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13화
콰과광!
마현이 율기를 향해 달려들던 그 자리에 한 줄기 선이 땅에 깊숙이 새겨진 것이다. 마현은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법을 이용해 율기를 압박하려는 심사였다.
하지만 그것도 마현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가 아니다!’
쐐애액!
쑤아앙!
두 줄기의 살기가 다시 마현의 등과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마현은 어쩔 수 없이 블링크를 이용해 율기와의 거리를 둬야 했다.
콰과광!
아니나 다를까. 마현이 서 있던 자리에 다시 흉측한 상처가 만들어지며 새로운 인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율기가 서 있는 곳 앞에 세 명의 낯선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마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둘 정도라면 어찌어찌 상대해가며 율기를 사로잡을 수 있겠지만 넷은 버거웠다.
그만큼 율기를 보호하고 있는 네 명의 무위는 가히 일절이었다. 당장 무림에 나간다 하더라도 쉽사리 적수를 만나기 힘들 정도였다.
‘버겁다한들…….’
마현의 눈이 반짝였다.
동시에 마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블링크를 이용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네 명의 사내가 포진한 중앙이었다.
“파이어 재벌린, 리터에리트!”
마현은 단숨에 화창 네 자루를 만들어 사내들의 가슴으로 날렸다.
쑤아아앙!
느닷없이 허점을 찔린 탓인지, 아니면 마현이 설마 불로 만들어진 창을 날릴지 생각조차 하지 못한 탓인지, 사내들은 마현이 날린 파이어 재벌린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
콰광!
“큭!”
“흐윽!”
사내들은 파이어 재벌린에 의한 충격에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다들 도를 들어 파이어 재벌린을 막았지만 완벽하지 못해 어깨며 옆구리 부근의 옷들이 불에 타 그슬리며 옷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회심의 일격에도 불구하고 마현의 얼굴은 더욱 딱딱해졌다.
사내들이 입고 있는 평범한 무복 속에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갑옷이었다. 그리고 그 갑옷은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황실 군부의 상징인 금의위(錦衣衛)의 갑옷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교위 정도가 아닌 영관급임에 틀림없었다.
갑옷이 드러나자 사내들의 눈빛도 조금 전과 달라졌다.
“율 선생. 사로잡는 걸로는 안 될 것 같소이다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거추장스러운 무복을 찢어내며 율기에게 질문했다. 어차피 마현에게 신분이 드러난 이상 무복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또한 거치적거리는 무복을 벗음으로써 좀 더 편히 몸을 놀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율기의 대답에 사내의 얼굴에는 곤란함이 묻어나왔다.
“장담할 수 없소이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선(先)은 사로잡는 걸로 해주십시오.”
“그리하리다.”
사내는 어깨를 풀며 마현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이것 참, 대영반이 이곳으로 보낼 때는 휴가를 보내주는 걸로 알았는데.”
그 뒤로 한 사내가 나서며 툴툴거렸다.
“말조심 하게.”
“그 사람 깐깐하기는……. 이보게, 이 천호장. 어차피 죽어 영원히 입을 닫게 만들 텐데 뭔 걱정을 그리 사서 하시는가?”
“크흠!”
처음 등장했던 사내, 이 천호장은 탐탁지 않은 음성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마현은 그 짧은 대화로 그들이 황실 소속 금의위의 영관급 천호장임을 알아차렸다.
‘퇴역한 금의위이기를 바랐건만.’
마현은 달라진 그들의 기세에 눈빛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콰당!
그때 전각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금 사형.”
율기가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중년인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네놈은 누구냐?”
그 중년인은 마현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금대치?’
마현이 막 중년인의 정체를 알아차릴 때 율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다시피 저를 찾아온 마교의 소교주입니다.”
“마교의 소교주?”
금대치의 눈빛이 달라졌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금 사형?”
율기의 말에 금대치의 입술이 옆으로 찢어졌다.
“능글맞은 놈. 너를 안 도와줬다가 스승님께 무슨 역정을 들을까?”
금대치는 율기에게 슬쩍 눈을 부라린 후 밖을 향해 소리쳤다.
“본가에 쥐새끼 한 마리가 침범했다.”
뿌웅― 뿌우웅―!
금대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수많은 기척들이 이 전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차!’
마현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율기와 금의위 천호장들에게 눈을 빼앗겨 가장 중요시해야 할 속전속결을 그만 놓치고 만 것이다. 잠시 후 어느새 수백의 기척들이 담장을 에워싸고 있음이 느껴졌다.
“총관, 지금 당장 관부에 연락하라.”
“알겠습니다, 대상주님.”
총관이라는 자가 사라지자 금대치는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쳐라!”
“와아아아!”
“우와아아!”
금대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담벼락으로 수십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현이 모습을 드러낸 상단 무사들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이 율기가 다시 모습을 감출 수 있다.
“흑풍대! 상단 무사들을 막으라!”
