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44화 (144/351)

# 144

19화

“기다려라, 네놈의 목은 본인이 직접 베어주마.”

마현은 흑풍대와 설영대의 중앙으로 뛰어 들어갔다.

『흑사신, 무슨 일이 있어도! 강제로 소환되는 일이 있어도 저 셋을 막으라. 그 보답은 더욱 강한 힘이다!』

마현의 명에 흑사신은 굳은 얼굴로 두 호법과 진필성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안다.

그 셋을 상대하는 것은 지금 무리라는 것을.

겨우 과거 힘의 7할을 회복한 상태다.

하지만 저 둘, 호법들은 그들이 살아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와 비교하면 겨우 두어 수 아래다.

그리고 검림주라는 자는 그때의 자신들에 비해 한 수 내지 반 수 아래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큰 상처를 입고 어둠으로 강제 귀환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현의 명을 따라야 했다. 마현이 죽으면 자신들 역시 없을 테니!

“흑풍대는 스켈레톤을 검막이로 이용해 주위를 차단하라!”

“명!”

“설영대는 본인을 중심으로 최대한 좁게 원진을 짜라!”

마현은 설영대에게도 짧게 명을 내렸다.

설린에게 사전 허락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그걸 알기에 설영대 역시 군말 없이 마현을 중심으로 빽빽하게 둘러섰다.

“설 소궁주, 그리고 냉 소협. 가까이 오시오, 어서!”

마현의 재촉에 설린과 냉천휘는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흑풍대가 설영대을 촘촘하게 에워싸며 스켈레톤 삼백 구를 목책을 두르듯 세 겹으로 빽빽하게 배치시켰다.

“뭣들 하나? 무조건 베고 또 베라.”

좌검 호법의 명에 검림의 무인들은 더욱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흑풍대는 들으라.』

마현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 땅속 깊숙이 스며들어 데쓰 스테이트(Death state)를 발동시켜라! 그리고 본인을 찾아오라! 살아서 반드시!』

데스 스테이트는 귀식대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어둠의 마법이었다. 귀식대법은 호흡을 줄이고 체온을 줄여 의도적으로 가사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데스 스테이트는 그런 귀식대법보다 한층 발전된 것이라 보면 이해하기 쉽다. 현상적인 측면에서 귀식대법이 죽은 척하는 것이라면, 데스 스테이트는 말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죽음이 아닌 일시적 죽음이다.

호흡이나 체온 같은 신체의 모든 활동을 정지시키고, 땅속 깊숙한 어둠 속에서 잠드는 것이다.

귀식대법은 의술에 능한 자라면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 데쓰 스테이트는 신성력이 없이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어둠의 흑마법이었다. 신성력이 없는 중원에서는 어느 누구도 데쓰 스테이트와 시체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땅속 깊숙이 몸을 숨기기에 데쓰 스테이트로 잠든 흑풍대를 찾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했다.

『충!』

피투성이가 된 흑풍대원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그래, 그렇게 분노하라. 분노는 장차 너희들과 나의 힘으로 돌아올 것이다!』

마현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검림주 진필성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설린과 냉천휘에게 말했다.

“모든 내력을 내 단전으로 주입시키시오.”

설린과 냉천휘는 깜짝 놀랐다.

상식을 벗어난 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자칫 잘못했다가는 마현뿐만 아니라 설린과 냉천휘마저 폐인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어서!”

그것을 잘 알기에 주저하는 설린과 냉천휘를 향해 마현이 매섭게 소리쳤다.

설린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눈을 질끈 감고 마현의 단전 위로 손바닥을 포갰다. 그 모습에 냉천휘 역시 입술을 깨물며 마현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

두 사람은 모든 내력을 쥐어짜 마현의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빙공 특유의 차가운 냉기가 한순간 마현의 몸 안을 휘저었다.

감당하기 벅찬 그 냉기에 마현의 체온은 한순간 내려갔다. 그로 인해 마현의 턱이 부들부들 떨리며 딱딱딱,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눈빛만은 용암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현은 그 분노에 찬 눈빛으로 검림주 진필성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카칸이다! 이미 죽음도 넘어섰던 카칸이란 말이다!’

마현은 서클 단전으로 들어온 설린과 냉천휘의 내력에 자신의 마력을 섞으며 끌어올렸다.

서로 어울리지 않은 내력과 마력이 뒤엉키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현은 그 폭주를 제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력과 마력의 폭주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자 모든 혈관들이 터질 듯 튀어나오더니, 잠시 후에는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걸었던 길, 나는 죽지 않아! 나는 죽지 않는다!’

마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폭주하는 마력과 내력을 이용해 캐스팅을 시작했다.

“전지전능한 마력의 주인인 나 카칸의 힘으로 공간마저 뛰어넘으리라, 워프 네비게이션!”

구르르르!

마현을 중심으로 지축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쩍, 쩌적!

땅이 갈라지며 새카만 빛과 함께 차가운 냉기가 솟구쳤다.

구우우우우우우!

그리고 마력의 공명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공명음은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던 무인들의 귀로 파고들며 뇌를 뒤흔들었다.

“큭!”

“컥!”

내력이 약한 자들은 그 충격에 몸이 휘청거렸다.

“내가 다시 돌아오는 날, 네놈들의 피로 이 분노를 달랠 것이다!”

마력이 담긴, 분노가 느껴지는 마현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번쩍!

그리고 시커먼 빛이 하늘마저 꿰뚫을 것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흑풍대를 휘감고 있던 흑무는 땅 아래로 푹 꺼졌다.

