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97화 (197/351)

# 197

22화

수십 마리의 곰과 그에 못지않은 체격을 가진 야인들이 성벽으로 달려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장관이 곧이어 펼쳐졌다.

콰직! 쿵 쿵 쿵!

곰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워 성벽을 찍으며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저마다 야인 한 명씩을 태우고 말이다.

무림에서 마교를 천애의 철옹성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위용을 자랑하는 두텁고 높은 외벽, 병장기로 뚫을 수 없는 묵철로 만들어진 강철 문에 있었다.

황군처럼 공성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무림인들만으로 정문을 뚫고 마교 안으로 들어가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특히나 깎아지른 듯한 외벽은 어지간한 사다리로 걸치기에도 힘이 들 정도로 높다. 그런 외벽을 수십 마리의 곰이 기어오르고 있으니 수문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수성장창을 이용해 막으라! 어서!”

그때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온 호원주 엄필이 큰 소리로 명을 내렸다.

공성 무기나 수성 무기를 만들어 사용할 수 없지만 사람들 사는 곳이 꼭 법에 따라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무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 키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장창이었다.

장창은 수성에 필요한 병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꼭 수성용 병기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즉, 개인용 병기라 우기면 군부에서도 딱히 뭐라고 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국법을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는 병기들이 종종 있었고, 마교뿐만 아니라 정파의 무가에서도 그런 것들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었다.

마인들은 엄필의 명에 따라 항시 준비되어 있는 장창을 들어 성벽을 기어오르는 곰을 향해 내려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처럼 쉽게 곰을 찔러 아래로 떨어뜨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곰 위에 타고 있는 남만의 야인들 때문이었다.

남만 야인들은 밀림에서 주로 사용되는 특이한 형태의 곡도를 이용해 장창을 막거나 잘라나갔다.

“야, 응후! 너 이 새끼, 물소 떼만 막으면 다야? 빨리 웅가량 안 도와줘?”

“아, 씨! 진짜! 나는 뭐 놀고 있는지 아슈?”

응족장 응후는 신경질적으로 반항했다.

“오냐! 그냥 여기서 나한테 죽자!”

“니미, 알았쑤다. 너, 너, 너! 웅족 도와죠. 빨리빨리 안 움직여? 앙? 내 목 떨어지면 네놈들 목은 온전할 줄 알아?”

응후는 괜히 자신의 수하들에게 화풀이했다.

그러면서도 응후는 야율황기를 보며 중얼중얼 불만을 터트렸다.

야율황기의 명으로 인해 이삼십 마리의 독수리 떼가 성벽 위로 선회하자 전투의 양상이 남만야수궁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마현, 너 이 새끼! 이 상황에도 코빼기를 안 비친다 이거지? 오냐! 오늘 네놈을 갈가리 찢어발겨주마! 대호야, 우리도 가자!”

야율황기는 연신 으르렁거리고 있는 대호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대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벽을 향해 뛰어나갔다. 곰들이 수십 차례 발톱으로 찍어 외벽을 오르고 있었지만 야율황기를 태운 대호는 달랐다.

몇 번의 도약으로 어느새 성곽 위, 성상(城上)에 안착했다.

크허어엉!

성상에 올라서자 대호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히익!”

그러자 성상에 있던 마인들은 이를 악물며 저마다 검이며 도며 지닌 병기를 빼들었다. 그리고는 기합을 지르며 대호를 베어갔다.

그러자 대호는 눈에 살기를 폭사시키며 커다란 앞발을 휘둘렀다. 그 한수에 대호를 찔러가던 병기들이 모조리 반 토막이 났다.

크르르 크하아앙!

대호는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나직하게 울부짖더니 마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마인 하나가 대호의 이빨과 앞발에 갈기갈기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인과 대호 사이에서 암흑과도 같은 빛이 번쩍이더니 마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드!”

마현은 일단 실드로 대호의 앞발을 막았다.

콰그긍!

대호의 일격에 실드가 충격을 받고 부르르 떨렸다.

마현은 재빨리 실드를 거두며 대호의 배를 향해 신형을 미끄러트렸다. 그리고는 마력을 끌어올려 부드럽게 일장을 내질렀다.

허진의 독문무공인 마라역천공 중 마라광장(魔羅狂掌)의 한 수였다. 마현은 야율황기를 태운 대호의 배에 손바닥을 밀착시키며 부드럽지만 강하게 밀었다. 그 힘이 태산과도 같아서 대호와 야율황기는 허공으로 떠밀려나가야 했다.

마현은 허공에 뜬 대호의 배를 향해 다시 부드러운 일장을 내질렀다.

후우웅!

마현의 손에서 부드럽지만 무거운 장풍이 뿜어져 나와 대호와 야율황기를 성상 밖으로 날려 보냈다. 그 후 마현은 성벽과 성상이 꺾이면서 만나는 지점에 서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곰과 웅족 야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스 앤 헤비 그래버티!”

마현은 성벽을 미끄럽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강한 중력을 이용해 야인들과 곰을 압박했다.

쿵 쿵 쿵 쿵!

결국 마현이 만들어낸 마법의 힘을 이기지 못한 곰들과 야인들은 성벽 밑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마현이 중력 마법을 거둬들여 크게 다치는 이들은 없었다.

“야율황기, 이게 무슨 짓인가?”

마현은 다시 대호에 오르는 야율황기에게 소리치며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한 마리 제비처럼 멋지게 허공을 가른 마현은 야율황기 앞에 내려섰다.

“너! 너 이 새끼!”

야율황기는 마현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육두문자를 날리며 살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대호 역시 그 기세에 편승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놈이 생각하는 친우라는 게 고작 그 정도였더냐?”

씩씩거리던 야율황기는 “으아악!” 고함을 지르며 마현에게로 달려들었다.

