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14화
이 정도의 강시들을 낙양 성내로 몰래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금대치 자신은 그렇게 여겼다.
이대로는 마현을 사로잡기는커녕 오히려 구금상단 총단이 무너질 판이었다.
“관에서는 아직이더냐?”
금대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하지만 금대치의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금대치도 알고 있었다. 관에서 병사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쾅!
“크헉!”
그사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천호장 하나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쿵!
그 앞에 흑창이 창을 바닥에 찍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본좌가 바로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이시다! 알겠느냐?”
흑창은 오연(傲然)하게 서서 쓰러져 있는 천호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천호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자 흑창의 눈썹 한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눈이 가늘게 쭉 찢어졌다.
흑창이 한 걸음 크게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런데! 감히 이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에게 덤벼? 진정한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의 맛을 보여주마!”
창대를 잡고 있던 흑창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불룩 솟아났다. 그리고 일갈을 터트리며 창을 휘둘렀다.
그 빠르기가 섬전보다도 빨랐다.
퍽 퍽 퍽 퍽 퍽!
피 냄새에 취한 흑창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감히 자신에게 도를 겨눈 천호장만 보일 뿐.
“으아악!”
그때부터는 싸움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마현의 뜻대로 이제 율기를 보호한다고 앞을 가로막는 것은 사라졌다.
마현은 마치 계단을 걷듯 허공을 천천히 걸어 율기 앞에 내려섰다.
“장애물이 완전히 사라졌군. 안 그런가, 율 군사?”
차가운 미소가 지어지며 하얀 이빨이 살짝 드러났다.
“확실히 놀랍습니다. 그동안 제가 소교주님을 과소평가 했군요.”
율기의 어투는 여느 때처럼 부드러웠지만 눈빛과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고 있는지 눈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소교주님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우우웅!
율기의 몸에서 짙은 황금빛 내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가 아닐 것이다. 갈가리 찢어 죽여 버릴 것이다!”
마현의 등 뒤로 금대치가 율기와 같은 황금빛 내력을 분출시키면서 다가왔다. 그는 율기와 달리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마현은 몸을 반쯤 틀어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놈들의 정체가 뭐지?”
마현은 비로소 율기와 금대치의 내력이 황궁의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염라대왕이 알려줄 것이다!”
전혀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마현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일을 꾸미는 자가 누구냐?”
“갈! 네놈의 입에 오르내릴 분이 아니시다!”
마현의 질문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금대치가 호통을 치며 단숨에 달려들었다. 그 즉시 마현은 율기에게 몸을 날리며 등 뒤로 실드를 쳤다.
“죽어라!”
금대치는 강렬한 내력을 담은 장풍을 마현의 등에 내질렀다.
파방!
강력한 장풍이 등을 강타했지만 실드에 막혀 마현에게 그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마현은 그 힘을 이용해 더욱 빠르게 율기에게로 달려들 수 있었다.
순식간에 율기 앞에 도달한 마현은 마력을 손으로 집중시켰다.
후아아악!
묵빛 강기를 담은 마현의 손날이 율기의 목을 노렸다.
율기는 재빨리 양손을 모아 목을 보호했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율기의 귀를 관통했다.
‘……!’
하지만 그 어떤 충격도 없었다.
‘허초?’
율기의 눈이 급격히 커지며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마현은 없었다.
그때였다.
등 뒤로 느껴지는 살기에 오한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율기는 체면불구하고 바닥으로 뒹굴어야 했다.
콰드득!
율기가 서 있던 곳 바닥이 강기로 인해 상처가 길게 만들어졌다.
나려타곤(懶驢打滾)을 한 탓에 온몸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율기는 그답지 않게 인상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정말 곤란한 일이군요.”
율기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챙!
평범한 가죽 허리띠라고 여겼던 곳에서 연검(軟劒)이 튀어나왔다. 흐느적거리는 검신이었지만 내력이 주입되자 검날이 빳빳해지며 예리하게 섰다. 그사이 금대치도 검 한 자루를 구해와 마현과 대치하고 섰다.
“검이라…… 좋지!”
마현은 오른손을 땅바닥을 향해 내렸다.
“본 스워드!”
후우웅!
바닥에 검은 빛이 번지더니 그 중앙에서 새하얀 뼈로 만들어진 검 한 자루가 서서히 밀려 올라왔다. 골검(骨劍)을 손에 쥔 마현의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에 율기는 더욱 인상을 찌푸렸고, 금대치는 괴이한 광경에 몸을 흠칫 떨었다.
마현의 왼손이 금대치와 율기 쪽으로 올라갔다.
“지옥의 겁화, 시트 오브 프레임즈!”
마현이 허공에 왼손을 휘저었다.
화르르륵!
그러자 율기와 금대치 뒤로 불로 만들어진 벽이 솟구쳤다.
