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5화
허진의 장심이 한순간 능자필의 후두와 목 사이를 타격했다. 허진의 독문무공인 마라독혈수공의 한 수였다.
쾅!
강한 충격에 능자필의 몸은 바람개비처럼 허공에서 반쯤 휙 돌더니 머리가 바닥에 강하게 부딪혔다.
능자필은 제대로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몸을 빼냈다.
“으으!”
어느 정도 허진과 공간을 벌리고 나서야 비로소 여유를 되찾았는지 능자필은 지독한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능자필은 여전히 오만하게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허진을 보며 입가를 씰룩거리다가 입술을 다시 오므렸다.
허진을 향해 귀극환혼사심소를 펼친 것이다.
능자필은 핏기 없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할 정도로 귀극환혼사심소를 극성까지 펼쳤다. 소리 없는 파장이 허진의 머리를 덮칠 때였다.
“갈!”
허진이 오른발을 들어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소리쳤다.
쩌정―
거대한 종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허진과 능자필의 중간에서 터졌다.
“컥!”
귀극환혼사심소가 강제로 깨어지는 바람에 내부가 진탕되자 능자필은 살점이 섞인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고작 그 정도로 감히 본교를 넘본 것이더냐?”
허진은 능자필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만큼 앞으로 두어 걸음 내딛었다.
그런 허진을 보는 능자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어느새 두려움이 깃든 까닭이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율기가, 그리고 도종극이 전해준 허진의 무위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마교에서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교주 철혈마제 사공소뿐이었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사공소에게 독이 든 차를 마시게 했고, 원하는 바대로 그를 중독시켰다.
그런데 허진이 보여준 무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무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가히 사공소와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결론은 허진이 그동안 본신 무력을 숨겼다는 것이다.
치가 떨릴 정도로 완벽하게.
‘도종극과 율기 놈의 말만 믿고 서두른 것이 화가 되었구나.’
능자필은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구류귀혼공과 귀극환혼사심소의 대성을 우선시했어야 했는데…….’
검림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급함에 휩싸였던 능자필은 도종극과 율기의 말만 믿고 덜컥 움직여버린 것이다.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능자필은 일단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주위를 재빨리 살폈다.
“크으으, 으아아악!”
때마침 자신의 귀극환혼사심소에 걸려 심마에 빠진 마현에게서 지독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로 인해 자신을 노려보던 허진이 찰나지만 신경이 분산되었다.
‘이때다!’
능자필은 재빨리 바닥을 박차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크크크, 다음에 보자. 그때는 네놈의 살과 피를…… 컥!”
단숨에 몇 십 장을 내뺀 능자필이 소름끼치는 웃음을 터트리며 살의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능자필은 흡사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이형환위의 수로 모습을 드러낸 허진의 모습에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네놈의 살 길은 어디에도 없다.”
허진의 손을 독수리 발톱처럼 펼쳐 능자필의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허진의 다섯 손가락은 피부를 파고들었고, 그로 인해 능자필의 머리에서는 다섯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어 능자필은 구류귀혼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회색 손톱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크악!”
그러자 허진이 능자필의 머리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능자필은 두개골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의 날카롭게 오므려졌던 조수가 힘없이 풀렸다.
허진은 능자필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쿵!
능자필은 큰 충격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고, 등은 활처럼 휘어졌다.
퍽!
등이 휘어지며 위로 튀어 오른 능자필의 배를 허진은 바닥으로 내려오며 발로 찍어 눌렀다.
“끄으, 끄으으……!”
능자필은 경기를 일으키는 듯 힘겹게 신음을 토해냈다.
“본교를 능멸한 죄, 이제 네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마!”
허진의 눈에서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살의가 담긴 목소리가 차갑게 흘러나왔다.
펑!
허진은 능자필의 복부로 마력이 담긴 일 장을 내질렀다. 그 한 수로 능자필의 단전이 부서졌다.
“아, 안 돼에!”
능자필은 눈을 부릅떴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허진의 손속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허공섭물로 근처에 나뒹구는 검을 잡아당겨 쥐고는 능자필의 근맥이란 근맥은 모조리 잘라 버렸다.
서걱!
능자필의 손목과 발목에서 피가 터졌다.
“이렇게, 이렇게!”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눈을 부릅뜨고 발악하는 능자필을 더욱 냉혹한 눈길로 내려다보던 허진은 발을 올려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콰직!
능자필은 가슴이 함몰되며 겨우 목숨 줄만 유지한 채 혼절했다.
“사령신위!”
허진의 목소리에 령좌를 필두로 사령신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을 삼공자와 함께 지하사옥(地下死獄)에 가두라!”
사령신위 중 둘이 단전이 파괴되고 근맥이 잘린 능자필을 양쪽에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도종극을 향해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이었다.
퍼벙!
“으악!”
“크헉!”
사령신위를 돕기 위해 한 발 앞서 움직인 두 유령대원이 느닷없는 장력에 피를 뿜어대며 쓰러졌다. 그리고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도종극이 그 자리에서 튀어 오르더니 빛살처럼 빠르게 마주전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노옴!”
그 모습에 허진이 노기에 찬 일갈을 터트리며 땅을 박찼다.
“으아아아아!”
잠시 잠잠했던 마현의 비명이 터져 나오자 허진은 몇 걸음 채 떼지 못하고 다시 걸음을 멈춰야 했다. 허진은 멀어져가는 도종극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박박 갈았다.
허진은 어느새 마주전 안으로 들어서 있는 호원칠무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지옥참마대주.”
허진은 그중 뺨에 긴 검상을 나 있는 외눈의 구릿빛 장년인을 불렀다.
