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26화 (226/351)

# 226

1화

건청궁 내 대리석이 완전히 헤집어지며 삼백 구의 다크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아아아아!

―캬캬캬캬캬!

다크 스켈레톤들은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며 섬뜩한 귀성을 일제히 터트렸다.

후드득!

삼백 구의 다크 스켈레톤의 귀성이 건청궁 내 대전을 흔들자 높디높은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자박 자박 자박!

황제의 수신호위 대영반인 사방신은 다크 스켈레톤들이 발을 내딛어 공간을 좁히자 발을 넓게 디디며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 이름처럼 사방신인 청룡, 주작, 백호, 현무가 양각된 가면을 쓰고 있는 네 영반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그려졌다. 그들의 시선이 황제가 아닌 다크 스켈레톤에게로 모이자 마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번쩍!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황제가 앉아 있는 옥좌 앞 서탁 바로 위였다.

“헙!”

마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황제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신 대영반 중 한 명이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실드!”

하지만 그것보다 빨리 마현은 실드를 쳤다.

투명한 실드는 한순간 마현과 황제 주위에 만들어짐과 동시에 마현의 의지대로 그 크기를 키웠다. 순식간에 옥좌 위를 가득 채우는 실드로 인해 사방신 대영반들은 실드에 밀려 옥좌 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방신 대영반들은 재빨리 몸을 틀어 실드로 검을 휘둘렀다.

와장창창창!

실드가 부서졌다.

하지만 마현은 그리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예상한 바였다.

실드가 부서질 때 마현은 황제에게 머리를 숙였다.

“흡족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폐하!”

챙 챙 챙 챙!

마현의 숙여진 머리로 네 자루의 검이 와 닿았다.

그 순간 마현은 다시 블링크를 이용해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황제의 눈을 직시했다.

마현의 시선에 황제의 뺨이 씰룩거리기를 잠시.

“크하하하하하!”

황제는 광소를 터트렸다.

그 웃음에는 분노가 아닌 통쾌함이 담겨 있었다.

황제는 정말로 시원하게 웃었다.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힐 정도로 말이다.

‘저, 저런 미친 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광경에 걸왕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물러가라!”

황제는 모습을 드러낸 사방신 대영반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사방신 대영반들은 마현을 한 번 노려본 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마현 역시 다크 스켈레톤들을 다시 어둠으로 돌려보냈다.

단 한 번의 등장에 건청궁 바닥은 완전히 황폐하게 변했다.

“페, 폐하.”

기둥 뒤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던 태 환관은 황제를 애타게 부르며 옥좌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와 부서진 장판석에 몇 번이나 발이 걸려 넘어진 후에야 황제의 곁으로 다가올 수가 있었다.

황제는 그런 태 환관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린 후 마현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끄응!”

무언가에 심기가 뒤틀린 듯 황제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대신들이 보면 다들 기겁하겠군.”

아마도 완전히 뒤집힌 바닥을 보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이리라.

“레스터레이션(restoration)!”

마현이 손을 휘저어 마력을 사방에 뿌리자 산산조각 났던 장판석들이 제자리를 찾아간 후 언제 부서졌냐는 듯 완전히 복원되었다.

눈 몇 번 깜빡이자 완전히 제 모습을 찾은 광경에 황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름이 마현이라고 했었더냐?”

“그러하옵니다, 폐하.”

“금군도독 자리는 어떠하냐?”

“……?”

“짐의 힘이라면 그 정도 자리는 어렵지 않느니라.”

황제는 턱을 괴고 마현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뒤에 이어진 말로 마현은 황제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금군도독이면 가히 명실상부한 권력자의 자리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정과 정치에 뜻을 둔 자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황공하오나…….”

“부마도위!”

황제는 마현의 말을 싹둑 잘랐다.

“짐에게 어여쁜 공주가 하나 있다.”

그 말에 정작 너무 놀라 입을 쩌억 벌린 것은 마현이 아니라 걸왕과 옥좌 바로 아래 서 있던 태 환관이었다.

“황공하오나 황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조금도 생각하지도 않고 마현이 바로 거절하자 황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대는 욕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욕심이 너무 큰 것인가?”

마현을 탐내던 황제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의 눈에는 마현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인은 그저 한 길을 걸을 뿐이옵니다. 그 길에서만은 소인 역시 욕심이 많다면 많사옵니다, 폐하.”

마현은 완곡하게 다시 한 번 황제의 명을 거절했다.

“그 길에 짐은 없다는 뜻인가? 무엄한 자로군.”

황제의 마지막 말은 꽤나 퉁명스러웠다. 그리고 그 어투에 쉽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마현은 처음으로 자존심을 한 번 굽히기로 했다. 그 이유는 전에 없던, 하지만 이제는 분명 존재하는 사랑하는 이들 때문이었다.

“신(臣)은…….”

마현은 처음으로 소인이 아닌 신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지칭했다.

“이 나라의 신민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제가 어느 길을 걷든 황제 폐하의 뜻 아래 있사옵니다.”

“크음!”

황제는 마현의 뜻을 단숨에 간파했다.

품에 있는 황금보다 남의 손에 있는 황금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황제는 온갖 부귀영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현이 더욱 욕심났다.

“어상(御床)이 들 시간이옵나이다. 황제 폐하.”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는가?”

황제는 수랏상이 준비되었다는 소리에 순간 눈빛이 반짝였다. 간단히 속을 달래는 아침상이라고 해도 그 시간이 족히 반 시진은 걸린다. 거기에 소소한 다과까지 곁들면 한 시진이 훌쩍 지나간다.

