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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32화 (232/351)

# 232

7화

워낙 마현과 걸왕이 빠르게 움직여 아직까지 이 일의 전모를 듣지 못한 듯 보였다. 그렇기에 마현은 자신의 의견을 잠시 미루고 황실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허어, 어찌…….”

청명진인의 탄식에는 당황함이 묻어 있었다. 그만큼 경악한 탓이리라.

“그래도 황제 폐하가 아니라 다행이구나. 네가 수고했구나.”

청명진인은 쉽게 표정을 풀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만일 제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이 습격을 이용해 지금의 이 모든 일이 황사의 암계라는 것을 온 천하에 알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답답하구나, 답답해. 우리는 훤히 들어나 있는데 적은 실체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니…….”

비록 이 흉계를 꾸민 자가 황사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드러난 건 검림뿐이었다. 귀림이 있었던 것처럼 분명 황사는 다른 패를 가지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이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청명진인은 마현의 말에 공감을 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습격이 있기를 바라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기우이기를 바라야 할지……, 무량수불.”

청명진인은 눈을 감고 도호를 읊었다.

“일단 믿을 수 있는 제자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준비를 했으면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제자들이라…….”

“분명 무당파 내 분위기가 달라진다면 그들도 눈치를 챌 수 있을 거라 판단됩니다.”

마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학성아.”

“예, 스승님.”

청명진인은 옆에 앉아 있는 학성을 불렀다.

“태극제자들에게 은밀히 이 사실을 알려라.”

태극제자들이란 무당파를 상징하는 태극이 새겨진 검, 태극검을 받은 제자들이었다.

“청명진인님. 죄송하지만 학성은 저와 함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

“무당파 외부에 간단한 진법을 하나 설치하려 합니다.”

마현은 무당파 외부에 알람 마법을 설치할 생각이었다.

“진법?”

“단순히 적의 침입을 알리는 진법입니다.”

만약 적의 침입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내는 것이 좋다.

“허락하마.”

청명진인은 허락하면서도 쓰게 입맛을 다셨다.

무당파의 안위를 자신들이 아닌 남에게 일부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현과 학성이 함께 장문인실을 빠져나갔고, 청명진인은 그 둘이 나간 방문을 잠시 쳐다보았다.

과거의 일들…….

마현의 신분 때문에 고심했던 일과 학성에 대한 걱정. 그때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던 현도상인의 말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현을 배척했던 행동과 생각들.

마현과 학성, 그 둘과 연관된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머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네놈도 꽤나 복잡한 눈빛을 하는구나.”

걸왕의 목소리에 청명진인은 시선을 거두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

“어디부터 가볼까?”

학성이 물었다.

그간 잘 지냈느냐는 물음도 없었다.

학성은 마현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마현도 따라 웃음을 머금었다. 그 웃음이면 족했다.

“글쎄……. 정문에서 시작해 정문에서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마현도 학성처럼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럴까?”

학성은 마현보다 반걸음쯤 앞서 길을 안내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더 흘려야 이 일이 끝날까?”

학성의 음성은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좋다.”

마현의 화답에 학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적어도 너와 내가…….”

“……?”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차갑고 이기적이야, 그 말은.”

“원래 나는 차갑고 이기적이야. 하지만 내 피는 따뜻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피도 따뜻하다는 것도 알고. 단지 적의 피만 차가울 뿐이야.”

마현은 차갑게 굳은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뜨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무림이라는 곳은 어차피 피를 흘려야하는 곳. 그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이왕이면 함께 흘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너와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마현이 몸을 돌려 학성의 눈을 직시했다.

한참이나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다른 사람의 피도 뜨겁다는 말 새겨둘게.”

“그들의 피가 차갑다는 거 또한 새겨둘게.”

그리고 둘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들은 약간의 의견 충돌 끝에 정문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정문을 나선 후 무당파 외벽을 따라 길을 걷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산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현은 약 10여 장의 거리마다 나무나 바위, 혹은 외벽에 마나를 주입시키며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 * *

중경 외곽에 위치한 단아한 장원.

날을 깨우는 닭울음소리도 아직 울리지 않은 이른 새벽, 두 그림자가 장원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무림성에 있어야 할 제갈묘와 후동관이었다.

담담한 표정의 후동관과 달리 제갈묘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왔느냐?”

그런 둘을 구금상단의 금대치가 맞이했다.

“……금 장로?”

제갈묘는 금대치를 보자 놀란 기색을 얼굴에서 숨기지 못했다.

“오랜만입니다, 대사형.”

“그래 오랜만이구나.”

금대치는 후동관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제갈묘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많이 놀라셨습니까? 본의 아니게 속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 그저 너무나 뜻밖이라 그런 것이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갈묘는 재빨리 입가에 미소를 만들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제갈묘는 너무 놀라 식은땀이 등줄기를 적시고 있었다.

