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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03화 (203/351)

# 203

3화

“이노옴!”

일갈을 터트리는 도종극의 앞으로 검은 연기가 불쑥 솟아올랐다.

바로 흑도였다.

“낄낄낄!”

게슴츠레한 웃음을 흘리며 흑도가 크게 진각을 밟으며 도를 휘둘렀다.

쿠아아앙!

그것에 개의치 않고 도종극은 다시 활짝 펼친 조수를 휘둘렀다.

콰과광!

폭음이 터졌다.

“크윽!”

그 속에서 도종극의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를 어깨에 턱 걸치는 흑도 앞으로 두 줄기 긴 자국이 삼 장 가량 길게 파여 있었다. 그 끝에 도종극이 휘청거리며 서 있었다.

“아직까지 무인의 때깔을 벗지 못했느냐? 그대들은 언데드 군단의 부사령관이다.”

흑도는 도를 거두며 암사령을 향해 굵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알겠습니다, 흑도 대공.”

암권이 흑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그의 명을 받아들였다.

“사망진을 펼쳐라.”

암권의 말에 암사령들은 몸을 날려 도종극을 에워쌌다. 그런 그들의 몸에서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덩이들이 땅으로 스며들었다.

불룩 불룩.

마치 용암 표면처럼 땅바닥이 끓어올랐다. 거무칙칙한 용질이 사방에 널린 뼈로 덕지덕지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축축한 피부가 덕지덕지 붙은 해골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동자에서는 암사령과 같은 푸른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빽빽하게 일어난 사자(死者)들.

바로 구울(Ghul)이었다.

흑사신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암사령의 힘만으로 깨울 수 있는 언데드이기도 했다.

“주인, 본좌 잘 했지?”

흑도는 고개를 돌려 씨익 웃었다.

직후 몸을 바르르 떨었다.

“역시 이 맛에 수하를 둔다니까. 으으으으.”

그 모습에 마현도,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세 흑사신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런 흑도의 뒤로 질퍽한 피부에 푸른 인광을 가진 구울들이 기민하게 도종극을 덮치고 있었다.

팡 팡 팡 팡!

도종극이 서 있는 곳에서 연속적으로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거무튀튀한 덩이와 뼛조각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도종극의 손에 분시(分屍)된 구울의 조각들은 마치 뼈 위에 맹수들이 흘리는 질퍽하고 끈적거리는 타액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후두둑, 철퍼덕.

또한 토악질이 절로 나올 만큼 퀴퀴한 냄새도 흘렀다. 바로 구울의 모든 것이자 힘의 원천인 시독 냄새였다.

팡 팡 팡 팡!

도종극의 손에 의해 분시되는 구울의 수가 늘어갈수록 주위 바닥은 질퍽해졌고, 퀴퀴한 시독 냄새로 가득 찼다.

“구울의 힘만으로는 힘들겠군.”

“크크크.”

마현의 목소리에 흑검이 흑도를 보며 비웃음을 슬며시 내비쳤다.

“시독과 망자로 가득한 곳에서 귀공을 익힌 놈에게 시독이 유일한 구울을 가지고 상대하라고 했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이지.”

흑검은 흑도에게 들으라는 듯 제법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흑도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어차피 첫 전투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

마현은 끊어 오르는 노기를 참는다고 얼굴이 누르락푸르락해진 흑도의 어깨를 짚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너희 새끼들, 어둠으로 돌아가면 다들 죽었어!”

이를 박박 가는 흑도의 목소리에 마현은 피식 웃음을 머금으며 도종극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실 강시가 된, 아니 강시가 되었기에 마현은 도종극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팬텀나이트가 된 암사령을 불러냈다.

아직까지는 적응하지 못해 서툴겠지만 실전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시켜 온전한 하나의 전력으로 다듬고자 함이었다.

‘뭐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마현이 다가가자 구울은 좌우로 갈라져 순식간에 길을 만들었다. 그 길 끝에는 구울의 질퍽한 액체를 잔뜩 뒤집어쓴 채 도종극이 서 있었다.

“하던 말을 마저 할까?”

마현은 의도적으로 발걸음을 늦췄다.

“네놈의 두 번째 실수는 강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현이 한 손을 들어 올려 도종극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생자의 혼을 다스리는 것보다 망자의 혼을 다스리는 것이 훨씬 편한 것이 바로 본인이니까.”

출렁.

도종극의 혼이 유체이탈(遺體離脫)이 되다 멈췄다.

“이, 무, 무슨…….”

도종극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다가 구울의 시체 조각에 발이 걸려 뒤로 나뒹굴었다.

“고서클의 리치도 아니고, 빈껍데기에 들어 있는 망자를 다스리는 것쯤이야…….”

“컥!”

그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도종극의 몸은 기절한 듯 아래로 축 처졌다.

* * *

도종극이 바닥에 누워 있었고, 그런 그 위에 또 다른 도종극이 허공에 떠 있었다.

―이, 이 무슨…….

둘이 된 도종극은 각기 차이가 있었다.

누워 있는 도종극은 생기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주검이었고, 허공에 떠 있는 도종극은 색을 가지지 못한 채 뿌연 형체로 유형화된 혼, 망자였다.

마현이 강제로 강시화가 된 도종극의 몸에서 그의 혼을 뽑아낸 것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망자가 된 도종극의 혼은 자신의 신체로 돌아가기 위해 매달렸지만 한 번 끈이 떨어진 혼과 신체는 다시 이어질 수 없었다.

―내가, 이 도종극이 어떻게 얻은 불사지체의 몸인데!

도종극은 망자의 몸으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아!

