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42화 (142/351)

# 142

17화

“갈! 이 귀로 똑똑히 들었건만, 어디서 아니라고 부정을 하는 것이냐?”

흑창은 창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창으로 수십, 수백의 궤적을 만들며 마독용의 몸을 후려갈겼다.

“으아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마독용의 입에서 다시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흑도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한 음절씩 끊어가며 다시 말했다.

“똘.아.이! 미.친.놈!”

그러자 흑창의 창이 일순간 딱 멈췄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방향은 흑도가 있는 곳과는 정반대편인, 무림맹 무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어느 놈이 이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인 본좌에게 그런 망발을 터트린 것이냐! 오냐, 이놈들! 모조리 죽여주마!”

흑창의 몸에서 찐득찐득한 살기와 함께 마기가 피어올랐다.

“흐아압!”

끝까지 근엄한 얼굴로 분노의 일갈을 터트린 흑창이 창을 들어 무림맹 무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흡사 양 떼들에게 뛰어드는 한 마리의 사자처럼 거침이 없었다.

“내가 바로 창의 본좌다, 음화화화화홧! 어느 누가 본좌 앞에서 창을 논하리오!”

그런 흑창을 보며 흑도는 한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서야 기억이 난 것이다.

흑창의 생전 별호가 무적창마 이외에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그건 바로 혈취광창(血醉狂槍)이라는 것을.

무림맹 무인들 사이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흑창을 보던 흑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발을 구르며 다급하게 외쳤다.

“내 몫도 남겨 두란 말이다! 흑창, 이 새끼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도는 흑창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 * *

대략 전장에서 백오십여 장 떨어진 비교적 낮은 산봉우리에 양 소매에 검이 수놓인 무복을 입은 무인들 백여 명이 집결해 있었다. 그들은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황은 어찌되었나?”

그들 사이로 수염이 희끗희끗한 장년인 한 명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가 이들의 수장인 듯 좌검, 우검 호법을 제외한 검림의 무인들이 일제히 오체투지하며 그를 맞이했다.

좌검, 우검 호법은 장년인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오셨습니까, 림주님.”

두 호법의 인사에 장년인, 검림주 진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모두 일어나라.”

무인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건림주는 두 호법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전장을 살피던 검림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호오?”

그는 무척 흥미로운 눈빛을 띠며 두 호법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저 넷의 마공을 알아보겠나?”

두 호법은 검림주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아 대답을 주저하는 듯했다.

“대략 짐작하고 있는 듯하군.”

검림주는 두 호법의 눈빛을 보고는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림주, 그렇다면 마교 마웅총의……?”

그나마 조금 더 성격이 급한 좌검 호법이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확실히 마웅총에 누워 있어야 할 네 마두의 마공이야.”

“어찌?”

검림주의 확답에 좌검 호법의 얼굴에는 놀람이 번졌다.

“분명 절전되었다고 들었는데…….”

우검 호법 역시 말끝을 흐렸다.

의혹을 느끼는 건 비단 그 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마를 떠나 무림은 당시 마교 교주와 비등한 무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네 마웅의 절기가 모두 후인에게 전수되지 못하고 실전됐다고 알려진 것이 정설이었다.

그렇기에 좌검, 우검 호법이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인일까요?”

“후인이라…….”

우검 호법의 질문에 검림주는 그저 그 질문을 다시 한 번 중얼거릴 뿐이었다.

“후후후…….”

한동안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던 검림주가 입을 열었다.

“마교 대공자의 숨은 힘이 마웅총의 후인이라……. 덕분에 재미있게 되었어.”

검림주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그의 눈은 전장으로 향해 있었다.

전장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늑대 무리에서 날뛰고 있었다. 그 네 마리의 사자는 바로 흑사신들이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니 호랑이가 늑대로 변할 수밖에.”

검림주의 눈에 무림맹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그보다도, 너무 성급했습니다.”

좌검 호법의 말에 검림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니면 자만했던가?”

검림주는 무림맹 한 귀퉁이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보며 다시 히죽 웃었다.

“그래서 더 즐거운 것이 아니겠나?”

“다 본림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우검 호법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슬슬 준비하라. 마교 대공자의 목으로 무림맹을 삼켜야지.”

“북해빙궁은 어찌할까요?”

우검 호법은 남해태양궁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새외는 차라리 없는 것이 본림에 이롭다. 사고로 위장해서 죽여라.”

검림주의 말에 우검 호법의 눈이 반짝였다.

“허면…… 북해빙궁 소궁주의 죽음은 남해태양궁의 짓이 될 것입니다, 림주님.”

그 말에 검림주가 더욱 차갑게 웃었다.

* * *

“막아라, 어서! 막으란 말이다!”

“그쪽이 아니다, 저기, 저기를 막으란 말이다!”

전장에서는 다급하고 짜증이 잔뜩 묻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우왕좌왕하며 저리 엉키고 이리 엉키며 중구난방으로 흑풍대와 설영대를 공격하는 무림맹 무인들을 보며 담기량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성급했다, 너무 성급했어.’

담기량은 청성파와 종남파의 힘을 믿고 지금의 작전을 강행했다.

제갈묘의 의견을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담기량은 자책했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왕 일을 시작하는 거, 혹시 자신들이 모르는 힘이 더 있을지 모르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자고 제갈묘는 조언했었다.

