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05화 (105/351)

# 105

5화

“무림대회가 열릴 때까지 마교 대공자를 어떻게든 옆에서 따라다니며 살펴보아라.”

“여, 옆에서 말입니까?”

“그래. 어떤 놈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하, 하지만…… 제자가 어떻게…….”

걸개아는 불취개의 황당한 명령에 훌쩍이는 것도 잊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불취개는 그런 시선을 모르는지 곰방대 안의 재를 탁탁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잘해라, 제자야.”

무성의한 스승의 말투에 걸개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결론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아니다!’가 정답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살기가 가득하고 무시무시한 흑풍대가 마현을 호위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현 곁으로 갔다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검을 뽑을 인물들처럼 보였다. 또한 마현은 마인이다. 그것도 마교의 대공자다.

그런 그가 자신이 다가가 무림대회가 열리는 화산파로 동행하자고 말하면 ‘그럽시다’라고 대답할 확률은 정말, 정말 후하게 쳐준다고 해도 전무해 보였다.

“스, 스승님.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쓰읍!”

불취개가 인상을 쓰며 타구봉 쪽으로 손을 슬쩍 올렸다.

“스승님.”

걸개아는 울먹이며 스승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퍽. 퍽. 퍽. 퍽. 퍽!

“아악! 으아악! 거, 걸개아…… 살려!”

매질뿐이었다.

* * *

한적한 오솔길.

조금만 더 걸어가면 호북으로 통하는 사천성의 마지막 마을이 하나 나온다. 사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변변한 이름조차 없는, 대략 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촌락일 뿐이다.

터벅 터벅 터벅.

마을로 들어서는 오솔길을 걸어가며 한 거지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이 얼마나 깊고 무거웠던지 만일 옆에서 듣는 사람이 있었다면 절로 어깨가 축 처졌을 것이다.

바로 걸개아였다.

“난 죽었다.”

터벅거리던 발걸음은 어느새 흐느적거림으로 바뀌더니 근처 나무둥치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우씨, 누가 마 공자가 그리 빨리 사천성에서 사라질 줄 알았나. 아이, 정말 어쩌지?”

걸개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교 대공자 옆에 따라붙어 다니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오너라. 그리 못하면…….”

히죽 웃으며 타구봉으로 허공을 후려치던 스승 불취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걸개아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씨, 진짜!”

그런 걸개아의 눈동자에서 은근히 반항기가 묻어나왔다.

“아, 쉬파.”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옆으로 내리더니 복부에 힘을 잔뜩 주고는 별안간 꽥 소리를 질렀다.

“내가 제자지 꼬봉이냐? 앙? 네가 스승이면 다야? 걸핏하면 몽둥이나 드는 주제에! 우아아아아!”

한동안 하늘을 향해 불취개을 향한 분노를 쏟아낸 걸개아는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이제 조금 시원하네. 에고고, 내 팔자야. 어쩌다가 뭐 같은 스승을 만나서…….”

걸개아는 뒤통수를 손으로 벅벅 긁으며 입을 쩝쩝 다셨다. 걸개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낯선 그림자가 보이자 걸개아는 몸을 흠칫했다. 이내 그 그림자의 주인이 당화평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안도감이 맴도는 어정쩡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

“하핫, 걸 형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당화평은 약간 농이 섞인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당 형.”

걸개아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니 당화평에게로 다가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에게는 비밀입니다. 하하하하.”

그런 걸개아의 모습을 보자 당화평은 괜스레 장난기가 발동했다.

“요 앞에 객잔이 있는데 걸 형께서 국수 한 그릇 사신다면 아마 이 입이 천근만근 무거워질 것 같습니다.”

걸개아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다, 당 형. 나는 거지인데…….”

“알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그럽니까?”

“그냥 거지에게 얻어먹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렇습니다. 정 싫으시다면 이 길로 개방으로 가고요.”

당화평은 짐짓 과장되게 몸을 틀었다.

“다, 당 형!”

걸개아는 뜨끔하며 황급히 그의 소매를 잡았다.

“누, 누가 안 사준다고 그랬습니까?”

버럭 화를 내는 걸개아의 눈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걸개아는 노점 옆의 허름한 객잔에서 국수 두 그릇을 시켰고, 사타구니에서 엽전을 꺼내 셈을 치렀다. 얼마나 깊숙이 숨겼던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킁킁대더니 맨손으로 돈을 안 받고 걸레로 받았을 정도였다.

“잘 먹겠습니다.”

“흐음, 많이 드십시오.”

능글맞은 당화평의 모습에 걸개아는 마땅찮은 표정으로 말하고는 자신 역시 젓가락을 들었다.

“근데 걸 형은 여기까지 웬일입니까?”

“스승님 명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죽겠습니다. 에효.”

걸개아는 국수를 먹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당 형은 어쩐 일입니까? 아직 무림대회가 열리려면 시일이 남았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이쪽은 화산파로 가는 길도 아닌데 말입니다.”

당화평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차로 가볍게 입가심을 한 후 입을 열었다.

“가친의 명이 있어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가주님의 명이요?”

“예.”

“혹 실례가 안 된다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당화평은 잠시 망설이는 듯싶었지만 이내 말문을 열었다.

“별다른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잠시 뜸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마 공자 때문입니다.”

“마 공자라 하면?”

당화평의 말에 걸개아의 눈동자가 바뀌었다.

“마교 대공자?”

걸개아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당화평은 달라진 걸개아의 목소리와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혹시……, 걸 형께서도?”

“휴우…….”

걸개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잔뜩 울상을 지으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스승님께서 글쎄……, 무작정 마 공자 옆에 철썩 달라붙어서 어떤 인물인지 알아오라 그러지 뭡니까.”

