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23화 (223/351)

# 223

23화

“후 사형을 말입니까?”

율기는 노인의 말에 지금 온 전서가 검림의 우검호법 후동관에게서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토록 이 스승의 애를 태우더니…….”

“하명하십시오, 스승님.”

“검림주를 폐기해야겠다.”

“거, 검림주를 말씀이십니까?”

“혹여나 잔머리를 굴려 골치 아프게 할까 싶어 아둔한 자를 키워놨더니 끝까지 말썽이구나. 하여 그를 파기하고 그 자리에 제갈세가의 가주란 자를 세워야겠다.”

“그 말씀은……?”

“무림맹주를 죽인 자는…… 마현이라는 자의 짓으로 해놓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스승님.”

율기가 막 명을 받들 때였다.

그때 다시 밖에서 다급하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인, 금의군 위사 한 명이 급히 송 북진무사를 찾고 있습니다.”

문 밖을 힐끗 쳐다본 송채모가 노인에게 공손히 말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러시게.”

밖을 나갔던 송채모가 잠시 후 안으로 들어왔다.

“대인, 조 도독이 마현이라는 자와 접촉했다고 합니다.”

“마현?”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동귀어진이 좋을 것 같구나. 안 그러냐, 기아야?”

율기는 노인이 무얼 말하려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무림맹 안에 진필성과 마현의 시신을 함께 놔두면 그보다 더 좋은 증거는 없을 것이다.

“범아.”

“예, 스승님.”

“네가 수고를 해줘야겠구나.”

“반드시 마현이라는 자를 제거하겠습니다, 스승님.”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조범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변했다.

“이왕이면 마현이라는 자가 조 도독을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인.”

“…….”

송채모의 말에 노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 들어 조 도독이 어르신에게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은 듯 보입니다.”

“능구렁이 몇 마리를 삼키고 있는 자이지.”

“지금 일만 보아서도 조 도독을 그대로 놔두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노인 송겸의 낮게 깔린 목소리로 보건데 그 문제를 두고 상당히 고심하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적막이 흘렀다.

“할 수 있겠느냐?”

잠시의 정적을 깨트린 송겸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 비록 시선이 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조범을 향해 있었다.

“이 제자, 스승님이 원하는 것을 갖다 바치겠습니다.”

조범은 머리를 깊게 숙였다.

“송 북진무사께서 범이를 도와주시게.”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송채모 역시 머리를 깊게 숙였다.

* * *

자정이 가까워진 해시(亥時).

초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인지라 조자경과 마현의 얼굴에는 적당히 취기가 올라 있었다.

막 술잔을 부딪치고 마시려 할 때였다.

입까지 가져간 술잔을 마현은 마시지 않고 조용히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런 마현의 얼굴은 살짝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한 잔 쭉 들이켜고 빈 술잔을 내려놓던 조자경은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는 마현을 보며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좋지 않군요.”

“……?”

“대주.”

마현은 탁자에 술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예, 주군.”

정자 아래로 검은 신형이 툭 떨어졌다.

바로 왕귀진이었다.

“누, 누구냐?”

갑작스러운 왕귀진의 등장에 조자경은 너무 놀라 술기운이 싹 가셨다.

“신원을 알 수 있나?”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주군.”

“일단 부딪혀 보면 알게 되겠지.”

마현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바로 주독이었다.

마현은 운기조식으로 일시에 주독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자 암중에 장원을 에워싼 백여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기운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제아무리 조자경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라고는 하지만 오랜 정치로 인해 직감이 빨랐다.

“암살자인가?”

“암살자라고 하기엔 그 수가 조금 많은 것 같습니다.”

마현의 대답에 조자경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종 집사! 종 집사, 게 있는가?”

조자경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별채로 들어서는 소문이 열리며 종희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대인?”

“당장 관에 연락을 취하고 사병…….”

마현이 손을 들어 조자경의 말을 가로막았다.

“관에 연락을 취하고 사병을 모으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대신 무고한 피해가 없도록 사람들을 건물 안으로 대피만 시켜주십시오.”

종희당은 마현의 말을 들은 후 조자경을 쳐다보았다. 종희당은 조자경을 모시는 집사다. 그렇기에 조자경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다.

조자경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종희당은 조자경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재빨리 별채를 빠져나갔다.

“내 목을 원하는 자라, 하필이면 자네와 함께 있을 때……. 순전히 내 목만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네의 목도 필요한지…….”

조자경은 굳은 얼굴로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술 한 잔을 거칠게 털어 넣었다.

휙휙휙―

가는 바람 소리가 담장을 타고 넘었다.

그리고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족히 백여 명에 이르렀다.

조자경은 침착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복면인들을 살폈다. 제아무리 얼굴과 모습을 감췄다고는 하지만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은연중 드러나는 법. 조자경은 정확히 그 무리의 우두머리를 찾아내 그를 쳐다보았다.

“네놈들은 국법이 무섭지 않으냐!”

조자경은 그자를 보며 호통을 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검을 뽑을 뿐이었다.

‘철저하게 준비를 했군.’

검도 평범하고 아무런 무늬가 없는 철검이었다. 거기에 흔하디흔한 검은색 무복에 복면으로 얼굴까지 완벽하게 가린 것이다.

“누가 내 목을 원하는 것이냐?”

조자경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다시 호통을 쳤다.

“저승에 가면 알게 될 것이오.”

들려온 목소리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아마도 내력으로 목소리를 변조시킨 것이 분명했다.

그때 마현의 눈동자에서는 은은한 마력이 맴돌고 있었다.

투시 마법을 시현한 것이다.

얼굴을 덮고 있는 복면을 훤히 꿰뚫고 그 안을 들여다본 마현의 입술이 슬쩍 말려 올라갔다.