“한 놈은 죽을 것이오, 한 놈은 죽지 못한 것을 평생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눈빛이 차갑게 번뜩인 순간 마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형환위처럼 모습을 감춘 마현은 금대치와 율기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쐐애애액!
강기를 담은 마현의 골검이 율기의 다리를 베어 들어갔다.
율기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재빨리 다리를 들어 올려 마현의 골검을 피했다. 그러자 마현의 몸이 팽이처럼 팽그르 돌더니 금대치의 심장을 향해 검을 섬광처럼 찔렀다.
금대치는 놀란 가슴을 애써 다잡으며 재빨리 검을 휘둘러 골검을 막았다.
캉!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충격에 금대치는 미약한 신음을 머금으며 뒤로 물러났다.
치지직!
하지만 등 뒤의 이글거리는 화벽에 막히자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사형!”
그 모습에 놀란 율기가 살기 어린 눈동자를 번뜩이며 마현의 등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보다 마현의 마법이 더 빨랐다.
“마나 미사일, 리테레이트!”
숭 숭 숭 숭 쑤앙!
다섯 발의 마나 미사일이 율기에게로 쏘아졌다.
율기는 금대치를 도우러 가기도 전에 마나 미사일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러는 사이 마현은 더욱 강하게 금대치를 몰아갔다.
마현이 완벽하게 허점을 노린 것이다.
율기는 마현이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공격해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의 그런 방심을 마현은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거기에 상식 밖의 무위를 선보이니 쉽게 대처하기도 어려웠다.
쐐애애액!
마현의 골검에 강기가 담겼다.
그리고 여지없이 금대치의 가슴을 향해 파고 들어갔다. 그러자 금대치의 얼굴에 사색(死色)이 떠올랐다. 여전히 치솟고 있는 불길로 인해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마현의 검을 마주하기에는 패색이 짙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율기 또한 놓칠 리 없었다.
뼈를 내주고 살을 내줘도 금대치를 살려야 한다.
“흐아압!”
율기는 다시금 날아오는 마나 미사일 중 사혈을 노리는 것 외에는 피하지 않았다.
푹 푹!
마나 미사일 중 2발이 율기의 허벅지를 뚫었고, 옆구리를 벴다. 불이 지져진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율기는 더욱 강하게 바닥을 박차며 마현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쑤아아악!
그리고 연검에 검강을 담아 마현의 등을 베어갔다.
그 순간.
파밧!
마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율기는 그간 마현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재빨리 몸을 뒤로 틀었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자신도 모르는 사이 땅이 스스로 튀어 올라와 발목을 꽉 잡고 있었던 것이다. 율기는 놀라고 말았다. 땅속에 묻힌 발을 빼내기 위해 힘을 주자 오히려 늪에 빠진 것처럼 무릎까지 땅 속으로 푹 파묻힌 것이다.
“이제야 네놈을 잡았군.”
율기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마현의 싸늘한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컥!”
율기는 뒷목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금대치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금대치가 살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를 터트리며 마현에게로 달려들었다.
마현이 소매를 휘둘렀다.
―이히히히!
그러자 망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망자들이 벌떼처럼 금대치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쿠당탕탕탕!
마음이 급한 금대치는 갑자기 엉킨 다리를 미처 수습하지 못하다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마현의 눈동자에서 회색빛이 감돌자 망자들은 금대치의 몸과 머리를 바닥으로 짓눌렀다.
“기다려라, 곧 네놈의 목을 가지러 다시 올 터이니!”
마현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율기에게로 막 걸음을 내딛을 때였다.
쿠오오오오!
섬뜩한 파공음이 마현과 율기 사이를 갈랐다.
크그극!
둘 사이 바닥에는 어느새 긴 선이 만들어져 있었다.
섬뜩한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제아무리 금대치와 율기에게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이런 공격을 날릴 때까지 전혀 기척을 잡아내지 못할 만큼 놀라운 고수가 새로 등장한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을 양단이라도 하려는 듯 살기가 마현의 머리 위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마현은 흠칫하며 재빨리 블링크를 이용해 허공으로 이동했다.
콰과과과광!
마현이 떠 있던 자리, 그 아래는 화포의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모습에 마현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후아아앙!
허공에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는 마현에게로 또 다른 살기가 덮쳤다. 마현은 재빨리 실드를 겹겹이 만들었다. 하지만 살기를 머금은 강기에 실드는 여지없이 부서졌다.
“큭!”
마현은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순간이동 마법을 펼쳐 내려섰다. 그런 그의 앞에 한 사내가 어느새 서 있었다.
이형환위.
마현이 보여준 순간이동 마법이 아닌 진정한 이형환위였다.
그 사내는 마땅찮은 표정으로 한껏 눈가를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네 명의 천호장에게서 멈췄다.
“멍청한 놈들! 고작 무림의 잡배들에게 당하고 있느냐!”
내력이 한껏 담긴 사자후는 구금상단 내 전장을 한순간 뒤흔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