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2화
“네놈의 그 발악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네놈의 가장 큰 실수는 어둠보다 더 어두운, 죽음보다 더 강한 사기를 가진 나를 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마현은 입술을 살짝 벌려 하얀 이를 드러냈다.
“불사지체라고 했지? 죽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마현의 눈동자에서 회색빛이 감돌았다.
“피스트 오브 고스트(feast of Ghost)!”
사신의 흑마법, 아니 이제는 마현이 주체이니 마현의 흑마법이 시전되자 마현의 품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망자들이 날뛰며 능자필에게 달려들었다.
망자들은 콧구멍, 입, 귀 등등 능자필의 몸에 난 모든 구멍을 통해 꾸역꾸역 파고 들어갔다.
‘망자들의 죽음의 축제’라는 이름을 가진 흑마법. 거기에 걸맞게 몸 안에서 마구 날뛰는 망자들로 인해 능자필의 몸 곳곳이 울룩불룩 솟아났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퍼벙!
능자필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결국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터져버렸다.
사방으로 날리는 능자필의 편육(片肉).
그리고 날뛰는 회색 망자들.
그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마현의 미소.
도종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 *
도종극은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 내가! 불사지체를 이룬 내가! 공포를 느낀 것이란 말인가?’
도종극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와 사부는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같은 방식으로 지금의 몸을 얻었지만 내가 더 월등한 신체를 가졌다.’
“나는 죽지 않아.”
도종극은 조용히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너는 죽지 않는다.”
곧 이어진 마현의 목소리에 도종극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네놈을 죽일 것이다!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마도의 정점에 올라설 것이다!”
도종극은 마현을 쳐다보며 살기를 일으켰다. 그런 그의 눈빛에서는 확고한 의지가 드러났다. 아니 의지라고 하기에는 좀 더 음습한 집착이었다.
“너는 죽지 않아,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 거다.”
도종극이 무슨 말을 하든 마현은 자신이 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갈!”
도종극은 마현의 도발을 이기지 못하고 노기를 터트리며 일장을 내질렀다. 강력한 장력은 공기를 꿰뚫으며 마현의 가슴을 노렸다.
장력이 마현의 몸을 가격하는 순간 마치 신기루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의 몸이 사라졌다.
도종극은 고개를 하늘로 번쩍 치켜세웠다.
그런 도종극의 시선에 허공에 떠 있는 마현이 닿아 있었다. 마현의 손에는 두 개의 불덩이가 들려 있었다.
도종극은 전과 달리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한 줄기 빛살처럼 도종극의 신형은 단숨에 마현에게로 날아올랐다.
쑤아앙!
시간차를 두고 마현이 날린 두 불덩이를 보며 도종극은 양손을 날카롭게 오므렸다. 그리고는 불덩이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퍼벙!
찢겨져 만들어진 수십 수백의 불조각 사이로 도종극은 자신의 발등을 다시 한 번 밟으며 마현에게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마현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팡!
허공에서 공기가 터졌다.
그사이 다시 마현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도종극은 급히 허리를 틀어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역시 도종극의 시선 끝에 마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종극은 희미한 웃음을 언뜻 지으며 마현 앞으로 내려섰다.
누구의 우열도 가릴 수 없는 일수공방(一手攻防)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도종극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은 것이다. 그 이유는 마현은 인간이었지만 자신은 인간이 아닌 까닭이다.
마현은 언젠가는 내력이 소진될 게 분명한 단전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마르지 않는 죽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공방이 계속된다고 해도, 아니 지루한 공방이 이어진다면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필승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도종극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약간 들뜬 듯한 눈빛은 그사이 사라졌다.
‘침착하자.’
도종극은 신중한 얼굴로 다시 날카로운 손톱을 일으켰다.
“끝까지 본인이 그대와 손을 겨루고 싶지만…….”
마현의 몸에서 마력이 피어올라 땅으로 스며들었다.
“본인보다 그대를 더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어서 말이야.”
마현의 말은 애써 유지한 도종극의 평정심을 뒤흔들었다.
“암사령, 그대들의 복수를 허락한다.”
“아, 암사령?”
도종극의 얼굴이 잔뜩 구겨지며 그에 어울리는 침중한 반문이 튀어나왔다.
마현의 앞, 바닥에 수북이 쌓인 해골더미가 불쑥 튀어 올라왔다.
뼈와 뼈가 들썩거리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네 명의 인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너희들은?”
도종극은 너무 놀라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는 분명 죽은 자였다. 그것도 다름 아닌 자신의 손에 죽은…… 마교의 장로들인 것이다.
“오랜만이군.”
굳은 몸을 푸는 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혈월마성, 아니 이제는 암권의 이름을 받은 그가 차갑게 인사를 건네며 도종극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어, 어떻게 너희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냐고?”
역천마도, 이제는 암도인 그가 이를 박박 갈며 도종극의 말을 가로채며 음산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강시화가 진행되는 사람은 다시는 되살릴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주특기이자 전공이니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 도종극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사령, 그들이 순수한 인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가, 강시?”
그렇게 의문을 날렸지만 도종극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강시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님은 확실했다.
도종극은 자연스레 마현을 노려보았다.
“암사령, 저자를 내 앞에 무릎 꿇려라.”
마현은 도종극을 쳐다보며 차갑게 명을 내렸다.
“명!”
기다렸다는 듯이 암사령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가장 먼저 혈월마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몸에서는 살기가 피어올랐다.
