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75화 (175/351)

# 175

25화

마주전 앞, 수천 명이 들어서도 좁지 않을 만큼 넓은 마당 위에 마현은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에 떠 있었다.

‘폴리모프 상태에서 마법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불안정하다. 단숨에 각인시켜 주고 모습을 감춰야 한다.’

마현은 조심스럽게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마현의 몸 안에서 마력이 꿈틀거릴 때마다 사공소의 모습이 잠깐씩 흐려졌다.

마현은 끌어올린 마력을 최대한 안정을 시켜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마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마력으로 끝을 봐야 했다.

마현은 마력을 담은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샤우트 마법(Shout; 음향증폭 마법)을 걸었다.

“본교 교인들은 들으라!”

마현의 목소리는 물결이 만들어낸 파장처럼 마교 깊숙한 곳까지 퍼져나갔다. 또한 목소리에 강력한 힘이 담겨 있어 그의 목소리가 훑고 지나간 곳에 위치한 건물들이 하나같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도종극이 사실은 귀림의 소림주라고 했었지?’

마현은 마주전으로 오기 전 이 단체를 알기 위해 정체 모를 인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었다.

거기서 적을 사로잡아 정보를 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본교를 대부분 장악했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며 ‘귀림’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마현은 굳이 적에게 협박을 할 필요도 없이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마현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수많은 마인들이 곧장 마주전 앞 넓은 마당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가까이 몰려들었다.

마현이 허공에 높이 떠 있었기에 마교 안에 들어선 담벼락이나 건물들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현은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 마인들이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감히 본좌를 능멸하고 본교를 장악하려 하는 귀림을 지금부터 단죄하겠노라!”

마현은 목소리의 강도를 조금 높였다.

‘성공이군.’

의도한 바대로 되었지만 마현은 조용히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마주전 뒤에 위치한 마휴당의 문이 열리며 도종극과 율기, 그리고 능자필이 모습을 보인 까닭이었다.

그냥 가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또 몸 안에 담긴 마력의 양은 단 한 번이지만 7서클의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이어 레인!”

마현의 몸 주위에서 어마어마한 불길이 만들어지더니 그 불들은 장대비처럼 변해 마휴당으로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마현은 텔레포테이션 순간이동 마법으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 * *

“아직도 못 찾은 것이냐?”

능자필의 호통에 도종극의 목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도대체 네놈이 제대로 하는 것이 뭐란 말이냐?”

능자필의 살기에 도종극의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깊게 숙이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선 불만이 가득했다. 엄밀히 말해 교주를 놓친 것은 자신이 아니라 능자필이었다.

밤새 교내를 뒤지며 한숨도 자지 못한 도종극은 스승인 능자필을 죽이고 싶을 만큼 살심이 자꾸만 커져갔다.

“에잉, 못난 놈!”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는 도종극의 모습에 능자필은 탁자에 놓인 벼루를 들어 냅다 던졌다.

퍽!

벼루는 도종극의 머리로 날아가 부딪히며 부서졌다.

그로 인해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네놈이 고작 마교 하나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냐!”

벼루를 던져놓고 여전히 살기 가득한 호통을 치던 능자필은 눈매를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였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엄청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본교 교인들은 들으라!”

그 목소리에 능자필이 도종극을 죽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율기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젖혔다.

“교, 교주?”

율기가 놀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과 어제 탈출한 사공소가 그런 망가진 몸을 하고 저렇게 압도적인 무력을 보일 수는 없었다.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다시금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히 본좌를 능멸하고 본교를 장악하려 하는 귀림을 지금부터 단죄하겠노라!”

“교주가 아닙니다.”

율기는 그리 말하며 마휴당 문으로 다가가 활짝 열었다. 좀 더 자세히 사공소를 보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능자필과 도종극 역시 율기를 따라 마휴당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후아아앙― 쏴아아아아―

마휴당을 덮고도 남을 엄청난 불덩이들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소나기가 쏟아 붙는 장대비보다 더 많은 양의 불길이 마휴당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으아아아!”

불길 안에서 분노에 찬 일갈이 터졌다.

파벙!

