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화
―키키키키!
―캬캬캬캬!
대연무장을 자욱하게 뒤덮은 흑무 속에서 섬뜩할 정도로 음산한 귀성이 흘러나왔다.
그 귀성을 온몸으로 울어내는 존재는 검게 물든 스켈레톤들이었다. 마현의 몸에서 터진 것처럼 퍼져나간 마기에 동화된 스켈레톤들은 단지 색만 짙은 묵색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몸집도 조금 더 커졌다.
그러한 귀기 중심에 마현이 서 있었다.
그리고 마현 중심으로 네 흑사신이 현신해 있었다.
마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또 다른 검게 빛나는 마기는 네 갈래로 갈라져 흑사신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크으으으!
―캬으으으!
강시화 되어 실질적인 몸을 가진 후 성대를 이용해 목소리를 내던 흑사신이었지만 이 순간 그들의 목소리는 스켈레톤들처럼 순수한 귀음을 온몸으로 내뱉고 있었다.
“다크나이트의 존재 가치는 개개인의 무공이 아닌 어둠의 종족을 다스리는 군단장일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마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게 빛나는 마기의 양이 좀 더 짙어졌다.
“여전히 본인은 너희들에게 과거의 힘을 온전히 주지 못한다.”
마현은 7서클에 올라서면 그들의 힘을 온전히 찾아줄지 알았다. 헌데 그건 완벽한 오판이었다.
이제 겨우 과거의 힘에 8할의 힘을 갖추었다.
마현이 모든 마력을 그들에게로 돌린다면 9할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힘은 군단장의 권능으로 채워질 것이다!”
콰광!
마현의 눈에서 폭사되던 검게 빛나는 마기는 폭발하듯 한순간 터져 나왔고 그 마기는 흑사신의 눈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 마기는 단순히 그들의 힘을 5할에서 8할로 높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마기 속에는 군단장 다크나이트로서 알아야 할 어둠의 지식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엄청난 마기가 단숨에 눈으로 스며들자 네 흑사신은 흡사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들의 몸 또한 흑무에 휩싸여 허공으로 한 척(33cm)가량 떠올랐다.
흑사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마기들이 불안정하게 날뛰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구 날뛰던 마기들이 차츰차츰 서서히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기는 흑사신의 눈으로 흡수되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는 흑사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대연무장 구석까지 흘러나갔다.
마치 달빛을 태양 삼아 두 눈을 감고 양팔을 벌려 일광욕이라도 즐기는 것처럼 한참을 더 그렇게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번쩍!
두 눈을 뜨자 엄청난 안광이 번쩍였다가 다시 그들의 눈동자로 갈무리되었다.
“……흠.”
흑권은 불끈 쥔 주먹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군단장이라…….”
흑검은 말끝을 흐렸다.
“다시 한 번 무인의 길과는 멀어진 것인가?”
허무함이 담긴 씁쓸한 어조였다. 흑검은 손을 활짝 펼치고 들어올려 달빛을 가렸다.
“후후.”
옅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씁쓸함이 담긴 웃음과 달리 눈동자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
“크크크크.”
그런 연무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흑도가 거친 웃음으로 깨트렸다.
처음엔 낮게 웃음을 흘리던 흑도는 곧 가슴을 펴고, 머리를 한껏 치켜들며 포효하듯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흑도다운 광오한 웃음소리가 대연무장을 뒤덮었다.
흑도의 입술이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
“기다려라, 이 잡놈들. 본좌가 다 죽여주마.”
밤하늘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섞인 마기가 넘실거렸다.
마지막으로 흑창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불안정한 몸들이다.”
마현이 흑사신을 향해 말했다.
“어둠 속에서 증폭된 마기를 온전히 제 것으로 흡수하라. 그래야 그대들이 당한 치욕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네 흑사신은 동시에 입가를 실룩거렸다.
그들의 몸은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뜨거운 용암처럼 마기가 펄펄 끓으며 날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완전무결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필요를 그들 역시 느끼고 있었다.
흑도를 비롯해, 흑검과 흑창은 내부에서 불안정하게 날뛰고 있는 마기에서 한층 상승된 힘을 음미하고 있었지만 흑권은 조금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관조하며 마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담긴 눈빛이 굳어지며 흑권은 마현을 향해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막 입을 열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일단 안정이 우선이다. 쉬어라!”
하지만 마현의 말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봐, 주인. 주인!”
그때 흑도가 마현 곁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지?”
“본좌 있잖아, 본좌.”
흑도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거지?”
열망으로 가득 찬 흑도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더 강해지고 싶나?”
마현은 바싹 다가온 흑도의 눈을 그대로 직시하며 되물었다. 흑도는 마현의 눈동자에서 그 무엇을 읽었는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굵고 거친 웃음을 낮게 터트렸다.
“크크크, 이래서 내가 주인을 좋아한다니까.”
“훗.”
마현은 피식 웃음을 토해냈다.
“일단 이놈부터 맛있게 먹어야겠군.”
흑도는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군침이 흐른다는 듯 입술로 혀를 핥았다.
“긴 이야기는 며칠 있다가 하지.”
마현의 말에 네 흑사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부에서 뒤끓어 오르는 마기를 온전히 흡수하려면 마현의 말대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뒤죽박죽 주입된 지식들 역시 되새겨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크크크크크.”
흑도는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제일 먼저 어둠으로 돌아갔다.
푹! 푹!
이어 흑검과 흑창 역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흑권은 그 셋이 돌아가고 난 후에도 마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할 말이 많은 것 같군.”
