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7화
“태일을 보호하라!”
송일은 다급히 외쳤다.
상황이 어찌 됐든 태일만은 반드시 살려야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교 대공자의 손에 사제를 죽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제히 청성파 제자들이 검을 뽑아들고 마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현은 태일에게서 발을 떼고 그들을 향해 돌아섰다.
“오냐! 모두 죽여주마!”
온몸으로 마기를 쏟아내며 마현이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강하게 내리찍었다.
“필드 쇼크(Field shock)!”
서클 단전에서 뻗어나간 마기가 마현의 다리를 타고 땅으로 스며들었다.
쿠르르르르! 파밧 파바바밧!
대로에 단단하게 깔려 있던 두꺼운 장판석들이 들썩거리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갑자기 뒤틀어지고 들썩이는 바닥으로 인해 마현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던 청성파 제자들의 신형이 순간 멈칫거리며 어지럽게 흔들렸다. 청성파 제자들은 서둘러 허공으로 몸을 띄워 신형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현은 다시 발을 디뎌 또다시 대로 위 지축을 뒤흔들었다.
애써 신형을 잡았던 청성파 제자들의 균형이 다시 흐트러졌다.
콰르르르! 팡 팡 팡 파바방!
다시 한 걸음에 장판석이 뒤집어지고, 다시 한 걸음에 뒤집어진 장판석이 터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결국 무공 수위가 낮은 청성파 제자 몇이 검을 의지한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겨우 서 있는 이들 역시 신형이 위태위태했다.
오직 송일만이 침중한 눈빛을 띤 채 서 있을 뿐이었다.
마현은 천천히 송일을 향해 걸어갔다.
대로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성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 마교의 천마군림보다!”
“허, 허공답보에 이어 천마군림보가 천하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진 몇 마디에 군중들은 경악성을 일제히 터트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보법으로 상대를 짓누르며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천하에 천마군림보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교 대공자?”
누군가의 말에 군중들은 대로 위에서 공간을 만들고 서 있는 낭인들을 쳐다보았다. 군중들은 비로소 저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흑풍대!
대공자의 호위 무력단체인 흑풍대였다.
그들은 오로지 자리만 지키며 공간만 확보할 뿐 청성파와의 싸움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마현의 무위가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결코 그들의 주인이 지지 않을 것이라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확고한 눈빛이.
군중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교의 힘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천마군림보를 익힌 것인가?’
송일 역시 마현의 걸음이 천마군림보라고 착각했다. 그는 침착하려 애쓰며 간신히 서 있는 주변의 청성파 제자들을 살폈다.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자들의 눈은 이미 공포로 인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현의 기세에 눌린 것이다.
‘마교 대공자의 무위가 이 정도인가?’
송일은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다들 죽고 싶다니 죽여줄 수밖에.”
그들 한가운데 오연하게 선 마현의 몸에서 다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장담하지.”
마현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청성파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일을 쳐다보았다.
“한 놈도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한다!”
마현은 마기에 살기를 담아 다시 한 번 발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과과광!
마현을 중심으로 바닥이 터졌다.
주변의 장판석들이 마현의 필드 쇼크 마법에 의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큭!”
“크헉!”
비산하는 날카로운 파편 속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송일은 자욱한 먼지 속에 서 있는 마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앞으로 튀어나가는 송일의 얼굴에도 날카로운 파편이 튀어 생채기를 만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현은 자신을 베어오는 검을 보며 블링크를 이용해 송일의 뒤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파이어 재벌린을 만들어 그의 뒷목을 향해 찔렀다.
“헙!”
마현의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살기가 뒤에서 느껴지자 송일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빨리 몸을 비틀었다.
눈앞에 이글거리는 불덩이로 된 창을 보며 송일은 한순간 뒷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한을 느꼈다. 그는 여지없이 화창에 목숨을 잃을 것이라 여겼다.
‘이대로 끝인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송일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쑤아아앙!
마현의 파이어 재벌린이 송일의 목을 꿰뚫기 일보직전이었다.
마현의 기감에 은은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거친 살기, 맹수의 살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커허어엉!
맹수의 울음이 머리 위에서 터졌다.
그 포효에 마현은 파이어 재벌린을 회수하며 고개를 들었다.
대로 양쪽으로 늘어선 객잔과 유곽들의 지붕 사이로 한 마리의 대호(大虎)가 우뚝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음?’
성도에 맹수가 나타난 것에 의아함을 느낄 찰나, 그 뒤로 불쑥 솟아오르는 검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다른 지붕에도 표범과 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 에서는 독수리 몇 마리가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맹수들 옆으로 그림자들이 불쑥불쑥 솟아났다.
“소궁주, 벌써 끝난 것 같은데요.”
마현은 대호 옆에 선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을 등지고 있어 눈이 부셨지만 유심히 보니 남만야수궁의 소궁주 야율황기임을 마현은 알아보았다.
“마 공자?”
그 역시 마현을 알아보았다.
“크하하하, 마 공자였군.”
