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74화 (174/351)

# 174

24화

‘삼 일 후쯤이라고 했지?’

도종극은 사공소를 강시로 만들기 위해 재료를 모으는데 삼 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 율기의 말을 떠올렸다. 그가 여전히 독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공찬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천마신공만이라도 먼저 얻어야겠어.’

“일단 이공자를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둬라.”

“마의당주의 지하연구실이면 딱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라. 나는 일단 마휴당으로 가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소교주님.”

그렇게 흑살거부가 사공찬을 이끌고 대전을 나가려는 그때 밖으로 나갔던 율기가 사색이 된 채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소교주, 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런가?”

“교주가, 교주가…….”

“교주가 왜?”

“사, 사라졌소.”

율기는 말을 내뱉고 나서 사공찬의 얼굴을 보고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급해 사공찬이 대전 안에 있다는 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까닭이다.

“뭣이라?”

기가 막히고 놀란 것은 도종극도 매한가지였다.

“스…….”

도종극은 사공찬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율기의 소매를 잡고 구석으로 향했다.

“크하하하하! 과연 마도의 대종사이시다! 크하하하하!”

그런 둘의 귀에 사공찬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크게 터졌다.

“조용하지 못해?”

“크하하하…… 컥!”

더 크게 웃으려 했지만 흑살거부의 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은? 스승님이 마휴당에 계시지 않았나?”

도종극은 잡아먹을 듯 율기의 어깨를 억세게 잡았다.

“누군가가 나타나 교주를 데리고 사라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림주께서도 누군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눈치입니다.”

“으으으으!”

도종극은 주먹을 꽉 말아 쥐고는 바들바들 떨다가 결국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대전 벽을 강하게 내려쳤다.

콰광! 콰르르르르.

대전 한 벽이 부서졌다.

‘어찌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냐!’

도종극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겨우 가라앉혔다.

“림주께서 찾으시니 서둘러 저랑 가셔야겠습니다.”

“……알겠다.”

도종극은 일그러진 눈으로 사공찬을 내려다보았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그를 살려둘 필요성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사공찬을 단단히 가두라는 명을 내리고 도종극은 율기와 함께 마휴당으로 향했다.

* * *

사공소는 한순간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에 휩싸이자 내부가 진탕되는 것처럼 어지러워지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구역질로 인해 몸이 경직되자 몸 요혈에 난 상처가 갈라지고 애써 잊었던 고통이 다시 밀물처럼 밀려왔다.

“크윽!”

극도로 쇠약해진 몸은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교주님.”

다행히 마현이 몸을 숙여 쓰러지는 사공소를 받았기에 바닥에 나뒹구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다.

“교, 교주님.”

거산 정상에서 마현을 기다리던 가릉과 두 장로, 그리고 무영대주는 피투성이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 사공소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다가왔다.

“가릉.”

마현은 사공소를 눕히며 가릉을 불렀다.

가릉은 마현의 호명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재빨리 사공소의 맥을 짚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릉의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한참 동안 사공소의 맥을 살피던 가릉은 서둘러 품에서 자그만 침구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사공소의 몸에 침을 놓은 후 쇠침에 상처 입은 요혈들 위에 금창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마현은 거대한 실드를 만들어 거산 정상을 향해 몰려드는 거센 바람을 막는 것과 동시에 주위에 파이어 볼을 만들어 내부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어떤가?”

사공소는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그 곁에서 조용히 일어나며 가릉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않습니다.”

“흠…….”

마현은 피폐해진 사공소의 모습을 보며 무겁게 신음했다.

“장시간 음독하신 대다가, 주요 혈맥이 끊긴 것도 모자라 곡기와 물마저 입을 대시지 못한 터라……. 다 제 불찰입니다. 마의당주로서 교주님의 음독을 눈치채지 못했으니…….”

“가 당주, 그대는 의원이지 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가 죄책감을 뼈저리게 느낀다면 교주님을 살릴 생각만 하라.”

마현에게 있어 사공소의 생사여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사실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이다.

하지만 사공소는 마현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좋든 싫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수장이며,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정을 느끼게 해준 스승, 허진의 주군인 까닭이다.

“그보다도 방법이 없겠는가?”

“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마의당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라…….”

마현은 시선을 내려 산 아래 펼쳐진 마교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내 집을 빨리 찾아야겠군.”

마현은 품에서 만년한옥과 온옥을 꺼내 다시 워프게이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소화산 근처 동굴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스승과 수하들에게 최대한 빨리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 * *

입구는 좁았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넓은 동굴 안에 허진을 비롯해 귀갑철마대, 유령대, 그리고 흑풍대가 조용히 모여 있었다.

똑 똑 똑.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구석에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허진이 눈을 떴다. 허진이 눈을 뜨며 가장 먼저 바라본 것은 동굴 한구석 바닥에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 찬 둥근 원 그림이었다.

그 그림 중간 중간에는 검게 변한 골강시들이 땅속에 박혀 있었다.

“하 대주.”

허진은 마현이 새긴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유령대주를 불렀다.

“예, 주군.”

“오늘로 며칠이 지났지?”

“사흘입니다.”

마현이 홀로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흠…….”

