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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00화 (200/351)

# 200

25화

운남성, 서장, 그리고 남만의 밀림이 맞붙은 경계 지역의 드넓은 초원. 그곳에 근 이만오천에 달하는 황군들이 진영을 치고 있었다.

이 군영은 남만토벌군의 별군으로 구성된 북(北), 운남성 황군으로 구성된 동(東), 이 두 군영 중 북벌군(北伐軍)이었다.

북벌군 진영의 황군 속에는 묘한 소규모 부대가 있었다. 군영 외각에 진영을 치고 있는 이 부대는 북벌군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겉돌고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귀림이었다.

다른 곳은 저녁과 함께 오랜만에 배급된 탁주로 인해 왁자지껄한 반면, 귀림의 진영은 차가울 정도로 분위기가 낮게 깔려 있었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삼 일 후, 귀림주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마현을 볼 수 있을 것이오.”

율기는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시며 말했다.

“정말 그놈이 혼자 올까?”

도종극의 질문에 율기는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솔직히 마현 혼자 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지만…… 워낙 정보가 없어 장담은 하지 못하오.”

“크크크, 하기야 상관없지.”

“명심하시오, 이 같은 기회를 다시 만들기 힘들다는 것을.”

율기는 근처 나뭇가지를 하나 들어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은 일종의 지도였다.

“이곳이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이오. 그리고 여기가 바로 귀곡. 십중팔구 야율황기가 마현을 데리고 이 길로 들어설 것이오. 그러니 반드시 남만으로 들어서기 전 마현을 유인해 귀곡으로 가야 하오. 그래야 귀림주가 그토록 원하는 마현의 목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율기는 바닥에 그린 지도 위에 나뭇가지로 몇 군데 동선을 그렸다.

“그놈을 끌어들이기 위해 황군의 발바닥까지 핥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반드시 그놈의 수급을 들고 군사를 찾아가리다.”

도종극의 눈에서는 시퍼런 살기가 번뜩이다가 사라졌다.

“내일부터 귀림은 황군의 작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유기량 장군께 미리 언질을 넣어서 허락을 받았소.”

“그런데 말이야, 율 군사.”

“……?”

“스승이 반 깡통이 되었지 뭐야? 영 율 군사에 대해서 알아낼 것이 없더라고. 자네의 진정한 정체가 뭔가? 그대가 모시는 어르신은 또 누구고?”

도종극이 옆에 앉아 있는 능자필의 머리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그 질문에 율기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

“마현의 수급을 들고 구금상단으로 오시오. 그러면 내 알려드리리다.”

율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탁탁 털어냈다.

“구금상단이라……. 거기서 뭘 할 생각이오?”

“제가 마교를 무너트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있겠습니까?”

“크크크, 정말 율 군사의 곧은 목표는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 배웅은 하지 않겠소. 구금상단에서 보지.”

율기는 그런 도종극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구금상단에서 뵙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넨 율기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벌써부터 피가 끓어오르는구나! 크크크크!”

도종극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 * *

마현과 남만야수궁 일행은 열흘 간 오로지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하고 오로지 말과 맹수들을 몰아 남만 밀림으로 달려왔다.

뜨거운 햇살이 하늘 정중앙에 걸린 정오.

새벽부터 달려온 일행이 멈췄다.

“여기서 반나절 정도만 가면 남만 밀림이다.”

야율황기는 손가락으로 남만 밀림이 있는 쪽으로 가리켰다.

“이제 다 온 것이군.”

마현은 야율황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을 쳐다보았다.

서장과 신강은 비슷하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둘 다 황량하고 메마른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강은 높은 산과 낮은 땅, 고저가 있는 땅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장은 얕은 구릉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모든 땅이 평탄했다.

그렇기에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보였다.

“여기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출발한다!”

야인들이 맹수들에게서 막 내릴 때였다.

‘응?’

야율황기가 가리킨 지평선 끝에 뭔가 이질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묘하게 눈에 거슬렸다.

“안 내리고 뭐하나?”

“잠깐, 저기 뭐가 보이지 않나?”

마현은 야율황기에게 말을 걸며 마력을 끌어올려 눈동자로 집중시켰다. 천리안 마법을 이용해 지평선 끝을 살폈다.

문득 마현이 눈을 부릅떴다.

‘갈승도!’

무리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는 바로 귀림주 능자필을 데리고 탈주한 갈승도였다.

‘갈승도가 있다면 반드시 도종극과 율기도 있을 것이다.’

마현은 재빨리 무리 사이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무리 후미에 도종극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율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종극만 잡으면 반드시 율기도 잡을 수 있을 터.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야율황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다가 갑자기 마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에 입을 닫았다.

“무슨 일이야?”

“저 지평선 끝에 도종극이 있다.”

마현은 풍의 말고삐를 바싹 당겼다.

“일단 여기서 헤어지자.”

“아니야, 같이 가지.”

야율황기는 서둘러 대호에 다시 올라탔다.

“이놈들아, 서둘러라!”

그러는 사이 마현은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고, 그 뒤로 남만야수궁 야인들이 뒤이어 따라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두!

자욱한 먼지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갈승도가 안력을 돋워 전방을 살폈다.

“림주님.”

