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24화
“으아아악!”
“이보게! 이보게!”
쓰러지는 금의군 위사 곁으로 동료가 달라붙었다.
하지만 다크 스켈레톤의 검에 피를 뿌리며 쓰러진 금의군 위사는 금세 절명했고, 그의 몸은 이내 바닥에 축 처졌다.
“흑사신! 어둠의 품에 안긴 자들을 충복한 군사로 만들어라!”
마현의 목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흑사신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검은 연기, 흑무는 동료의 품에 안겨 죽은 금의군 위사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잘 가게!”
금의군 위사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동료의 눈을 손으로 감겨주었다. 하지만 죽은 금의군 위사의 눈이 그 순간 번쩍 떠졌다.
“으허헉!”
동료는 그 모습에 놀라 뒤로 물러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르르르, 캬아아악!
죽었다가 다시 눈을 뜬 금의군 위사는 입을 쩍 벌리며 귀성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마치 맹수처럼 동료에게로 달려들어 그의 목을 입으로 깨물었다.
동료의 피와 살점을 물어뜯은 금의군 위사는 흑사신의 명에 의해 좀비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그처럼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아군이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했다.
그렇게 되자 금의군 위사들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했다. 아니 구분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고 살아 있는 동료들끼리 서로의 가슴에 검을 꽂고 쓰러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말 그대로 ‘아차!’하는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조범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가 데리고 온 위사들은 자신이 전 금의군에서 인재들을 고르고 또 고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피와 땀으로 손수 키운 자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당백을 자랑했고, 황실과 조정에서도 그들의 무위를 인정해 줄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황실의 안위를 책임지는 이들이니까.
그렇기에 애초에 패배라는 단어가 이들에게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조범은 입술에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이 일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후퇴하거나 아니면 마현과 조자경을 죽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조범의 눈에서 살기가 맴돌았다.
그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가공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스르릉!
조범은 마현을 노려보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마현을 향해 몸을 막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주위에 있던 금의군들이 갑자기 검을 돌려 조범을 덮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좀비가 된 금의군들이었다. 그리고 살아 있는 금의군을 공격하던 다크 스켈레톤들도 조범과 네 명의 영반들을 덮쳤다.
“이놈! 반드시 네놈의 목을 거두겠다!”
조범은 독한 표정을 지으며 마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동고동락하며 함께 땀을 흘렸던 수하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광!
조범의 손에서 무지막지한 강기들이 뿜어져 나와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그 강기들에 의해 금의군 좀비들의 몸은 산산이 분시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이냐!”
맹달을 비롯한 네 명의 영반들 역시 피눈물을 삼키며 검을 휘둘렀다.
“대영반, 이곳은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네 명의 영반이 조범을 감쌌다.
그러자 조범은 지체 없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조범은 한 영반의 어깨를 시작으로 좀비와 다크 스켈레톤의 머리를 밟은 후 마현에게로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몸을 날렸다.
“훗!”
마현은 그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마력을 양손으로 집중시켰다.
“라이트닝 재벌린, 리터레이트!”
치지직!
마현의 양손으로 번쩍거리는 번개로 만들어진 창이 만들어졌다. 마현은 허공에서 자신을 향해 낙하하는 조범을 향해 뇌창을 날려 보냈다.
“갈!”
조범은 검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뇌창을 단숨에 반으로 갈라 버렸다.
챠자자작!
하지만 뇌창은 순수한 번개로 만들어진 창이었다. 그렇기에 창의 형상이 부서졌지만 철로 만들어진 조범의 검으로 스며들었다.
“크윽!”
조범은 생각지도 못한 뇌전의 충격에 몸을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어 날아오는 뇌창을 이화접목의 수로 휘감아 마현에게로 날리기까지 했다.
과연 황실 십대고수 중 한 명답게 무공뿐만 아니라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났다.
치지지직!
조범의 검에 휘말린 뇌창은 진로를 선회하여 마현에게로 달려들었다.
마현은 마력을 분출시켜 뇌창을 감쌌다.
“캔슬!”
퍽!
마현의 마법에 뇌창은 한줌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사이 땅에 내려선 조범이 검을 잠시 왼손으로 옮긴 후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잠시 손에 마비가 온 것이 분명했다.
마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범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스승이자 현 교주인 허진에 비해 반수 가량 떨어질지는 몰라도 적어도 단순히 무위로만 따진다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그만큼 상대하기에 거북한 적.
한마디로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고수였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마법이라는 허점으로 공략한다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다 원치 않는 출혈이 생길지도 몰랐다.
선수로 조범을 흔들었다.
마현은 조범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단숨에 끝을 봐야 한다고 결심했다.
“흑풍대는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외각을 지켜라. 그리고 흑사신은 좀비들과 함께 네 영반을 사로잡으라!”
마현의 명에 다크 스켈레톤들은 썰물처럼 외각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담장 위로 흑풍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정자 위에서 조자경을 지키고 서 있던 흑사신은 네 영반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시에 다크 스켈레톤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좀비들이 자리를 채우며 네 영반에게로 달려들었다.
마현은 사방에서 날뛰는 망자들을 다시 거뒀다.
“암사령!”
그리고 암사령을 소환했다.
어둠 속에서 푸른 인광(燐光)이 솟구쳤다. 그 인광 속에는 검은 인영이 들어 있었다.
온통 검은 몸에 시퍼런 불을 뒤집어쓴 괴인, 바로 팬텀 나이트인 암사령들이었다.
후우우웅!
동시에 마현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거둬들였던 망자들이 다시 마현의 소매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망자들은 회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현이 망자들에게 시독을 주입시킨 것이었다.
