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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07화 (207/351)

# 207

7화

“인그레이브(Engrave), 이페이스 에어(Efface air)!”

마현의 손 안에서 만들어진 기이한 문양들이 양피지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누런 빛깔이 도는 양피지 겉에 마치 인두로 지진 듯한 검은 선들이 만들어졌다.

마현은 그 양피지를 둘둘 말아 응후에게 내밀었다.

“응 족장.”

“하명하시오, 마 소교주.”

“이 양피지를 가지고 불이 난 곳으로 가시오. 그래서 불 중심에서 이 양피지를 찢으시오.”

마현의 말에 응후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말이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일단 내 말대로 해주시오. 나는 이 일에 나의 목숨을 걸었소.”

“그야 그렇지만…….”

“속는 셈치고 그리 해주시오. 일단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좋겠소.”

워낙 마현의 표정과 목소리가 진지하여 응후는 달리 반박할 수가 없었다.

“뭐 속는 셈치고 한 번 해보리다.”

“고맙소.”

응후는 주위를 둘러보다 비교적 불길이 작으면서 이곳과 가까운 곳을 쳐다보고는 밀림 속으로 몸을 날렸다.

“현.”

야율황기가 마현을 불렀다.

아무리 마현을 믿는 야율황기였지만 그 역시 쉽사리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마현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나는 자네의 친우일세. 적어도 친우에게 거짓을 늘어놓지는 않아.”

마현은 야율황기에게 담담한 미소를 보인 후 다시 양피지에 조금 전처럼 공기소멸 마법을 새겨나갔다. 그렇게 한 열 장쯤 새길 때였다.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응후가 뛰어간 불길이 번지고 있는 곳이었다.

“어!”

응족 야인 하나가 입술을 살짝 벌리며 저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를 자그맣게 터트렸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던 불길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응족 야인들 모두, 그리고 야율황기까지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완전히 불길이 사라진 후에도 멍하니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눈을 깜빡이거나 손등이나 소매로 눈을 닦아댔다. 석칠로 일어난 불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쉽사리 믿지 못한 것이다.

“소, 소궁주님.”

그런 그들은 밀림에서 뛰어나오는 응후의 목소리에 멍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꺼, 꺼졌습니다. 거, 뭐시기…… 불이, 펑 하고 터지자 잠시 숨을……, 양피지를 찢었는데…….”

횡설수설하는 응후의 말에 야율황기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답답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온 것이다.

“똑바로 말 못해.”

“여하튼 불이 꺼졌습니다.”

응후는 대충 대답하고는 마현을 쳐다보았다.

“부적술입니까? 아니 대단한 부적술입니다.”

응후의 눈에는 마법 스크롤이 부적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아니 부적 이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대답은 나중에 하지요. 그리고 이거.”

마현은 그사이에 더 만들어놓은 스크롤 열댓 장을 응후에게 넘겼다.

“맡겨만 주십시오.”

무슨 사술인지, 부적술인지 모르겠지만 응후는 이 양피지로 불을 끌 수 있다는 것은 알았다.

몸으로 느꼈고, 눈으로 보았다. 마현을 바라보는 응후의 두 눈에는 굳은 믿음이 있었고, 그런 믿음은 마현을 대하는 공손한 태도에서 드러났다.

“야, 다들 모여.”

응후는 응족 야인들을 모아 양피지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다른 거 없다. 불길 중앙에서 양피지만 찢으면 된다.”

응후와 달리 응족 야인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지 다들 머뭇거리는 모습들이었다.

“이것들이! 일단 다녀와!”

“아, 알았소. 족장.”

그렇게 십여 명의 응족 야인들이 사방을 뿔뿔이 흩어졌다. 그 사이 마현이 스크롤을 만들어 응후에게 넘기려 했지만 야율황기가 그 마법이 새겨져 있는 양피지를 중간에서 가로챘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 눈으로 봐야겠군.”

야율황기가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찢으면 되지?”

“그렇네.”

“흠…….”

야율황기는 고개를 잠시 주억거리고는 불길이 치솟는 밀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펑 펑 펑 펑!

밀림 곳곳에서는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야율황기의 귓가를 때렸다.

야율황기는 가볍게 몸을 날려 나무 위로 올라가 한 마리 표범처럼 나뭇가지를 타고 질주했다. 그렇게 제법 달려 나무를 잡아먹는 화마 근처에 도달했다.

하지만 쉽사리 화마가 있는 곳으로 가지 못했다.

병사 몇이 계속 불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드득.

야율황기의 턱이 움직이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율황기는 치밀어 오르는 살기를 애써 가라앉히며 몸을 숨겼다.

병사들도 뜨거운 불길이 싫었는지 대충 주위에 불을 몇 번 더 붙이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그사이 화마는 더욱 커져 있었다.

야율황기는 주먹에 꽉 움켜쥐고 있는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찢으면 된다고 그랬지?’

야율황기는 양피지를 억세게 움켜쥐고는 화마의 중심으로 몸을 날렸다.

“크윽!”

