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2화
양곽원은 참고 참았던 분노를 목소리에 담아 일갈을 지르며 마현을 향해 날아갔다.
마현은 그런 양곽원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실드!”
지이이잉!
하얀 막이 허공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드는 마현의 주위가 아닌 허공으로 몸을 띄운 양곽원 바로 앞에 만들어졌다.
기세 좋게 허공으로 몸을 날린 양곽원은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쿵!
허공으로 치솟던 양곽원의 몸이 흡사 벽에라도 부딪힌 것처럼 갑자기 튕겨졌다. 허공은 인간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한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다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양곽원의 몸은 그대로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나마 그 순간 자신의 발등을 다른 발로 찍으며 몸을 틀어 꼴사납지 않게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전하게 내려섰다고 해서 안도하긴 일렀다.
시퍼런 냉기를 머금은 얼음 창 세 개가 양곽원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큭!”
양곽원은 재빨리 용천혈로 내력을 돌려 바닥을 발로 찍으며 뒤로 몸을 날렸다.
쾅!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얼음 창이 내리꽂히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구덩이 주위에 삽시간에 새하얀 살얼음이 깔렸다.
양곽원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신음을 흘리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뒤이어 날아오는 얼음 창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양곽원은 다시 내력을 분출시키며 뒤로 몸을 날렸다.
쾅!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쾅!
계속 물러나던 양곽원의 등이 귀빈석을 만든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되었다.
쐐애애액―!
“큭!”
세 자루의 얼음 창이 전부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남은 한 자루의 창이 궁지에 몰린 양곽원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느라 모든 내력을 하체로 집중한 까닭에 얼음 창을 막을 수 있는 장풍을 쏠 수가 없었다. 아직은 내력 운용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양곽원은 두 팔을 교차시키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피해를 최소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콰광!
폭음이 터졌다.
양곽원의 몸도 함께 움찔거렸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다만 차가운 냉기가 바람에 섞여 얼굴을 핥는 것이 느껴졌을 뿐이다.
양곽원은 두 팔을 슬쩍 내리며 눈을 떴다. 자신의 바로 앞, 정확히는 두 다리 사이 바로 밑에, 땅에 파인 자국과 함께 새하얀 서리가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북해빙궁이 결국!’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마현의 오른쪽 어깨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새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맴도는 얼음 창이 보인 것이다.
노려보는 양곽원의 눈과 마현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마현 곁에 떠 있던 얼음 창이 양곽원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큭!”
양곽원은 재빨리 내력을 끌어올려 장심에 열기가 가득한 양기를 담았다. 그리고 얼음 창을 향해 일장을 내지르려 했다.
펑!
하지만 그 전에 얼음 창이 허공에서 터졌다.
그것은 산산조각이 난 정도가 아니었다. 얼음 창은 마치 곱게 빻아진 쌀가루처럼 눈송이로 바뀌어 양곽원의 몸을 뒤덮었다.
양곽원의 몸은 하늘에서 내리는 폭설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하얀 눈가루로 뒤덮였다. 이내 그 하얀 눈가루는 양곽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녹아 그가 서 있는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마지막 경고다.”
마현은 양곽원을 향해 나직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귀빈석을 쳐다보았다.
담기량의 얼굴은 참혹할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또한 곤혹스러운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강제로, 힘으로 마현을 막아서는 순간 이 싸움은 정마대전이 아닌 무림대전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것은 담기량만이 아니었다.
육대세가 가주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담기량을 제치고 사천당문의 당자성이 앞으로 나섰다. 당자성은 이미 마현을 한 번 겪어본 사람이다. 적어도 그가 아무런 확증 없이 이리 나서지 않을 인물이라는 것만은 안다.
“장문인, 그리고 대공자.”
‘저,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당자성이 나서자 오파일방 장문인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그 눈빛들을 무시하며 당자성은 입을 열었다.
“일을 무턱대고 크게 벌일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아니 새외삼궁 소궁주들까지 입회시켜 공정하게 이번 일을 처리했으면 하오.”
당자성의 제안은 단순히 무림맹의 입장으로만 본다면 잘 돼도 본전이요, 여차하면 손해다. 사실 그렇기에 담기량 역시 강제로라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육대세가가 아닌 오파일방의 손해지.’
당자성은 넌지시 육대세가 가주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것이 좋겠소이다.”
무림맹의 전대 맹주였던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백공이었다.
남궁백공 역시 당자성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은 것이다. 물론 지금 일이 적어도 1년 전, 자신이 맹주직에 있을 때라면, 또한 금마공을 익혔다고 지목된 이가 육대세가의 한 제자였다면 담기량처럼 이 일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된 자는 육대세가의 제자도 아니요, 지금은 오파일방이 중심이 된 무림맹이었다. 한 마디로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만 자신들의 일이 아니란 소리다.
오히려 화산파 제자가 금마공을 익혔으면 하고 은근히 바랄 정도였다. 그렇다면 무림맹은 반드시 타격을 입는다.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둘 다.
하지만 그 무림맹은 오파일방의 무림맹이지 육대세가의 무림맹은 아니었다.
즉, 무림맹 자체는 타격을 받겠지만 맹에 대한 주도권은 다시 육대세가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 무슨 망발을 늘어놓는 것이오?”
담기량이 발끈하며 나섰다.
그건 무림맹의 맹주나 화산파의 장문인으로서 담기량이 무조건 피해야 할 사안이었다.
일이 커지자 자꾸만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오도평의 모습 또한 께름칙했다.