우두머리 바로 뒤에 서 있는 사내들 중 한 명은 마현도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라 인사를 건네야 하는 건가 모르겠소, 맹 동영반.”

마현이 아는 척을 하자 맹달이 흠칫 몸을 떨었다.

마현의 시선이 맹달의 앞에 서 있는 자에게 향했다. 그의 몸에 은은하게 피어나는 강자의 기운. 오로지 심증일 뿐이지만 마현은 그가 분명 조범일 것이라 짐작했다.

“황실을 보호해야 할 금의군이 암살행이라……. 황제 폐하께서 이 일을 아시면 통곡을 하시겠군. 안 그렇소, 조 대영반?”

조범은 맹달처럼 놀라지 않았지만 복면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그 순간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현은 그런 조범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마현의 투시 능력을 모르기에 조범 역시 표정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조범의 명백한 오판이었다. 마현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표정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조범이 확실하군.’

마현의 눈매가 차갑게 가늘어졌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이번에 조자경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조범을 사로잡으면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영반 중 한 명은 생포해야 하니 무척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마현의 눈동자에서 은은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무어라?”

조자경은 마현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자신의 정적들 중 누군가가 사병이나 돈으로 고용한 암살자를 보냈다고 단순히 여겼다. 그런데 금의군이라고 하니 그로서도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군, 부대주와 흑풍대도 도착했습니다.』

“쳐라!”

왕귀진의 전음이 들려올 때 조범의 싸늘한 명령이 떨어졌다.

복면을 한 조범을 노려보며 마현은 왕귀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주와 1조는 별채 내부를, 부대주와 2조는 외각을 맡아 협공하라!』

마현은 일부러 소리 내어 명을 내리지 않았다.

챙 챙 챙!

사사삭 사삭!

조범의 짧고 나직한 명에 그를 따라온 금의군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오직 평범한 철검이 검집에서 뽑히는 소리와 바닥을 스치는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만큼 훈련이 잘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 소협!”

조자경은 금의군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자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현을 불렀다.

“정자를 벗어나지 않으면 무사할 겁니다.”

그 순간이었다.

서서히 공간을 좁혀오던 금의군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후드득!

금의군이 달려 나가는 정자 주위로 땅바닥과 그 위에 깔린 장판석들이 들썩거렸다. 그 광경에 금의군들의 신형이 잠시 멈칫거렸다.

푹 푹 푹!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땅거죽이 터졌다.

―끼아아아!

―캬하아아!

기괴한 귀성이 별채를 한순간 뒤덮었다.

“흐억!”

가장 선두에서 달려들던 금의군 위사 한 명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무언가가 땅거죽을 뚫고 나와 자신의 다리를 휘감은 것이다.

금의군 위사는 재빨리 평정을 되찾으며 자신이 디디고 서 있는 땅 아래로 검을 내리꽂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는 내력을 끌어올려 안력을 더욱 높였다.

그 순간 그는 땅을 뚫고 올라오는 정체 모를 인물들을 주의 깊게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희미한 횃불 아래에서 막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가 짐작했던 것처럼 사람이 아니었다.

“헉!”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크 스켈레톤들이었다.

“이, 이노옴! 귀물을 감히 황제 폐하가 계신 북경까지 가지고 왔구나!”

이미 다크 스켈레톤을 경험했던 맹달이 분노에 찬 일갈을 터트렸다.

그러는 사이 백오십 구의 다크 스켈레톤들이 원진 형태로 정자를 둘러싸며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키키키키!

금의군이 넘어왔던 담장 위에서 귀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다들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담장 위로 꾸역꾸역 올라오는 다크 스켈레톤들의 모습이 보이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한순간 정막감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정막감은 곧 마현의 움직임으로 깨졌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듯 부풀어 오르더니 소맷자락에서 뿌연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바로 망자들이었다.

―이히히히!

―으흐흐흐!

다크 스켈레톤과는 달리 사방에서 흐느끼는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마현이 특별히 망자에게 마력을 주입하지 않는 이상 망자들은 물리적 힘을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망자들의 귀곡성은 살아 있는 자들의 심령을 뒤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사방에서 귀곡성이 흐르자 금의군 위사들의 눈빛이 벌겋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잘 훈련된 금의군이었지만 그들의 내부에는 혼란스런 기운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귀곡성이 심령을 뒤흔들어 이성에 가려진 본성을 끌어올린 것이다.

“갈! 내력으로 심력을 다스려라!”

조범의 일갈이 즉시 터졌지만 그보다 다크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것은 조직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단지 금의군 앞뒤에서 귀기를 뿌리던 다크 스켈레톤들이 우르르 달려든 것이다. 다크 스켈레톤들은 당연히 수비도 무시한 채 오로지 검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마현이 망자들에게 마력을 좀 더 주입하자 귀곡성은 더욱 음산하게 변했고, 소리도 더욱 커졌다.

그렇게 되자 금의군들이 구축하고 있던 단단한 원진이 너무도 간단하게 우르르 무너졌다. 정원이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전(亂戰)으로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난전 속에서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다크 스켈레톤들이었다. 하지만 다크 스켈레톤은 흑풍대와 마현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마력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불사(不死)의 존재들이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다크 스켈레톤들의 모습에 금의군 위사들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크허어엉!”

그 순간 마현의 입에서 강력한 마력이 담긴 음성이 터졌다.

순수한 어둠의 함성, 다크 샤우트(Dark shout)였다.

그 음성은 금의군 위사들의 단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다크 스켈레톤들에게는 힘을 주었다.

마현의 다크 샤우트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금의군 위사들의 머릿속에는 공포가 완전히 뿌리박혔다. 그 공포는 머리를 혼탁하게 하고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자 다크 스켈레톤의 검에 금의군 위사 한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