금방이라도 살이 탈 것만 같은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마구 긁어댔다.

숨쉬기도 거북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는 화마는 야율황기의 몸을 금세 땀으로 적셔 놓았다.

야율황기는 양피지를 들어 강하게 찢었다.

부욱!

양피지가 단숨에 찢어졌다.

야율황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런 현상도 생기지 않았고, 불도 꺼지지 않았다.

“마현이 속일 리는 없…….”

야율황기가 인상을 마구 쓸 때였다.

“흡!”

갑자기 숨이 턱 막힌 것이다.

화마로 인해 숨이 막힌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것처럼 아예 공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뭐, 뭐야?”

야율황기는 피부로 느꼈다.

자신의 머리 위에 급속도로 모여드는 공기를.

퍼버벙!

그렇게 삽시간에 모인 공기가 터졌다. 한 차례 태풍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바람처럼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컥!”

문제는 너무나도 빠르고 강한 바람이 공기를 완전히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야율황기는 숨이 완전히 막혀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의도적으로 숨을 참는 것과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공기를 빼앗긴 것은 그것을 체감하는 데 있어 애초에 차원이 다른 경우였다.

야율황기는 혼미해지는 가운데 빠르게 사그라지는 불길을 확인할 수 없었다.

거침없이 타오르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한순간 사라지고 다만 검게 그슬린 나무가 조금 전에 불에 휩싸였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막 놓으려는 그때였다.

사라진 속도만큼 빠르게 공기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공기는 야율황기의 막혔던 숨통을 다시 터트려주었다.

“허억! 헉헉헉!”

야율황기는 마치 주위의 공기를 다 마시기라도 작정을 한 것처럼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셨다.

“하하, 하하하하!”

야율황기는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나무가 그슬려 타고 풀들이 모두 죽었지만 야율황기는 밀림의 생명력을 안다. 이 정도의 상처라면 얼마 가지 않아 금세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

“그나저나 못된 친우군.”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양피지만 찢으면 된다고 한 마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끄응. 근데 마교에 부적술이 있었던가?”

야율황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율황기 역시 마현의 마법 스크롤을 부적이라 여긴 것이다.

이런 힘을 가진 부적 자체가 기사(奇事)이기는 하지만 무림이라는 곳이 워낙 기사도 기인들도 많고, 무림인이라면 절기 하나쯤은 숨기고 있었기에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시 누워 숨을 고르니 다시 몸에 힘이 생긴 것이다.

야율황기는 조금 더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다시 몸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면 그만큼 밀림도 덜 훼손되기 때문이다.

* * *

펑 펑 펑 펑!

천막 안에는 야율황기의 대호보다 더 큰 백호가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야율초재는 그런 백호의 배를 마치 의자 등받이처럼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백호의 머리와 턱을 쓰다듬어주고 있던 야율초재는 벽력탄이 터지는 것 같은 폭음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캬르르릉!

야율초재의 모습에 백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낮게 울음을 토했다.

“석칠도 모자라 벽력탄인가?”

야율초재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살기를 감추지 못한 채 천막 밖으로 거칠게 나왔다.

“와아아아!”

“우와아아!”

그런데 천막 밖은 야율초재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있던 야인들은 물론이요, 야율초재의 명에 의해 이곳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는 야인들 모두 흥분된 모습으로 환호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들뜬 표정으로 환호를 지르던지 야율초재가 밖으로 나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야인들은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분명 길게 줄을 서 응후에게서 양피지를 받고 있었고, 그 양피지를 받으면 밀림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펑!

야율초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응후에게로 막 걸음을 떼려고 할 때 다시 폭음이 들렸다. 자연스레 폭음이 터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폭음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불길이 하나씩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율초재의 시선은 자연스레 응후 뒤에서 양피지에 이상한 무늬를 빠르게 새기고 있는 마현에게로 향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필시 마현이 만든 일임에 틀림없었다.

야율초재는 굳어진 얼굴로 응후와 마현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현과 눈이 마주쳤다.

마현은 눈인사로 예를 차린 후 응후의 어깨를 건드렸다.

“대략 주위에 남은 스무 곳 남짓한 불길만 이걸 이용해서 잡아주시오. 나머지는 내가 잡겠소.”

마현은 응후에게 양피지를 모두 넘겼다.

“남는 것은 차후에 사용하면 될 것이오.”

“하지만 어떻게 마 소교주님 혼자…….”

응후의 태도는 야율황기가 옆에 있었다면 분통을 터트릴 만큼 공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럼 다녀와서 뵙지요.”

마현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몸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마현을 쳐다보고 있던 야율초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마현의 신형을 완전히 놓친 것이다. 야율초재는 마현이 쳐다보던 허공으로 급히 고개를 세웠다.

마현이 허공에 떠 있었다.

허공답보도 놀라운데 야율초재는 다시 마현의 모습을 놓친 것이다.

“응 족장.”

“아! 궁주님.”

응후는 양피지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고는 재빨리 야율초재 앞으로 뛰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야율초재는 응후를 강하게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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