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87화 (187/351)

# 187

12화

“그러지 말고 일어나게나. 내 주방장에게 일러 좋은 것을 내오라고 할 테니.”

“정말이시오?”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란을 피우던 사내는 누운 채 고개를 홱 돌려 주인을 쳐다보았다.

“후하게 한 상 차려주겠네.”

“역시 주인장이 뭘 좀 안다니까. 읏차!”

사내는 홀가분하게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여나 해서 말하는 건데……. 정말로 아픈 것이오.”

“아무렴, 아픈 걸 아프다고 하겠지, 안 아프다는 것을 아프다고 하겠는가?”

“뭐 약소하지만 어디 술상이나 한 번 받아볼까?”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모습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고소를 지었다.

“저 친구인가 보군.”

마현은 사내가 공효임을 알아차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마현이 무덤덤하게 그를 지켜본 것과 달리 가릉은 다른 이들처럼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소문으로 취구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것을 들었지만 설마 이런 개망나니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자신이 천거를 해서 이곳으로 찾아왔기에 가릉은 마치 자신의 치부를 내보인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공효를 지켜보는 마현의 입가에 희미하지만 미소가 살짝 걸렸다.

‘급하면 체하는 법.’

마현은 공효가 객잔 안으로 들어선 후 한시도 그에게서 떼지 않던 눈을 그제야 거뒀다.

“얼굴을 봤으니 이제 일어나지.”

마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릉 역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구합니다, 소교주님.”

가릉의 말에 마현은 다시 한 번 게걸스럽게 술과 음식을 먹고 있는 공효를 쳐다보고는 객잔을 벗어났다.

그 둘이 객잔을 나서자 술주둥이를 입에 물고 술을 벌컥벌컥 마시던 공효가 술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손에 묻은 기름기를 쪽쪽 빨며 객잔 입구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취기가 없었다.

* * *

무림성 내 와룡각.

“으아아아!”

제갈묘는 신경질적인 고함을 터트리며 서탁 위에 놓인 벼루를 벽에 집어던졌다.

시커먼 먹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새하얀 벽지가 발라진 벽에는 검은 점들이 어지럽게 찍혔다.

분노를 참지 못한 제갈묘의 어깨는 거친 숨결로 인해 들썩거리고 있었다.

빠드득.

제갈묘는 조금 전 맹주전인 천무전에 다녀온 길이었다.

그곳에서 홀로 패장의 모습으로 온 불취개를 보았다.

제갈세가는 전멸, 남궁세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봉문,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큰 타격을 받은 개방.

제아무리 큰 변수가 생겨도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낭보를 기대하던 제갈묘에게 있어 불취개가 들고 온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悲報)였다.

씩씩거리던 제갈묘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머리가 식자 후에 있을 일들을 떠올렸다.

‘일단 맹주와의 사이를 다시금 돈독히 할 필요가 있겠어.’

제갈묘는 비록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진필성에게서 실망 어린 눈빛을 보았다.

하지만 진필성은 자신을 내치지 못한다. 자신이 없는 이상 그의 맹주 직은 위태롭게 설 수밖에 없는 외발뿐인 자리일 테니까.

또한 장차 제갈세가가 천하제일의 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진필성이라는 존재가 꼭 필요했다.

좋든 싫든 둘은 함께여야 했다.

‘일단 세가부터 정비를 해야겠어.’

어떤 거사를 치루든 밑바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제갈묘는 잘 알고 있었다.

‘개방 역시 달래줘야겠고…….’

그렇게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리고 답은 하나로 연결되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지우리라, 이 땅에서!’

제갈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마교와 더불어 마현을 떠올렸다. 그런 그의 눈빛에서는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시각.

천무전에 마련된 태사의에 앉아 있는 진필성은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살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를수록 진필성은 더욱 세게 관자놀이를 눌렀다.

‘역시 마현, 그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그자를 죽이는 것이었는데…….’

내내 거슬렸던 찜찜함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마현은 진필성의 입장에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자였지만 이상하게 처음부터 묘하게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이였다.

‘일이 더 틀어지기 전에 황제 폐하를 알현해야겠어. 그러는 김에 어르신도 찾아뵙고.’

마음을 굳힌 진필성은 고개를 들었다.

“우검 호법 자리에 있나?”

진필성의 목소리에 천무전 문이 열리며 우검 호법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마교 군사의 밀서에 마교 대공자 이야기는 없었는데…….’

“부르셨습니까?”

우검 호법을 쳐다보는 진필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농간일까?’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진필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라고 했다. 알아봐서 나쁠 것은 없었다.

“마교 군사에게서 온 특별한 밀서는 없었고?”

“없었습니다.”

“혹 사사로운 연락도 없는 것인가?”

우검 호법은 조용히 허리만 살짝 더 숙일 뿐이었다.

“본인이 알기로는 그대와 마교 군사는 동향인데다가 어릴 적부터 동문수학한 사이가 아닌가? 친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사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이십여 년 전 제가 검림에 몸을 담은 순간부터 그와 사사로운 연락은 끊었습니다.”

우검 호법은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담담한 표정에 거의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르신은 잘 계시고?”

“저 역시 근래에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진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내로 북경에 가는 것은 알고 있지? 그때 어르신을 한 번 찾아뵐 것이니 미리 언질을 넣어주게.”