망자가 된 도종극은 원한이 가득한 모습으로 마현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망자의 몸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마현이 음산한 귀기를 일으키자 공포에 짓눌러 떨어야 했다.

―으아아아아!

울부짖는 망자가 된 도종극을 향해 마현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소매에서 망자 다섯이 튀어나갔다.

―키키키!

망자들은 귀곡을 터트리며 억세게 도종극의 팔다리며 목을 휘어잡았다. 도종극은 우악스런 망자들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망자와 망자 사이에 그 무슨 힘의 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망자에게 있어 힘은 지독하게 사무치는 한(恨)인데, 도종극이 억울하게 죽어나간 망자들보다 한이 더 깊을 리 없었다.

마치 무림인에게 평민이 힘없이 질질 끌려가듯 도종극은 마현 앞으로 끌려갔다.

힘없이 마현 앞으로 끌려온 도종극의 얼굴에는 자포자기의 체념이 드러나 있었다.

마현이 망자술을 이용해 강제로 도종극을 끌어당겨 앞에 세울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귀속된 망자들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렇게 도종극의 마음을 단숨에 꺾어버렸다.

“율기는 어디 있지?”

질문하는 마현의 목소리는 아주 느긋했다.

* * *

푸드득 푸드득.

전서구들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뭔 깃털이 이리도 빠지고, 거기에 세상의 먼지란 먼지는 모조리 끌고 오는지.

뾰롱, 뾰롱.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찬 숲속에서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 아름답다는 감성이라도 생기겠지만 깃털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전각 가장 상층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가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어.”

걸개아는 연신 구시렁거리며 날아드는 전서구 다리에 달려 있는 전서들을 떼어냈다.

뾰로롱.

날이 화창해서일까. 오늘따라 걸개아는 유달리 전서구들의 울음소리가 거슬렸다.

“시끄러워, 이놈들아!”

전서구들이 걸개아의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지만 걸개아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파다닥 파다닥, 뾰롱 뾰롱.

오히려 걸개아의 목소리에 놀란 전서구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하자 안은 오히려 더욱 많은 깃털과 먼지가 피어올랐다.

“에효!”

걸개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근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씨, 청천대에 그냥 놔두면 얼마나 좋아?”

걸개아는 연신 투덜대면서도 날아오는 전서구들의 다리에서 전서를 떼어내 일일이 분리했다.

청천대로 발령받아 막 적응할 무렵, 그러니까 무림맹주가 정식으로 천무왕으로 등극한 바로 직후였다. 걸개아는 갑자기 불취개에게 불려갔다.

그 자리에는 불취개뿐만 아니라 걸왕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앞뒤 설명 없이 내린 명령.

청천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천안각(千眼閣) 소속 수발대(受發隊)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정보가 들어온다면 즉각 보고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걸개아 입장에서 천안각 발령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천안각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개방도이니 별로 상관없다. 개방의 소방주이니 일찌감치 정보를 다루는 것에 능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수발대이냐 이거다.

말이 좋아 ‘대(隊)’지 사실 수발대는 허드렛일을 하는 곳이다.

이런 일은 개방에서도 일결이나 이결 제자들이 통상 맡기 마련이었다.

지금 주위를 둘러봐도 이곳 수발대에서 이결 이상인 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싫다고 날뛰어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불취개에게서 돌아온 것은 매뿐이었으니 걸개아로선 분통 터질 일이었다.

“하아.”

걸개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 위에 분류해 놓은 전서들을 쳐다보았다.

일차적으로 이곳에서 정보를 분류한다지만 사실 하나마나한 작업이었다.

어차피 실질적으로 정보를 분류하고 다듬는 집정당(輯情隊)으로 가면 이곳에서의 분류는 애초에 무시되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씨. 정말 못해 먹겠군.”

걸개아는 결국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근처에서 일을 하던 다른 개방 제자들이 움찔거렸다.

“네가 와서 해라. 낮잠이나 한숨 자련다.”

걸개아는 나이 어린 일결 제자 하나를 불러 자신의 자리에 앉히고는 구석에 놓여 있는 간이침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걸개아가 막 침상에 누우려는데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사천당문의 소가주 당화평이었다.

침상에 누워 있는 걸개아를 보자 당화평의 입꼬리가 짓궂게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는 목을 살짝 가다듬고는 목소리를 높여 대뜸 호통을 쳤다.

“이놈아! 누가 처자빠 자라고 이곳으로 보낸 줄 아느냐!”

“히익!”

그 소리에 걸개아가 겁먹은 얼굴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스승님. 그게 아니라…… 제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을 하니 허리가 뻐근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잠시, 정말로! 아주 잠시 허리를 펴고자…….”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말을 하던 걸개아는 분위기가 조금 요상함을 느끼자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눈에 드러난 몇몇 개방 제자들이 숨을 죽이고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걸개아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흘러나온 문 쪽을 쳐다보았다.

“하하하하.”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당화평의 얼굴이 걸개아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걸개아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야! 너 죽고 싶어?”

걸개아는 당화평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미안, 미안.”

사과를 하는 당화평의 얼굴을 보니 별로 미안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쳇, 내가 말을 말아야지.”

걸개아는 툴툴거리면서도 그다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따분하고 지루한 수발대로 가끔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는 이가 바로 당화평인 까닭이었다.

“혼자 왔냐?”

걸개아는 당화평의 장난에 그래도 앙금이 조금 남았는지 목소리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학성이도 뒤에서 웃고 있어.”

“쳇! 어여 문 닫고 들어와. 문 열고 있다가 전서구 한 마리라도 새나가면 골치 아프다.”

당화평의 말대로 뒤로 학성이 잔잔한 웃음을 머금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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