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53화 (153/351)

# 153

3화

“웬 놈들이냐?”

적들의 기세가 살벌한지라 양곽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민하게 주위를 살폈다. 적양대원 반수 이상은 이미 주검이 되어 있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반수 역시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이 중상을 입은 듯했다.

“망종도 이런 망종이 없어……. 수하들은 죽어나가는데 술에 빠져 이제야 마차에서 기어 나오다니 말이야.”

정체 모를 인물들 사이에서 낯이 익은 중년인 한 명이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 나왔다.

“네, 네놈은?”

그는 바로 검림의 좌검 호법이었다.

“불쌍하다, 불쌍해. 쯧쯧.”

좌검 호법은 열풍대주를 보며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이게 무슨 짓이냐?”

“훗, 범의 표피만 입은 고양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는 모양이군.”

여유를 한껏 부리며 말하는 좌검 호법의 목소리에는 시퍼런 칼날이 담겨 있었다.

“감히 남해태양궁을 향해 검을 들겠다는 소리냐?”

“변방에서 어깨에 힘 좀 준다고 아주 세상이 네놈 것인 양 말하는구나.”

좌검 호법의 부드러웠던 어투가 조금씩 딱딱해지며 날카롭게 변했다.

“뭐, 뭣이? 벼, 변방?”

양곽원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구겨졌다.

“정말 네놈들이 불쌍하구나. 저런 망나니를 주인으로 모신 죄로 부질없이 목숨을 버려야 하니 말이다.”

좌검 호법은 측은한 눈동자로 남해태양궁 무인들을 훑어보았다.

“갈!”

양곽원이 노기에 찬 호통을 터트렸지만 좌검 호법의 입술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갈 뿐이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러고도 검림과 무림맹이 무사하리라 믿느냐?”

“협박인가? 크크, 그래도 고양이 새끼가 범 무늬를 가졌다고 협박을 다 할 줄 아는구나.”

양곽원의 말은 오히려 좌검 호법에게 더욱 차가운 미소만 짓게 할뿐이었다.

“우리가 고작 변방 놈들을 무서워할 거라 착각하지 마라.”

그 비아냥거림에 양곽원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네놈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양곽원은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마치 씹어대듯 말을 내뱉었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뭐, 뭣이?”

좌검 호법에게 반문하는 양곽원 앞으로 빙공에 당해 온몸이 얼어붙은 시체 한 구가 툭 떨어졌다.

양곽원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꽁꽁 얼어붙은 적양대원의 시체를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부, 북해…… 빙궁?”

“아주 머리가 나쁘지는 않군.”

빙공에 얼어붙은 적양대원의 시신은 자신이 보기에도 북해의 것과 똑같아 보였다.

그것은 곧 자신이 여기서 죽는다면 남해태양궁은 자신을 죽인 자들이 아닌 북해빙궁을 향해 검을 뽑을 것이란 소리였다. 그리 되면 자신의 죽음은 개죽음이 되는 것이다.

입술을 자근자근 씹어대던 양곽원이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중얼거렸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양곽원은 어리석게도 그때서야 느꼈다.

이들이 작심하고 자신들에게 검을 뽑았음을.

그리고 이들에게는 그 찬란한 남해태양궁의 이름이 먹히지 않음을.

양곽원은 휘젓듯 손을 뻗어 그의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열양대주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뭐, 뭐 하나?”

“소, 소궁주…….”

“뭐 하냐고 물었다. 살려라, 하찮은 네놈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를 살려라!”

양곽원은 우악스럽게 열양대주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열양대주는 몇 걸음 내딛지 않고 멈춰 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이놈!”

양곽원은 열양대주의 등을 발로 밟듯이 차 밀었다.

열양대주는 그렇게 떠밀려 다시 몇 걸음 더 내딛었다.

“남해에서 태어나 태양만을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온 내게 이런 허망한 죽음이 올 줄이야.”

자조적인 목소리를 처연하게 내뱉던 열양대주는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으허허허허허!”

울음 섞인 웃음이 허망하게 터져 나왔다.

“이, 이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그저 쓸모없는 죽음이라는 것이 슬플 뿐이오.”

열양대주는 양곽원에게 쓰디쓴 목소리로 말하고는 검살단과 좌검 호법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대, 대주!”

그런 열양대주의 모습에 열양대원들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래도 태양은 태양이다.”

“……대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대원들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놈들! 지금 무슨 짓거리냐? 어서 방진을 짜지 못할까? 어서! 나를 보호하란 말이다!”

그 모습에 양곽원은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열양대주는 그런 양곽원을 회한이 가득한 씁쓸한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정녕 내 손에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양곽원은 그런 열양대주를 보며 다시 길길이 날뛰었다. 열양대주는 입술을 꽉 깨물며 검살단과 좌검 호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에 검살단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좌검 호법이 검을 빼들며 그들을 말렸다.

“본인이 맡겠다.”

좌검 호법의 말에 검살단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좌검 호법은 열양대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빛살처럼 빠른 검광이 좌검 호법의 검에서 시작되어 열양대주의 왼쪽 가슴에서 멈췄다.

푸욱!

검광이 왼쪽 가슴에 닿는 순간 열왕대주의 몸은 뇌전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푸학!

그리고 그의 등 뒤로 피가 솟구치며 새하얀 검날이 삐쭉 튀어나왔다. 찰나보다 짧은 그 시간에 좌검 호법의 검이 열양대주의 심장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고통은 없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소. 크헉!”

열양대주는 그 말을 끝으로 머리를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몰살시켜라!”

좌검 호법은 그제야 명을 내렸다.

