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06화 (206/351)

# 206

6화

“그럼 저는 모르는 일이오, 소궁주.”

“거 말 많네. 가져오라면 가져올 것이지.”

“알았수다.”

잠시 후 야인이 자그만 항아리를 들고 들어와 야율황기와 마현 사이에 내려놓았다.

“호유주?”

“뭐 굳이 설명은 안 해줘도 무슨 술인지 알겠지?”

마현은 마유주에 대한 얘기는 들어봤어도 호유주는 처음 들어봤다. 야율황기와 야인 사이에 대화를 들어보니 남만에서도 상당히 귀한 술인 모양이었다.

또 이름이 워낙 직설적이라 마유주가 말의 젖으로 만든 것처럼 호랑이의 젖으로 만든 술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한잔하자.”

야율황기는 직접 사발에 호유주를 가득 따라 마현에게로 건넸다.

술잔도 아닌 커다란 사발에서 찰랑거리는 호유주의 빛깔은 투명하면서도 노란 빛깔이 살짝 감돌고 있었다.

“좋은 거야. 나도 평소 잘 마시지 못할 만큼.”

야율황기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마현을 향해 술잔을 살짝 들어올렸다.

“좋은 술이라서 고맙기는 한데…… 괜찮겠나?”

마현의 말에 야율황기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아! 이런 건 일단 먹고 보는 거야! 푸하하하하!”

야율황기의 말에 마현도 호유주 한 잔을 들이켰다. 시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평소 먹어왔던 곡주와는 그 맛이 많이 달랐다.

딱히 뭐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곡주 쪽이 좀 더 마시기 편했다. 그렇다고 아주 마시지 못할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익숙한 맛이 아닐 뿐이었다.

그렇게 막 한 잔 쭉 들이켤 때였다.

문득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마현은 반쯤 마신 사발을 입에서 뗐다. 기척을 느꼈다고 여긴 순간 어느새 야율황기 뒤에 커다란 덩치의 한 중년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마현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왜 안 마셔?”

야율황기는 그사이 한 잔을 비우고는 다시 사발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그사이 대호도 낯선 사내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자다 말고 눈을 떴지만 이내 긴 하품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결국 대호도 눈에 익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야율초재!’

마현은 이내 그 사내가 남만야수궁의 궁주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거 맛보기 힘든 거야.”

야율황기는 야율초재의 등장도 눈치채지 못하고 연신 호유주를 들이켜기 바빴다.

“크, 좋다!”

야율황기는 소매로 입가에 묻은 술을 닦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맛있냐?”

“그럼 맛있…….”

당연하다는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투로 대답하던 야율황기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쿵!

야율초재는 야율황기의 머리를 커다란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마현은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궁주님을 뵈옵니다.”

“네가 마현이라는 아이냐?”

“그렇습니다, 야율 궁주님.”

“음…….”

야율초재는 마현을 쳐다보며 나직한 음성과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야율초재가 앉았다.

“천막 안 무너진다. 앉아라.”

“예? 예.”

마현은 야율초재를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아버지? 하하하하하.”

야율황기는 야율초재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들아.”

“넵.”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호유주 함부로 마시지 말라고 그랬지?”

“그거야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까…….”

“원래는 좀 맞아야겠지만…….”

야율초재는 날카로운 눈매로 마현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네 녀석에게는 과분한 친구를 위해 내놓은 것이니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으마.”

야율초재의 불편한 시선에 마현의 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그 주름이 야율초재의 심기를 거스른 것인지 그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살기는 다른 무인들의 살기와는 달랐다. 좀 더 원초적인 맹수의 살기처럼 느껴졌다.

잠을 자던 대호가 그 살기에 놀랐는지 자리에서 껑충 일어나며 온몸에 털을 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정작 살기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마현의 안색은 평온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만 그럴 뿐, 지독한 살기에 마현의 입은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으며 온몸은 얼어붙어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강단이 있는 녀석이군.”

야율초재가 마현에게서 눈을 떼자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현은 그제야 속으로 격한 숨을 터트렸다.

어느새 마현의 손바닥 안은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황기에게 그간의 일은 대충 들었다. 황실이냐?”

야율초재는 뜸을 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 뭐 황실이든 아니든 별 상관없지만. 어떤 놈들이 감히 본궁을 향해 적의를 드러낸 것인지는 궁금했는데…… 아쉽군.”

야율초재는 손을 뻗어 호유주를 한 잔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구, 궁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천막 안으로 응족장 응후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근처 숲에서 큰 불이 일어났습니다.”

“불?”

“퀴퀴한 냄새와 이상하리만큼 검은 연기가 나는 것으로 보아 석칠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찢어죽일 놈들. 도대체 얼마나 이 밀림을 더 파괴해야만 직성이 풀린단 말이냐!”

