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40화 (140/351)

# 140

15화

천종백랑, 그것은 귀신마저 쫓을 수 있다는 하얀 늑대개이며, 북해의 영물이다.

후각이 그리 뛰어나다는 사냥개 역시 천종백랑의 후각에 비하면 태양 아래 반딧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북해빙궁에서도 두 마리밖에 없는 귀한 영물을 데려간다는 말에 냉하상이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며 설관악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소궁주뿐만 아니라 나의 제자도 있지 않나.”

설관악은 설린뿐 아니라 냉천휘 역시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 말에 냉하상은 서둘러 고개를 다시 숙였다.

“궁주님의 뜻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두르라.”

“명.”

냉하상은 설관악의 명을 받고 서둘러 궁주실을 빠져나갔다.

“남해태양궁, 감히 북해를 업신여겨? 내 기필코 남해의 태양을 얼려 버리겠노라!”

설관악의 눈에서 시퍼런 한광이 뿜어져 나왔다.

* * *

소화산 자락 아래 펼쳐진 제법 넓은 평원으로 들어서는 초입 부근.

마현과 흑풍대, 그리고 북해의 인물들을 에워싸는 무림맹 무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폭죽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었다.

대략 눈에 보이는 수만 해도 어림잡아 삼사 천은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무림맹의 주축인 오파일방과 육대세가 외에도 섬서성과 인근 성들에서 힘깨나 쓴다는 중소문파까지 동원된 듯 보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오파일방과 육대세가만으로 이 많은 수를 모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 개개인의 무력이 어찌되었든 그 수만으로도 마현은 상당한 압박을 느껴야 했다.

마현은 그답지 않게 갈등하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기서 더 지체하다가는 쉴 새 없이 몰려들며 계속 두터워져 가는 사람의 장막을 도저히 뚫을 수 없을 터였다.

‘어쩔 수 없지. 강행돌파를 할 수밖에.’

“흑풍대는 모든 힘을 개방하라.”

마현은 흑풍대에게 명을 내리며 그 역시 서클 단전에서 맴도는 모든 마력을 개방했다.

그러자 흑풍대는 능수능란하게 설영대와 설린, 냉천휘를 감싸며 원진을 구성했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키키키키!

-키르르르!

보름달이 뜬 무덤가에서 들려오는 귀기가 이럴까.

뒷골에 오한이 느껴지게 만드는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시다!”

바닥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스켈레톤을 본 한 화산파 제자가 소리쳤다.

“우허어엉!”

강시들의 웃음소리를 제압하기 위해 소림사 무승각주 무무가 앞으로 뛰어들며 사자후(獅子吼)를 터트렸다.

그의 입에서 터져나간 항마의 음공이 거센 태풍처럼 스켈레톤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스켈레톤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는지 휘청거렸다.

스켈레톤이 사자후에 영향을 받자 무무는 목소리에 내력을 담아 외쳤다.

“소림사 무승들은 백팔나한진을 펼치고, 반야심경에 항마의 공력을 담으라!”

조금 전 마현과 흑풍대에 당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던 무승들이 재빨리 몸을 날려 흑풍대와 마현, 그리고 북해빙궁을 에워쌌다. 그들은 백팔나한진을 펼치는 동시에 일제히 내공을 실어 반야심경을 낭송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백팔나한진을 펼친 무승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독경소리가 공기와 공명했다. 마치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그 소리는 백팔나한진 안을 한순간 지배했다.

-크, 크큭, 크.

-키, 키킥, 키.

마치 태엽이 끊어진 인형처럼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툭툭 끊겼다. 그리고 행동도 느려졌다.

“크으으…….”

“으으으…….”

게다가 스켈레톤이 받는 타격은 고스란히 흑풍대에게로 전해졌다.

흑풍대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스켈레톤이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대신 받는 모습이었다.