갈승도는 후미에서 쉬고 있는 도종극을 급히 불렀다.

“무슨 일이냐?”

“마현입니다.”

“마현?”

도종극이 그 자리에서 튀어 올라 갈승도 옆으로 달려왔다.

“크크크크! 과연 율 군사야!”

도종극 역시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마현을 본 것이다.

“거기에 흑풍대도 없고. 하늘이 내려준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이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크하하하하!”

도종극은 살기를 번뜩이며 광소를 터트렸다.

“갈승도.”

“예, 림주님.”

“너희는 남만야수궁을 막아라! 나는 마현을 귀곡으로 유인할 것이다!”

“명!”

“오라! 네놈을 죽음의 땅, 진정한 사지(死地)인 귀곡으로 안내를 하마. 귀곡에 한 발이라도 들어놓는 즉시 네놈은 나의 맛있는 먹잇감이 될 것이야,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

도종극은 갈가리 찢기는 마현을 상상하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마현은 자신을 향해 달려 나오는 귀림의 무리, 과거의 광풍적월대를 보며 짙은 살기를 뿌렸다. 그런데 맨 먼저 튀어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도종극은 오히려 뒤로 빠져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함정? 유인?’

눈에 뻔히 보였다.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나…… 오늘 네놈은 생애 가장 최악의 하루를 보내게 것이다!’

『황기, 굳이 그들과 부딪힐 필요가 없다! 나중에 보자!』

마현은 야율황기에게 매직마우스로 전음을 날린 후 풍의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푸히이이잉!

마현은 거칠게 울음을 토해내는 풍의 아랫배를 다리로 강하게 조였다. 그러자 풍은 앞으로 달려 나오는 귀림의 무리를 단숨에 훌쩍 뛰어넘었다.

“가자!”

마현이 풍의 배를 발로 두들기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거리가 거의 좁혀졌다고 느낄 때 도종극은 밀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거진 숲으로 인해 더 이상 풍을 타고 쫓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마현은 풍을 어둠으로 귀환시키며 도종극이 사라진 밀림 속으로 쫓아 들어갔다.

밀림 속에 들어서자 나무와 수풀이 너무나도 빽빽해 도종극의 흔적을 쉽사리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현은 급히 움직이지 않았다.

도종극이 이곳으로 자신을 유인한 만큼 그가 원하는 곳으로 자신을 부를 것이 분명했다.

“크크크크!”

아니나 다를까.

도종극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현은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경계하며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투시 마법을 시전한 채 도종극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밀림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도종극은 마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크크크!”

도종극은 마현을 보자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단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뿐인데 도종극의 신형이 아래로 푹 꺼졌다.

도종극이 서 있는 곳 바로 뒤에 깊은 낭떠러지가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도종극이 서 있던 곳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낭떠러지 아래는 시커먼 안개로 가득 덮여 있어 그 깊이를 좀처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때 마현의 코끝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

‘독?’

시큼한 냄새가 나는 독이었다.

하지만 그냥 독이 아니라 시체에서 나온 시독이었다.

그것도 짙은, 사기가 아주 짙은…….

결코 한두 해, 그리고 한두 구의 주검으로 만들어진 시독이 아니라 적어도 수십 년, 게다가 적어도 수천 구 이상의 주검이 만들어낸 시독임이 틀림없었다.

‘이곳이 귀림의 원천인가?’

마현의 입가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 미소는 아주 기분 좋은 미소였다.

마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아래로 몸을 날렸다.

콰직!

마현이 땅에 내려서자 가장 먼저 밟히는 것은 바로 뼈마디만 남은 해골이었다.

순수한 시독으로 만들어진 짙은 회색 안개 밑에 깔린 땅에는 오로지 해골들뿐이었다.

그 해골들의 잔해는 마현이 디디고 서 있는 곳뿐만 아니라 사방에 깔려 있어 완전히 땅을 뒤덮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그때 도종극이 시퍼런 인광을 두 눈에서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한다! 귀곡에 온 것을! 크하하하하!”

도종극은 벌써부터 득의양양한 광소를 터트렸다.

“이곳은 나의 땅, 그리고 네놈이 죽을 장소다!”

도종극의 눈에서 서슬 퍼런 살기와 음산한 귀기가 뒤섞여 뿜어져 나왔다.

“안 그래도 사신 키디악의 흑마법을 어디서 익히나 싶어 고민을 했었는데…….”

고개를 들어 도종극을 바라보는 마현의 눈에서 죽음의 기운이 담긴 사기가 넘실거렸다. 그 음산함은 도종극의 것보다 더욱 짙었다.

“흐으음!”

마현은 마치 향기로운 꽃향기라도 맡는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잘 숙성되었군.”

마현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음침한 회색빛 귀혼, 망자들이 보였다.

수천수만의, 귀곡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망자들. 마현은 그들을 모두 감싸 안으려는 듯 두 팔을 들고 가슴을 벌렸다.

“죽어도 죽지 못한 망자들의 원한도 뼈가 시리도록 깊고.”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너무나도 느긋한 마현의 모습에 도종극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현은 사방으로 자신의 마력을 뿜어냈다.

“죽음을 관장하는 나 카칸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이제부터 너희들의 죽음을 이 카칸이 관장하겠노라!”

<9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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