“……그렇다네.”
“하지만 지금은 쉬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푹!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흑권 또한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대주.”
“하명하십시오.”
마현의 부름을 받고 다가오는 왕귀진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현의 힘이 증폭되면서 그에 비례하여 힘을 얻은 것은 비단 흑사신만이 아니었다.
흑풍대 역시 힘이 한층 강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본신의 힘도 물론 강해졌지만, 그것보다 그들이 다스리는 스켈레톤들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단전과 몸속에 박힌 마정석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찌릿할 정도로 왕귀진에게 묘한 쾌감을 주고 있었다.
강해진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 내부 역시 흑사신처럼 불안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흑풍대와 흑사신은 달랐다.
정확히 흑풍대의 불안전성은 그들 대원의 내부보다 외부적인 요인이 더욱 컸다. 그 외부적 요인은 바로 한 단계 성장한 스켈레톤에게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불완전한 스켈레톤들과 흑풍대는 서로 다른 객체이지만 한 몸이다.
마현은 왕귀진과 흑풍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뒤에 포진하고 있는 검은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스켈레톤들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공명하며 은은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스켈레톤들을 어둠의 안식처로 돌려보내라.”
“명!”
대연무장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땅 속으로 푹푹 사라졌다. 삼백의 스켈레톤이 어둠으로 돌아가자 흑풍대원들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진 기색이었다.
마현은 그제야 고개를 살짝 들어 기울어져가는 달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여기가 어딘가?”
마현은 천천히 양팔을 옆으로 들어올렸다.
“북해입니다.”
“북해?”
“북해빙궁 대연무장입니다, 주군.”
다시 반문하는 마현에게 왕귀진은 좀 더 자세하게 대답했다.
“바람이 시원하군.”
마현은 북해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흡족한 듯 입가를 살짝 비틀며 웃었다.
우우우웅!
순간 마현의 단전 주위에 만들어진 서클에서 마력이 맹렬히 회전했다.
1회전, 2회전, 3회전, 4회전…….
그렇게 돌고 또 돌던 마력은 일곱 개의 마력 고리를 만들어냈다.
눈꺼풀에 감겨 그 어떤 빛조차 새어나가지 않았지만, 지그시 감겨 있는 마현의 눈동자에서는 강렬한 안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이 7서클로 오른 것인지 마현은 잘 모른다.
다만 전에 없던 생소한 기운들이 마력으로 변해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며 새로운 서클 고리를 단전 주위에 하나 더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힘을 다시 찾았다는 것이다!
‘후후.’
마현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다시금 떠올랐다.
펼치고 있는 양손을 힘 있게 쥐었다.
바로 이 느낌이었다.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충만한 마력.
그 마력들로 채워진 일곱 개의 고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웅장한 마기의 칠중주!
“흐음…….”
마현은 눈을 감고 일곱 개의 서클이 만드는 힘의 노래에 취하고 또 취했다.
북해빙궁 중심부에 위치한 대연무장에서 시작된 마기의 파장은 단숨에 북해빙궁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 * *
술을 마시던 설관악의 몸이 한순간 굳어진 것은 그때였다. 놀라움으로 딱딱해진 그의 눈매가 순간 흠칫거렸다.
설관악은 굳은 표정으로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거칠게 내려놓은 술잔에서 술 몇 방울이 탁자 위로 튕겨졌다.
‘분명 마기다.’
자신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찐득찐득한 기운이 음습한 마기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설마!’
설관악은 만년설삼을 복용한 마현을 떠올렸다.
만년설삼이 천하에 다시없을 절세의 영약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엄청난 파장을 줄만큼 한순간 내력을 높여주지는 못한다. 또한 만년설삼이 가진 기운이 워낙 괴이해서 그 자체로는 온전히 다 흡수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영약들은 빙옥단이나 대환단 같은 영단으로 새로이 제조하여 조금이라도 더 흡수력을 높이는 것이다.
설사 영약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했다고 쳐도 지금처럼 이리 큰 파장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헌데 방금 전 대연무장 쪽에서 엄청난 마기가 느껴진 것이다.
설관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유모.”
내력으로 술기운을 모두 날려버리며 그가 한한파파를 불렀다.
“궁주님, 저는 아가씨에게 가보겠습니다.”
한한파파 역시 마기를 느낀 듯 즉시 몸을 일으켰다.
지금 파장을 일으킨 마기의 주인이 마현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당연히 설린도 느꼈을 터이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 해주시오.”
설관악도 서둘러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또렷하게 느껴지는 마기가 자신마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폭주?’
보통 사람일지라도 영약을 먹은 후 아무것도 안 하면 온몸의 세맥 구석구석까지 퍼져 무병장수한다. 또 무인이 영약을 먹은 후 상승심법을 이용해 단전으로 흡수하면 엄청난 내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영약을 먹고 무조건 심법을 운영한다고 해서 흡수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간혹 영약을 먹은 후 그 기운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게 되면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정심한 정파 쪽 무인이라면 주화입마를 다스리지 못할 경우 대부분 그 자리에서 절명하겠지만, 마인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틀려진다.
안전하고 탄탄한 길을 걷는 정공과 달리 마공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빠른 길을 걷는다. 그러다 보니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면 십중팔구 광인(狂人)이 된다.
단지 광인이 되면 그저 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인이 영약을 복용한 후 광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미쳐 날뛰는, 말 그대로 혈인(血人)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만년설삼을 먹었다고 해도 지금 느껴지는 마기는 지나치게 강했다. 분명 기운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폭주한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