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7화
“비록 간악한 암계에 명을 달리했다지만 네놈의 손에 제자가 능욕 당하게 놔둘 수는 없다!”
담기량의 노기 어린 일갈에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며 오도평의 시신을 에워쌌다. 이어 몇몇의 청성파 제자들 역시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서는 청성파 제자들 중 코에 사마귀가 난, 여인의 혼백이 흉수로 지목했던 자는 없었다.
“대주.”
마현이 청허자를 차갑게 노려보며 왕귀진을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오도평의 시신을 가져오라!”
“명!”
왕귀진이 허리를 살짝 숙이는 순간이었다.
푹!
놀랍게도 오도평의 시신이 감쪽같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신이 땅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순간, 몇 개의 하얀 손뼈가 땅을 뚫고나와 끌고 들어간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오도평의 시신이 땅속으로 들어간지라 사람들이 본 것은 그저 땅으로 파묻혀 사라지는 신체 일부분뿐이었다.
마현과 흑풍대주의 대화를 듣고 사람들이 뒤늦게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오도평의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빈 땅만이 남아 있었다.
“헙!”
누군가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졌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무인들의 눈은 경악으로 터질 듯 부릅떠졌다.
마현 옆에서, 그러니까 주군을 향해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는 왕귀진 앞으로 사라졌던 오도평의 시신이 땅을 뚫고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도평의 시신이 땅속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설영대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화산파와 청성파가 그랬던 것처럼 오도평의 시신을 에워쌌다.
“고맙소.”
그 광경을 보고 마현이 살짝 고개를 돌려 설린에게 말했다.
“북해빙궁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설린이 전면을 쏘아보며 답했다.
“더불어 마교에 거짓이 없음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럴 뿐이오.”
냉천휘 역시 천천히 검을 뽑아 들고 나서며 말했다.
마현은 그런 설린과 냉천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놈들!”
청허자는 내력을 담아 소리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곧 설영대에 막혔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흑풍대가 나서며 설영대와 나란히 단단한 저지선을 구축했다. 일파의 종사인 청허자로서도 쉽게 뚫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은 형국이었다.
그러는 사이 마현은 다시 마력을 일으켜 오도평의 시신에서 잠든 혼백을 깨웠다.
“일어나라.”
귀기 어린 마현의 목소리에 오도평의 몸에서 조금 전처럼 실체를 가진 혼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어디지?
혼백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 몸은 왜 이렇지?
오도평의 혼백이 저런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체가 불분명한 하체 아래 자신의 시신을 본 오도평의 혼백은 말문을 잃은 듯 석상처럼 굳어졌다.
한참을 자신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그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런 오도평의 혼백과 마현의 눈이 마주쳤다.
“내 눈을 보라!”
조금 전 여인의 혼백과 마찬가지로 마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사기가 오도평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콰광!
“이놈!”
담기량의 일갈과 함께 강기와 강기가 맞부딪히는 폭음이 터졌다.
“큭!”
마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설영대와 담기량 사이에 땅이 파헤쳐지고 뒤집혀 있었다. 그 부딪힘으로 생긴 구덩이에는 살얼음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내 본맹의 손님이라 예를 갖췄건만, 돌아오는 것은 본맹과 본파의 능멸뿐이구나!”
담기량의 몸에서는 화산파에서도 보기 드문 자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화산파 장문인의 독문무공인 자하신공 특유의 기운이었다.
콰직 콰직 콰직!
담기량이 거센 기운을 내뿜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내딛은 자리에는 한 치가량 움푹 들어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어지간한 무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기운이었다. 설영대와 흑풍대는 담기량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설영대와 흑풍대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고, 두 집단이 돌발적으로 공조하며 생겨났던 어색함이 사라지며 방어선은 더욱 견고해졌다.
“본 펜스!”
마현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투둑 투두둑!
땅거죽이 터지고 뒤틀리며 흡사 끈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푹! 푸핫!
그리고 하얀 물체가 땅 위로 솟구쳐 올랐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가닥으로 이루어진 그것의 실체는 하얀 뼈였다.
단순한 뼈가 아닌 날카로운 가시나무가 넝쿨을 이루는 듯한 혹은 생선가시를 마구 쌓아놓은 듯 보이는 그 하얀 뼈들은 뾰족한 침을 드러내며 거대한 울타리를 만들었다. 바로 뼈로 만들어진 울타리, 골책(骨柵)이었다.
“헙!”
담기량은 하체를 찌를 듯 자라나는 골책에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땅바닥을 디디고 설 때쯤엔 사람 키만 한 하얀 골책이 무림맹 수뇌들을 비롯한 소속 무인들, 그리고 남해태양궁 사람들을 완전히 가두어 버렸다.
“무, 무슨…….”
“이, 이런 사술이라니…….”
대부분 너무 놀라서인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이 당황하는 사이 마현은 오도평의 혼백을 다시 사로잡았다.
“금마공을 어떻게 익혔나?”
-……금마공인지 몰랐습니다.
“몰랐다?”
하긴 모를 수도 있을 법하다.
“그 금마공을 어떤 경로로 얻게 되었나?”
오도평의 혼백이 고개를 돌려 무림맹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누군가를 찾는 듯 쉴 새 없이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이 마침내 어느 한곳에서 딱 멈췄다.
거기에는 당황한 얼굴을 한 화산파의 장로 허담이 서 있었다.
오도평의 혼백이 손을 들어 허 장로를 가리켰다.
-허 장로님께서 어느 날 익혀보라며 주셨습니다.
마현의 눈도 허담에게 향했다. 좌중의 모든 이목이 한순간 그에게로 모였다.
