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85화 (185/351)

# 185

10화

마현이 소교주가 됨으로써 이제는 이공자 위에서 내려온 사공찬이 대주가 되어 그의 직속무력단체인 독혈대와 호원무대인 염왕대를 통합시켜 독혈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교주인 허진의 명으로 마교는 일 년 동안 한시적인 봉문에 들어갔다. 다시금 천하를 향한 날갯짓을 위해 잠시 웅크린 것이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았지만 실은 이제부터가 개혁과 변화의 시작이었다.

허진은 화려한 태사의에 앉아 그 앞에 부복하고 있는 네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을 한참 보던 허진은 서탁 위에 올려놓은, 그들이 건넨 두 개의 석판에 시선을 돌렸다.

하나는 반으로 부서진 오래된 석판이었고, 하나는 새로 만든 듯 깨끗한 석판이었다.

그 석판은 충성을 서약하는 일종의 연판장이었다.

허진이 찬찬히 살펴보니 부서진 연판장은 사공소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새 연판장에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흠…….”

허진이 나직한 침음성을 흘렸다.

‘이들이 존재하는 줄은 알았지만…….’

허진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어렴풋이 눈치만 채고 있던 오직 교주에게만 충성하는 직속무력단체이자 마교 내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단체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였다.

오십의 천마대, 일백의 지마대, 일백의 인마대, 그리고 암살단인 삼십의 마령단까지. 이 정도의 수로 이루어진 마인들이라면 본교와 싸워도 쉽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전력인 것이다.

이처럼 많은 인원들이 그동안 본교 내에서 암약하면서도 부교주였던 자신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니……. 하물며 사공소의 오른팔이나 매한가지였던 율기마저 몰랐으니, 허진으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상교주께서 암습을 당하지 않고 이들을 깨워 반격했다면 귀림은 무엇 하나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몰살당했겠군.’

그만큼 율기가 사공소의 눈과 귀를 완벽히 가렸다는 의미도 되었다.

“이제는 태상교주가 되신 사공소 전대 교주께서 관례에 따라 직접 반으로 갈라 소신들을 통해 전달하신 겁니다, 교주님.”

허진의 침묵이 오래 이어지자 천마대주가 말을 덧붙였다.

“천마대주라고 했던가?”

“예, 교주님”

허진의 물음에 천마대주가 더욱 깊게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성명은?”

“소신에게는 이름이 없사옵니다.”

“그렇군.”

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마대주 옆에 나란히 부복하고 있는 다른 이들도 쳐다보았다. 물어보나마나 그들에게도 이름이 없을 것이다.

평생 교주가 부르지 않으면 어둠속에서 살다 죽어갔을 그런 이들이었다.

‘어찌되었든 이걸로 숨통이 조금은 트인 것인가?’

허진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율기가 맡고 있던 마교귀이각과 감찰각이었다.

그들을 고스란히 다시 임용하자니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간세를 걱정해야 했고, 다른 이들로 대체하자니 그에 적합한 인물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고민거리였는데 이들의 등장으로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천마대주.”

“하명하시옵소서.”

“마령단을 제외하고 그대들 셋 중에 하나는 본교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 말에 천마대주를 비롯한 지마대주와 인마대주의 몸이 움찔거렸다.

“어느 대가 적임이라고 생각하나?”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소신이 감히 여쭈어도 되겠는지요?”

“수마대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수마대라고 하면 직속무력단체라기보단 호위단체에 가까웠다.

사공소에게는 오십 명의 수마대가 있었다.

그 수마대 중 절반 이상이 율기의 계략에 넘어가 죽고, 살아남은 이십여 명만이 겨우 목숨만 유지했다.

원래대로라면 교주가 그 수마대를 인수해야 했지만, 허진은 그들을 마혼대(魔魂隊)로 개명시켜 사공소의 개인 수신호위대로 붙여주었다.

“그렇다면 인마대가 가장 어울릴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허진은 시선을 돌려 인마대주를 쳐다보았다.

“인마대주,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그저 명에 따를 뿐이옵니다.”

인마대주는 머리를 더욱 깊게 조아렸다.

“인마대가 수마대가 된다면 그 빈자리가 클 터. 인마대주.”

“예, 교주님.”

“그대가 그대 뒤를 이어 새로이 인마대를 만들 후임자를 임명하라. 그리고 그대와 인마대는 수마대주와 수마대가 되어 본좌를 찾아오라.”

“명!”

허진은 깨끗한 석판, 충성 서약이 새겨진 연판장을 집어 들었다.

“천마대주, 지마대주, 그리고 마령단주.”

“예, 교주님.”

“하명하시옵소서.”

“그대들의 충성을 허한다!”

허진의 명에 그들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 * *

마현은 흑풍각을 나와 임시 마주전으로 사용하는 부마전으로 향했다.

마주전으로 향하는 낭하(廊下)에서 다섯 장로와 마주쳤다.

“소교주님을 뵈옵니다.”

가장 먼저 가릉이 마현을 알아보고 다가와 예를 갖췄다.

“대장로가 되더니 신수가 훤해지셨소.”

가릉이 제아무리 자신의 수하였지만 이제는 대장로가 되었기에 마현은 반 존대로 그를 대했다.

“다 소교주님의 은덕이옵니다.”

또한 가릉의 호칭 역시 바뀌었다.

사장로 국충과 오장로 기건양이 함께 있어서였다. 물론 그들 역시 가릉이 마현을 주군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음알음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할 뿐이었다.

“새로이 장로가 된 것을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소교주님.”