황제는 앞에 펼쳐진 빈 종이에 붓을 휘날렸다.

한 시진 안으로 대소신료들을 모두 입궐시키라!

태 환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지만 황제는 짐짓 모른 척 입을 열었다.

“두 상 더 준비하라.”

“어명을 받자옵나이다.”

태 환관이 허리를 숙인 채 종종 걸음으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마침 적적한 차이니 짐이랑 요기나 하라.”

당혹스러운 명이었지만 마현과 걸왕은 거부할 수 없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 * *

어느 곳보다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는 대림학당(大林學堂).

근 이백여 년의 유구한 세월을 가진 명문 학당 중 한 군데였다. 고관대작이 된 이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출한 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문사들 사이에서는 조정에서 출세를 하려거든 한림원이 아닌 대림학당을 거치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돌 정도였다.

물론 처음에는 대림학당에서 수학한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을 거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스레 유림에서 한림원과 대림학당이 양대 산맥으로 대두되면서 한림원에서는 대림학당 출신을 뽑지 않았고, 대림학당 출신 문인들 역시 한림원으로 발걸음을 딛지 않았다.

그렇게 한림원과 대림학당이 갈라서게 된 것은 그 당시 대림학당의 대스승이었던 양호가 황사 자리에 오르면서부터였다.

폐쇄성이 짙은 한림원에 비해 대림학당은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어지간한 뒷배 없이는 발조차 들여놓을 수 없는 한림원에 비해 대림학당은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들어가 학문을 수련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인재가 넘쳐나던 곳이었기에 양호의 조언을 받은 황제가 대림학당의 문인들을 적극 등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인재도 인재였지만 그들에게 뒷배가 없다는 것이 더욱 큰 이유였다. 오로지 실력으로 조정에 온 문인들은 가문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황제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을 달리던 한림원과 대림학당 사이의 저울이 서서히 대림학당으로 기울어지게 된 것이다.

양호의 뒤를 이어 그의 제자인 사환이, 그리고 또 그의 제자인 송겸이 황사 자리에 올랐다.

그것은 암묵적으로 황사의 자리는 한림원 출신의 문인이라는 공식을 깨트리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대림학당의 주인인 대스승이 황사 자리에 오르는 것이라는 확고한 공식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한림원마저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대림학당의 위세는 한림원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곳보다 고즈넉한 아침을 맞이해야 할 대림학당의 주인인 대스승이자 황사인 송겸의 서실에서 오늘은 놀랍게도 노기(怒氣)로 가득 찬 노성(老聲)이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린 것이다.

“무어라? 실패?”

하지만 송겸의 그런 노성도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조 대영반을 비롯해 휘하 네 영반과 금의군 내 별군 모두 동창의 뇌옥(牢獄)에 하옥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송채모의 대답에 송겸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르신!”

그 모습에 송채모는 재빨리 일어나 송겸의 몸을 부축했다.

“어떻게 일이 그리될 때까지 손을 쓰지 못한 겐가?”

송겸은 송채모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 앉았다.

“소, 송구합니다, 어르신.”

송채모의 대답에 송겸은 그저 한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신가?”

“이른 새벽 조 도독과 박 도독을 알현하신 후 지금…….”

“지금?”

머무적거리는 송채모의 대답에 그렇지 않아도 잔뜩 주름진 송겸의 얼굴에서 미간에 깊은 빗금까지 그어졌다.

“걸왕이라는 자와 …… 마현을 알현 중입니다.”

송겸은 서탁 위의 벼루를 집어 들고는 송채모를 향해 냅다 던졌다.

퍽!

벼루는 송채모의 머리에 맞으며 먹물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저 말없이 다시 조아리는 송채모의 머리 밑으로 검은 먹물과 붉은 핏물이 뒤섞여 뚝뚝 떨어졌다.

“조 도독과 박 도독은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걸왕이라는 자와 마현의 알현을 막았어야 하지 않은가!”

“소, 송구합니다, 어르신.”

“송구, 송구! 자네는 그 말 말고는 할 게 없는 겐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도 한참을 잘못 보았군. 에잉, 쯧쯧쯧.”

송겸의 질타에 송채모는 그저 몸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일단 폐하를 만나야겠어.”

송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송채모도 머뭇머뭇 함께 몸을 일으켰다.

“대인.”

그때 대림학당 총관이 방문 밖에서 송겸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황궁에서 송 진무사께 황명이 내려왔습니다.”

“무엇이오?”

송채모가 문밖에 서 있는 총관에게 조금 큰 소리로 물었다.

“정시 사정(正時 巳正; 오전 10시)까지 입궐하라는 황명입니다, 진무사 어른.”

“알았소.”

송채모의 대답을 들은 총관이 발길을 막 돌리려 할 때 송겸이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송 진무사만 부르신 겐가?”

“아닙니다, 대인. 대소관료 모두 입궐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총관의 대답에 송겸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대전회의를 열겠다는 어명이 아니신가?”

“…….”

“나에게 내려온 황명은 없으시고?”

“그렇습니다, 대인.”

송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대전회의를 열기 전 자신을 먼저 불러 여러 가지 정사를 논의하고 자문을 구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신을 먼저 부르지 않았다.

아니 아예 부르지 않은 것이다.

필시 지난 밤 조범의 일로 황제를 먼저 알현한 조자경과 박인태 때문이 분명했다.

“총관.”

“예, 대인.”

“당장 황성으로 갈 것이다.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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