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72화 (172/351)

# 172

22화

“강시술이 실전된 지 몇 백 년 전이다. 강시술이 실전되지 않았다면 나타났어도 벌써 나타났을 것이야.”

“강시술이 나타났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 가 당주.”

회회혈마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찌되었든 모르는 자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공자로 인해 결국 칼을 뽑았고, 그 칼이 반드시 우리에게도 휘둘러진다는 것이오.”

가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 누구 하나라도 몸을 보존해서 주군께 이런 사실을 알려드려야 할 것이오.”

회회혈마는 시선을 돌려 삼안혈화를 쳐다보았다. 삼안혈화는 딱딱해진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둘이 모종의 말을 나눈 듯했다.

“가 당주. 가 당주가 몸을 보존했으면 좋겠소.”

“싫소이다.”

“싫다니?”

“가려거든 이장로가 가시오.”

가릉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단칼에 회회혈마의 말을 잘라 버렸다.

“이 늙은이는 강시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봐야겠소. 그러니 이장로가 가시오.”

“허어……. 가 당주. 내가 갈 것 같으면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러니 가시오. 한시가 급하오.”

회회혈마가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가릉은 묵묵히 고개만 저었다.

“어서 몸을 내빼시라는데 왜 이리 말을 듣지 않는 게요?”

회회혈마는 답답한 듯 가슴을 퍽퍽 쳤다.

“이미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 늙은이가 고작 얼마 더 살자고 달아나서 뭐하겠소이까? 차라리 이장로가 어서 떠나시오. 또 그게 주군에게도 더 도움이 되지 않겠소이까?”

쇠고집도 이런 쇠고집이 없었다.

“이미 삼장로도 생사를 알 수 없어졌소. 그러니 사단이 벌어지기 전에 어서 몸을 내빼시오.”

“거 싫다는데 왜 자꾸 도망가라고 하시는가?”

가릉은 버럭 화를 냈다.

“차라리 칠장로, 칠장로 그대가 내빼시게.”

가릉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칠장로 삼안혈화에게로 넘겼다.

“호호호,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 저야 좋지요.”

간드러지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릉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말은 좋다고 하지만 웃음소리와 드러난 눈빛은 그와 정반대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언성이 높아졌다가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잠시 후 누군가에 의해 정적이 깨어졌다.

“그럼 다함께 빠져나가면 될 것이 아닌가?”

기이한 것은 정적을 깨트린 목소리가 그들 넷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넷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돌렸다.

“주, 주군.”

가릉의 지하연구실 중앙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마현이었다.

“주, 주군!”

회회혈마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마현을 향해 부복했다. 이어 삼안혈화도, 가릉도, 그리고 무영대주도 바닥에 엎드렸다.

“모두 일어나라.”

마현의 말에 넷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시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군.”

“이 늙은 수하의 마지막 똥고집입니다.”

가릉의 미소는 씁쓸했다.

“본인이 오다 무영대주가 본 강시를 보았다. 아마도 가 당주가 말하는 강시가 맞는 것 같더군.”

“저, 정말 강시가 맞습니까, 주군?”

“생기가 없고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을 강시라고 하지 않았나?”

“마, 맞습니다.”

이쯤 되자 가릉 역시 강시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가 당주, 주군께서 이미 강시를 다루는데 왜 그렇게 강시에 대해 집착을 하시는 것이오?”

회회혈마가 궁금이 참을 수 없었던지 황급한 상황이었지만 가릉에게 물었다.

“보았지, 암 보았고말고. 하지만 이장로.”

가릉은 회회혈마를 쳐다보았다.

“이 늙은이는 말이오. 직접 이 손으로 만들고 싶소.”

가릉은 주름이 가득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원한다면 만들게 해주지.”

가릉의 떨리는 눈동자가 마현에게로 향했다.

“빼앗아서 주지. 안 그래도 강시를 본 순간 가 당주, 그대의 얼굴이 떠올랐으니까.”