국충은 무덤덤하게 마현의 인사를 받았다.

“소교주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반면 기건양은 국충과 달리 극진한 자세로 마현의 인사를 받았다.

국충이 장로 직에 오른 것은 허진의 뜻이었지만 기건양은 마현이 천거를 했었다.

과거 추도영의 일이 있은 직후 마현과 기건양은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만남을 가져왔다.

비록 기건양이 마현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기건양을 지켜본 마현은 그의 강단과 지조 어린 마음을 내심 높이 샀었다.

그런 사실을 기건양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허진이 마현의 천거에 흔쾌히 응한 것은 다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한 것이었다.

마현이 좀 더 쉽게, 그리고 탄탄한 기반을 다지며 교주 자리에 앉기를 원한 허진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본인이 뭐 한 것이 있겠소. 교주님이 기 장로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런 것이지.”

가벼운 인사가 오간 후 마현과 다섯 장로는 허진을 알현하기 위해 마주전으로 향했다.

마주전 앞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유령대주 하강우였다.

하강우가 알현을 청하기 위해 먼저 마주전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응?’

마현은 상당량의 마력을 감지했다.

그 마력이 하나라면 당연히 허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나가 아니었다.

마현은 투시 마법을 이용해 안을 들여다보려다가 말았다. 예의가 아닐뿐더러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에게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곧 낯선 네 기운이 사라지자 마주전에서 하강우가 나왔다.

‘아마도 교주 직과 관련된 이들 같군.’

마현은 익숙하지만 전과 다른 느낌을 받으며 허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임시로 부마전을 마주전으로 이용했기에 넓은 대전이 없어 마현을 비롯해 다섯 장로는 간략하게 예를 갖춘 후 넓은 탁자로 모여 앉았다.

“하 대주, 두 부대주도 부르라.”

허진의 명에 잠시 후 도완과 구영이 자리를 함께했다.

“대장로.”

“예, 교주님.”

“지금부터 본좌가 한 말을 내일 본교에 공포하라.”

보통 그런 일은 군사가 하는 일이었지만, 현재 군사 자리가 공석이라 군사가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현재 가릉이 맡고 있었다.

“하 대주. 그대가 감찰각주를 맡으라. 그리고 도 부대주와 구 부대주는 감찰대주직을 맡으라.”

“주, 주군. 아니 교주님!”

허진의 명에 하강우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불충임을 곧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감찰각 만큼은 내 믿고 의지할 만한 그대들이 맡으라.”

“하오나…….”

하강우는 쉽게 허진의 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습이었다.

왜 안 그렇겠나?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강우를 비롯한 유령대는 허진의 신변보호를 비롯해 그의 손발 노릇을 하던 직속무력단체였다. 그렇기에 허진이 교주 자리에 오르면 자신들이 수마대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라!”

재차 거듭된 허진의 명에 하강우는 잠시 고뇌에 빠진듯하더니 결국 허리를 숙여 명을 받아들였다.

“……명을 받드옵니다.”

하강우 양 옆으로 앉아 있던 도완과 구영 역시 그를 따라 허리를 깊게 숙였다.

“현아.”

“예, 스승님.”

“무영대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생각은 없느냐?”

마현은 허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율기 휘하에 있던 감찰각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율기의 손에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정보단체인 귀이각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

무영대를 이용해 귀이각을 접수할 생각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무영대를 잘 부탁드립니다.”

마현은 언젠가 무영대를 세상 밖으로 풀어주겠다고, 애초에 그들을 받아들일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이왕지사 풀어줄 바에야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귀이각을 접수하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름조차 지우고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었던 설움을 단번에 날릴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스승의 든든한 귀 노릇을 해줄 것이다.

“귀이각은 무영각으로 개명하면 좋겠군.”

“교주님, 공석이 되어 있는 군사 자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가릉의 질문에 허진은 짐짓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사실 현 마교 개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 자리였다. 하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어 허진도 고심하고 있는 참이었다.

“혹 천거할 만한 이라도 있는 것인가?”

“천거라고 상언을 드릴 것까지는 아니옵니다만 전전대 교주님과 전대 교주님, 두 분을 보필한 마뇌(魔腦) 공융을 기억하시는지요.”

“급사로 죽었지? 그 뒤로 율기가 파격적인 인사단행으로 군사 자리에 올랐고.”

“그렇습니다, 교주님.”

“……?”

“그 공융의 후손이 하나 있습니다.”

“마뇌의 피를 이어받았다면 단연 비범한 천재이겠군. 그렇다면 분명 본좌도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 기억에는 없군.”

허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이름을 떠올리려 애써 봤지만 그에 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릴 적 신동 중에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마뇌 공융이 죽는 시점을 기해 빛나던 천재성이 사라지고 범인보다도 못한 둔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간혹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취구(醉狗)라는 별명으로 날건달도 못되는 한량 짓을 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 이를 천거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군.”

“그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그저 늙은이의 직감일 뿐이옵니다, 교주님.”

가릉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네가 한 번 만나보겠느냐?”

“가 대장로와 한번 그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그러거라. 어차피 군사 자리가 급하다고 해서 아무나 앉혀놓을 자리는 아니니…….”

허진은 마현에게서 시선을 떼고 탁자에 앉은 이들을 두루 쳐다본 후 다시 가릉을 쳐다보았다.

“본교는 교의 재정립을 위해 일 년간 봉문에 들어갈 것이다.”

“명!”

“명!”

허진의 명에 모두 허리를 숙이며 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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