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4화
냉천휘는 마현과 흑풍대에게서 충격적인 무위, 아니 무위라고 설명하기 힘든 마공을 경험했다. 그런 그들의 달라진 신위를 좀 더 세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다.
“안 그래도 누구에게 부탁할까 했는데, 마침 냉 소협이 오셨군요.”
“혹 불편한 것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 그러는데 북해를 한 번 둘러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냉천휘로서는 마현의 제안이 싫지 않았기에 선뜻 응했다.
그렇기에 마현과 흑풍대는 냉천휘의 안내를 받아 북해빙궁 앞에 만들어진 번화가로 향했다.
높고 견고한 외벽에 둘러싸인 빙궁을 벗어나자 차가운 바람은 더욱 매서워졌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빙궁 옆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거대한 호수 쪽이었다. 호수는 살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주위로는 메마른 나무들이 하얀 눈송이를 몸에 두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호수를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호수의 경관은 가히 장관이었다.
“호오!”
마현뿐만 아니라 흑풍대 역시 자연스레 감탄사를 터트렸다.
중원 최고의 호수라는 동정호와는 다른 차원의 신선한 풍경이었다.
“번화가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냉천휘는 호수를 끼고 길게 뻗은 길을 가리켰다.
지리적 여건과 빙궁이 가진 위엄으로 인해 번화가는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들어선 번화가 역시 마현과 흑풍대의 눈을 심심하게 하지 않았다.
북해의 경관은 확실히 중원의 것과는 달랐다.
건물의 양식도 생소했는데, 번화가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조금은 답답할 정도로 높고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런 형태로 북해의 차가운 바람을 막고자 한 듯 보였다.
번화가로 들어서면서 냉천휘는 앞서 걷던 걸음을 조금 늦춰 마현보다 반걸음 정도 뒤에 섰다.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북해의 번화가를 즐기라는 뜻이었다.
마현 역시 그런 냉천휘의 뜻을 짐작하고 흥미로운 눈으로 주변을 구경하며 유유자적 북해의 번화가를 걸었다.
넓은 대로 위로 들이치는 바람은 사람들을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대로 위를 활기차게 걸어 다니는 행인들 중 누구도 몸을 움츠린 이는 없었다.
‘과연 북해인은 다르군.’
북해인들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음?’
느긋하게 거리를 살피던 마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은은하지만 상당한 마나를 느낀 탓이었다.
마현의 눈동자가 번화가의 대로 한구석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좌판을 깔고 있었다.
“흠……. 재미있는 이들이군.”
마현은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다 눈을 빛냈다.
청년 뒤로 서 있는 면사를 쓴 세 명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면사를 쓰고 있었지만 마현의 눈을 가릴 수는 없었다.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수려한 미녀들이었다.
그녀들은 단순히 얼굴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청년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내력이 그녀들의 몸에서 느껴졌다.
마현은 흥미로운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깐 좌판 위에는 자그만 단약들이 보였다.
“자자, 신선단이 왔습니다! 선계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저희 스승님이 전수해 주신 비법으로 만든, 그러니까 신선의 비법으로 만든 신선단입니다! 그럼 신선단이 과연 어떤 효능이 있느냐!”
청년은 구성진 목소리로 약을 팔기 시작했다.
‘약장수? 세상에는 기인들이 많다고 하더니…….’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엄청났다. 그런 이가 약을 팔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마현은 고개를 돌려 냉천휘를 바라보았다.
마현의 시선에 냉천휘가 어깨를 살짝 들어올렸다 내렸다. 그 역시 처음 보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상당한 내력을 가진 떠돌이 약장수라……, 거기에 무시할 수 없는 마나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 셋.’
마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응?’
약장수 청년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은은한 주향(酒香)이 느껴졌다. 그것은 놀랍게도 마나가 담긴 주향이었다. 주향이 퍼져 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약장수 청년의 가슴 쪽이었다.
‘단순한 술이 아니야……. 명주, 아니 그 이상이군.’
마현은 투시 마법으로 약장수 청년의 가슴 속을 살폈다. 역시나 그의 품에는 술병 하나가 있었다.
‘빈손으로 가기 좀 그랬는데 잘 되었군.’
마현은 저녁에 있을 북해빙궁주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약장수 청년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마현과 흑풍대가 우르르 청년 앞으로 걸어가자 좌판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움찔거리며 공간을 만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약장수 청년이 약을 팔다 말고 고개를 들어 마현을 쳐다보았다.
“놀랍군.”
마현은 좌판에 깔린 약을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과찬이오.”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장수 청년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약장수 청년이 파는 약에도 흥미가 동했지만 마현이 원하는 것은 그의 가슴에 품고 있는 술이었다.
약장수 청년 역시 마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품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
“이걸 보고 오셨소?”
“그렇소. 약뿐 아니라 술도 놀랍군. 내게 팔 생각 없소?”
그 말에 약장수 청년은 빙긋 웃으며 술병을 내밀었다.
“신선주라고 하오. 이 술을 알아보는 귀인에게 그냥 드리는 선물이니, 가져가시오.”
약장수 청년은 다시 빙긋 웃었다.
그 미소에 마현 역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선주라……, 이름에 걸맞은 술이군.”
마현은 술병을 고이 품에 넣었다.
“고맙소.”
그런 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 * *
거대한 대전.