“화산파를 어디까지 능멸할 생각이냐?”
허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맹주, 아니 장문인.”
담기량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담기량은 그 소리를 못 들은 듯 마현을 노려볼 뿐이었다. 허담은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로 손에 쥔 검을 들어올렸다.
“나의 결백함은 하늘이 알 것이다.”
마현을 향해 소리치던 허담이 검을 역수로 잡더니 자신의 배를 푹 찔렀다.
새하얀 검날이 그의 등을 뚫고 나왔다. 그 검날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며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고통에 신음이라도 흘릴 법도 하건만, 허담은 마현을 노려보며 눈 주위를 꿈틀거릴 뿐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그가 고개를 돌려 무림맹 수뇌들을 쳐다보았다.
“죽음으로 결백을 밝힐 것이외…….”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고 결국 허담이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한순간이었다.
누가 말리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 허담 스스로가 자결을 한 것이다.
그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골책에 가로막혀 잠시 주춤하던 무림맹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변했다. 그들의 눈에는 사생결단의 결의로 가득 찼다.
담기량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는 허담을 묵묵히 지켜봤다. 이윽고 그의 수염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무림맹은 들으라!”
담기량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정마대전이 일어난다 해도 본 맹주는 이 자리에서 척마의 기치를 세울 것이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들어 살심 어린 함성을 터트렸다.
“무림맹이여 일어나라!”
담기량의 목소리에 별채를 둘러싼 담 뒤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 * *
별채를 둘러싼 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들의 수는 대충 눈에 보이는 인원만 해도 수백은 될 것 같았다. 그들 중 절반은 화산파 제자들이었고, 그 절반은 오파일방의 제자들이었다.
아마 이번 대회에 참여한 오파일방의 무인들이 모두 동원된 모양이었다.
이처럼 신속하게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사전에 준비해 두었다는 것!
“열풍대도 나서라.”
응급처치를 마치고 수하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양곽원이 원한 가득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열풍대주는 중한 상처로 인해 얼굴이 많이 창백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열풍대를 직접 지휘했다. 그의 능수능란한 지휘로 인해 열풍대는 자연스럽게 무림맹 무인들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이제 더는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마현과 설린, 그리고 냉천휘의 눈빛이 짧게 서로를 오갔다.
‘하지만 먼저 허 장로라는 자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
마현은 결심을 굳히고 골책 너머에 쓰러져 있는 허담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결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면서까지 감추려고 했던 비밀은 무엇인지, 또 어떤 경로를 통해, 무슨 의도로 오도평에게 금마공을 전했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허 장로의 시신을 확보하라.』
『명!』
왕귀진은 마기를 손으로 모아 땅바닥을 짚었다.
“허 장로의 시신을 보호하라.”
왕귀진과 마현을 주시하던 담기량이 허담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미 땅속으로 오도평의 시신이 사라졌던 것을 한 번 경험한 터라 화산파 제자들은 재빨리 허담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학!
허담의 시신이 바닥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누워 있던 땅바닥이 한 치가량 아래로 푹 꺼졌다.
“어쩔 수 없군.”
마현이 앞으로 나섰다.
“대주, 길을 뚫으라. 본인이 직접 시신을 확보하겠다.”
“명!”
“설 소저, 그리고 냉 소협. 흑풍대의 후미를 부탁하오.”
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마현은 그 자리에서 몸을 띄웠다.
“네놈의 명줄은 내가 끊어주마!”
청허자였다.
쐐애애액!
청허자는 허공에 몸을 띄운 마현의 하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현은 청허자의 검에 담긴 검강을 보며 다리 아래에 실드를 만들었다. 그 실드는 청허자의 검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현은 허공에 만들어진 실드를 밟으며 재차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흥!”
청허자는 마현의 허공답보를 한 번 보았기에 어느 정도 다음 행보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몸을 한 바퀴 팽그르르 돌며 검을 휘둘렀다.
쑤아아앙!
청허자의 검에서 춤을 추던 강기가 검에서 빠져나와 시퍼런 반원을 그리며 마현의 하체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갔다.
“플라이!”
마현은 허공에 몸을 반듯하게 세우며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블링크!”
마현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청허자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강은 마현이 서 있던 자리의 공기만 찢어발기고 하늘 위로 솟구치며 사라졌다.
마현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허담의 시신을 들고 있는 화산파 제자들 앞이었다.
“헙!”
“허억!”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아니면 땅에서 솟아올랐는지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마현이 자신들 앞에 서 있으니 그들이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렉트릭 네트(Electric net)!”
치지직 챠자자자작!
마현의 손끝에서 푸른 전기가 넓게 뿜어져 나왔다. 그 전기는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다가 화산파 제자들의 검을 확 깨물었다.
파팟 파파팟!
전기가 화산파 제자들의 검으로 스며들자 푸르고 붉은 불꽃이 튀었다.
“크악!”
“크으으!”
화산파 제자들은 감전이 되어 뻣뻣하게 굳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모두들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다.
내력이 강한 자들은 비틀거리면서 애써 신형을 바로잡는 모습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마현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오도평의 시신을 주시하며 왕귀진을 불렀다.
『대주!』
마현의 매직마우스가 끝나기가 무섭게 오도평의 시신이 땅속으로 파묻히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쐐애액!
쓰러진 화산파 제자들 사이로 날카로운 검강이 다시 날아왔다.
마현은 재빨리 양팔을 들어 교차시켰다.
“암 바클러!”
교차시킨 양팔 앞으로 두 개의 작은 보호막을 만들었다.
차장창창― 카강!
하나의 암 바클러가 검강에 부서지며 그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암 바클러에서 불꽃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