“그리 하겠습니다, 림주님.”

“아! 그리고 가는 길에 제갈 총사를……. 아닐세, 내가 직접 찾아가는 게 낫겠군. 그만 나가보게.”

진필성은 우검 호법이 나간 후에도 그가 나간 문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딱히 어느 하나가 아닌, 모든 것이 찜찜하게 느껴진 것이다.

“좌검 호법.”

진필성이 조용히 부르자 뒤쪽에서 좌검 호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분간 우검 호법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라.”

진필성의 명에 좌검 호법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그가 본림의 소속이지만, 또한 본림의 사람이 아닌 것이 그 이유겠지.”

진필성의 말에 좌검 호법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정이 있고, 우검 호법이 검림에 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었기에 좌검 호법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을 것입니다, 림주님.”

“아네, 알지만 그리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검 호법은 결국 진필성의 명을 받들 수밖에 없었다.

* * *

마현의 집무실과 연결된 개인 연무석실로 네 개의 관이 배달되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가 대장로.”

“아니옵니다, 주군. 제 손에 훼손되는 것보다야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속하 역시 더 낫다고 여겨지옵니다. 그리고 그때 귀림주에게서 얻은 강시술 역시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내 마음이 편하군.”

마현은 고개를 돌려 네 개의 관 속에 누워 있는 장로들을 쳐다보았다.

“주군.”

가릉의 목소리에 마현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공효, 그자에 대해 어떻게 보고를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왜 그리 묻나?”

“괜히 속하 때문에 교주님이나 주군께서 애꿎은 시간만 허비한 것 같아 그렇습니다.”

가릉은 민망해했다.

“어떤 인물인지 곧 알게 되겠지. 본인이 괜히 가 대장로에게 저들을 가져오라 시킨 것이 아니야.”

“무슨 뜻이신지…….”

“주군, 데리고 왔습니다.”

마침 왕귀진이 연무석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대장로도 보면 재미있을 것이오.”

무슨 일인지 모르나 곧 알 수 있다는 생각에 가릉은 호기심을 억누르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준비하라.”

마현 역시 한쪽 옆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는 가릉 곁으로 자리를 피했다.

흑풍대원 하나가 연무석실 중앙에 허름한 의자를 가져다놓자 거적때기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한 사내가 안으로 질질 끌려왔다.

보아하니 강제로 납치된 듯 보였지만 그 사내는 의외로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주군?』

가릉은 전음으로 마현을 불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저 방긋 웃는 웃음뿐이었다.

딱!

마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 사내 앞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라이트 구 하나가 만들어졌다. 전처럼 주위를 밝게 만드는 라이트 구가 아닌 그 사내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밝히는 그런 빛이었다.

라이트 구가 만들어지자 흑풍대원이 그의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는 거적때기를 벗겼다.

“큭!”

갑작스러운 빛에 고통을 느낀 것인지 사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저, 저자는?』

납치되어온 사내는 바로 공효였다.

『쉿!』

마현은 한쪽 눈을 살짝 찡긋하며 손가락을 입 위에 얹었다.

평범한 범부라면 어두운 석실에서 요상하게 빛나는 빛을 본다면 무서움에 떨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낭랑하게 소리쳤다.

“네놈들은 누구냐?”

그 모습에 가릉의 눈동자가 슬며시 커졌다.

가릉은 놀란 눈으로 마현과 공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흠! 그간 모든 사람들을 속여 왔었단 말인가?’

그것도 놀랍지만 그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린 마현도 대단했다.

“이 사실을 누구누구 아느냐?”

왕귀진은 목소리를 살짝 변조한 채 살기를 드러냈다.

“무엇을 말이냐?”

“네놈이 분명 본림에 관한 일을 알고 있지 않느냐?”

왕귀진은 더욱 험악하게 몰아붙였다.

“리, 림이라니……, 네놈들은 귀림이더냐?”

공효는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소리쳤다.

『적어도 귀를 닫고 살지는 않다는 증거이고…….』

마현의 매직마우스에 가릉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마인들은 귀림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철저히 함구시켜 놓은 까닭이었다.

“율기, 네 이놈! 네놈이 분명 이 자리에 있으렷다!”

공효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내 할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목을 노리는 것이냐? 그저 내 손으로 네놈을 죽이지 못하고 다시금 네 손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한탄스럽기만 하다! 내 입에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죽여라, 나를 죽여라!”

그의 말에 가릉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저 자연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허어, 이런 일이!’

가릉은 또 얼마나 많은 일이 율기의 손에 가려졌을까 싶었다.

“말하라, 우리의 비밀을 누구누구에게 말을 했느냐?”

“죽여라, 그냥 나를 죽여라.”

“중원환축록(中原還逐鹿), 투필사융헌(投筆事戎軒). 이래도 모르겠다고 하겠느냐?”

왕귀진이 더욱 강한 살기를 담자 몸을 조여 오는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던 공효가 머리를 뒤로 젖혔다.

“푸하하하하하!”

그리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저 초당(初唐) 때 위징의 시, 술회의 한 시구가 아니더냐. 붓을 든 자라면 누구라도 아는 글귀인 것을…….”

그렇게 웃던 공효는 웃음을 딱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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