야율황기는 대호를 마치 말처럼 다루며 올라탔다. 그를 태운 대호는 그 큰 몸집으로 높디높은 객잔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쿵!
야율황기를 태운 대호는 고양이처럼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대호에서 내린 야율황기는 처참한 몰골의 청성파 제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현은 그가 내려오든 말든 다시 송일의 목에 파이어 재벌린을 겨누었다.
“마 공자, 죽이려고?”
“그렇습니다.”
“약한 놈들 괴롭혀서 뭐하게?”
야율황기는 새끼손가락으로 한쪽 코를 후비며 쓰러져 있는 태일을 발로 걷어차 송일과 마현 사이로 날려 버렸다.
“본인에게 검을 들이민 자들이오.”
“알아, 그러니 마 공자에게 피떡이 되도록 쳐 맞은 거겠지.”
마현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야율황기를 쳐다보았다.
“나? 난 나보다 약한 놈 안 죽여. 그냥 딱 죽기 전까지만 패버리지.”
야율황기는 콧구멍에서 새끼손가락을 빼 비비더니 입으로 후 불었다.
“보아하니 딱 죽기 일보직전까지 팬 것 같으니 나랑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야율황기는 다짜고짜 마현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우악스럽게 끌어당겼다. 그리곤 그동안의 회포를 풀자며 주절주절 잡담을 늘어놓았다.
마현은 당황스러운 한편 어이가 없었다. 야율황기의 행동이 마치 절친한 친우를 만난 듯했기 때문이다.
뭐하는 짓이냐며 팔을 뿌리치자니 상대가 무안해할 것 같아 그럴 수도 없었다.
어쨌든 그 어이없는 야율황기의 행동으로 마현은 맥이 탁 풀렸다.
결국 마현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술은 야율 소궁주가 사시는 겁니까?”
“끄응!”
야율황기가 못마땅한 신음을 집어삼켰다. 술은 먹고 싶어도 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현은 피식 웃으며 송일을 향해 말했다.
“운이 좋군.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다. 더 이상 본인 눈에 띄지 마라. 가자!”
“예, 주군.”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흑풍대가 일제히 마현을 따라 대로를 벗어났다.
* * *
“그 말이 사실이야?”
“아, 진짜!”
당화평의 말에 걸개아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사.실.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
“아, 알았어.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잖아.”
곧 사과를 했지만 걸개아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당화평을 노려보았다. 근 한 달 동안 함께 지내며 둘의 사이는 서로 하대를 할 만큼 매우 가까워졌다. 비록 당화평이 걸개아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그것이 둘이 친구가 되는 것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걸개아, 네 말이 맞다면…….”
“맞다니까! 지금 개방을 우습게보는 거야 뭐야?”
당화평이 혼자 중얼거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걸개아는 다시 한 번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귀 안 먹었으니까 소리 그만 질러.”
당화평은 낯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왜 마교 대공자가 무당파로 갔지?”
그게 의문이었다.
삼 일 전 마현이 무당파로 올라갔었다는 정보를 개방에서 얻은 직후 곧바로 무당파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하지만 왜 마현이 무당파로 왔는지 좀처럼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정말 마현이 무당파에 들렸었나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당화평은 몇 번이나 걸개아에게 그 정보가 사실이냐고 물었고, 걸개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한 것이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고, 생각이 거듭되자 당화평은 저도 모르게 땅을 보며 걷고 있었다.
“어?”
그때 걸개아가 당화평의 옆구리를 툭 쳤다.
“저기.”
고개를 드니 걸개아가 손가락으로 무당파로 오르는 산길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화평은 걸개아의 손가락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길 위에서 두 명의 무당파 제자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태극검룡 학방 도인, 맞지?”
당화평이 학방의 얼굴을 기억해내고는 그렇게 물었다.
“학방 도인은 예전에 태극검룡 별호를 내려놓았다.”
걸개아는 마치 자신의 정보력을 자랑하듯 말을 툭 던졌다.
“태극검룡의 별호가 대를 이어 다른 이에게로 이어진다고 하더니…….”
당화평은 언뜻 들은 이야기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태극검룡을 내려놨으니 학방 도인의 지금 별호는 태극수검이지.”
“근데 옆에 있는 도인은 누구지? 처음 보는 이인데. 혹?”
“……!”
당화평의 머릿속엔 떠오르는 이가 하나 있었다. 걸개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무당의 검을 이어받을 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가 태극검룡을 이어받았다는…….”
둘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학성 도인?”
“태극검룡 학성?”
상황이 어찌 되었든 둘은 일단 학방과 학성이 내려오는 길로 올라갔다.
학방과 학성 역시 당화평과 걸개아를 봤는지 그 둘이 올라오는 방향으로 길을 살짝 틀어 내려왔다.
“안녕하십니다, 학방 도인.”
“오랜만입니다.”
걸개아와 당화평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올렸다.
“저도 오랜만입니다. 당 소협, 걸 소협. 무량수불!”
학방 역시 둘을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학방의 인사를 받은 걸개아는 노골적으로 학성을 쳐다보았다. 개방도답게 잔뜩 오른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에 학방은 학성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