지금 판세를 이끌어가는 모든 것들이 황사의 계략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까지 황사에게는 장기판의 말이었던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예.”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은 했어도 자신만만했었다. 제아무리 황사라고 해도 평범한 문인이라 여겼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금대치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 문지방에 한 다리를 걸친 채 제갈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 안 중앙에는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중년인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그가 먼저 와 앉아 있다고 해서 제갈묘의 몸이 굳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패도의 기운이 제갈묘의 몸을 자연스레 굳게 만든 것이다.

제갈묘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등짝은 이미 땀으로 축축해진 지 오래였다.

제갈묘는 힘겹게 눈동자만 굴려 방 안을 살폈다.

방 안에는 그 중년인 혼자뿐이었다.

‘꿀꺽!’

제갈묘의 목울대가 마른침이 넘어가며 출렁거렸다.

지금 제갈묘가 보고 있는 중년인, 그자가 바로 황사였다.

제갈묘는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자신의 판단이 그저 터무니없는 오판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단순히 기세만으로 정확한 무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신은 백초지척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어서 오시게.”

제갈묘는 무형의 힘에 이끌려 중년인 앞으로 끌려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무왕이라 부르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네.”

비록 송겸이 황사의 지위를 잃었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그렇기에 얼마 전 떨어졌던 황명이 아직까지 천하로 퍼지지 못한 것이다.

“아, 아닙니다.”

제갈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내 맹주를 부른 것은 일을 마무리 짓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뜻이니 그리 부담을 가질 것 없네.”

담담하고 나근나근한 목소리였지만 제갈묘는 더욱 깊게 머리를 숙였다.

“맹주, 본인이 알기에 제갈세가의 무력은 오파일방과 육대세가 중 가장 약한 것으로 알고 있네. 맞는가?”

“그렇습니다.”

평소의 제갈묘라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했겠지만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송겸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완전히 굴복한 제갈묘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맹주에게 선물을 주려 하오.”

“……?”

제갈묘는 송겸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나 이내 송겸의 눈빛을 대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껄껄껄.”

송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금대치를 불렀다.

“대치야.”

“예, 스승님.”

“금의군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고개를 바싹 숙인 제갈묘는 송겸과 금대치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아마도 내일 정오쯤이면 오천의 금의군이 중경으로 들어설 것입니다.

“오천이라……. 어떻소, 맹주?”

“무슨 말씀이시온지…….”

“금의군 출신의 오천의 낙향(落鄕)하는 군사들이면 제갈세가도 단숨에 천하제일의 무가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 보네만. 오갈 데 없는 낙향 무관들을 제갈세가에서 거둬줬으면 하네.”

제갈묘의 얼굴이 다시 번쩍 쳐들렸다.

말이 좋아 낙향하는 금의군이지, 그들의 전력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실재로는 송겸의 뜻에 따라 관직을 내놓고 중경으로 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일반 군부의 병사들이라면 몰라도 금의군 출신의 무장들이라면 말이 틀려진다. 그리고 그 수가 오천이라면 어지간한 대문파도 무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묘는 망설였다.

그들로 인해 제갈세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도 급격히 상승하겠지만 그들은 세가와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황사의 뜻에 따라 자신의 목도 칠 수 있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제갈묘의 망설임을 눈치챈 송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얼 걱정하시는가? 그대가 내 배에서 먼저 내리지 않는 이상 아무 문제가 없거늘…….”

푸하악!

송겸의 몸에서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폭사되었다.

“크윽!”

그 힘에 눌린 제갈묘는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파리해진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제갈묘가 송겸의 뜻을 받아들이자 그 기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의 뜻만 잘 받들어준다면 그대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주겠네.”

“며, 명을 받잡겠습니다.”

제갈묘는 거칠어진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대답해야 했다.

“오늘 밤, 무당파가 무너지면 내일 무림맹은 맹주의 것이 될 것일세.”

“……!”

“중경으로 오는 낙향한 금의군 외에 별도로 구성된 오천의 금의군이 무당파를 지울 것일세. 마교의 이름으로…….”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던 제갈묘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오, 오천?’

또 다른 오천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금부에서 도합 일만의 금의군이 낙향한다는 소리다. 제갈묘는 이길 수밖에 없는 이 싸움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음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황사에게 추, 충성을…….”

“갈!”

제갈묘의 충성 서약에 송겸이 일갈을 터트렸다.

“그대가 충성해야 할 분은 본인이 아니라 황제 폐하다!”

송겸의 시퍼런 살기에 눌린 제갈묘는 다시 황제에게 충성하는 서약을 읊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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