“주, 주군!”

가릉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가 지금 마현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가 당주, 자네가 나에게 줄 것이 있어.”

“목숨이라도 달라면 내놓겠습니다.”

“어차피 그대의 목숨은 내 것이 아니었나?”

마현의 목소리에는 농이 들어 있었다.

“주, 주군.”

가릉은 격한 마음에 마현의 농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대의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좀 쓰겠다.”

마현은 구석에 놓인 몇 개의 관 앞으로 걸어갔다.

사실 마현이 가릉의 지하연구실로 온 이유가 바로 만년한옥과 만년온옥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수하들을 만난 것이다. 마현에게도, 그들에게도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콰광!

마현은 주먹에 순수한 마력을 담아 석관을 후려쳤다.

석관은 마현의 주먹에 힘없이 부서지며 자욱한 돌먼지가루를 만들어냈다. 산산이 부서진 석관 잔해 속에서 마현은 큼직한 만년온옥과 만년한옥을 골라 근처 벽면에 걸린 커다란 주머니에 넣었다.

콰광 콰광 콰광!

그때였다.

석문에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소란스러운 고함이 어렴풋이 들리는 것을 보아 밖에서 강제로 석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듯했다.

“벌써 이곳까지 왔군.”

마현은 투시 마법으로 석문 밖을 쳐다보고는 서둘러 수하들을 자신 곁으로 모이게 했다.

“워프 네비게이션!”

마현은 수하들이 자신 곁으로 모이자마자 곧바로 단체 중단거리 순간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콰르르륵!

순간 이동 마법으로 인해 강렬한 빛이 터졌을 무렵 지하연구실을 굳게 닫고 있던 석문이 부서졌다.

* * *

마력에 의한 강렬한 빛이 다시 터진 곳은 마교로 잠입하기 전 마현이 서 있던 천산을 이루는 한 거산의 정상이었다.

“으으으!”

순간 이동 마법으로 인해 현기증을 느끼고 속이 울렁거린 탓인지 다들 나직이 신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촌각도 가지 못해 그 신음은 기겁으로 바뀌었다.

“헙!”

“허억!”

한 걸음만 삐끗하면 천애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쳐야 하는 거산의 정상에 자신들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고수들답게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무영대주. 본교 내에서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나?”

마현의 질문에 무영대주는 잠시 생각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몇 군데 있습니다만……, 어떤 목적으로 그런 장소를 찾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상당한 인원이 본교로 들어가도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여야 한다.”

“그런 곳이라면 적당한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어디지?”

“본교 가장 후미진 곳이지만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곳. 바로 군마를 키우는 마구간입니다.”

확실히 정보를 다루는 이답게 무영대주는 마현의 의도를 단숨에 간파했다.

‘마구간이라……. 거기면 워프게이트를 만드는데 무리가 없겠군.’

마현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잠시 대기하고 있도록.”

수하들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마현은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마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무영대주가 말했던 마구간이었다. 마교 내부가 귀림으로 어수선해져서인지 마구간에는 말 이외에 일하는 이들조차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되었군.”

마현은 마구간 중에서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쓰지 않고 손을 보지 않은 까닭인지 반쯤은 무너져 있었고, 군데군데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었다. 마현은 먼지가 풀풀 풍기는 마구간 안으로 들어가 몇 가지 간단한 마법으로 중앙을 일 장 가량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을 꺼내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전처럼 두 개의 만년한옥과 온옥을 합쳐 온전한 마나석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음양이 모여 하나의 태극이 된다는 음양설에 입각해 만년한옥과 온옥을 번갈아 쓸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기운이 충돌하여 반영구적으로 쓰지 못할 뿐 아니라, 몇 차례 사용하면 워프게이트 마법진이 깨어질 테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마현은 심혈을 기울여 마력에서 내력, 즉 마나를 뽑아 정성스럽게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물론 이런 방법 역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없는 소모성 마법진이었다.

