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6화
“마교의 소교주 마현의 손…….”
궁개는 다시 한 번 걸왕에게 보고를 올리려다가 그 옆에 서 있는 마현을 보자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는 마현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네놈이 무림맹주를 죽였냐?”
걸왕이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그 자리에 걸왕 선배님도 계셨겠군요.”
마현은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며 걸왕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황사의 짓인 것 같군요.”
걸왕의 말을 마현이 이어받았다.
“이거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군. 설마 황사가 자신의 팔을 잘라버리면서까지 반전을 꾀할 줄이야…….”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움직였다는 것은 곧 꼬리를 밟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걸왕은 마현을 데리고 개방총타 안으로 들어섰다.
개방총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모서리가 떨어져나간 허름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걸왕과 마현, 그리고 궁개가 함께 자리했다.
“강력한 화기에 잿더미로 변한 맹주실에서 맹주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걸 마현의 짓으로 몰아가기에는 너무 가볍지 않나?”
“맹주의 시신 근처에서 몇 구의 강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궁개는 무림맹에서 있었던 상황을 보고하면서 마현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귀림의 것이겠군. 그럼 율기 짓인가?”
마현은 율기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입맛을 살짝 다셨다.
“강시라……. 그래서 현 무림맹의 상황은 어떤가?”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들의 주군을 잃은 검림의 분노가 대단합니다. 아울러 임시적으로 신기수사 제갈 총사가 무림맹주 직을 대리하고 있으며, 검림은 노골적으로 제갈 총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제갈묘라…….”
걸왕의 목소리에는 고심이 묻어나왔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상방주님.”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이냐?”
“내부적으로 정마대전을 반대하던 문파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걸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다행히 방주님과 무당파 장문인께서 여전히 그들을 설득하고 있어 당장 그런 분위기가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지만 조금만 일이 더 커진다면 무림맹은 제갈 총사를 중심으로 뭉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정마대전을 원하는 것인가?”
걸왕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일이 더 커진다고?”
마현의 눈매도 가늘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마현이 눈을 부릅뜨며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잊고 있었던 현도상인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친우를 생각해 앞으로 이 무당파도 잘 부탁하네.”
‘무당파라……, 왜 하필 지금 그분의 말씀이 떠오른 것이지?’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으로 인해 마현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생겨났다.
마현은 궁개를 쳐다보았다.
“현재 무당파 본산은 어떻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마현의 물음에 걸왕도 현도상인의 말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 역시 놀란 눈으로 마현을 쳐다보았다.
“혹시 네 녀석도 말코도사의 말을 떠올린 것이냐?”
걸왕의 질문에 마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의 말코도사 말이 이거였나?”
걸왕의 목소리도 불안에 살짝 떨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궁개는 무당파에 대해서 아는 것을 이야기했다.
“현재 무당파는 장문인인 청하진인의 사제 무당제일검 청명진인이 장문 직을 임시로 대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마대전을 위해 파견되었던 천여 명의 도인들 중 절반은 무당파로 돌아갔으며, 절반 정도만이 무림맹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무당파의 힘의 절반이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뜻이겠군요?”
“절반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어렵습니다만 얼추 그 정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파들도 그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내가 황사나 제갈묘라면 분명 무당파를 노릴 것이야.”
걸왕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라도 그럴 것입니다. 정마대전을 반대하는 문파를 지우는 동시에 내부의 결속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마현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가지.”
걸왕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개야. 무림맹에 파견된 방도들을 제외하고 최대한 방도들을 모아 무한 지부로 은밀히 집결시켜라. 그리고 지금의 내용을 은밀히 취개에게도 전하고.”
“알겠습니다, 태상방주님.”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궁개는 걸왕의 명을 받들었다. 궁개는 걸왕이 절대로 아무런 이유 없이 움직이는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 분타주.”
마현은 재빨리 한 장의 서찰을 적어 궁개에게 넘겼다.
“사천의 마교 분타로 부탁하겠습니다.”
“내 살아생전에 마교로 서찰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궁개는 마현이 전하는 서찰을 받아 들며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 부탁을 안 들어줄 수가 없기에 고이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소교주님.”
“그럼…….”
마현은 궁개에게 살짝 목례를 한 뒤 걸왕을 쳐다보았다.
* * *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
막 잠에서 깬 산새들이 산길의 고즈넉함을 깨우고 있었다. 무당파로 오르는 무당산 초입의 산길에 마현과 걸왕이 검은빛과 함께 흑풍대를 대동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씩의 격차를 두고 북경으로, 그리고 이곳 무당산으로 온 것이었다.
“대주, 그대는 흑풍대와 함께 무당파 주위에서 은신하고 있으라.”
마현은 흑풍대가 혹여나 다른 이들의 이목에 띄어봐야 그리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며칠이 될지도 모르는 험한 고생길임에도 불구하고 흑풍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현의 명을 받아들였다.
“올라가시지요.”