붉은 바탕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태양이 수놓아진 태사의.
그 앞에 남해태양궁의 주인인 양위도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짙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대전 바닥에는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검림의 좌검 호법이 무심한 얼굴로 서 있었다.
쿵 쿵 쿵!
양위도는 태사의를 등지고 대전 바닥으로 이어진 계단을 부숴 버릴 듯 밟으며 내려왔다.
양위도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관 뚜껑을 열었다.
쿵, 콰당, 탕탕탕!
관 뚜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관 안에는 양곽원이 누워 있었다.
양위도는 바닥에 무릎을 꿍 찧으며 꿇어앉아 관 안에 누워 있는 양곽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미 핏기마저 사라진 차디찬 송장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이게…….”
양위도의 떨리는 뺨 위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양곽원의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다.
“네가 어찌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이냐? 네가 왜?”
양곽원의 얼굴을 쓰다듬던 양위도의 떨림이 손에서 시작되어 사시나무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양위도는 양곽원의 상체를 일으켜 품에 안았다.
양위도는 양곽원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숨죽여 한동안 몸으로 울던 양위도가 머리를 위로 치켜세웠다.
“으아아아아!”
양위도는 분노에 찬 울음을 터트렸다.
뜨거운 열기가 담긴 내력이 단숨에 대전을 뒤흔들었다. 그로 인해 대전을 지탱하고 있던 아름드리 기둥과 연목(椽木)이 삐걱거리며 천장에서 자욱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양위도는 양곽원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해태양궁의 하열 장로 옆에 서 있는 좌검 호법을 향해 걸어갔다.
좌검 호법 앞에 바투 다가선 양위도의 눈동자에는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그의 충혈된 눈가는 분통함을 애써 억누르는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뭐라 조의를 표현해야 할지 저 역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좌검 호법은 허리를 깊게 숙여 다시 한 번 조의를 표했다.
“어, 어떻게 된 것인가? 곽원이가, 곽원이가 왜?”
양위도의 몸에서 어지간해서는 참기 어려운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좌검 호법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서둘러 내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말하라!”
울분을 참지 못한 양위도가 결국 노성을 터트렸다.
엄청난 내력이 담긴 일갈에 좌검 호법이 타격을 받은 듯 휘청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바스러지도록 움켜잡은 양위도의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궁주님.”
좌검 호법을 데리고 온 하열이 그런 양위도를 서둘러 말렸다.
“소궁주님의 시신을 운구해 온 분입니다.”
양위도는 팔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하지만 하열의 말이 맞기에 결국 양위도는 팔을 아래로 툭 떨어뜨리며 내력을 거둬들였다.
양위도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좌검 호법,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소이까?”
그런 양위도를 대신해 하열이 좌검호법에게 말을 건넸다.
“자세한 것은 본림(本林)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림맹에서 북해빙궁의 소궁주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만 얼핏 들었을 뿐입니다.”
“북해빙궁이라고 했느냐?”
양위도는 눈을 뜨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궁주의 몸에 나 있는 빙공의 흔적이나, 무림맹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합해 보고……, 흉수가 그들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의견은 내놓되 추측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뒤로 한 걸음 빠지는 듯한 대답이었다.
양위도에게는 그런 좌검 호법의 모호한 말이 상관없었다.
“하 장로. 지금 당장 남해태양궁의 모든 힘을 깨우라. 그 답은 북해에서 들을 것이다!”
양위도는 어금니를 갈며 지독한 살기를 내뿜었다.
* * *
터벅 터벅.
사천성으로 들어서는 관도를 걸왕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걷고 있었다. 언제나 유쾌한 모습을 보이던 걸왕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요즘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아.’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걸왕은 제자 불취개에게 개방의 방주 자리를 내준 후 사실 그동안 무림의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 사방에서 들려오는 무림의 소문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더욱이 현도상인의 유언이 있은 직후였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금마공이라…….’
걸왕은 개방제자를 꼬드겨 얼마 전 화산파 무림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들었다. 그로서는 달포 전 사천성 독패장의 일을 마현과 함께 직접 경험한 터라 그 사건을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야.’
걸왕은 그에 맞춰 등장한 검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입안에 가득한 육포를 꿀꺽 삼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취개를 만나는 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겠지만, 아마 걸왕 자신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도 불취개는 귓등으로 듣고 말 것이다.
현재 무림맹의 주요 구성원이고 제아무리 정보에 밝은 개방의 방주라고 해도 시야가 좁을 터. 아마 자신이 현재 개방 방주라 해도 무림맹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볼 수밖에 없을 거라고 걸왕은 생각했다.
오히려 지금처럼 무림에서 한 발 물러나 보니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것을 걸왕은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제자 불취개에게 설명하는 길은 왠지 요원해 보였다.
그렇기에 걸왕은 일단 마현을 만나기로 마음을 먹고는 발걸음을 신강으로 돌렸다.
‘응? 저놈들은?’
사천성으로 향하는 걸왕의 눈에 관도 가장자리에서 쉬고 있는 두 무당파 도인이 보였다. 그들은 바로 학방과 학성이었다.
‘학방은 알겠고…… 저놈은 누구…… 오! 마현 놈의 친우렸다?’
걸왕은 인상착의를 보고 학성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가 눈초리를 가늘게 치켜뜨며 기척을 숨긴 채 그 둘 곁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