콰과과광!

마치 하늘이 노한 듯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 * *

벼락이 내리꽂힌 땅바닥에서는 서늘하리만큼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아, 아니?”

“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흑풍대와 설영대를 둘러싸고 있던 검림 무인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불신이 가득 들어앉아 있었다. 조금 전 매섭게 몰아붙이던 흑풍대와 설영대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원형 도형(圖形)과, 그 안을 가득 채운 기괴한 문양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괴한 문양에서 검은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동시에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당황한 것은 전장에서 마현 일행을 압박해 가던 검림뿐만이 아니었다.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무림맹 측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황당하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에 그들은 그저 입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그때 장내를 무겁게 뒤덮은 정적을 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상처 입은 흑도가 광소를 터트렸다.

“큭!”

흑도는 그러다가 옆구리에 난 상처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외마디 신음을 터트렸다.

검상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기였다. 그것은 데스 나이트인 흑사신에게 있어 피나 다름없었다.

“크크크크…….”

지독한 고통에 흑도는 잔뜩 얼굴을 찌푸렸지만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흑도처럼 경망스럽게 웃지는 않았지만, 다른 세 흑사신의 얼굴에도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마현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흑사신이었다.

그런 자신들이 지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건 마현이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흑도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검림주 진필성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고 뒤틀린 것이다.

그는 반드시 마교 대공자를 죽여 무림에 이름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북해빙궁의 소궁주를 죽여 북해빙궁과 남해태양궁이 공멸하도록 싸움을 붙일 계획이었다.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던 진필성은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북해빙궁과 마교 대공자를 놓쳤지만 애초 계획대로 무림맹 무인들이 보는 이 자리에서 엄청난 무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지만…….’

진필성은 상처 입은 네 흑사신을 쳐다보았다.

‘저만하면 그나마 꿩 축에는 끼겠군.’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진필성을 보며 흑도는 도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정을 두지 않고 공세를 퍼붓는 진필성의 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차장창창창!

흑도의 도는 진필성의 검에 완전히 부서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진필성은 흑도의 가슴을 깊숙이 베어버렸다.

“크으윽!”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흑도의 얼굴에는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그런 흑도의 가슴에서 검은 연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마, 마물?”

진필성은 피가 흐르지 않는 흑도를 보며 멈칫하더니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 비웃음은 얼굴에서 사라졌다.

“크크크.”

흑도는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본좌는 주인을 믿거든.”

진필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시 만나면 넌 본좌 손에…….”

흑도는 손가락으로 목을 살짝 그었다.

“죽어!”

흑도는 짓궂게 눈을 찡긋하더니 한껏 조롱을 퍼부었다.

“마물 따위가!”

백여 년 이상 준비해 온 대계가 차질이 생겨 가뜩이나 심기가 뒤틀려 있던 진필성은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노기를 터트리며 흑도의 목을 베어 버렸다.

“컥!”

흑도의 목이 반쯤 잘리며 옆으로 넘어갔다.

이제 조용해질 거라 여겼던 진필성의 믿음을 깨는 소리가 그때 들려왔다.

반쯤 잘려나간 목이 어깨에 걸린 채로 흑도가 다시 입을 벌린 것이다.

“그때는 네놈의 모가지를 비틀어주지. 크하하하!”

그렇게 웃던 흑도의 목이 완전히 꺾이며 눈이 감겼다.

진필성은 황당해하면서도 조금은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이제는 마물이 완전히 죽었다고 느낀 것이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퍽!

흑도의 몸이 터졌다.

그리고 터진 몸은 검은 연기가 되었다.

연기란 허공으로 흩어져야 정상이건만, 그 검은 연기는 마치 무엇에 빨려들 듯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진필성은 고개를 돌려 좌검, 우검 호법이 상대하는 나머지 세 흑사신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퍽 퍽 퍽!

그들 역시 검은 연기로 변했고, 그 검은 연기들은 땅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진필성을 중심으로 네 개의 검은 자국이 땅바닥에 보였다. 흑사신들이 죽은 장소였다.

그들 모두를 일검에 죽였지만 진필성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죽기 직전 그들이 보여준 눈빛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시 만날 것이라니, 도를 든 자가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지기 전 한 그 말이 마치 끈끈한 풀처럼 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림주님.”

그렇게 찜찜함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진필성 곁으로 두 호법이 다가왔다.

“왜 그러나?”

“무림맹 쪽을 보십시오.”

진필성은 찜찜함을 애써 털어버리려는 듯 검을 허공에 몇 번 휘젓고는 검집에 착검시켰다.

그리고 두 호법의 말대로 무림맹이 집결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검림 만세, 검림 만세!”

“검림주 만세, 멸마광검(滅魔光劍) 만세!”

엄청난 환호가 산자락에서 평원까지 일대를 빽빽이 메운 무림맹 무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멸마광검이라…….”

진필성은 그 함성 속에서 들리는 별호를 음미하며 중얼거렸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군.”

진필성은 자신을 한껏 치켜세우는 함성에 만족하며 조금 전 느꼈던 의구심을 완전히 털어냈다.

애초의 계획에서 많이 틀어졌지만, 그들의 반응으로 볼 때 시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반해 무림맹 수뇌부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는 뜻은 결국 자신들의 입지가 그만큼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검림과 진필성의 놀라운 무위을 치하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검림주 진필성의 우렁찬 목소리가 그들의 발목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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