마현 역시 그 엄청난 항마의 기운에 낯을 찌푸렸다. 온몸을 사슬로 옥죄는 듯한 느낌은 마현의 신경다발을 긁어대는 듯했다. 전형적으로 흑마법사와 상극인 빛의 기운이 나한진 안에 가득하니,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진법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거대한 톱니바퀴와도 같은 것.’

마현은 혈맥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한 축을 부숴 버리면 제아무리 거대한 톱니바퀴라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피로 지옥으로 향하는 길보다 더 고통스러운 길을 만들지어다, 시트 오브 플레임즈!”

마현의 손에서 뿜어져나간 마력은 땅으로 스며들었다.

그로 인해 땅이 검게 물든다 싶더니 붉게 달아올랐다.

화르르륵!

붉게 달아오른 땅 위에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불이 솟구쳤다. 그 불은 마현에게서 멀어질수록, 앞으로 나아갈수록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 어떤 것도 집어삼킬 듯 거세게 나아간 불길은 순식간에 백팔나한진을 꿰뚫었다.

화산에서도 이 같은 마현의 마법을 한 번 경험했기에 무승들은 재빨리 신형을 틀어 몸을 피했다.

그러자 흑풍대를 압박하던 항마의 기운이 옅어졌다. 특히 불길이 훑고 지나간 앞부분에서 항마의 기운이 많이 사라지자 그동안 억눌렸던 스켈레톤들이 귀광을 뿌리며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스켈레톤들은 불길을 피해 신형을 뒤트는 무승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쑤아악!

쐐애애액!

그러자 어긋난 백팔나한진의 빈틈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무승들이 서둘러 막아섰지만 백팔나한진이 조금씩 깨질수록 반대로 스켈레톤들의 힘은 더욱 커져갔다.

항마력이 깃든 독경만으로는 스켈레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음을 깨달은 무승들은 진정한 백팔나한진의 위력이 깃든 무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력을 사용하며 항마력이 깃든 독경을 낭송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히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반야심경의 독경은 뚝뚝 끊겼다.

그렇게 되자 한 곳에서 시작된 백팔나한진의 틈이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백팔나한진이 깨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무승들은 독경을 멈추고 백팔나한진을 개진하라.”

무무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서둘러 무력을 개방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백팔나한진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리고 진정한 위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점해야 할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 지점에는 이미 스켈레톤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흑풍대나 마현이 백팔나한진의 요결을 알고 미리 선점한 것은 아니었다.

스켈레톤의 수는 삼백 구였다.

삼백이라는 엄청난 수가 안에서 끈임 없이 밀려나오니 자연스레 그리 된 것이다.

백팔나한진이 조금씩 무너져갔다.

원래 백팔나한진의 무서움은 소림사 무승 백팔 명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백팔나한진은 애초에 소수의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이었다.

그러나 지금 백팔나한진이 상대하고 있는 흑풍대는 서른 명이었지만, 그 서른 명은 단순한 서른 명이 아니었다. 무승들은 흑풍대가 이끄는 스켈레톤들까지 가세한 삼백서른 명의 적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진을 구성하는 무승들보다 더 많은 수가 밀려나오니 두툼하고 견고해져야 힘을 발휘하는 진이 얇아지고 허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독경마저 멈추니 스켈레톤의 귀기 어린 공격은 더욱 음산해졌다.

또한 어떤 진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진은 오로지 땅 위에서 마주한 적을 상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스켈레톤은 아니었다. 지상과 지하를 자유롭게 오가면 무승들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자 소림사 무승들이 흑풍대를 가두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에게 포위되어 농락당하고 있는 형국으로 상황이 역전됐다.

그것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콰과과과광!

백팔나한진 한쪽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마현, 마교 대공자 흑풍마군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이한 마공에 마치 벽력탄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불길이 곳곳에서 솟구친 것이다.

“크으!”

무무는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물리게.”

그사이 소림사 방장 혜공대사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섰다.

“하오나…….”

“이대로는 아까운 제자들만 죽일 뿐이네.”

그 말에 무무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주먹이 으스러지도록 꽉 말아 쥐었다.