일원화된 명령체계와 치밀한 전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담기량과 청허자, 그리고 곡상천이 그런 제갈묘의 의견을 무시해 버렸다.

종남파와 소림사, 그리고 본파인 화산파.

거기에 무림맹에 참가했던 다른 문파와 세가들의 정예.

또 숱한 일대의 중소문파들.

그 전력이면 충분하리라 여겼다.

물론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시간을 허비해가며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차라리 중소문파를 제외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흑풍대와 설영대를 에워싼 무림맹 무인들의 수는 도에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그렇기에 제대로 공격도 해보기 전에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육대세가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온적이었다. 적당히 움직여주고 나중에 어부지리를 취하겠다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리고 무당파 역시 왠지 공격이 겉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 과거 흉맹을 떨친 네 마두의 마공이 틀림없습니다.”

그때 무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 후인들이 마교 대공자의 수신호위라니!’

검림이 그러했듯, 무림맹에서도 설마 지금 성난 사자들처럼 날뛰고 있는 흑사신이 마웅총에 잠든 네 마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담기량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림맹은 엄청난 사상자를 낸 것도 모자라 결국 뚫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뚫린 자리는 쉽사리 메워지지 않았다. 하나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면 모를까, 중구난방으로 그 자리를 메우려 하니 오히려 다른 곳에서 틈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담기량은 직접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더는 다른 이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천라지망이 완전히 뚫릴 판이었다.

“매화검수들은 따르라!”

담기량은 화산파 일대제자 중에서도 무공이 뛰어난 이들을 선별하여 뽑은 매화검수들을 데리고 흑사신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콰과과과광!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흑사신이 흔들어 놓은 곳을 삼백의 골강시가 일사분란하게 무너트려 버린 것이었다.

한 번 무너지자 뒤이어 마교 대공자가 듣도 보도 못한 사술 같은 마공으로 그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키며 포위망이 갈가리 찢겼다.

‘하필!’

길이 뚫린 곳은 중소문파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 허점을 마교 대공자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서둘러라! 그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담기량은 더욱 다급해진 목소리로 뒤따라오는 매화검수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담기량이 이미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마현이 흑풍대와 설영대를 이끌고 몸을 빼낸 후였다. 그쯤 되자 마현 일행을 다시 급하게 에워싸느라고 무림맹 진영은 더욱 우왕좌왕하며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아군이 오히려 담기량과 매화검수들의 발걸음을 방해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담기량으로서는 피를 토하고 싶을 만큼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중소문파는 뒤로 빠져 넓게 포진하라. 그리고 소림사는 우측으로 선회해 주시오.”

담기량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말문을 잃고 있을 때 보다 못한 제갈묘가 나서며 장내를 수습했다. 그때서야 그나마 무림맹 무인들의 움직임이 조금 유기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을 확연히 깨달은 담기량이 입술이 찢어지도록 꽉 깨물었다.

흑풍대와 설영대 앞이 완전히 뚫리는데도 그들을 막아설 무림맹 무인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무림맹 무인들은 단지 숫자만 믿고 무턱대고 원진 형태로 둘러싸기만 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육대세가를 견제한답시고 지모로 명성이 자자한 제갈세가의 의견까지 무시한 것이 이처럼 뼈아픈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하지만 후회를 해본들 이미 늦어 버린 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무슨 일이 있어도 잡고 말겠다!’

담기량이 낙담하면서도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멀리 사라져 가는 흑풍대와 설영대를 빽빽한 그림자가 막아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의로운 이 땅에 사악한 마인들이 활기치고 다니게 할 수는 없다! 일어나라, 검림의 제자들이여!”

“정기천세(正氣千歲), 멸마검림(滅魔劍林)!”

“정기천세(正氣千歲), 멸마검림(滅魔劍林)!”

한 장년인의 외침에 따라 중후한 내력이 담긴 구호가 울려 퍼졌다.

챙 챙 챙 챙 챙!

그리고 검집에서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리며 갑자기 나타난 무사들이 흑풍대와 설영대 앞을 가로막았다.

담기량은 그들 중앙에 높이 세워진 문파의 깃발을 보았다.

좀 전에 그들이 외친 정기천세, 멸마검림의 글귀 아래 ‘검림’이라는 문파 명이 웅장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 * *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놀랄 일을 여러 번 겪는다지만, 설린과 냉천휘, 설영대는 요 며칠 마현의 신기한 능력에 너무 놀라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을 다시금 놀라게 만든 존재는 바로 흑사신들이었다.

며칠 마현과 다니면서도 그들은 흑사신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아니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야말로 땅속에서 솟아났으니까.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무위였다.

“이거 정말 말이 안 나오는군요, 설 사저.”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전장 한가운데 있었지만, 냉천휘는 감탄사를 아니 터트릴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놀란 눈으로 냉천휘와 설린은 앞서 길을 뚫는 흑사신의 등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아무렇지 않게 머리 위에서 허공답보를 펼치며 엄청난 파괴력이 담긴 마공을 내뿜고 있는 마현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콰과과과광!

마현의 엄청난 화력에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무림맹 한구석이 완벽히 무너졌다.

그러자 흑사신이 튀어나갔고, 그 뒤로 삼백 구의 스케레톤이 마치 파도처럼 쏟아져나갔다. 그 때문에 흑풍대와 설영대는 무림맹 무인들과 아무런 충돌 없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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