마현은 걸왕과 함께 무당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에 학성을 보기 위해 한 번 들린 적이 있어서인지 무당파로 오르는 풍경은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구불구불하던 산길이 조금 더 올라가자 곧아졌다.
이 길로 조금만 쭉 올라가면 무당파의 해검지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무당파에도 분명 무림맹과 관련된 세작이 있을 터. 지금 이 모습으로 올라간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다.
마현은 걸음을 멈추고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북경에서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서클 단전의 마력은 거의 동이 나있었다. 마현은 그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나마 흔한 것이 금발에 금안인가?’
모습을 변장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마법을 통해 완전히 모습을 바꾸는 것이지만 그것은 현재 7서클인 마현이 시전할 수 없는 8서클의 마법이었다.
그래서 마현은 그 하위 개념의 마법을 선택했다.
“디스카이즈(Disguise)!”
마력이 바람이 되어 마현의 몸을 한바탕 휘감고 사라졌다.
바람의 마지막 한 줄기에서 벗어나 살랑 내려앉는 마현의 머리카락 색은 어느새 갈색이 약간 섞인 금발로 바뀌어 있었다. 또한 감았던 눈을 뜨는 마현의 눈동자도 금안으로 변해 있었다.
“역용술이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바꿀 수도 있었나?”
걸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걸왕은 역용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역용술에서 가장 중요한 골격과 얼굴 모습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을 바꾸는 것을 보면 분명 역용술의 일종임에 틀림없을 것이라 여겼다.
걸왕은 결국 이제껏 참아온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다.
“이참에 하나 물어보자.”
“……?”
“네가 쓰는 마공이 염라서생 허 교주의 것은 분명 아니지?”
“마법(魔法)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흑마법(黑魔法).”
“마법이라……, 떡 하니 마(魔)자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마공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군. 너 허 교주 외에 다른 스승을 모신 게냐?”
“제게 스승님은 단 한 분뿐입니다.”
마현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찰나 동안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워낙 빠르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진 터라 걸왕은 그런 살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현은 살기를 이내 희미한 웃음으로 덮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마현은 해검지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마법이라……, 휴우.’
걸왕은 속으로 시름 어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한지라 그동안 정도 조금은 들었다. 또한 마현의 심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결국 인간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하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움직이고 있는 지금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자신은 정이고 마현은 마다.
특히 마현이 훗날 교주 자리에 오른다면…….
정파 역사상 가장 어려운 적을 만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마현이 마법이라고 한 마공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무공이었다.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님을 알았기에 곧 복잡한 마음을 털어버리며 마현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올라갔다. 걸왕과 함께 무당파에 들리니 별다른 기다림이나 수고 없이 둘은 청명진인이 기거하는 장문인실 앞으로 곧 안내받을 수가 있었다.
“누가 왔다고?”
“걸왕께서 웬 도우 한 분과 함께 왕래하셨습니다.”
걸왕과 마현을 안내한 무당파 도인이 굳게 닫혀 있는 장문인실 문을 향해 둘의 방문을 알렸다. 잠시 후 청명진인이 직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단순히 걸왕이 자신보다 한 배분 높아서가 아니다.
걸왕은 이미 타계하신 현도상인의 둘도 없는 친우인 까닭이었다.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청명진인은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걸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이긴 오랜만이지.”
사실 걸왕은 현도상인이 죽은 후 한 번도 무당파를 찾아오지 않았었다.
“근데 함께 온 소협은…….”
청명진인은 마현의 얼굴을 보고 말을 잇다가 멈췄다.
“현이?”
청명진인의 뒤로 장문인실에서 뒤늦게 나온 학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록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학성은 마현을 알아본 것이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어르신.”
마현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청명진인에게 포권을 취한 후 학성에게도 반가운 눈인사를 건넸다.
“그만 가보거라.”
청명진인은 둘을 안내한 제자를 돌려보낸 후 몸을 틀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걸왕과 마현은 청명진인의 안내를 받아 무당파 장문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학성을 포함한 넷은 이내 원탁에 둘러앉았다.
“어쩐 일로 본산에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청명진인은 걸왕이 마현과 함께 오자 단순히 놀러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질문에 걸왕은 현도상인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을 청명진인과 학성에게 들려주었다.
단순히 기우에 불과한 말일 수도 있지만 청명진인의 표정은 무거워졌다.
“흠…….”
청명진인은 누구보다 현도상인을 잘 알고 있었다.
현도상인이 살아있을 적 천기를 꿰뚫어보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당장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도 무당파 내 그 누구도 허투로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현도상인의 말이 틀렸던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 현도상인이 남긴 마지막 남긴 말이니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본파에 일급 경계령을…….”
“아니야.”
청명진인의 말에 걸왕이 고개를 저었다.
“위기 끝에 기회가 온다고 했습니다.”
마현이었다.
청명진인이 눈빛으로 무언의 허락을 하자 마현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무당파에 습격이 있다면 필시 황사의 제자들이 나설 것입니다.”
“화, 황사?”
청명진인은 너무 놀라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