“뒤로 물리고, 백팔나한진을 갖추지는 못해도 제자들에게 독경을 외우도록 시키게.”

“아, 알겠습니다.”

“아미타불.”

무무가 어렵게 명을 받들자 혜공대사는 조용히 불호를 읊었다.

* * *

백팔나한진을 이루었던 무승들이 급히 뒤로 물러나고 잠시지만 소강상태가 만들어졌다.

그 빈자리를 화산파와 종남파가 주축이 되어 재빨리 채웠다.

뒤로 물러난 소림사 무승들은 무무의 명에 의해 다시 목소리에 항마의 기운을 가진 내력을 담아 독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팔나한진처럼 하나의 목소리로 공명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기에 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가라!”

“쳐라!”

소강상태를 먼저 깨트린 것은 무림맹이었다.

그리고 그 명에 가장 먼저 몸을 날린 것은 화산파 제자들이었다. 며칠 전 자파의 제자들이 죽거나 다치며 쌓이고 쌓였던 원한을 되갚아 주기라도 하려는 듯 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리도 돕겠어요.”

설린이 냉천휘와 시선을 주고받은 후 마현에게 그리 말하고는 설영대에게 흑풍대를 도우라고 지시했다.

콰과광!

마현의 화염계 마법으로 인해 불길이 치솟는 전장에 냉기가 휘몰아쳤다.

그러자 마현은 화염계 마법을 거둬들이고는 수빙(水氷)계 마법으로 공격 방식을 바꿨다. 설영대의 힘을 좀 더 극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프리즌 필드(Frozen field)!”

쟈작 쟈자자자작!

마현이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새하얀 얼음이 땅을 뒤덮으며 퍼져나갔다. 마현을 중심으로 대략 20여 장 정도가 흡사 북해의 얼음땅을 보는 것처럼 땅바닥 위에 얼음이 깔렸다.

그런 환경이 조성되자 설영대는 더욱 과감하게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현은 그 정도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아쿠아 볼!”

마현은 비교적 가벼운 공격 마법인 수구(水球)를 만들어 사방으로 날렸다.

퍼벙 펑 펑 펑!

거기에 북해빙궁의 빙장이 더해졌다.

콰과광!

그러자 금세 전장은 바닥뿐만 아니라 공기마저 냉기로 가득 찼다.

그렇게 전장을 지배하는 피의 시간이 흘렀다.

‘흐음!’

동분서주하는 마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다행히 아직까지 큰 피해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흑풍대와 설영대의 힘이 빠지고 있었다. 끝없이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할 때마다 흑풍대와 설영대의 몸에 자잘한 검상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속가제자나 중소문파의 인물들은 별개로 치더라도, 흑풍대와 설영대가 상대하는 무림맹 소속 각 문파의 정예 무인들의 수만 해도 족히 천오백이 훌쩍 넘어선다.

제아무리 스켈레톤이 삼백 구라고 해도 근 다섯 배가 넘는 수다. 더욱이 항마의 기운이 적어졌다고 하지만 소림사 무승들이 낭송하는 독경 소리에 스켈레톤들이 주춤거릴 때가 잦았다.

그중 흑풍대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무림맹 무사들의 검에 부서진 스켈레톤이 다시 복원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보통 때는 단박에 다시 복원되던 것이 지금은 그 두세 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공격해오는 무림맹 무인들과 달리 흑풍대는 쉼 없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흑풍대뿐만 아니라 새로 힘을 실어주고 있는 설영대까지 점점 내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얼굴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과 거친 호흡, 몸에 검상이 하나씩 더 늘어날 때마다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의복이 지금 그들의 위태로운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설린과 냉천휘 역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렇게 대치하며 싸운다면 백전백패가 자명한 일.

‘이대로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숨기고 싶었지만, 장내를 살핀 마현은 마침내 그들을 불러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현의 눈에서 마기가 폭사되었다.

“카칸의 이름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어둠, 그대들 흑사신을 소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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