마휴당 앞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기에는 입술과 뺨을 씰룩거리며 살기를 일으키고 있는 능자필이 서 있었다.

비록 화마가 집어삼키지는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불에 그슬려 꼬불꼬불해졌고, 입고 있는 옷 또한 끝부분이 누렇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부들부들 떨던 능자필은 손을 뻗어 도종극의 목줄기를 움켜쥐었다.

“크윽!”

능자필의 날카롭고 긴 회색 손톱이 도종극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제자야! 지금 당장 저놈을 잡아오지 않으면 오늘 밤 네놈의 살과 피로 저녁을 대신할 것이다! 알겠느냐?”

능자필은 도종극의 얼굴을 바싹 잡아당겼다가 마주전이 있는 곳으로 집어던졌다.

“아, 알겠습니다.”

도종극은 피가 흐르는 쓰라린 목을 손으로 비비며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귀림의 모든 힘을 써도 좋다.”

능자필의 허락이 떨어지자 도종극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소리쳤다.

“대사혼마령(大死魂魔靈)과 대고루귀령, 거기 있느냐?”

“부르셨습니까, 소림주님.”

도종극 옆으로 음침한 기운을 지닌 두 명의 늙은이들이 툭 떨어졌다.

“대사혼마령은 모든 사혼마령을 마주전 앞으로 집결시키라. 그리고 대고루귀령은 고루귀령들을 시켜 모든 철골강시와 묵혈강시를 데려와 마주전 대광장 주위에 은밀하게 대기시켜 놓도록!”

“명.”

“알겠습니다.”

도종극은 사공소가 이미 사라진 허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현, 네놈이냐?’

사공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도종극은 마현을 떠올렸던 것이다.

* * *

콰당!

마주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이 활짝 열리며 허진과 유령대, 그리고 그사이 합류한 마현과 흑풍대가 당당히 안으로 들어섰다.

마주전 앞에는 도종극과 율기, 그리고 처음 보는 두 늙은이가 서 있었다. 바로 대사혼마령과 대고루귀령이었다.

“과연 네놈이었구나!”

도종극은 안으로 들어서는 마현을 보자 이를 갈며 소리쳤다.

“감히 교주님을 능멸하고 본교를 장악하려 하다니, 내 오늘 네놈의 목을 친히 베어 버리겠다!”

허진은 도종극을 보자 수염까지 부들부들 떨며 호통을 쳤다.

“흥!”

그러나 도종극은 전혀 겁먹지 않은 듯했다.

“저, 저놈이!”

“스승님, 노여워하실 것 없습니다.”

마현은 노기를 이기지 못하는 허진을 만류했다.

“교주님이 중한 병으로 쓰러진 이때를 틈타 간사하게 탐욕스럽게 본교를 장악하려는 부교주와 그 제자인 흑풍마군을 교주님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노라.”

도종극은 허진과 마현에게 그리 소리치며 손을 들어올렸다.

“교주님이 본 소교주에게 넘겨주신 사혼마령대다.”

도종극의 명이 떨어지자 대사혼마령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고 그와 동시에 마주전 앞으로 오백 명의 사혼마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마주전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항상 패도적인 기운으론 넘치던 공기가 한순간 음침하게 바뀌었다.

“또한…….”

도종극의 입술이 잔인하게 비틀어졌다.

“본교의 오랜 숙원이던 강시술을 본 소교주에게 넘겨주셨다.”

이번에는 대고루귀령이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이백여 명의 고루귀령들이 입에 피리를 물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뺨이 살짝 부풀어 오르자 마주전 안으로 살이 썩는 듯한 지독한 악취가 흘러 들어왔다.

사박 사박 삭삭삭.

곧이어 넓은 마주전을 두르고 있는 담벼락 위로 강시들이 꾸역꾸역 밀리듯 넘어오기 시작했다.

또한 활짝 열린 마주전 문으로도 수백의 강시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마현과 흑풍대, 그리고 허진과 유령대를 이천오백여 구의 강시와 오백여 명의 사혼마령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에워싸 버린 것이다.

“크하하하하!”

고작 백여 명에 불과한 허진과 마현의 일행들을 보며 도종극은 득의양양한 웃음소리를 광오하게 터트렸다.