미간을 좁히며 침음하는 허진의 음성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마현이 홀로 떠나며 내세웠던 계획이 자신의 상식으로는 너무 허황된 까닭이다. 하지만 평소 헛말을 하지 않는 제자였기에 불안했지만 믿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성적인 판단은 흐려지고 감정적으로 변해갔다.

‘내가 현이를 믿지 못한다면 세상 어느 누가 믿을까.’

자꾸 복잡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 눈을 막 감았을 때였다.

―캬, 캬, 캬캬, 캬.

―킥, 킥킥, 킥, 킥.

사흘 동안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갑자기 요상한 음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허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마현이 워프게이트진을 만드는데 있어 필수 재료인 마나석을 대신해 스켈레톤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마법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허진은 재빨리 눈을 떠 마법진을 살폈다.

우웅!

이내 미약하지만 은은한 파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허진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우웅!

허진이 막 자리에서 일어날 때 엄청난 진동과 함께 마법진에서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눈을 시리게 할 정도의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생각지도 못한 빛에 허진은 낯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빛을 가렸다.

강렬한 빛 무리 속에 언뜻언뜻 검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 허진은 마법진 안에 서 있는 마현을 비롯해 두 장로 등 여러 인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아.”

“스승님.”

허진은 환한 표정으로 마현에게 다가가다가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사공소를 발견했다.

“어, 어찌된 것이냐?”

마현은 동굴 안쪽에 사공소를 눕히며 마교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은 군사를 비롯해 삼공자와 그의 직속 무력단체가 본교의 사람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의 간세였다는 소리더냐?”

“십중팔구는 그런 듯싶습니다.”

“이놈들!”

허진은 기가 막혔다.

순수하게 마교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그런 줄 알았건만, 다른 세력의 간세라니. 허진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와 함께 살기가 터져 나왔다.

그 살기에 반응한 것인지 잠든 사공소의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마현은 재빨리 마기를 일으켜 사공소를 보호했다.

“스승님.”

허진 역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재빨리 마기와 살기를 갈무리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살심이 맴돌고 있었다.

“현재 본교 내부가 상당히 어수선합니다. 또한 아직 삼공자와 군사가 완벽히 본교를 장악하지 못한 듯싶습니다. 아울러 교주님의 치료도 시급하구요.”

“그래서 무슨 좋은 방도가 있는 게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삼공자와 군사가 본교를 장악해 들어갈 것입니다. 결국 그리되면 우리만 불리합니다.”

마현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허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자는 내일 이른 아침, 삼공자와 군사를 비롯해 정체 모를 세력을 쳐냈으면 합니다.”

“내일 아침에 말이더냐?”

현재 자신들이 있는 곳은 본교에서 수 천리 떨어진 소화산 인근이었다. 허진의 반응에 마현은 마법진을 가리켰다.

“조금만 손을 보면 여기 있는 인원이 단숨에 본교로 갈 수 있습니다, 스승님.”

이미 눈으로 보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허진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일말의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허진으로서도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래. 그리하자.”

허진은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문제는 명분이다. 무작정 쳐들어갔다가는 도리어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허진은 신중을 기했다.

“교주님이 직접 나서서 선전포고를 하시면 됩니다.”

“교주님이?”

허진은 깊게 잠든 사공소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아닙니다. 교주님이 나서실 수 있습니다.”

마현은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컴컴하던 하늘이 차츰 파란색으로 물들어갈 때쯤 마교를 둘러싼 천산 동쪽에서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었다.

푸핫!

폐마구간 바닥이 한순간 팡 터지며 바닥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던 오물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리고 바닥 한가운데 워프게이트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폐마구간 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어!”

허진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감탄사를 터트렸다. 마현의 말을 믿었지만 단순히 믿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스승님, 이제 시작입니다.”

워프게이트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허진과 유령대, 그리고 마현과 흑풍대뿐이었다. 두 장로와 가릉, 그리고 귀갑철마대는 사공소를 보호하기 위해 동굴에 남겨두고 왔다.

“한 손이라도 아쉬운 상황에 귀갑철마대와 두 장로를 놔두고 가도 되겠느냐?”

“그들과의 싸움에서 오히려 짐만 될 것입니다.”

허진은 워프게이트진을 타기 전 마현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더욱이 교주님을 등장시킨다고 해놓고 그들끼리만 왔으니 남몰래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스승님, 먼저 판을 벌이겠습니다. 일각 후 마주전 앞 대광장으로 오십시오. 흑풍대 역시 스승님을 따라오라.”

허진은 마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화등잔처럼 크게 떴다.

마현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싶더니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공소가 서 있었던 것이다.

‘역체변용술(役體變容術)?’

하지만 역체변용술이 아무리 얼굴과 몸집을 바꿀 수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온전히 가져다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변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몸의 일부를 뒤틀어 체형과 얼굴을 변형시키는 잡술인 까닭이다. 하지만 마현은 놀랍게도 역체변용술로 완벽하게 교주 사공소로 변해 있었다.

“괜찮아 보입니까, 스승님?”

마현은 폴리모프 마법으로 사공소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물었다.

“모습은 완벽한데……, 목소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구나.”

“목소리에 마력을 담는다면 어지간하면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목소리에 내력이 담기면 듣는 이는 그때부터 귀가 아닌 몸으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일리가 있었기에 허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먼저 판을 벌여놓겠습니다, 스승님.”

마현은 마주전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테이션 순간이동 마법으로 한순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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