파이어 버스트를 만들어 하늘로 날려 올렸다.

슈우웅―, 퍼벙!

하늘로 올라간 불덩이는 마치 폭죽처럼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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