자박 자박.
혈월마성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의 몸은 검게 물들어갔다.
그렇게 칠흑 같은 묵색으로 변했을 때 혈월마성의 몸에서는 기이한 푸른색이 마치 불꽃처럼 피어났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혈월마성의 목소리는 쇠가 갈리는 듯 탁해졌고, 늘어난 용수철처럼 흐느적거리며 늘어졌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으니 어쩌며 저 목소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일지도.
푸른 불덩이를 뒤집어쓴 혈월마성의 뒤로 그와 같은 모습을 한 나머지 팬텀나이트, 암사령이 도종극을 반쯤 에워쌌다.
―서로……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다시…… 만났군……. 신이…… 있다면…… 신께…… 감사하고……, 주군께…… 감사하지…….
화르륵.
도종극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모두가 검고, 푸른 불덩이를 뒤집어쓰고 있는데다가 목소리까지 바뀌었다.
다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몸에서 푸른 불덩이를 뒤집어쓴 검은 도(刀) 한 자루를 쭉 뽑아내는 것으로 보아 그저 역천마도, 이제는 암도로 불리는 자가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도종극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느릿하게 늘어지는 목소리와 달리 암도가 말을 마치자마자 매섭게 도종극을 향해 달려든 까닭이었다.
쐐애애액!
빛살처럼 암도의 도가 도종극의 허리를 베고 들어왔다.
엄청난 쾌식에 의해 도를 감싸고 있는 푸른 불덩이들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보였지만 용케도 도신(刀身)에서 떨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도종극은 한 걸음 물러나며 몸을 뒤로 크게 젖혀 암도의 도를 피했다. 푸른 불덩이가 몸을 스치듯 비켜 지나갔다.
오싹!
도종극은 짙은 죽음의 기운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이건…… 지, 진짜 죽음의 기운이다!’
이미 한기를 느낄 수 없는 몸이었지만 그의 머리는 분명 서슬 퍼런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도종극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후우우웅!
도끼날과 뾰족한 갈고리를 가진 기괴한 장극(長戟; 핼버드)이 어느 순간 도종극의 허리를 베고 들어왔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도종극은 귀력을 양손에 담아 창대 끝에 달린 도끼날을 향해 내밀었다. 그의 패도적인 움직임으로 보아 단숨에 도끼날을 부숴 버리려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휘릭 창대가 한 바퀴 돌더니 도끼날 위에 뾰족하게 선 창날이 독아(毒牙)를 드러낸 것이다. 동시에 그 창극(槍極)에서 독아에 잘 아울리는 시퍼런 독이 뿜어졌다.
쒸이이익!
흡사 뱀이 내뿜는 울음소리처럼 파공성을 동반하며 도종극의 가슴을 찌르며 들어왔다. 도종극은 감히 시퍼런 불덩이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성적으로는 부딪히고 싶었지만 저 깊은 심연에서 부딪히지 말라고 맹렬히 경고를 한 까닭이다.
도종극은 입술을 깨물며 바닥에 몸을 굴려야 했다.
콰광!
도종극이 서 있던 곳에 장극이 꽂혔고, 그로 인해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겨우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지만 또 다른 검과 주먹이 도종극을 한시도 편히 두지 않았다. 물론 섬뜩한 시퍼런 불덩이를 동반한 채.
도종극은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발등을 밟아 신형을 틀어 암사령들과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도종극은 입술을 자근자근 씹어댔다.
시퍼런 불덩이를 볼 때마다 생기는 이유 없는 공포심을 도종극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왜?”
도종극은 마현을 노려보며 나직하게 울부짖었다.
“왜 네놈이……. 귀림의 모든 것을 얻은 나보다……. 빠드득!”
도종극이 이를 가느라 미처 마지막 말까지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마현의 조소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놈은 어둠을 배웠지만, 본인은 어둠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
그 대답에 도종극의 관자놀이의 힘줄이 불룩 튀어 올라온 것도 모자라 꿈틀거렸다.
“으아아아아!”
도종극은 마치 폭주라도 하는 것처럼 고함을 지르며 귀력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마현을 향해 미친듯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앞을 암도가 가로막았다.
츠츳 츠츠츳!
상단으로 올려진 암도의 도에서 푸른 불덩이가 치솟아 올랐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네놈만은 죽이겠다!”
도종극은 발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마현을 향해 더욱 빠르게 몸을 날렸다.
쐐애액!
당연히 암도의 도가 도종극의 머리를 쪼갤 듯 찍어 내려갔다. 도종극은 전과 달리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고는 암도의 도를 후려갈겼다.
콰광!
강렬한 폭음이 그 둘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강렬한 반발력에 몸이 뒤로 밀려나려는 것을 도종극은 악으로 버티며 다시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런 도종극의 눈가에 알게 모르게 주름이 깊게 잡혔다.
암도의 도에서 전해지는 충격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마치 흡성대법에 당한 것처럼 푸른 불덩이와 부딪히는 순간 귀력이 쭉쭉 빨리는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죽인다!’
죽이면 문제가 없다.
사라진 귀력은 율기를 통해 독물과 영약을 받아 다시 만들면 그만이라 여겼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주춤하던 마음도 다시 날이 시퍼렇게 섰다.
오로지 마현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도종극은 다시 마현에게로 몸을 날렸다. 옆에서 날아오며 베어 오는 암사령의 공격을 무시했다.
그렇게 마현과의 거리를 지척으로 좁혔다.
그런데도 마현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