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12화
“림주, 맞습니까?”
도종극의 얼굴을 직시하는 율기의 눈매는 가늘었다.
“크크크, 패장의 기분이 이런 것인가?”
도종극은 눈가를 찌푸리면서도 입가는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흠…….”
도종극의 말에 율기의 목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일이 걸려 실패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율기는 쓰게 입맛을 다시며 뒷말을 흐렸다.
“광풍적월대는 어찌되었소?”
“면목이 없군.”
도종극은 주먹을 말아 쥐며 눈을 시퍼렇게 떴다.
“살아남은 대원은 없는 것이오?”
율기의 목소리가 약간 차가워졌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빠드득. 마현 그놈에게 대원 모두가 당했다!”
그때 율기의 눈매가 약간 날카로워졌다.
“일단 쉬시오.”
율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율 군사.”
“왜 그러시오?”
“본 림과 나를 지원해 준 분은 누군가?”
“……?”
“패장이라 이제는 들을 자격도 없다는 건가?”
도종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율기의 몸에서 황금빛 서기가 살기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
“네놈은 누구냐?”
차가운 율기의 목소리에 도종극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누구라니? 보고도 모르는가?”
“갈!”
율기는 도종극의 말에 일갈을 터트리며 일장을 내질렀다.
은은한 황금색을 띤 장풍이 도종극이 앉아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콰광!
탁자와 의자가 장풍에 부서져 나뭇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이게 무슨 짓인가?”
도종극이 율기의 장풍을 피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놈은 누군데 도 림주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건가?”
“…….”
율기의 말에 도종극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마현?”
“…….”
“그거야 사로잡아 보면 알겠지. 그의 수하인지 아니면 본인인지.”
율기가 도종극이 서 있는 허공으로 시선을 살짝 들어올렸다.
“사로잡으세요!”
퍽!
율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종극의 뒤로 한 인형이 천장에서 뚝 떨어졌다. 그리고 섬전(閃電)보다 빠른 주먹으로 도종극의 뒷목을 후려쳤다.
“크헉!”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마현이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부릅떴다.
그런 마현의 코와 입으로 붉은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주, 주군!”
그 모습에 왕귀진과 철용이 깜짝 놀라 급히 다가섰다.
* * *
낯선 그림자의 일격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뻣뻣한 통나무처럼 몸이 넘어갔다.
쿵!
그리고는 죽은 듯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율기는 재빨리 다가가 쓰러진 도종극의 몸을 살폈다. 특히 율기가 중점적으로 살핀 부분은 얼굴과 눈동자였다.
“흠…….”
율기는 무거운 침음성을 머금었다.
인피면구를 썼거나, 아니면 역용술로 도종극의 모습으로 변했으리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쓰러져 있는 자는 분명 도종극이 확실했다.
‘어떻게 된 거지? 확실히 도종극이었나?’
이내 율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확실히 도종극이었다면 자신이 갈승도와 그 수하들을 가리켜 광풍적월대라고 부르자마자 살기를 일으키며 귀림의 무인이라고 지적을 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만나자마자 마현에게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더욱 독한 독약과 영약을 준비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분명 자신을 보자마자 배후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았다.
모든 면을 미루어봤을 때 필시 이자는 도종극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체는 분명 도종극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율기는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양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살수를 쓰셨습니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혼혈(昏穴) 자리를 강하게 내려쳤을 뿐입니다.”
율기는 도종극의 몸을 반대로 뒤집었다.
사내의 말대로 도종극의 뒷목에는 치명적인 살수의 흔적은 없었다. 그것 이전에 도종극은 스스로 생(生)을 버리고 사(死)를 택했다. 이런 수에 죽을 리 없다는 것을 율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술인가?’
율기는 자연스레 마현을 떠올렸다.
아울러 그가 강시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 또한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군.’
율기는 심각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율기는 섭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뜻대로 조정하는 사술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언뜻 떠올렸다.
콰당!
율기는 그 자리에서 거칠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응?’
율기는 구금상단 총단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법한 고층의 건물을 주목했다.
‘구조루라는 주루였던가?’
율기는 내기로 안력을 높였다.
항상 닫혀 있던 구조루의 창문이 오늘따라 활짝 열려 있었다. 율기는 더욱 내력을 극으로 끌어올려 창문 너머를 살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마, 마현?’
* * *
“주, 주군. 괜찮으십니까?”
왕귀진이 휘청이는 마현을 부축했다.
“괜찮다.”
마현은 코와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구금상단 총단 내부를 내려다보다 눈을 감았다. 마법이 강제로 깨지는 바람에 흔들린 서클 단전을 달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마라역천공을 이용해 마력을 끌어올려 서클 단전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지?’