그렇게 일 각 가량 정성스럽게 워프게이트 마법진을 모두 그린 마현은 잘게 쪼갠 만년한옥과 온옥을 마법진 곳곳에 박아 넣었다.

우우우웅!

작업이 끝나고 마현이 워프게이트 마법진에 가볍게 마력을 주입하자 자그만 진동과 함께 공명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이만하면 족히 십여 회 이상 사용할 수 있겠군.”

사실 십여 회 이상 사용할 필요도 없었지만 만에 하나 안전을 위해 좀 더 공을 들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마법진이 완성되자 마현은 바람을 일으켜 마구간 안을 다시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구석으로 밀려 방치되었던 썩은 오물과 짚들이 마구간 바닥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누가 보아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된 마구간을 보며 마현은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허공으로 날아올라갔다.

‘이제 교주님의 신변 확보만 남았나?’

마지막 하나 남은 일이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현이 향한 곳은 마주전이었다.

* * *

“갈!”

사공찬은 자신에게 마치 관절이 굳은 사람처럼 뻣뻣한 몸으로 다가오는 한 인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캉!

분명 검으로 푸르스름한 검은빛이 감도는 인영의 목을 정확히 베었다. 하지만 상당한 공력을 들인 일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살갗을 살짝 벴을 뿐이었다.

이상한 것은 분명 살을 갈랐는데도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으아악!”

그러는 사이에도 자신의 피와도 같은 독혈대원 하나가 시뻘건 피를 사방으로 뿌리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사공찬은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턱을 꽉 다물었다.

마주전 안을 가득 채운 살기는 오로지 사공찬과 대장로 혈월마성, 그리고 독혈대원들의 것뿐이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놈들은 살기도, 기척도, 심지어는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요물들이었다.

처음에는 뒤틀린 심사로 인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빈 탓에 몰랐다.

하지만 싸움이 이어지고 마음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지금 사공찬은 자신과 독혈대를 꾸역꾸역 에워싸고 있는 놈들이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강시였다.

그제야 사공찬은 멀찌감치 떨어져 가느다란 피리를 입에 물고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강시들을 조정하는 자들임을 알아차렸지만 빼곡하게 둘러싼 강시들로 인해 그들에게 다가가기란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다.

“소주군, 소주군만이라도 몸을 빼셔야 합니다.”

사공찬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더 많이 검을 휘두른 혈월마성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옆으로 바싹 다가와 붙었다.

혈월마성의 말에 사공찬은 입술을 콱 깨물었다. 윗니가 피에 물들도록 깨물었지만 분한 마음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은 멈춰지지 않았다.

“뭐라고 그랬더라?”

그때 태사의 쪽에서 도종극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공찬은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그 소리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도종극은 마주전의 가장 상석인 태사의에 무릎을 꼬고 앉아 있었다.

“본교의 절대 원칙, 강자가 군림한다…… 였죠? 낄낄낄.”

도종극은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발정난 암캐처럼 짖지 말라고 그리 말씀을 드렸는데…….”

도종극은 태사의를 받치고 있는 단상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아버지는 어찌한 것이냐?”

사공찬은 애써 분기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아버지? 낄낄낄, 이거 사형에게서 아버지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익…….”

“궁금하십니까?”

도종극의 질문에 사공찬은 그저 이를 빠드득 갈며 노려볼 뿐이었다.

짝!

도종극은 비릿하게 웃으며 박수를 탁 쳤다.

“제아무리 미워도 부자지간의 정이라…… 낄낄낄.”

도종극의 머리가 상당히 빨리 돌아갔다.

‘천마신공에 마현 놈의 골강시 삼백 구면…….’

도종극의 입술이 뒤틀렸다.

“사형을 보니,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습니다.”

도종극은 강시들을 조종하는 고루귀령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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