“망발이라니요! 아무리 담 맹주가 무림맹을 이끄는 맹주라고 하나 언사가 너무 천박하지 않소이까!”
담기량이 그리 나오자 더욱 이상함을 느낀 육대세가 가주들이 일제히 한목소리를 냈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무림맹 내에서 서로 패를 갈라 반목하자 마현은 비무대 아래로 내려섰다.
흑풍대에 둘러싸인 화산파 제자 오도평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금마공을 어떻게 익힌 것이냐?”
마현은 오도평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마기를 분출시켰다.
“그, 금마공이라니…… 나는 모르오. 정말 모르는 일이오.”
말을 더듬으며 당황하는 모습이 진실 되어 보이지 않았다.
오도평은 혹 거짓이 아니더라도 뭔가 감추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금마공인지 모르고 익혔어도 그것이 화산파의 무공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 스스로도 인지하는 것 같았다.
“과연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본인에게 그리 말할 수 있는지 봐야겠다.”
마현의 목소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불안에 떨던 오도평은 마현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가 갑자기 귀빈석을 향해 몸을 틀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장문인! 아니 맹주님!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그 목소리에 오파일방 장문인들의 얼굴이 일제히 경직되며 비무대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안 돼!’
담기량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일단 비무대 위로 몸을 날렸다. 마현 앞에 내려선 그는 오도평을 등 뒤로 감추었다. 오도평을 특별히 아껴서가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담기량의 뒤를 이어 오파일방 장문인들이 날아와 오도평을 보호하려 빙 둘러쌌다.
“정녕 무림을 혼란으로 몰고 갈 생각인가?”
“무엇이 그리 불안해 감춘단 말이오? 화산파 제자가 금마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내 스스로 무릎을 꿇겠소.”
마현의 단호한 목소리에 담기량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부족하오? 그게 부족하면 본인 목을 바치지.”
마현은 담기량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니 비키시오!”
콰직.
담기량의 입술이 결국 이빨에 짓이겨 터지고 말았다. 비릿한 피가 입안을 적시고 목을 타고 넘어갔다.
“조, 좋소! 일단 시간을 가지고 추궁을 하겠소.”
다른 누구도 아닌 마교 대공자가 목숨을 내걸고 장담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은 버티는 것도 무리라는 것을 깨달은 담기량은 일단 시간이라도 벌어야겠다고 판단하고 그리 제안했다.
마현은 당장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밝히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강경한 자세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리라 여겼다. 담기량의 표정에서 어느 정도의 꿍꿍이는 눈치챘지만 이쯤에서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받아들이겠소.”
마현의 대답에 담기량의 눈동자에 그때서야 안도감이 내비쳤다.
“대신! 그자는 우리가 데리고 있겠소.”
마현의 말에 담기량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불가!”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현이 알기 전에 자신이 먼저 알아야 했다.
“우리가 데리고 있겠소이다.”
담기량으로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뭘 그리 고민하시오? 그냥 둘이 동시에 데리고 있으면 될 것을.”
그때 야율황기가 끼어들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참으로 그답지 않은(?) 현명한 의견이었다.
* * *
무림대회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갑작스러운 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의 얼굴에서는 실망과 항의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마치 쫓겨나듯이 화산파에서 내려갔지만 오히려 그들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눈과 귀가 화산파로 향했다.
어쩌면 무림대회가 완전히 중단될 수도 있음에도 사람들은 화산파 아래 마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져만 갔다.
화산파 심처의 아담한 별채.
그 앞 작은 마당에서는 지금 묘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별채는 청아한 풍경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고즈넉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흉흉한 기세들이 별채와 뜰을 가득 덮고 있었다.
별채를 중심으로 흑풍대와 화산파 제자들이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양측은 한 선을 경계 삼아 흉흉한 시선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건드리면 금방 검을 뽑아들고 혈전을 벌일 듯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대치된 두 집단의 모습은 별채 안에 머무는 화산파 제자 오도평을 감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죽일 듯 노려보며 칼을 뽑으라는 명령만 기다리는 것인지, 제삼자의 눈으로만 본다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폭발할 듯한 마기와 정기로 뒤엉킨 마당의 상황을 별채 안에 있는 오도평이 못 느낄 리 없었다. 그는 지금 수백 수천 개의 바늘이 자신의 몸을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차라리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질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하지만 오도평은 그 정도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이였다. 그저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그 시각, 화산파 장문인실에 육대세가를 제외한 오파일방의 장문인들이 침중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모두들 난감한 얼굴로 화산파 장문인인 담기량의 눈치만을 살필 뿐이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담기량이 먼저 말문을 열어야 하겠지만, 그는 쉽게 입을 열 처지가 못 되었다.
“일단 화산파 제자에 대해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가장 성질이 급한 종남파 장문인인 곡상천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곡 장문인, 흑풍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찌 알아본단 말이오?”
유시(酉時; 오후 5~7시) 말, 새외삼궁이 참관하는 가운데 무림맹과 마교가 함께 오도평을 심문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바로 심문에 들어가지 않고 그처럼 늦은 시간으로 정한 것은 흥분된 감정을 다스린 후 좀 더 냉정하게 일을 치르자는 뜻에서 그리 결정된 것이다.
“그건 나도 아오.”
청허자의 물음에 곡상천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방도라도 있으신 게요?”
청허자가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물었다.
“심문은 유시 말이지만, 그 전에 만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오.”
곡상천은 눈을 빛내며 맹주이자 화산파 장문인인 담기량을 쳐다보았다.
이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였지만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