“본교를 능멸한 죄, 죽음뿐이다!”

도종극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그러자 흐느적거리던 강시들이 허진과 마현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승님, 강시들은 제자가 맡겠습니다.”

마현이 앞으로 나섰다.

“흑풍대는 모든 힘을 개방하라!”

“명!”

“명!”

서른 명의 흑풍대가 허진과 유령대 주위로 흩어져 둥글게 포진했다.

흑풍대는 서서히 좁혀오는 강시들을 보며 마기를 일으켰다.

“소환!”

흑풍대원들의 몸에서 피어난 순수한 마기의 결정체인 흑무가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푸핫!

마주전 앞마당에 깔린 두꺼운 장판석이 부서지며 검은 뼈가 불쑥 솟아올랐다.

하나가 아니었다.

도합 삼백이었다.

어지간한 장정보다 몸집이 더 큰 검은 스켈레톤들이 사기를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삼백 구의 스켈레톤은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허리를 숙이며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곤 뻥 뚫린 동공에서 사기를 잔뜩 담은 흉광을 터트리며 입을 쩍 벌렸다.

―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

죽음의 기운이 담긴 음성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죽음의 함성을 듣자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던 강시들의 움직임이 툭 멈췄다.

“피리에 공력을 높여라!”

그것에 당황한 대고루마령이 고루마령에게 재빨리 명을 내렸다. 고루마령들이 피리에 공력을 더욱 높이자 잠시 주춤했던 강시들이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마현은 허공으로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날아올라갔다.

“크하하하하!”

마현은 꾸역꾸역 밀려오는 이천오백 구의 강시들을 아래에서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도종극, 아니 귀림의 소림주. 네놈이 감히 본인 앞에서 언데드를 논하려 하다니……, 진정한 네크로 흑마법의 힘을 보여주마!”

마현은 흑사신을 소환했다.

“흑사신!”

괴성을 지르는 스켈레톤들과 꾸역꾸역 밀려드는 강시들 사이의 네 방위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푹! 푹! 푹! 푹!

검은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네 흑사신이 오연하게 서 있었다.

“흑사신, 너희들이 부릴 귀여운 놈들이다.”

“크크크크.”

흑도가 가장 먼저 군침을 흘리며 나직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언데드를 다스리는 군단장의 힘을 보이라!”

마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흑사신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는 단숨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수십 수백 마리의 뱀처럼 강시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철골강시와 묵혈강시를 빨리 저 검은 연기 밖으로 빼내라, 어서!”

대고루귀령이 당황하며 재빨리 명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루귀령들이 열심히 피리를 불어도 강시들은 그들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마주전 앞 광장 가장자리에까지 검은 연기가 빼곡히 찼다고 느낄 무렵,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그 검은 연기들이 흑사신들에게로 흡수되었다.

“나와!”

흑도는 근엄하게 뒷짐을 지며 명령했다.

그러자 강시들 틈에서 몇몇 강시들이 흑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강시들은 묵혈강시였다.

묵혈강시들은 흑도 앞에 우르르 몰려가더니 일제히 손을 들어 자기의 목을 쥐어뜯었다.

푸직, 콰득!

단숨에 스스로 목을 뜯어낸 묵혈강시들은 제 머리를 왼쪽 옆구리에 끼웠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바닥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그들이 디디고 서 있는 바닥에서 검은 연기기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시커먼 검이 솟아났다.

“귀여운 놈들이구나! 크하하하하!”

흑도는 광소를 터트리며 앞으로 위엄 있게 걸어 나갔다.

“어, 어떻게 된 것이냐?”

도종극은 당황한 목소리로 대고루귀령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미 얼굴이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대고루귀령의 귀에 도종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찌된 것이냐고 묻지 않느…….”

도종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도종극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허진과 마현을 둘러싸고 있던 철골강시들이 어느새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선두로 나선 묵혈강시들은 제 머리를 옆구리에 낀 채 사기가 흐르는 묵빛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캬캬캬캬캬!

―키햐아아아!

철골강시와 묵혈강시가 귀성을 터트렸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그 음산한 귀성은 단숨에 마주전을 뒤덮었다.

<8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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