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16화
‘후우.’
마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무리수이지만 현재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잠시 마음을 고른 마현은 건청궁 안으로 텔레포테이션 마법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핑!
미약하지만 귓가를 찌르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침이었다.
‘헙!’
마현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옆으로 반 보 가량 물러났다.
그 순간 건청궁 기왓장 지붕 위에 흐릿한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마현이 떠 있는 허공으로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쿠아아앙!
시퍼런 검강이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와 마현이 서 있는 허공을 덮쳤다.
어떻게 대비할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마현은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더욱 높은 허공으로 몸을 띄워야 했다.
지붕 위에 서 있는 사내는 얼굴에 금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있었고 정확히 마현이 떠 있는 곳을 직시하고 있었다.
마현은 가면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모르지만 정체는 안다.
바로 황제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그를 수호한다는 남진무사 소속 네 명의 대영반 중 한 명이 분명할 것이다.
‘혹시나 몰라 거리를 두고 있었건만!’
거리만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영반 맹달을 속인 것처럼 철저하게 마력과 신형을 숨겼었다. 그런데 금으로 된 가면을 쓴 사내는 여지없이 마현의 기척을 잡아낸 것이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 마찰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완벽하게 몸을 숨겼건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만큼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처럼 가공할 무공의 고수가 황제 곁에 한 명도 아닌 넷이나 있다는 것이다.
‘큼!’
마현은 침음성을 삼키며 일단 자금성을 빠져나갔다.
마현이 사라지고 나서 한참이나 더 허공을 쳐다보던 사내는 그제야 검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는 다시 건청궁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무슨 일이냐?
건청궁에서 업무를 보던 황제가 기지개를 펴며 물었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음성이 대전 안을 채웠다.
“궁에 침입하려는 자가 있었사옵니다, 폐하.”
“침입?”
황제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짐을 암살하려는 자가 있단 말이지.”
“그건 아닌 듯하옵니다.”
“암살은 아닌 듯하다?”
“살기를 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것은 아닌 듯 보였나이다.”
“그러한가?”
“…….”
황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들어 한 모금 목을 축였다.
“대범하게 짐을 찾아온 자라면 어떻게든 다시 찾아오겠지.”
황제는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 * *
북경 내 번화가에 위치한 한 허름한 주루.
그 구석에 마현이 앉아 있었다.
똑똑똑.
마현은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흠…….”
무모했다.
알면서 행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결국 방법은 다른 인맥을 통해 황제를 접견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문제는 마현에게는 그런 인맥이 없다는 것이다.
마현은 손가락으로 대영반 조범의 이름을 탁자 위에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북진무사와 다시 옆에 남진무사를 그렸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금군도독의 관직명이 그려졌다.
‘적어도 북진무사와 대영반은 같은 뜻을 두었을 것이고…….’
마현은 남진무사와 금군도독의 글자를 그렸던 탁자 위를 쳐다보았다.
‘조정에도 분명 이해득실에 따른 완력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당파 또한 존재할 것이고.’
마현은 술잔에 따라져 있는 독한 죽엽청을 단숨에 들이켰다. 뜨거우면서도 독한 주향이 코를 타고 흘러나왔다.
‘북진무사와 대영반 조범. 분명 그들과 반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틈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마현은 죽엽청을 한 잔 더 입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루를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북경 내에 있는 개방 분타였다.
북경 번화가에서 조금 외진 곳으로 빠져나가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폐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폐가 앞 공터에는 몇몇의 거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을 본 마현은 품에서 철로 만든 엽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돈이 아니라 청죽이 그려진 특이한 엽전이었다.
‘정말로 이걸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마현은 거지들의 허리춤을 눈여겨 살폈다.
‘저자군.’
허리춤에 세 개의 매듭이 매어진 자였다.
마현은 망설임 없이 그자 앞으로 걸어갔다.
“누구요?”
개방의 삼결 제자 괴량은 게슴츠레한 눈매로 마현을 올려다보았다.
마현은 말없이 손에 쥐고 있는 철전을 분타주로 보이는 그에게 던졌다.
철전을 본 괴량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 공자 되시오?”
“그렇소.”
괴량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오.”
괴량은 마현을 데리고 폐가 안으로 들어가 모서리가 부서져 나간 탁자로 안내했다.
“분타주 되시오?”
“괴량이라 하오.”
괴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마 공자 본인 맞으시오?”
“그렇소만?”
“낙양에서의 일이 불과 삼 일 전인지라 사실 좀처럼 믿겨지지 않아서 그렇소.”
괴량은 다시 한 번 철전을 살피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와 달리 마현은 새삼 개방의 정보력에 놀랐다. 그러면서 고민 끝에 개방을 찾아온 것이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혹여나 해서 묻는 건데……, 혹 금의군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온 것이오?”
괴량의 질문에 마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맞구려.”
괴량은 마현의 눈동자에서 생긴 미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태상방주께서도 낙양의 일을 들으시고는 금의군에 대해 세세히 알아보라 명을 내리셨소.”
‘허어…….’