호랑이 발톱처럼 바싹 오므린 야율황기의 조수가 마현의 요혈을 노리고 들어왔다.

마현은 실드를 쳐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마라환영보를 이용해 야율황기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황기!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보란 말이다!”

“어떻게, 네놈은! 네놈은 친우의 등에 비수를 꽂느냔 말이다!”

오히려 야율황기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마현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으며 다짜고짜 공격만 하니 마현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방어만 하기에는 야율황기의 공격이 너무 거세기 짝이 없었다.

“파괴의 힘을 마나에 담아 지옥의 겁화를 땅거죽 위에 씌우리라, 시트 오브 플레임즈!”

마현은 블링크를 이용해 거리를 벌린 후 야율황기와의 사이에 불벽을 만들었다.

화르르륵!

뜨거운 불길이 일 장 이상 치솟자 야율황기는 더 이상 마현에게로 달려들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마현은 불벽을 유지시키며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황기,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라. 등은 뭐고 비수는 또 무슨 소리인가?”

“정녕 네가 끝까지 나를 기만할 작정이냐?”

“사생결단을 낼 때 내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결국 마현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 담겼다.

야율황기는 자신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마현의 시선에 잠시 움찔했다. 야인으로 태어나 야인으로 자란 야율황기는 직감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마현의 눈빛을 보건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야율황기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렇기에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운남성주를 부추겨 남만야수궁을 치게 한 것이 네놈과 마교가 아니란 말이냐?”

야율황기의 말에 마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화산파에서 개최되었던 무림대회 때 야율황기를 비롯한 남만야수궁 야인들이 남만으로 서둘러 돌아갔었다.

“뭐가 아쉬워 나와 본교가 운남성주를 부추긴단 말이냐?”

마현은 도대체 야율황기가 무엇을 보고 왔기에 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달포 전 군부가 대대적으로 남만야수궁을 침략할 때 그 선봉에 마교 군사 율기와 삼공자 도종극, 그놈들이 있느냔 말이다! 마교의 허락이 없었다면 어찌 그들이…….”

“뭣이라? 율기와 도종극?”

마현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는 것과 동시에 신형이 한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야율황기 바로 코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현은 분노와 살기가 뒤섞인 눈빛을 하고 야율황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황기, 다시 말해 봐라! 분명 남만으로 향한 군부에 율기와 도종극이 있었어?”

“뭐, 뭐야?”

그러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야율황기였다.

마현은 당황하며 뒤로 몸을 빼려는 야율황기를 자신의 얼굴 바로 앞으로 잡아당겼다.

“남만야수궁을 침략하는 군부 앞에 율기와 도종극이 있었단 게 정말 사실이냐?”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질문하는 마현의 눈빛에 야율황기는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황기!”

“그, 그래……. 이게 아니잖아!”

마현의 기세에 잠시 눌렸던 야율황기는 순간 자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떠올리고는 거칠게 소리쳤다.

* * *

마주전 대전 안.

십여 명의 마교 수뇌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야율황기가 가져온 소식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마주전 태사의 바로 앞 마현 옆에 야율황기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야율 소궁주.”

허진은 대전에 수뇌부가 다 모이자 야율황기를 불렀다. 마현을 통해 전해들은 율기와 도종극에 대한 일이 사실임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운남성 소속 황군과 황실에서 파견된 별군으로 만들어진 남만……, 빠드득! 토벌군의 선봉에 마교 삼공자 도종극과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분명 마교의 무력단체 수장이 맡았습니다.”

“갈승도?”

“또한 마교 군사 율기가 선봉대의 지휘를 맡고 있었습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반도(叛徒)들이 황군 속에 숨어 있었구나!”

가릉이 이를 박박 갈며 살기를 표출시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도가 아니라 세작입니다, 대장로님. 애초에 그들은 교인이 아니었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소교주님?”

공효는 마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놈들을 잡아 본교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들의 대화에 야율황기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아니 가뜩이나 복잡하던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마교로 와 알현한 교주는 사공소가 아니라 허진이었다. 거기에 마현의 호칭은 대공자가 아닌 소교주였다. 강자 원칙이 지배하는 마교이고, 또 그런 마교 내부의 일이니 그렇다고 칠 수 있다.

그런데 반도는 뭐고 세작은 또 뭔가?

가뜩이나 머리 쓰기를 싫어하는 야율황기는 이어지는 대화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결국 황실인가?”

허진이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율기와 도종극, 즉 귀림과 검림은 분명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건 허진과 마현이 경험을 했으니 확실한 것이다.

그런 귀림과 검림의 행보에 군부가 반드시 개입되어 있었다. 그 군부는 조정과 황실의 명을 받는다. 그 관계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황제까지 이어진다.

“정황이 그렇게 이어지긴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심증만 갈 뿐 물증이 없음을 공효가 꼬집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까지 배제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하오나 교주님.”

가릉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보건데 다른 의견이 있어 보였다.

“이제껏 황실이나 황제가 무림사에 끼어든 적은 없었사옵니다. 또한 요 근래 무림의 일이 조정이나 황실에 위협을 줄만한 사건도 없었습니다.”

“결국 비약적인 결론이란 뜻인가?”

“그건 아니옵니다. 다만 본교가 쉽게 황실과 황제를 걸고 넘어가기에는 이 사안은 너무나도 중하고 민감하옵니다. 또한 이 일의 중심에는 무림맹주이자 제후가 된 검림주가 있사옵니다. 그가 다른 야욕을 가지고 일을 벌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추론들이 나왔지만 딱히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율기와 도종극을 잡아 족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봉문을 풀기까지는 날짜가 남아 있어 당장 본교가 움직일 수는 없으니…….”

허진은 조용히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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