“명!”

“명!”

검살단이 일제히 남해태양궁 무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 * *

화려하지는 않지만 운치가 흐르는 방.

북해빙궁이 마현에게 내어준 별채의 객방이었다.

그 객방 한구석에 놓인 침상 위에 마현이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있었다. 어제의 행동이 과거의 힘을 되찾아 음미한 것이라면 지금의 행동은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네 시진이 훌쩍 지났다.

“후.”

마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군.’

마현은 창문을 열어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해를 올려다보았다.

달리 방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별채 밖 앞뜰에는 서른 명의 흑풍대가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추지 않고 제각기 편한 곳에 자리를 잡은 듯 보였지만 모두가 마현이 있는 객방으로 얼굴이 향해 있었다.

그로 인해 별채 주변에는 은은한 마기가 깔려 있었다.

마현은 앞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처마 밑에 놓인 의자로 조용히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꼬고 앉아 턱을 괴고는 명상에 빠진 흑풍대원들을 일일이 살폈다.

자신이 7서클로 올라설 때 흑풍대원들의 능력 역시 한 단계 올라섰다.

자신이 밤새 그랬던 것처럼 흑풍대원들 역시 한층 높아진 능력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흠!’

별채 뜰로 매섭도록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마기가 불안하게 꿈틀거렸다.

명상이라는 것은 본래 편안하게, 그리고 고요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명상을 하기에 지금 별채 앞뜰은 그다지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더욱이 중원인들에게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북해의 차가운 바람과 영하의 기온은 오히려 피해야 할 것들이었다.

마현의 몸에서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마기는 느리지만 중후하게 퍼져나가 앞뜰을 가득 뒤덮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 때마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흑풍대원들의 마기가 평안해졌다. 또한 살짝살짝 일그러지고 경련을 일으키던 흑풍대원들의 얼굴 역시 아주 평온해졌다.

마현은 투시 마법과 마나 스캔 마법을 이용해 흑풍대원들의 내부를 관찰했다. 그들의 단전 역시 확장되었지만 한 단계 높은 큰 성장을 주도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역시 마정석인가?’

마현은 그들의 가슴 언저리, 명치 부분에 위치한 구미혈에 박힌 마정석에 주목했다.

상당한 마기가 마정석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흑풍대원들의 몸에 박힌 마정석은 마기를 담는 그릇이 아니다. 단지 사령검사, 네크로나이트로서 흑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런데 마정석에는 독자적인 마기가 들어차 있었다.

또한 마정석에서 이어진 마법진, 흑풍대원들의 상반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법진 역시 은은한 마기를 머금고 있었다.

‘마정석이 원인이군.’

마현은 검은색으로 변하며 덩치가 더욱 커진 스켈레톤을 떠올렸다.

자신이 7서클로 올라서며 흑사신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하지만 흑풍대와 스켈레톤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그들의 힘의 원천이 자신이기는 하지만 흑사신과 달리 흑풍대는 자신과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들이다.

‘뜻하지는 않았지만…….’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마현의 보호 아래 반 시진이 흘렀다.

“음.”

가벼운 음성을 토해내며 흑풍대원들이 하나 둘씩 눈을 떴다.

불안전한 마정석에 담긴 마기를 단전의 지배하에 놔두게 된 것이다.

“주…….”

눈을 뜨며 마현의 모습을 본 흑풍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차리려 하자 마현은 조용히 둘째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쉿!”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 흑풍대원들은 다른 이들의 명상이 흐트러지지 않게 주위하며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한식경쯤 시간이 더 흐르자 흑풍대원들 모두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흑풍대원들을 보며 마현 역시 앞뜰에 펼쳐 놓은 마기를 거둬들였다.

‘절정? 어쩌면 그 이상이겠군.’

대략적으로 흑풍대의 수준을 가늠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런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미 흑풍대는 무림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까닭이었다.

“주군!”

왕귀진을 필두로 쩌렁쩌렁하게 군례를 취하는 흑풍대를 보며 마현은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보기 좋군.”

마현의 한 마디에 흑풍대원들이 한결같이 기쁜 얼굴로 활짝 웃음을 지었다.

“이게 다 주군의 은공입니다.”

왕귀진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더 남았다.

“주군.”

왕귀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궁주와의 약속 시간도 남았으니 북해를 구경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질문에 마현이 빤히 왕귀진을 바라보자 그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매일, 하루에 일각조차 쉬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흑풍대의 임무를 수행한 왕귀진이었다.

능력이 올라가고 긴박했던 싸움이 끝나서인지 몸과 마음이 조금 풀어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휴식을 주는 것도 좋겠군.’

마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흑풍대원들의 모습에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원래 삼류 마인이었던 흑풍대원들이었다.

자신을 만나기 전에는 자유롭게 살던 자들이었다.

가끔은 풀어줄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 자신 역시 조금 무료했던 참이었다.

“허락하지.”

시간의 여유가 좀 있었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북해빙궁 앞 번화가로 잠시 나가기로 했다.

마현이나 흑풍대나 별달리 준비할 것이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제아무리 마현과 흑풍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북해빙궁의 객이었다. 외지인이 함부로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도 예가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길잡이를 부탁할까 논의할 때 마침 냉천휘가 그들이 머무는 별채로 들어섰다.

“불편한 것이 없나 살펴보려고 이렇게 들렸습니다.”

냉천휘는 앞뜰에 모여 있는 흑풍대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며 마현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것 때문에 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설관악의 제자인 그가 굳이 이렇게 나설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냉천휘가 직접 온 것은 무인으로서의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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