“명!”
허공에서 왕귀진의 우렁찬 복명소리가 들려왔다.
푹 푹 푹!
새카만 뼈들이 땅속을 뚫고 튀어나왔다.
―키키키키!
키히캬캬캬!
특유의 귀성이 전장 안에 울려 퍼지며 다크 스켈레톤들이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 시퍼렇게 번뜩이는 안광은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산했다.
“흑사신!”
“불렀어, 주인?”
흑도를 선두로 흑사신 모두가 어둠에서 깨어났다.
“금의위 천호장 넷을 맡으라!”
쐐애애액!
그사이 천호장 하나가 재빠르게 다가와 마현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캉!
그 도를 흑도가 막아섰다.
“주인, 이놈들?”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던진 흑도의 몸에서 짙은 흑무가 피어났다.
“크크크, 죽었다고 복창해!”
천호장을 바라보는 흑도의 눈에서 짙은 사기가 폭사되었다.
“흐아압!”
흑도는 기합을 내지르며 천호장을 힘으로 밀었다. 그렇게 일 장 정도 미끄러진 천호장을 향해 흑도가 달려들며 도를 휘둘렀다.
캉 캉 캉 캉 캉!
흑도는 수비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오로지 공격일변도로 무지막지하게 도를 휘두를 뿐이었다.
“으랏챠챠챠!”
흑도는 신이 났는지 사이사이에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천호장을 마구 몰아붙였다.
마현은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어차피 자신의 신분이 발각되었다.
이제는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된 이상 무조건 율기를 잡아야 했다.
‘진정한 아수라장을 만들어 주지!’
마현의 몸에서 마력이 꿈틀거렸다.
“파이어 볼, 리터레이트!”
마현의 양손 위로 사람 머리만한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쑤아앙!
그런데 사방으로 쏘아지는 불덩이의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새 새로이 만들어진 수십 개의 불덩이가 사방으로 날아간 것이다.
콰과과광― 콰르르르!
구금상단 총단 안은 금세 끌어 오르는 화마로 뒤덮였다.
“불이야!”
“총단에 불이 났다!”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마현은 마지막으로 도종극과 율기가 만났던 전각으로 파이어 볼을 날렸다. 붉게 타오르는 파이어 볼은 화마로 변하며 탐욕스럽게 그 전각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화르르르 쿠당탕탕!
전각에서 치솟은 불길은 다시 사방으로 이어졌다.
전각 하나가 통째로 불에 탐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열기 또한 가벼이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구금상단의 무사들과 금의위 천호장 넷은 당연히 사방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과 열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무공을 익혔어도 그들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인 까닭이다.
하지만 다크 스켈레톤과 흑사신은 다르다.
그들은 죽음에서 깨어난 자들.
오히려 불은 죽음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자 흑사신과 다크 스켈레톤은 상대적으로 더욱 강한 힘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히익!”
구금상단 무사 하나가 다크 스켈레톤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다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전각 일부가 화마에 먹혀 무너지며 그 파편 몇 조각이 불덩이를 뒤집어쓴 채 덮친 것이다.
―키키키키!
다크 스켈레톤은 불덩이에 휩싸인 파편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왼손을 들어 떨어지는 파편을 쳐낼 뿐이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음산한 귀성을 터트리며 구금상단의 무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한 폭의 지옥도에 자신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은 무사의 몸을 무디게 만들었다.
다크 스켈레톤의 흉골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마치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다크 스켈레톤이 몸을 앞으로 구부정하게 만들며 입을 쩍 벌렸다.
―캬아아아아아!
흉성을 터트렸다.
쐐애애액!
그리고는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며 들고 있던 검을 구금상단 무사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헙!”
무사의 무뎌진 몸은 금세 다시 복원되지는 않았다. 무뎌진 몸은 빠른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발이 꼬여 버렸다. 그렇게 무너진 균형으로 인해 다크 스켈레톤의 검을 막기는 막았지만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크 스켈레톤은 바닥에 나뒹군 무사의 가슴을 밟으며 검을 역수로 잡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캬하아!
살기 어린 흉성을 터트리며 다크 스켈레톤은 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으아아악!”
무사의 처절한 단발마가 터져 나왔다.
그런 비명이 장원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이, 이 무슨…….”
금대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다크 스켈레톤에 관한 것은 율기에게서 들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강시라는 것이 사실상 전장에 나타나면 무서운 존재인 것은 틀림없다.
몸이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명령자의 명에 의해 끝까지 싸우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이 있으면 분명 단점도 있는 법.
바로 강시를 전장까지 운반하는 일이다.
적어도 마교 영역이 아닌 곳에서는 강시를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겼다. 제아무리 마교 소교주라고 해도 수백 구의 강시들을 낙양까지 가지고 오지는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꺄아아아!
―캬캬캬캬!
바로 눈앞에서 그 강시들이 날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