마현은 속으로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마현의 대답을 들은 괴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폐가 안쪽 깊숙이 들어간 괴량은 잠시 후 얇은 서류철 하나를 들고 나왔다.
“금의군과 그 외 조정 대신들에 관한 것들이오.”
마현은 괴량이 건넨 서류를 넘겼다.
이미 공효를 통해 어느 정도 금의군에 관한 정보를 습득했다지만 수박 겉핥기처럼 내용이 빈약했었다. 그런 두루뭉술한 마교의 정보보다 확실히 개방의 정보가 더 확실했다.
마현은 괴량이 건넨 정보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꼼꼼히 살펴 내려갔다.
마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거기에는 원하던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금의군 내에는 수장들의 출신이 미묘하게 달랐다.
금군도독 조자경과 남진무사 윤심배는 한림원 출신이었고, 북진무사 송채모와 그의 휘하 대영반 조범은 대학사 송겸의 문하였던 것이다.
‘흠…….’
마현은 그 부분을 펼쳐놓은 채 팔짱을 낀 채 침음을 삼켰다.
‘특이하군.’
황실 십대고수 중 일인인 대영반 조범이 대학사 송겸의 문하였던 것이다.
‘송겸의 제자들인가?’
마현은 율기, 금대치를 조범과 함께 떠올렸다.
셋 모두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대학사 송겸은 유림을 대표하는 인물.
그런 문사들은 근본적으로 무공을 천시한다. 어디 무공뿐이겠는가? 상인들도 장사치라 하여 폄하하며 돈도 천시한다.
더욱이 송겸은 현 황제의 황사로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송겸 문하에 있는 또 다른 이의 제자들인가?’
송겸의 문하라고 해도 모두 송겸에게 학문을 사사한 이들만 존재하지 않는다. 송겸 직전제자의 제자도 있을 수 있고, 그를 흠모해 그의 문하로 들어간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정보가 너무 없어.’
마현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마현은 다시 괴량이 넘겨준 정보를 읽어나갔다.
무림인들이 살아가는 무림이라는 세계가 있는 것처럼 문인들이 살아가는 유림이라는 세계가 분명 이 땅에 있다. 크게 보면 대학사 송겸의 문하나 한림원 출신 문관들이나 모두 유림의 문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이 둘 사이에 틈은 있다.
문제는 그 틈이 자신이 파고들어갈 정도로 큰지 작은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현의 고민은 길어졌다.
괴량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조정에 크고 작은 파벌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파벌은 대학자이자 현 황제의 황사인 송겸의 문하였고, 그 다음이 한림원 출신들이 모인 계파였다.
그 외에 크고 작은 파벌들이 존재했지만 송겸의 문파와 한림원 출신의 계파의 합이 7할이 넘었다. 두 집단 모두 황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내고 있는 파벌이기도 했다.
현 황제가 황권 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키운 곳이었다.
‘두 파벌이 대부분 뜻을 함께하지만 분명 의견이 엇갈린 곳도 있다고 했으니…….’
마현은 손가락으로 금군도독 조자경의 이름에 손가락을 얹었다.
‘우를 범하더라도 당장은 이자를 찔러볼 수밖에 없겠군.’
분명 존재하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유림.
둘 다 그 유림에서 살아가는 문사 출신들이라 께름칙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 * *
아담한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소박한 정자 위에 육십 줄의 초로의 노인 한 명과 사십 줄의 장년인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탁!
백돌 하나가 반상 위에 놓여졌다.
“어제 침입자가 있었다고?”
탁!
흑돌 하나가 백돌을 막아서며 대각선으로 놓여졌다.
“그렇습니다, 도독.”
백돌을 든 노인은 금의군 도독 조자경이었고, 그 앞에 흑돌을 쥔 장년인은 남진무사 윤심배였다.
“흠!”
바둑판 형세에 대한 고민인지 아니면 윤심배의 대답 때문인지 조자경의 입에서는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정적이 흘렀고 돌이 바둑판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현 정국에서 모반을 꾸밀 만큼 배포가 큰 인물이 있었던가?”
“청룡의 보고에 의하면 살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딱!
조자경이 힘 있게 바둑알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모르는 일일세.”
“당분간 사방신(四方神) 모두 황제 폐하 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고 명을 내려두었습니다.”
남진무사 아래에는 대영반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 있다.
사실 조직이라고 해봐야 달랑 네 명.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드러나지 않은 황실의 신비 고수이자 황실 십대고수 중 네 명인 대영반들. 작금 황제의 신변을 가장 최측근에서 보호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방신의 이름처럼 그들은 그저 청룡, 주작, 백호, 현무라고만 불리고 있을 뿐이었다.
“잘했군. 북진무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나?”
“아직 알리지 않았습니다, 도독.”
윤심배의 대답에 조자경이 고개를 들었다.
“북진무사 내 움직임이 이상하여 고민 중입니다.”
“이상한 움직임?”
“황궁과 황도에 있어야 할 북진무사 내 금의위들 중 동영반을 비롯해 그 휘하의 금의위들이 달포 전부터 낙양에 주둔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흐흘.”
조자경은 가래가 끓어오르는 웃음을 터트리며 메마른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