마현은 그렇게 모든 힘을 개방시켰다.
암사령은 그 즉시 조범을 둘러쌌다.
조범은 자신을 조여오는 살기에 다시 검을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의 몸에서도 암사령의 살기에 대항하는 기운이 피어올랐다. 조범 역시 가진 내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는지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 서기가 피어올랐다.
마현은 조범을 향해 다리를 크게 굴렸다.
“필드 쇼크!”
콰그그그극!
조범이 서 있던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그러자 조범의 신형이 미세하게 흐트러졌고, 암사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쐐애애액!
쑤아아앙!
암사령은 각자의 병기를 이용해 조범의 사혈 곳곳을 노렸다. 하지만 조범은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강기를 뿌렸다.
카가강!
조범의 주위로 옅은 황금빛 막이 만들어졌다.
검막이었다.
마현은 다시 조범이 서 있는 땅에 필드쇼크를 뿌렸다.
“큭!”
조범의 신형이 다시 삐끗하자 매끄럽던 검막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 사이로 암권이 푸른빛 사기를 담아 일권을 내질렀다.
캉!
조범은 재빨리 검막을 거두며 검을 곧추 세워 암권의 주먹을 막았다. 하지만 서 있는 자세가 불안전한 탓에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조범의 뺨이 씰룩거리며 콧잔등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 모습에 마현의 눈빛이 반짝이며 마기가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망자들이 조범의 얼굴을 덮쳤다.
“흡!”
조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그의 몸이 마치 술에 취한 이처럼 출렁였다.
‘독?’
조범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과 동시에 가슴에서 미약한 통증을 느꼈다. 조범은 숨을 막으며 내력으로 온몸의 모공을 닫았다.
무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호흡이었다. 그건 제아무리 산을 가르고 바다를 덮는 고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호흡이 없는 내력은 제 힘을 온전히 낼 수 없었다.
자연스레 조범의 검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서걱!
조범의 어깨에 머리카락만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아주 옅은 상처라서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피가 살짝 맺혔다.
마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에게 있어 상처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운드 애그러베이션!”
마현은 그 즉시 상처 악화 마법을 시전했다.
푸학!
그러자 조범의 어깨에 난 작은 상처가 쩍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크헉!”
고통에 막혔던 조범의 숨이 잠시 터졌다.
그러자 호시탐탐 조범의 숨결을 노리던 망자 하나가 조범의 들숨에 시독을 뿌렸다. 동시에 다른 망자가 조범의 상처로 시독을 담아 스며들었다.
“크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던 조범의 뒤로 마현은 블링크 마법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리고는 그의 뒤통수를 그대로 내려쳤다.
“컥!”
정신을 잃어가는 조범을 향해 마현은 슬립 마법을 걸었다.
풀썩!
조범은 힘없이 바닥에 얼굴을 찧었다.
“여기도 끝났다, 주인.”
흑도의 목소리에 마현은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피투성이가 된 채 좀비들에게 포박당한 맹달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흑도는 그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도의 칼등으로 맹달의 뒷목을 후려쳤다.
퍽!
그 충격에 거칠게 반항하던 맹달의 몸이 아래로 축 처졌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나머지 세 영반의 몸이 던져졌다.
“죽이지 않았겠지?”
“주인 말대로 사로잡는다고 애 좀 먹었어.”
흑도의 몸 곳곳에 난 상처에서 피 대신 검은 연기가 풀풀 새어나오고 있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다른 세 흑사신도 매한가지였다.
“옛날 같으면 한 주먹꺼리였을 텐데……, 뭐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하루 빨리 주인이 그 뭐시기…… 뭐냐 팔…….”
“서클?”
“어, 빨리 올라가 주면 안 될까?”
마현은 네 영반 주위로 좀비가 되었다가 산산이 조각 난 시체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지.”
마현은 흑사신이 조금이라도 빨리 어둠 속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바로 어둠으로 돌려보냈다.
“대주.”
마현은 왕대진을 불렀다.
“생포한 수는?”
“중상 열여섯, 경상 서른일곱입니다. 사망자 마흔일곱 중 마흔하나가 좀비가 되었다가 네 영반의 손에 소멸되었으며, 그 외에 여섯은 생포 과정에서 살상되었습니다.”
왕귀진이 마현에게 보고할 때 흑풍대는 다크 스켈레톤들을 이용해 생포한 포로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마현은 그들에게 슬립 마법을 이용해 모두 잠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기절한 대영반과 네 영반에게도 슬립 마법을 걸었다.
대충 별채 안이 정리가 되자 마현은 암사령을 어둠으로 돌려보내며 흑풍대에게도 철수를 명했다.
그제야 마현은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의 피로를 느꼈다.
비록 직접 싸움에 참여를 하지 않았지만 이 싸움을 주도한 마력의 태반이 마현에게서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클 단전도 거의 바닥나 있었다.
휴식이 필요하나 마현은 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끝마쳐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마현은 공기를 타고 느껴지는 피비린내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정자로 몸을 돌렸다.
“끝났습니다, 대인.”
“허어!”
조자경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황제 폐하의 목숨이 마지막 패라고 하더니…… 결코 허언이 아니었군.”
조자경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황실에서도 최강을 자랑하는 금의군 중에서도 별군을 이처럼 몰락시키다니…….”
지금 조자경은 그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고, 감탄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놀람이 드러났던 속도만큼 빠르게 침작함을 되찾으며 그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이군. 종 집사!”
조자경은 마현에게서 시선을 돌려 별채로 들어서는 소문을 향해 소리쳤다. 조자경의 목소리에 종희당이 덜덜 떨리는 다리를 애써 이끌고 별채로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