마현은 도종극의 망자에게서 율기에 대한 기억을 긁어냈었다. 거기에 맞춰 움직였다. 헌데 율기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영악한 율기라면 조금이라도 달라진 도종극의 행동에 눈치챘을지도 모르겠군.’
생각에 잠긴 마현은 도종극이 되어 율기를 만났을 때의 기억을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떠올렸다.
‘역시 그건가?’
의심스러운 건 단 한 가지였다.
바로 갈승도와 광풍적월대를 물어왔을 때 그만 무심코 대답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서클 단전의 치료가 끝났다. 마현은 마력을 다시 단전으로 모아 서클로 밀어 넣으며 눈을 떴다.
‘일이 틀어진 이상 며칠 후에 다시 도모해야겠군.’
긴장으로 바싹 움츠러들었다가 시간에 못 이겨 잠시 느슨해지려는 때가 일을 다시 벌이기에는 적격이다.
혹여나 일이 틀어질 것을 대비해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두었다. 율기가 기를 쓰고 자신들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려고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여 구조루 9층에 연극까지 해가며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만 철수…….”
막 몸을 돌리려던 마현의 몸이 딱 멈췄다.
강렬한 시선을 느끼자 마현은 다시 구금상단 총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율기와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창문을 닫지 않은 것이 실수다.
율기라면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한 후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다.
‘무리수라고 해도 이렇게 된 거 속전속결로 끝낸다!’
마현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흑풍대에게 명을 내렸다.
“구금상단 외벽을 에워싼 후 대기하라.”
“명!”
흑풍대의 복명을 들으며 마현은 율기가 서 있는 곳으로 텔레포테이션 마법을 이용해 곧장 순간이동했다.
팟!
검은 빛이 율기 앞에서 터졌다.
그 빛 속에서 한 줄기 검은 신형이 율기를 향해 튀어나왔다. 바로 마현이었다.
“과연 네놈이었구나!”
율기는 마현을 보자 호통을 치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마현이 그런 율기를 잡기 위해 더욱 속도를 높이려 할 때 앞을 가로막는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허리에 차고 있는 도를 뽑으며 마현의 허리를 베고 들어왔다.
마현은 그 사내가 꼭두각시 마법을 파괴한 장본인임을 알아차리며 왼손에 암 바클러 마법을 이용해 자그만 실드를 쳤다.
캉!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마현은 허리를 바싹 낮추며 사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사내는 허리를 당기며 무릎으로 마현의 턱을 노렸다. 마현은 마라독혈수공의 한 초식으로 사내의 무릎을 옆으로 흘리며 옆구리를 노리고 일장을 날렸다.
팡!
옆으로 몸을 피할 줄 알았던 사내는 오히려 마현의 품으로 더욱 가까이 붙으며 한 손으로 마현의 목을 잡고는 머리를 휘둘렀다.
‘헉!’
마현은 다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사내의 가슴을 밀치며 뒤로 물러났다.
후웅!
조금만 늦었더라면 사내의 박치기로 인해 안면이 모두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마현은 당황한 심정을 추스르기 위해 사내와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그렇게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지간한 삼류무인이나 뒷골목 건달이 쓸 법한 몇 수가 그 사내의 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는 삼류무인이나 뒷골목 건달은 아니었다.
“어찌하오리까?”
“반드시 사로잡으세요!”
사내는 율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도를 들어 상단세 자세를 잡았다.
후우웅!
그런 그의 몸에서 흐르는 내력이 도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검에 서렸다.
‘화, 황실? 군부?’
마현은 그제야 사내의 내력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무림에서 잘 쓰지 않는 지독히 실전적이고 직설적인 도법. 거기에 황실 무공을 대변하는 황금빛 서기(瑞氣).
‘설마 황실이란 말인가?’
마현은 이를 악물었다.
사내가 쓰는 무공의 원류를 알아차리자 마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금의위 무반 출신일까?
아니면 단지 황실의 누구와 끈이 닿아 있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황실의 개입인가?
상념이 복잡해지며 뒤엉켰다.
하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율기.
‘네놈을 기필코 잡아 반드시 배후를 찾아내겠다!’
“히야압!”
기합을 지르며 일직선으로 도를 내리긋는 사내를 보며 마현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블링크를 이용해 단숨에 사내를 넘어 율기 앞으로 몸을 날렸다.
“나도 그다지 쉬운 상대는 아닙니다!”
후웅!
율기는 몸을 그 자리에서 팽그르 돌리며 다리를 차올렸다.
마현은 율기의 발을 쉽게 피하며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건 뒷목이 서늘해질 만큼 시퍼런 살기와 동시에 새로운 기척을 느낀 탓이다.
쑤아앙!
마현은 재빨리 몸을 뒤집어 그 자리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