“본교의 배신자를 잡아오라!”
지옥참마대주는 허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지옥참마대주와 함께 서 있는 호원칠무대의 대주들 역시 그 반응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까지 이 싸움의 명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을 못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판단을 내려 누군가의 편에 섰다면 이 싸움의 양상과 승패가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호원, 즉 마교를 지키는 7개의 무력단체의 수장들답게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옥참마대주!”
허진의 노한 목소리에 지옥참마대주는 더 이상 갈등하는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강자지존, 그게 본교의 율법.”
지옥참마대주는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허진을 향해 군례를 취했다.
승자는 강자였고, 그는 교주의 부재 시 마교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겼으니 더 이상 고민은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명을 받드옵니다. 지옥참마대는 본교의 배신자를 쫓는다!”
지옥참마대주는 허진의 명을 받든 후 수하들을 이끌고 도주한 도종극을 쫓아 마주전을 빠져나갔다.
“나머지 호원칠무대는 지금부터 비상체제로 돌입한다! 아울러 혈검대, 그리고 염왕대는 지금 당장 본교를 능멸한 귀림의 잔당들을 소탕하라!”
거침없는 허진의 명에 현재 사공소와 함께 있는 귀갑철마대와 도종극의 뒤를 쫓아나간 지옥참마대를 제외한 다섯 호원 무대가 마주전을 빠져나갔다.
“구 부대주.”
허진의 부름에 구영이 다가왔다.
“한 시진 후에……, 현재 소재가 파악되는 수뇌부들을 전원 부마전으로 소집시키라.”
“명!”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여긴 허진은 유령대와 흑사신이 보호하고 있는 마현에게로 급히 뛰어갔다. 몸을 와들와들 떨며 끊임없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마현의 어깨를 허진이 강하게 눌렀다.
‘도대체 귀극환혼사심소에 홀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냐? 무엇을?’
여기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허진은 마현을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부마전 내 흑풍각으로 향했다.
* * *
타닥 타다닥!
허진은 신음과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마현의 몸 곳곳에 추궁과혈(推宮過穴)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허진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 땀방울이 흘러내려 허진의 눈동자로 스며들었다. 땀방울로 인해 눈이 쓰릴 법도 하건만 허진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고, 손놀림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언제까지 계속될 것만 같던 허진의 추궁과혈이 끝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허진은 곧바로 마현의 단전 위로 손을 얹었다.
곧 허진의 마력이 부드럽지만 거대한 노도(怒濤)처럼 마현의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허진은 마현의 단전 주위에 일곱 개의 서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서클을 피해 임독맥을 위시한 기경팔맥으로 마력을 밀어 올렸다.
마현의 몸 안은 거칠게 날뛰는 마력으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다.
귀극환혼사심소에 의해 마현의 정신이 타격을 받으며 그의 통제를 벗어난 마력들이 폭주한 것이다.
그렇게 마현의 몸을 살피는 허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능자필을 제압하고, 임시방편으로 본교를 정비한다고 잠시 시간을 지체한 것이 화근이 되어 마현의 혈맥 곳곳이 생각보다 많이 꼬이고 터진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리를 한다면 자신의 힘으로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우우웅!
허진이 단전의 마력을 쥐어짜듯 일으켜 마현의 몸에 흘려 보내자 둘은 한 몸처럼 은은하게 공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반 시진쯤 시간이 흘렀다.
허진의 몸은 추궁과혈을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땀에 젖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양의 땀을 흘렸던지 마치 물에라도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그가 입고 있는 옷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허진의 얼굴에 피로감이 더해 갈수록, 그의 몸이 땀으로 뒤덮일수록 마현의 신음과 경련은 서서히 사그라졌다.
다시 한식경의 시간이 더 흐른 후 허진은 마현의 단전 위에서 손을 거뒀다.
조용히 눈을 뜬 허진은 힘들었던 차기용역의 수를 이용한 요상대법으로 인해 격한 숨을 터트릴 법도 하건만 그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죽은 듯이 잠든 마현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 스승이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너라면 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이겨내야 한다!’
현재 마현의 모습은 아주 평온해 보였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허진이 강제로 마현의 몸에서 들끓는 내기를 다스린 것인지라 외형만 평온한 것뿐이지 지금도 마현은 지독한 악몽에 휩싸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허진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결국 거두지 못한 상태로 침상에서 일어나 밑으로 내려섰다. 갑작스럽게 마력을 탕진한 까닭인지 잠시 몸이 휘청거렸다.
근처에서 호법을 서던 하강우가 재빨리 그런 허진을 부축했다.
“괜찮다.”
허진은 몸을 반듯하게 세우며 마현을 둘러싸고 호법을 서고 있는 흑사신들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괜찮은 듯 보이지만 대략 한두 시진에 한 번씩 경련이 일어날 수도 있소. 그때마다 요상대법을 시행해야 하오.”
흑사신이 비록 마현의 수신호위였지만 마교의 사대마웅인 까닭에 허진은 하대를 하지 않았다.
그 말에 흑권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교주께서도 아시겠지만 본좌와 다른 흑사신들은 다시 깨어났지만 그렇다고 살아난 것이 아니네. 우리의 근원이 주군이니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없네.”
흑권 역시 허진의 위치와 마현과의 관계가 있어 하대를 하지 않고 반은 존대해 주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짐작했던 터라 허진은 고개를 천장으로 살짝 들어올렸다.
“령좌.”
“예, 주군.”
허진은 사령신위의 수장인 령좌를 불렀다.
“그대가 시행하라.”
“명!”
허진은 흑사신들에게 약간 고개를 숙인 후 흑풍각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