야율초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현과 야율황기 역시 그를 따라 천막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 하늘까지 치솟아 오른 불길과 새파란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검은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응후가 큰불이라고 했지만 그저 큰불 수준이 아니었다.

완전히 밀림을 없애려고 작정을 한 듯 온 밀림 곳곳에서 불길이 새로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방으로 치솟아 오르는 불길을 보는 야율초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의 몸에서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살벌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야율초재는 무섭게 분노했다.

“모든 야인들을 소집하라!”

빠드득.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전면전이다!”

마현의 안색이 변했다.

야율초재를 비롯해 남만야수궁 야인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전면전은 너무 위험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찾을 것도 없었다.

병력의 차이가 커도 너무 컸던 것이다.

남만야수궁이 제아무리 새외삼궁 중 하나라고 해도 황군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수준이다. 그에 반해 남만야수궁의 반격으로 인해 황실이나 조정에서 막대한 물량을 남만으로 투입한다면 정말로 남만야수궁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남만야수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마현이 집요하게 배후를 찾아 나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큰 틀에서 보면 남만야수궁 다음에는 분명 마교일 확률이 컸다.

현재 북해빙궁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배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최악의 경우, 황실에서 무림말살을 계책하거나 아니면 무림을 완전히 황실이나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한다면 단순히 마교의 힘만으로는 힘들다.

그러려면 반드시 북해빙궁이나 남만야수궁과의 동맹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북해빙궁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남만야수궁만은 쉽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외인으로 주제넘은 참견일 수 있으나 감히 제가 한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야율초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현은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말문을 열었다.

“전면전은 절대로 불가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갈!”

야율초재는 살기를 담아 일갈을 터트렸다.

그 살기는 여지없이 마현의 심력을 뒤흔들었다.

“큭!”

그 충격에 마현은 잠시 몸이 비틀거렸다.

“제아무리 황기의 친우라고 해도 용납이 될 것과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

“뭣들하고 있느냐? 전 야인에게 소집명을 내리지 않고.”

“명!”

뜻하지 않은 마현의 간섭에 잠시 우왕좌왕하던 야인들이 야율초재의 재차 거듭된 명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마현은 지금도 치솟는 불길을 보았다.

지금 야율초재가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은 밀림을 파괴하는 불길 때문이었다.

‘불길만 잠재우면 된다. 불길만!’

“한 시진, 아니 반 시진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불길을 잡겠습니다.”

야율초재는 다시 나서는 마현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마현은 그런 야율초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 일은 남만야수궁의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황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이 없으니 이 일이 마무리가 되면 그때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라도 전면전을 미뤄주십시오.”

야율초재는 마현을 한참이나 직시했다.

“한식경!”

야율초재는 매정하게도 마현이 제시한 시간을 절반으로 싹둑 잘라버렸다. 그렇다 해도 마현에게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다. 어차피 야수궁의 모든 야인들이 소집되려면 한식경은 필요하니까.”

야인들이 모두 소집되는 데는 그보다 조금 빠른 시간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야율초재가 매정하게 돌아선 듯했지만 어느 정도 마현의 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니 야인이 소집되고 나서도 뚜렷한 결과가 없다면 전면전에 들어갈 것이다.”

“감사…….”

“아울러 본궁을 무시한 마교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야율초재의 단호한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분명 그는 그렇게 할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궁주님.”

“그 대답은 마교의 공식적인 대답으로 알고 있겠다.”

야율초재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현아.”

야율황기가 다가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마현을 불렀다. 그뿐만 아니라 마현과 안면이 있는 상당수의 야인들 역시 야율황기와 비슷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마현은 야율황기에게 그리 말했지만 입은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불을 끌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밀림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불을 끌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현은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다가 여전히 자신 곁에 모여 있는 야인들을 보자 눈빛을 빛냈다.

“나 좀 도와줘야겠네.”

“무어를 말인가?”

“일단 쓸 만한 양피지 좀 구해다줘.”

“양피지?”

야율황기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다급한 이 시기에 양피지를 찾으니 그런 것이다.

“설명은 나중에 해줄 터이니 부탁하네.”

“얼마나 필요한가?”

“일단 많으면 많을수록 좋네.”

야율황기를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야인들을 쳐다보았다.

“양피지란 양피지는 모두 구해와! 어서!”

“모두 빨리빨리 움직여라.”

응후까지 나서서 돕자 양피지가 모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지만 양은 충분했다.

마현은 한자리에 모인 양피지를 차곡차곡 쌓고는 윈드커터 마법으로 일정한 크기로 재단했다. 그렇게 단숨에 만들어진 양피지는 근 백 장에 가까웠다.

마현은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마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피지를 자신 앞으로 내려놓았다.

‘석칠로 인한 불은 물로 끌 수 없다. 그렇다면……, 일시적으로 주위의 공기를 없애야겠군.’

마현의 몸에서 마력이 피어올라 손으로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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