그때서야 당화평은 왜 조금 전 걸개아가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건 이 당 모와 비슷하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당화평 역시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당화평 또한 당자성의 명으로 마현의 뒤를 쫓아 여기까지 왔다. 다른 점이라면 마현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음을 그 역시 동의했기에 자발적으로 사천당문을 떠났지만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처음에는 손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들은 마현의 말들을 유추해 일단 호북성을 비롯해 인근 성들 중 절경이 뛰어난 곳 위주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술자리에서 마현이 말하기를, ‘이왕 나온 김에 정파 쪽 세력권에 있는 절경들을 두루 볼 생각’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지역이라 당화평 홀로 그 일을 다 할 수는 없었다.

호북성만 해도 얼마나 큰가?

그래서 당화평은 마침 개방의 손을 빌릴 요량이었다.

“걸 형.”

“……?”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이 당 모랑 함께 다니는 게 어떻겠소? 하나보다는 둘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걸개아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당화평이 그런 말을 꺼낼 때 걸개아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시각.

마현은 중경을 지나 이미 호북성에 들어선 후였다.

무당파가 그리 멀지 않은, 무당산 자락 끝에 위치한 방현(房縣)에서 마현은 일단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객잔부터 찾았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무당파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듯했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던 것이다.

방현의 저잣거리를 둘러보며 마현은 현의 규모에 적지 않게 놀랐다.

성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외진 곳이라 여겼는데, 예상 외로 상권이 매우 잘 발단된 곳이었다. 아마 무당파가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무당파의 영향력 내에 위치한 곳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도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내일 아침 일찍 무당파로 향해야겠구나.’

그리 마음을 먹은 마현은 객잔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유심히 둘러보니 화려한 객잔들도 상당수 보였다.

마현은 그중에서 눈이 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3층 누각으로 이루어진 상당히 규모가 큰 객잔이었다.

‘선실(仙室)객잔이라.’

무당산은 일명 선실, 태화산(太和山), 삼상산(蔘上山)이라고도 하며 그 외에도 사라산(謝羅山), 태악(太嶽), 대악(大嶽)으로도 불린다.

무당파 아래 자리 잡은 객잔이라서 그런지 이름 또한 무당산의 다른 이름인 선실을 따와 지은 모양이었다. 그 외에 다른 객잔이나 주루들 역시 그러한 이름들을 따와 지은 곳이 수두룩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방현에서 가장 화려한 객잔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한눈에도 화려함이 느껴졌다. 또한 객잔에 들어선 이들 역시 누구 하나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일을 하는 점소이까지도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마현의 마음에 든 것은 그런 것이 아닌 객잔의 분위기였다.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담소를 나누는 흥겨움 뿐 고성을 지르거나 흐트러진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마현을 발견하고 점소이 하나가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옷도 단정하고 말투 또한 경박하지 않았다.

점소이만 봐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객잔임에 틀림없었다.

“별채를 빌렸으면 하는데…….”

“별채 말씀이십니까?”

점소이가 재빨리 마현의 몸을 훑었다. 과연 별채를 빌릴 재력이 있는지 눈대중으로 살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워낙 조심스럽게 살피는지라 기분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 별채가 남아 있으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마현은 점소이를 따라 계산대에 서 있는 비단옷을 입은 한 사내 앞으로 걸어갔다. 그 사내는 네 명의 남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화려한 비단 무복에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름 있는 무가의 자제들로 보였다.

“총관님.”

“무슨 일인가?”

“손님께서 별채를 빌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점소이의 말에 총관의 표정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총관은 계산대에서 나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방금 별채가 나갔습니다.”

자연스레 네 명의 남녀와 마현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이 고개를 까딱 숙이는 것으로 보아 별채를 빌린 당사자들인 듯했다.

“별수 없지. 조용한 방이라도 있는가?”

아쉽지만 이미 늦었으니 하룻밤 묵을 다른 방이라도 구해야 했다.

“별채보다야 못하지만 최상층 특실이 있습니다.”

“그걸로 주게.”

“알겠습니다.”

마현은 자신을 안내했던 점소이를 따라 객잔 뒤편에 있는 다른 건물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점소이의 말에 따르자면 이곳 객잔은 다른 곳과 좀 특이한 구조였다. 하나는 방금 마현이 들어온 선실객잔 선실루(仙室樓)라 해서 음식과 술을 파는 곳이었고, 지금 마현이 점소이를 따라 향한 뒤편 건물은 선실각(仙室閣)이라 해서 오로지 숙박만을 위한 곳이라 했다.

선실각은 선실루와 마찬가지로 3층 건물이었는데, 특실은 가장 최상층인 3층에 있었다. 비록 별채를 빌리지 못했지만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루로 가지.”

마현은 특실에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여장을 푼 후 다시 점소이를 따라 선실루로 돌아왔다. 그리고 선실루에서도 가장 고급이라는 3층으로 향했다.

1층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웠지만 2층은 더, 3층은 그보다 더 화려했다.

가격 때문이었는지 3층은 한창 객잔에 사람들이 모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하고 조용했다.

내부는 상당히 넓었지만 탁자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마현은 점소이를 따라 창가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자그만 연못도 내려다보이는 것이 제법 풍경도 좋아 보였다.

얼마 후 음식과 술이 나왔다. 혼자 먹기에 양이 조금 많았지만 마현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신분이 돈을 생각할 정도로 낮지 않기 때문이다.

술병을 들어 잔에 따랐다.

쪼르륵.

향긋한 주향이 느껴졌다.

마현은 술잔을 들어 한 잔 마셨다.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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